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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1530 vote 1 2014.12.29 (23:44:22)


    구조론은 세상을 구조로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안한다. 이는 거대한 발상의 전환을 요구한다. 생각하는 방법을 근본부터 바꾸어야 한다. 그러려면 그 전에 우리가 이미 길들여져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자신이 지금 어떤 방법을 사유하기에 쓰고 있는지를 알아야만 그것을 바꿀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인류학의 지식이 소용된다. 우리는 문명인이며 고도로 훈련되어 있다.


    현대사회의 많은 오류는 그러한 우리들 자신의 ‘훈련되어 있음’을 망각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이는 동물원에서 자란 동물이 다시는 자연의 품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이치와 같다. 어쩌면 우리는 문명사회라는 불량한 동물원에 갇혀 있는 것이다. 이 장면에서 소스라쳐 놀라야 한다. 그리고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이미 왜곡되고, 변질되어 있다. 우리는 본래의 순수함을 잃어버렸다.


    구조론이 요구하는 거대한 발상의 전환은 진리라 불리는 자연의 품으로 되돌아가기 위한 길들여진 동물의 야생적응훈련과도 같다. 익숙한 것과 결별해야 한다. 동양인은 상하, 좌우, 음양, 고저, 장단과 같은 대칭적 사고에 익숙해 있다. 이는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얼버무리는 상대주의적 사고로 나타난다. 대신 타협을 잘 한다. 어느 면에서는 평등지향적이기도 하다.


    반면 서양인은 기독교의 창세기에 영향을 받아 확실한 시작과 끝을 찾아내고야 만다. 대신 기독교와 회교의 오래묵은 분쟁처럼 타협이 안 된다. 서로가 끝장을 보려고 대치하다가 교착되어버린 것이다. 차별주의적인 요소가 강하다. 서구의 평등주의는 근대교육의 성과일 뿐 그들은 원래 차별적이다. 이는 단순한 기질의 차이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사유의 형태가 다른 것이다.


    노사가 서로 존중하면서도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며 견제하는 미국의 기업문화와 종신고용을 앞세운 일본의 기업문화가 다르듯이 분명히 다르다. 일본의 기업문화에 적응한 사람은 미국의 기업문화에 적응하기 어렵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근대는 대칭적 사고를 하는 상대성의 동양과 비대칭적 사고를 하는 절대성의 서양이 대결하여 서양이 이긴 역사다. 답은 비대칭이다.


    ◎ 동양적 사고 – 상대적, 평등적, 순환론적, 결말짓지 못하는 문화. 막후에서 갈등을 잘 조율하는 문화.
    ◎ 서구적 사고 – 절대적, 차별적, 인과율적, 확실히 결론을 내는 문화, 갈등을 잘 조정하지 못하는 문화.


    서구의 인과율이 동양의 순환론을 이겼다. 둘은 장단점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서구가 이기도록 되어 있다. 이는 구조의 법칙이다. 일본이 잘 나가다 망하는 것도 이 원리 때문이다. 지는 길을 계속 가면 결국 진다. 이기는 길로 갈아타야 한다. 그러나 서구도 완전하지 않다. 긴 호흡으로 보면 결국은 동양이 이기게 되어 있다. 단 지금으로는 안 되고 갈아타야 한다.


    인류학적 이해가 필요하다. 원시의 문명들에도 다양한 사유의 형태가 있으며 동양의 대칭도 그것이 발전한 것이다. 서구의 사상도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이 만나 융합을 일으키면서 발전한 것이다. 그런데 동양이 서구의 장점을 흡수하기 쉬워도 서구가 동양의 장점을 흡수하기 쉽지 않다. 왜냐하면 그들은 동물원의 길들여진 원숭이와 같아서 야생에 적응을 못하기 때문이다.


    원시의 사유는 그리스 신들처럼 잔뜩 나열하는 방법이다. 탈근대 사상가들은 문화 상대주의를 적용하여 원시의 사유에도 뭔가 체계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바보같은 주장이다. 체계는 있는데 원시체계다. TV에 방영된 아마존의 눈물에 나오는 묶음법이나 이누이트의 쌓기법은 한계가 있다. 어떤 부족민은 모든 자연물을 쓸모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으로 나누는 2분법을 쓴다.


    원시문명들의 방법은 체계 비슷한 것이 있지만 제대로 체계화되어 있지 않다. 때로는 실용적이나 합리성이 없어서 잘 복제되지 않는다. 그들은 하던짓을 계속할 뿐 나아가지 못한다. 99를 4각+20+10+9 (quatre-vingt-dix-neuf)로 읽는 프랑스어 숫자세기처럼 괴상한 것이다. 영국인들도 이렇게 하다가 갈아탄 것이다. 현대문명에 잘 적응하려면 마땅히 갈아타야 한다.


    공산주의도 한때는 대량생산, 대량공급, 대량복제로 재미를 봤다. AK소총이나 카츄사 로켓, T34 탱크에 그러한 공산주의식 물량주의 철학이 잘 반영되어 있다. 그리고 일정부분 성공했다. 그러나 신발에다 발을 맞추는 편법에 의지하다가 갈수록 망가진다. 눈앞의 문제를 어물쩡 우회하는 회피기동을 버리고 문제를 풀면 확실한 답이 나오는 수학적 사유로 나아가야 한다.


    손자병법의 꼼수로는 오래가지 못하며 오자병법의 정공법으로 갈아타야 한다. 자동차가 잔고장없고 값싸고 편하기만 하면 된다는 일본차의 편법으로는 독일차의 성능을 추월할 수 없다. 삼성이 편법으로 장사는 좀 했지만 애플을 이기지는 못하는 것과 같다. 지는 길로 계속 가면 결국 질 뿐이며, 편법으로 한 숨 돌리는 시간을 벌었다면 마침내 이기는 길로 갈아타야 한다.


    최종적인 것은 문제해결이 아니라 의사결정으로 보는 것이다. 동양의 대칭적, 상대론적, 순환론적 사고는 문제해결이 아니라 회피다. 서양의 문제해결은 확실하지만 그 문제는 과거의 문제다. 과거대응이다.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오류를 저지르게 된다. 상대성에서 절대성으로 갈아타듯이 마찬가지로 과거에서 미래로 갈아타야 한다. 의사결정으로 보는 관점의 획득이 정답이다.


    동물원의 원숭이는 길들여져 있다. 배가 고프면 먹고 배가 부르면 잔다. 배가 고프다는 사실은 문제다. 밥을 먹는 것은 문제해결이다. 그런데 왜 동물원의 동물들은 불행할까? 우리에 갇힌 북극곰은 잠시도 쉬지 않고 앞뒤로 왔다갔다 한다. 단순반복행동이다. 전문가는 이것이 스트레스에 의한 퇴행행동이라고 진단한다. 일종의 정신병이다. 바로 문제를 빼앗겼기 때문이다.


    그들은 문제를 해결했다고 믿지만 사실은 문제를 사육사에게 빼앗긴 것이다. 그렇다. 문명사회에 중독된 우리는 많은 문제들을 사육사에게 약탈당하고 있다. 자연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 문제는 나무 그루터기 뒤에 숨어 있고 동물은 그것을 발견해낸다. 문제와 해답은 세트로 존재하며 문제를 찾았을 때 이미 답을 찾은 것이다. 기쁨은 그 가운데 있다. 설레임과 긴장이 있다.


    우리는 문제를 약탈당했다. 미래를 설계하는 관점을 잃어버렸다. 의사결정으로 보아야 한다. 문제해결이 아니라 문제발견이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는게 아니라 없는 배고픔을 찾아내야 한다. 히딩크처럼 밥을 먹어도 배고파야 한다. 답을 맞히는 신분이 아니라 문제를 내는 신분이 되어야 한다. 문제와 답의 쌍은 인과율에 있다. 서구정신은 그 인과율에 철저한 것이 장점이다.


    반면 그 인과를 장악하지 못한 것이 서구정신의 한계다. 그들은 원인을 고정시켜놓고 결과를 찾는다. 문제는 과거에 일어나고 답은 언제나 현재에 제출된다. 그들의 사유는 현재에 머무르며 과거를 바라본다. 답을 얻었지만 대신 문제를 약탈당한다. 원인측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 스스로 문제가 되어야 한다. 문제를 약탈당하지 말아야 한다. 슬그머니 길들여지지 말아야 한다.


    대칭구조로 보아야 의사결정이 가능하다. 동양정신에는 그것이 있다. 대칭의 한쪽 날개에 매달리면 상대주의 오류에 빠지고 말지만 대칭의 축을 장악하면 문제생산에 성공한다. 권투선수는 링 위에 올라있다. 링이 대칭의 축이다. 그 축이 흔들린다면? 기울어진 축구장이 된다. 서구는 링을 고정시켜놓고 상대방을 팬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한다. 그런데 그 링이 움직여 버린다면?


    ◎ 서구는 고정된 링 위에서 상대를 이긴다.
    ◎ 동양은 흔들리는 링 위에서 잘 적응할 뿐이다.
    ◎ 정답은 링의 지배자가 되어 링을 흔드는 것이다.


    동양은 흔들리는 링 위에서 잘 적응하려 한다. 패배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기지 못한다. 흔들리는 링 위에서 탭댄스를 추며 균형을 잘 잡지만 그 링을 지배하지는 못한다. 서커스 소년의 곡예와 같다. 곡예로는 지지 않을 수 있으나 이기지도 못한다. 결과는 서구의 승리다. 스스로가 그 링을 흔들어야 한다. 세상을 자극하여 격동시키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흔들어야 산다.


   111.JPG


    우리는 세상을 향해 문제를 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인생은 답을 찾는 삶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답을 찾는 태도야 말로 길들여진 동물원 전시실 원숭이의 모습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답을 찾으려는 태도를 버리고 세상을 향해 문제를 내는 사람이 되는 것, 바로 그것이 인생의 진짜 정답입니다. 

    


[레벨:11]큰바위

2014.12.30 (01:35:18)

"최종적인 것은 문제해결이 아니라 의사결정으로 보는 것이다."

통찰입니다. 


그러나, 의사결정이라는 "과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답인데, 

의사결정이라는 과정을 겪지않고, 의사결정을 목적으로 본다는 게 현실.


동렬님이 늘 의사결정을 강조하는데, 

읽는 사람들이 그것을 여전히 목적이나 결과로 접근합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개인이 아니라 팀으로 해야한다는 말은

과정을 말하는 것이고, 

의사결정은 결국 팀의 소통과정을 통해 결론을 도출해 내는 것이지요. 


어떤 것을 과정으로 본다고 한다면 인과율은 중간에서 멎을 수도 있습니다. 

즉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원인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것이지요. 


사람들은 결과에 집착하여 원인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원인에 충실하면 과정이 중시되고, 활을 제대로 쏘면 당연히 소눈깔에 당도하게 되어 있는 거죠. 


답은 문제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진짜 답은 문제를 내는 사람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신이 신인거고, 신과 맞짱을 떠야 하는 겁니다. 


문제를 제대로 낼줄 아는 사람은 신적인 사람입니다. 


예수는 진지한 질문을 받고 다시 되 묻습니다. 

질문한 사람의 링을 다시 흔들어 버리는 거죠. 


그러면 질문한 사람이 머리를 벅벅 긁고 갑니다. 

언젠가 제대로 된 질문을 들고 다시 오리라! 

하면서........


그러나 제대로 된 질문을 던져도 예수는 늘 그 사람의 링을 다시 뒤흔들고 십자가 위에서 죽습니다. 

왜 예수는 십자가에서 그렇게 죽어야 했을까? 

라는 질문을 던져놓고.......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져놓고......


아주 불편한 질문입니다. 

정형화된 답은 사양하고,

익숙한 것과 결별하도록.........


그런 의미에서 거대한 건물안에 갇힌 기독교는 껍데기라고 보면 됩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2]wisemo

2015.01.01 (15:18:07)


 "편법으로 한 숨 돌리는 시간을 벌었다면 마침내 이기는 길로 갈아타야 한다."

***

" 남북한 사이에 공유되는 서해바다처럼 살짝 건드려도 큰 소리가 나는 민감한 부분이 있다. 

그렇다면 바로 그곳을 건드려야 한다. 거기서 불협화음이 아닌 화음을 끌어내야 한다. 


겹치고 공유되는 부분을 멋지게 연주해 내는 것, 

그 부분을 아름답게 디자인해내는 것이 의사결정의 정답이다. 


그럴 때 조직은 성장하고, 물결은 흐르고, 생명은 호흡하고, 자동차는 질주하고, 우주는 팽창한다. 

비로소 진리는 온전한 제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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