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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명하시오.
큰바위님은 어느 것을 말하는 것입니까?
1) 그림 속의 파이프
2) 글자 속의 이것
3) 글자 속의 파이프
결론 .. 이것은 이것이고 파이프는 파이프다. 그런데 왜 이것이 파이프입니까?
판이 벌어졌소.
파이프다
파이프가 아니다
파이프인것도 아니고 아닌것도 아니다
파이프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신명나는 한 판이 벌어지오
사람들은 흥분해서 너도 나도 뒤를 이어 선언하오
이것은 인간이 아니다
이것은 흑인이 아니다
이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이것은 자유가 아니다
텅 빈 마당에 깃발 하나 꽂으면 누군가는 깃발이 펄럭인다고 하고 누군가는 바람이 분다고 하오. 그러나 요동치는 것은 바로 그 마당이오.
판을 세팅하는 법을 마그리트는 보여주고 있소. 그것은 무심한듯 시크하고 천연덕스럽고 뻔뻔해야 하오.
헛소리!
나는 내가 아니다.
너는 네가 아니다.
나는 너이다.
너는 나이다.
몰랐다고 말하지 말라.
뻔한 것을 뻔한 것이라고 할 뻔 한 뻔뻔함을
정신이 번쩍나게 그려주마.
이든 아니든
이거나 아닌 대칭구조에 주목했다는 증거가 약하오.
이것은 대칭을 찾는 문제이오.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고도가 오든 안 오든, 고도가 신이든 아니든
그것은 하나의 완결된 세계이며
그 세계는 매우 즐겁다는데 주의해야 하오.
왜냐하면 고도는 반드시 와야 한다거나
혹은 고도는 신이어야 한다거나 하는 사람들을
갖고 노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오.
당신은 매우 단호한 어조로 말할 수 있소.
'고도는 오지 않아. 멍청이.'
'고도는 신이 아냐. 멍청이.'
그때 당신은 심술이 가득한 얼굴로 한껏 교만을 떨 수 있소.
그런 풍경.. 당신 내면 깊은 곳의 허영심과 교만이 노골적으로 전시되어 있는
유치발랄한 풍경 앞에서 낄낄거릴 수 있소.
그러므로 그것은 에덴동산과 같이 하나의 완결된 세계이오.
그들은 고도를 기다릴 수 있소. 그 세계는 대칭된 세계이오.
'A면 B다'의 대칭성이 작동하는
작은 돌 하나를 던져 커다란 파문을 일으킬 수 있는
이상적으로 닫힌 꿈의 세계. 깰 수 없는 영원한 꿈.
그것은 파이프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소.
권력은 당신에게 있소. 굿바이.
이미지와 텍스트의 아슬아슬한 대칭이 빚어내는 긴장감.
그것은 마치 한껏 당겨진 현악기의 현과 같은.. 살짝 건드려도 큰 소리가 나는.
그 대칭성의 긴장에 주목하는 사람은 뭔가 볼 줄 아는 사람이고
딴 소리로 해설하는 놈은 주뎅이를 때려줘야 하오.
어쨌든 고도를 기다리며에는
아담과 이브 두 명이 등장하지만
사실은 하느님과 뱀까지 네 명이 등장합니다.
사과와 사과나무는 대사가 없으니 빼도 좋소.
이 그림에서 파이프는 두 개가 등장하지만
잘 보면 더 있음을 알 수 있소.
각자 자기 파이프를 찾아가는 권력행사를 지켜보는 즐거움.
텍스트와 이미지의대칭 관계.
이그림을 보는 다른이와의 소통의 문제
뜻을 찾으려 하면 실패.
만약 그랬다면 불순한 의도.
이미지는 진실이고 텍스트는 거짓이다.
행동은 진실이고 약속은 거짓이다.
딱 여기서 멈추고 더이상 진도가 안 나갑니다.
네가지가 안보이네요.
쓸데없는 탐구
이건 파이프가 아니다.
굴뚝이다.
모든 사람이 파이프라고 할때 나는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모두가 이건 숫가락이야 라고 할때 나는 아니라고 할수 있을까?
모두가 이건 담배야 라고 할때 나는 아니라고 할수 있을까?
이름은 붙어 있지만
그 이름이 전부는 아니겠지요.
파이프는 파이프이지만 나는 파이프가 아니라고 하고 싶다.
나의 무엇인가가 되고 싶다.
김춘추의 꽃이라는 시가 생각나네요.
좋은 접근은 아니오.
이런 그림을 보면 '뭔 개소리야?' 하며 화를 내는 사람이 많소.
별 내용도 없는데 화를 내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재미있지 않소?
자신감을 가져야 하오. 화를 낸다면 이미 주눅이 든 것이오.
늘 하는 말이지만 그림에 뜻 같은건 없고, 만약 있다면 곤란하오. 그건 실패.
팽팽하게 당겨진 현은 살짝 건드리면 소리가 나오.
건드리면 바로 소리가 나야지 무슨 깊은 뜻을 담아서
어찌어찌 조리해야 하는 것은 아니오.
이런 그림이 유쾌한 것은 .. 예컨대 하이퍼 리얼리즘이라면.. 허벌나게 노가다 해서 그려야 하는데
최소비용으로 최대효과를 일으켰으니 그것이 어찌 art가 아니겠소?
art라는 거.. 최소비용으로 최대효과.. 최소노가다로 최대 센세이션. 대칭을 통한 긴장.
어쨌든 이보다 더 간결한 구성으로 이보다 더 큰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art는 쉽지 않을걸.
비트코인도 아트라면 아트지만.. 노가다가 만만찮고 이건 그 반대쪽에서 아트.
궁금하네요.
파이프 네가지가 어떤 건가요?
일단 제목이 파이프잖소.
이미지로 그려진 파이프가 있고
텍스트로 된 문장 속의 파이프(pipe)가 있고
텍스트 문장 속의 이것(ce)도 파이프죠.
그림 제목은 <이미지의 배반> 아닌가요?
그런가요?
파이프의 우상(그림), 파이프의 기표(pipe), 기표의 기표(이것)가 서로를 지시할 뿐, 정작 대상인 파이프(사물)는 어디에도 없죠. 실체의 부재, 또는 실체를 소외시킴으로서 예술과 관념이 완성되는 아이러니를 의도했다고 봅니다.
파이프는 그림에 있잖소?
소비되는 이미지(기표)로서의 파이프는 있습니다. 사람들은 파이프가 실재하고 소유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끊임없이 그 이미지와 기표만 소비할 뿐이죠. 기표와 기호만이 영원이 반복됩니다.
파이프 그림을 그렸는데, 그런데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선언 지점에서,
그림(형식)와 파이프(대상)을 분리해낸데 큰 의미가 있는 듯 합니다.
의미가 있으면 그림이 아니죠.
작가는 그런 애매한 시점에서 변이되는 생각의 전환을 탐색
점프가 일어나는 지점에서 예술 탄생
이것은 파이프가 맞는데 왜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라고 말할까?
아~ 그러고보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것은 파이프를 그린 것이지 진짜 파이프는 아니구나.
내가 사는 공동체는 담배를 쟁여두고 불을 붙이는 구멍과 연기를 빨아들여 들이마시는 구멍이 있는
특성이 있는 물건을 파이프라고 부르기로 어느새인가 약속을 하였고 그렇기에 이 그림은 우리가
파이프라고 부르기로 한 물건의 전형적인 모습을 똑같이 그린 그림이지 파이프는 아니구나.
이건 당연히 파이프지! 무슨 소리야! vs 이건 파이프가 아니야! 라는 두 대칭이 있고
이 대칭을 넘어서서 공동체가 시간의 흐름속에서 약속에 의해 파이프라고 부르게 된 것이라는 진실이
녹아 스며들어 있기에 우리는 이 그림을 보고 파이프라고 부르게 된 것이라는 걸 일깨워주는 것이다.
해설이 너무 친절하면 이미지의 실패요.
르네 마그리트는 아마 수백 점을 그렸을 텐데 전부 같소.
글자를 써놓은건 이것 뿐이겠지만.
르네 마그리트의 모든 그림에 해당되는 이야기가 정답이오.
해설이 자세할수록 추상성(공통성)은 손상되는 거.
르네 마그리트의 모든 그림이 이미지 뒤틀기요.
이 그림에만 해당되는 설명은 무조건 잘못이오.
마그리트의 모든 그림을 모아서 한마디로 말하자면 "낯설게 하기"라는 표현은 어떨까요?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고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낮설게 보라.
어떻게든 반응을 끌어내면 그것은 성공입니다.
반응을 끌어내는 방법은 대칭을 심는 거.
저건 파이프가 아니다.
이건 파이프가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