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 초에 도쿄에 갔다가 지하철역에서 수많은 노숙자를 보고 아니 이 잘사는 나라에 왜 이리 거지가
많지 하고 의아해 했습니다.거지와 노숙자의 차이를 그 때는 몰랐으니까요.
거지는 구걸을 전문적으로 하는 직업이고 노숙자는 사회와 벽을 쌓고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이라고
여겨집니다.
홈리스는 집이 없는 사람입니다.
전세는 말할 필요없고,
월세 낼 돈이 없으면 홈리스 되는 겁니다.
홈리스는 여러 유형이 있지만, 주로 사회가 사람들을 홈리스로 내모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부의 대책이 필요하지요.
후진국일수록 홈리스에 대해 거지, 구걸하는 사람 정도로 압니다.
까뮈님 말대로, 선진국에 가면 사회와 벽을 쌓고 다른 세계에 사는 홈리스들이 꽤 있습니다.
변호사 출신도 있다니까요.
낮에는 출근도 해요.
홈리스들에게도 존엄이 있어요.
거리에 있을 때는 홈리스지만, 커피숖에 앉아 있을 때 돈을 주면, 안받는 홈리스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홈리스를 직업으로 여기기도 하지요.
존엄을 지켜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한국이란 나라에는 홈리스를 위한 존엄의 자리가 없습니다.
안타깝습니다.
출판사는 출판사의 정책이 있고,
작가는 작가 나름의 상황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소통의 문제입니다.
서로 소통하고 팀을 이루면 서로에게 유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요. 작가의 창작 의욕이 꺽이지 않도록 지분을 확보해 주는 것이 필수입니다.
그런 출판사를 찾고, 팀을 이루어 나가면 못할 것도 없겠지요.
RJ 쪽에서 <<갈등전환>>, <<트라우마의 이해와 치유>>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상우 샘이 이쪽에 관심이 있으신 것 같아서...
당연히 작가의 창작이 우선이죠. 창작이 있어야 출판이 있는거니까
영화 시나리오작가와 감독제작의 관계도 마찬가지고
방송작가와 PD의 관계, 광고판의 AE와 카피라이터관계도 완전히 갑을관계.
한국에서는 창작자가 관리자의 따까리밖에 안됩니다.
기본구성이 거꾸로 되어있는데 소통이니 팀이니 만들어질까요?
창작자가 갑, 관리자(제작 유통 포함)가 을. 이 관계로 바로잡아야 정상적인 팀이 꾸려지죠.
순서는 아이디어-창작(작가)-다듬기(교정/편집인)-출판(출판사)-책(독자)로 작가가 먼저이지만,
권의 형성은 뒤로 가는 것이 많습니다.
여기에도 질-입자-힘-운동-량이 해당될지 모르겠네요.
굳이 갑을 관계로 보지 말고, 협력관계 쌍생관계, 팀워크로 보면 더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동렬 총서를 내는 바탕소처럼.....
돌아이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