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시계 보면 된다. 시간은 물질의 운동 특성을 반영하는 논리장치다. 결국 시간은 물질에 대한 설명이다. 그러므로 물질 따로, 공간 따로, 시간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삼위일체다. 셋은 하나다. 그런데 왜 시간인가? 시간은 무한한데 왜 사람들은 시간이 없다고 말할까? 왜 시간이 모자란다고 말할까? 상호작용 때문이다. 관측자가 있는 것이다. 관측자가 인간이므로 물질과 인간의 상호작용에서의 일치와 불일치 문제에 시간의 의미가 있다. 상호작용에 성공하면 소통이다. 시간은 소통의 의미가 있다. 소통하려면 완결시켜야 한다. 우리가 밥을 먹다가 말고, 똥을 싸다가 말고, 세수를 하다가 말고 데이트를 하러 약속장소에 오지는 않는다. 그런데 왜 영어공부 할 때는 단어를 외다 말고, 문법을 익히다 말고, 회화를 하다 말고 시험을 치러 와서 성적타령을 하는가? 이건 도무지 무슨 심보인가? 선생님이 수업을 하는데 제자가 60명이다. 수업을 하는 중에 제자가 계속 교실로 들어오면 골치아파진다. 진도가 안 나가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9시까지 교실에 들어와라 하고 시간제한을 건다. 결국 시간이란 상호작용에 필요한 완결성이며, 그것으로 얻는 것은 소통이며, 완결되지 않으면 소통이 실패하는 것이며, 밥을 먹다 말고 똥을 싸다가 자르고 세수를 하다가 멈추고 데이트를 하러 가서 데이트 중에 “실례.. 화장실 좀.. 제가 똥을 싸다가 중간에 자르고 와서..” 이건 아닌 거다. 똥을 싸고, 밑을 닦고, 세수를 하고, 화장을 하고, 말끔하게 완결시키고 와야 한다는 거다. 결국 시간이란 동료와의 타이밍의 일치를 통한 에너지 효율을 꾀하는 것이며 그리하여 점점 커지는 것이다. 시간의 일치를 통해 하나의 세포는 한 명의 생물체로, 한 명의 학생은 한 반의 교실로, 한 명의 병사는 한 소대의 부대로 확대되고 커지는 것이며 커질 때 효율적으로 된다. 그러므로 소통만 잘 되면 인구가 국력이다. 시간은 공간의 대칭을 시간의 비대칭으로 전환하여 사건을 종결시켜 완전성을 획득함으로써 소통을 성립시킨다. 여당과 야당의 공간적 대칭이 선거에서 승자와 패자의 비대칭으로 전환된다. 선거는 시간제한이다. 이러한 대칭>비대칭을 거치지 않으면 소통에 실패하여 인구가 국력이 아니라 난장판이다. 우크라이나 꼴난다. 그러한 시간제한의 방법으로 추를 미로, 약을 강으로, 소를 대로, 불협화음을 화음으로, 악을 선으로 바꾸어 그것을 완성시킴으로써 완전하게 하고 동조하게 하여 커다란 형태를 일구어 낸다. 시간제한이 없다면 나무는 꽃을 피우지 않고 내년으로 미루고, 푸틴은 선거를 하지 않고 내년으로 미루고, 그네는 부정선거를 사과하지 않고 계속 미루어, 결국은 난리가 나서 싸던 똥을 중간에 자르고 데이트 하러 가는 꼴이 된다. 결론적으로 존재는 상호작용이며 상호작용은 소통의 완결성을 필요로 하며 이에 시간제한을 걸어, 싸던 똥을 말끔하게 싸고, 중간에 똥 자르고 오지 않게 하는 것이 시간이다. 그러므로 산다는 것은 한 시간, 한 건, 한 판, 한 게임, 하루, 한 달, 일년, 일생으로 계속 완결시켜 가는 것이다. 그것이 시간이다. 에너지≫물질≫공간의 대칭성≫시간의 비대칭성≫의사결정의 완결성으로 불완전을 완전으로 바꾸어 널리 소통함으로써 존재는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낸다. 그것이 상호작용이다. 상호작용의 한 축을 이루는 인간이 관측자인 자기를 빼놓고 돼지셈을 하므로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설명하면 잘 알아듣겠지만 돌아서면 다 잊어먹을 듯 하다. 싸던 똥을 중간에 자르고 나가면 안돼 하고 말하면 다들 맞아맞아 하지만 실제로는 영어공부 할때처럼 싸던 똥을 중간에 자르고 나간다. 안철수 하는 짓이 그렇잖아. 계속 중간에 자르고 있다. 하나라도 말끔하게 완결한 것이 없다. 새정치가 뭔지 창조경제가 뭔지 말끔하게 설명하여 모두의 동의를 거쳐 진도나가야 하는거 아닌가? 부정선거든 국정원의 개혁이든 하나라도 완결시킨게 있나? 완결시키지 않으니 계속 상처가 덧나는 것이다. 계속 싸던 똥을 중간에 자르고 있다. 누가? |
그렇지요. 싸던 똥을 누군가가 대신 이어서 싸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일단 단위별 시간을 완성하고,
소속된 공동체의 시간을 완성하고,
주어진 우주 속에서 시간을 완성해야 하겠지요.
물질, 공간, 시간이 하나로 완결될 때,
거기서 완전성을 찾을 수 있는 거라 생각합니다.
연아의 피겨
조던의 농구
잡스의 아이폰
석가의 출가
예수의 시험
예수의 십자가
간디의 무저항
만델라의 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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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산다는 것은 한 시간, 한 건, 한 판, 한 게임, 하루, 한 달, 일년, 일생으로 계속 완결시켜 가는 것이다. 그것이 시간이다."
세상의 거울이군요.
세살박이나 여든살이나 동시에 비춰주는 거울.
비춰진 모습만 잘 보면
모두가 밀리언 셀러 저자가 될 것 같다는 강한 충동...
비즈니스로 보면 성공(완성)모델이 있어야 복제(소통)되는 이치.
시간의 개념을 "시간일치"와 "시간제한"으로 치환하면 될 듯합니다.
시간일치는 존재의 확대와 에너지 효율을 낳고
시간제한으로 "소통의 완전성을 필요로 하는 상호작용"을 낳고...
시원하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