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주의는 열등감 그 자체다 자격없는 자가 어떤 이유로 높은 지위를 얻게 되었을 때 자괴감을 느낀다. 정당하지 않은 자신의 자격을 정당화 하는 방법은 남탓하는 것이다. 보수는 한 마디로 남탓주의라 할 수 있다. 보수를 설득해서 인간 만들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 실패한다. 보수는 본래 심리적이며, 그 심리는 과거에 입은 정신적 트라우마에 기초하고 있고, 그 트라우마는 잘 치료되지 않기 때문이다. 설사 트라우마를 치료한다고 해도 인간이 되지 않는다. 진보는 팀플레이라 할 수 있는데 팀플레이를 훈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미 늦었다. 진보에 들려고 해도 손발이 안 맞아서 안 된다. "진보는 절대적 개념이 아니며, 시대적ㆍ역사적 배경에 따라 상대성을 띠는 개념이다."(나무위키) 보수를 이해하려면 먼저 진보를 이해해야 한다. 대부분 진보주의를 상대적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다. 틀렸다. 진보가 뭔지 모르는 사람이 하는 이야기다. 진보를 모를 뿐 아니라 언어를 모른다. 진보를 상대적이라고 우기는 사람도 설득이 안 된다. 언어학을 다시 배워야 하는데 초등학교 국어과목부터 다시 가르칠 수도 없고. 현실의 진보가 상대적으로 보이는 것은 철학자들 탓이다. 그거 개념잡아주는게 철학자의 직업인데 그들이 놀았기 때문이다. 철학은 인류 중에서 제일 똑똑한 사람이 해야 한다. 18세기에는 천재들이 철학을 했지만 지금은 서울대 떨어진 넘들이 한다. 진보는 절대적이다. 진보는 변화를 받아들이는데 실제로 사회가 변하기 때문이다. 사회가 왜 변하는가? 첫째 인구가 늘기 때문이고 둘째 사회적 상호작용 총량이 절대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셋째 인류의 지혜와 자산이 축적되기 때문이다. 진보와 진화는 같다. 왜 진화가 일어나는가? 유전자가 변하기 때문이다. 왜 진보가 일어나는가? 사회적 의사결정 시스템이 변하기 때문이다. 진화가 상대적이라 말하는 사람은 없다. 인간과 원숭이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진화했는지 알수 없다고 말하면 틀렸다. 확실히 인간이 더 진화했다. 유전자를 비교해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 황인종이 백인종보다 더 진화했다. 물론 백인들은 절대 이런 말을 안 한다. 그런데 유전자를 조사해 보면 답이 나온다. 일만 년 전의 인류와 지금의 인류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어 있다. 돌이킬 수 없는 변화다. 엔트로피의 법칙이 입증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그 사회가 질과 양에서 달라졌다. 요는 의사결정 시스템이다. 절대적 변화가 일어났으므로 진보는 절대적이다. 물론 진보가 상대적 개념으로 쓰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언어의 문제일 뿐 진보 그 자체는 절대적이다. 진보는 인류 집단지능의 진보다. 인류는 과거 도스를 쓰다가 윈도로 바꾸었다.
◎ 절대적 진보.. 여러 사람의 지혜를 합치는 사회적 의사결정 시스템의 진보. 시스템은 원래 없었는데 인간이 만들었다. 시스템이 진보했으므로 진보는 절대적이다. 다만 시스템을 모르는 바보들이 이런저런 소리를 늘어놓아서 헷갈리게 한 것이 상대적 진보라 하겠다. 보수는 상대적이다. 보수는 보수 자신을 규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진보가 바뀌면 보수도 자동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진보는 바뀌어도 일관성이 있지만 보수는 그 일관성이 없다. 무엇이 보수인가? 민족주의를 보수라 하는 사람이 있다. 민족주의 역사는 백년도 안 된다. 원래 없던 거다. 원래는 종교가 중요했다. 기독교권, 회교권, 힌두교권, 유교권이 민족을 대신했다. 가족주의를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은 근래의 핵가족 현상에 따른 것이다. 진보가 민족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며 진보가 원래 가족을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가족주의는 산업화의 결과다. 민족주의는 이동기술과 통신기술의 발달 때문이다. 진보주의자들은 외국을 많이 가봐서 이동을 많이 하고, 또 외국인과 통신을 많이 하므로 이동과 통신의 장벽을 만드는 민족을 안 쳐준다. 한국의 보수가 친일친미인 것만 봐도 보수가 민족주의라는 것은 전혀 말이 안 된다. 진보가 일부 반산업적 스탠스를 가지는 것은 진보운동하는 사람의 직업이 주로 학계에 속하기 때문이다. 진보가 남북통일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보수가 남북한을 이간질하는 편가르기 수법을 쓰기 때문이다. 즉 보수=반통일은 아닌데 보수가 집권을 위해 정략적으로 통일을 반대하는 것 뿐이다. 무엇인가? 한국의 진보와 보수는 집권전략에 맞추어 왜곡되었다. 보수가 반통일, 반민족일 리는 없는데 집권을 위한 편가르기 수법으로 그렇게 간다. 경상도가 휴전선에서 거리가 머니깐. 일본과 거리가 가까운 경상도는 50년대부터 밀항해서 일본을 드나드는 사람이 많았다. 주변에 일본통이 많으면 당연히 일본을 이용해먹으려 한다. 이런 여러가지가 합쳐져 친일이 된 거다. 문제는 보수의 리더들이다. 왜 진보매체 대자보에서 활동하던 변희재는 갑자기 보수가 되었을까? 왜 김문수, 이재오는 보수가 되었을까? 열등감 때문이다. 보수들 중 상당은 성공한 부자다. 그들의 부는 90퍼센트 이상 부동산 투기로 이루어졌다. 부당한 부를 이룬 사람이 자신의 부를 정당화 하려면? 남탓해야 한다. 이명박은 현대건설 말아먹은 열등감을 보상받으려고 한 거다. 이재오, 김문수는 생계형 보수다. 진보운동 하다가 궁핍해졌는데 그 때문에 한이 많은 거다. 무엇인가? 요즘 진보는 강남좌파라는 말에서 보듯이 궁핍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변절을 안 한다. 조중동이 보수하는 이유 중의 상당은 민주화 시대 운동권에 대한 열등감 때문이다. 자기들은 비굴하게 권력에 굴복했는데 누구는 고개 빳빳이 들고 돌아다니는 꼴을 보니 배가 아픈 거다.
1. 성급한 진보의 실패에 따른 개량주의 보수는 이 다섯가지 이유들로 만들어진다. 이들은 모두 상대적이며 심리적이다. 사실은 진보가 보수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므로 보수 자체의 정체성을 가지지 않는다. 그냥 진보가 싫은 거다. 첫째 개량주의는 급진파 진보가 ‘너희는 보수야.’ 하고 규정해서 만들어 낸 것이다. 실제로는 보수가 아닐 수도 있다. 소극적 개혁이든 급격한 혁명이든 사회에 대한 관심은 일단 진보주의다. 둘째 패거리 현상은 진보가 진보적이지 않은 거다. 진보=자유주의라야 하는데 진보집단 내부의 권력자들은 보수적이다. 조직을 장악한 진보기득권이 보수행동을 해서 진보혐오를 만들었다. 셋째 권위주의는 단기적으로 성과를 낸다. 정치는 10년을 해야 성과가 나오는데 5년 단임제는 진보에게 불리하다. 단기간에 성과를 내려면 총통제가 답이다. 한국인 특유의 조급증이 문제다. 넷째 대중의 지식인 혐오 정서는 진보 지식인이 영어를 남발해서 쉬운 말을 쓰는 박근혜를 찍게 만든 것이다. 진보는 더 프로다워야 하는데 아마추어 집합소다. 한국의 지리적 고립이 문제다. 다섯째 소수자 혐오, 다문화 혐오는 인간의 본성이므로 기술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역시 고립이 문제다. 교양이나 도덕은 외국이나 타인보다 더 잘나고 싶은 심리인데 그 비교할 외국이 없다. 결론적으로 보수는 성급한 진보의 판단오류+사회적 시스템의 미비로 인한 부실함+문화적 지체에 의한 심리적 반발인데 모두 상대적 가치다. 상대적이라는 것은 해결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첫째 개량주의는 노선다툼에 골몰하는 무개념 진보가 낙인찍기를 해서 중도를 보수로 몰아붙이는게 잘못이다. 지도자가 뛰어나면 자연히 따라오게 되어 있다. 때로는 속도조절이 필요하다. 둘째 패거리 문제는 더욱 정교한 패거리를 만들어야 해결이 된다. 진보는 노조를 비롯해서 조직을 만드는데 이걸 제대로 잘 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은 노조가 되레 기득권이 되어 있는 편이다. 셋째 트럼프를 비롯한 자수성가형 인물이 보수로 가는 이유는 이들이 단기적인성과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진보도 맞대응을 해서 30년이 걸리는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띄워야 한다. 넷째 대중의 지식인 혐오는 프로 정치인 양성으로 해결할 수 있다. 대학교수는 뒤로 빠지고 박원순처럼 실제로 현장에서 일해본 사람을 투입해야 한다. 입으로만 떠드는 자들은 좀 꺼져주라. 다섯째 문화적 지체는 외국과 교류를 늘려주면 해결된다. 촌놈들이 쫄아서 그런 것이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주변에 북적거리면 한국인들도 잘난척 하기 위해서 교양과 도덕을 찾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답은 나왔다. 첫째 노선다툼 금지, 둘째 정밀한 조직운동, 셋째 장기적인 프로젝트, 넷째 노련한 현장 활동가 투입, 다섯째 외국과의 교류와 보다 개방적인 태도가 진보의 정답이다. 이들을 모두 종합하면 진보는 프로가 되어야 한다는 거다. 솔직히 아마추어가 너무 많다. 뭣도 모르는 놈들이 말이 많다. 무슨 일이든 일을 좀 해보고 떠들어라. 자연히 답이 나오게 되어 있다. 진보는 인류가 모두 연결되어 하나의 패거리를 이루고, 집단적 의사결정에 나서는 것이며, 그러므로 고립과 격리를 주장하는 자폐증 진보는 적이다. 찌질이들의 피해의식부터 극복해야 한다. 이제는 진보가 갑이다. 이재오, 김문수와 같은 생계형 보수는 이제 없다. 진보가 더 폼나고 때깔이 좋다. 진보가 더 얼굴이 피둥피둥하다. 이런 시대가 되었다. 거기에 맞게 생각을 바꿔야 한다. 찌질한 애들이 보수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열등감 때문이다. 그들은 부당한 방법으로 성공했으며 자괴감을 느끼고 있다. 도둑이 제발이 저린 격이다. 그들의 비명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인간의 무기가 돌에서 창으로, 활로, 총으로, 대포로 진화하듯이 인간의 의사결정방식도 최대다수가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형태로 진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기를 바꿀때마다 부작용도 발견되기 마련이라서 보수는 항상 진보를 따라다니게 되어 있습니다. 진보가 이기는 방법은 중앙으로 달려가거나, 아니면 스스로 중앙이 되는 방법 뿐입니다. 변두리에 고립되어 있으면 반드시 보수화 됩니다. 자신이 서 있는 위치가 인류 의사결정의 심장부라고 믿지 않으면 안 됩니다. |
다른 건 몰라도,
명망가-교수들이 검증없이 정치에 진입하는 것은 최악이다.
이들은 어떤 이익계층을 대변하는 것도 아니고,
이들은 어떤 관심계층을 대변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자기가 잘나서 된 것으로 알고 있고
행동양태가 딱 그러하다.
전형적으로 그런 사람이 안철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