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의 불쌍한 처세술 네이버는 얼마전 아프리카 검칙어 논란에 대해 사과하면서 정치적 중립을 주장하는 게시물을 대문에 걸었던 적이 있다. 최근 다음은 아고라에 반대베스트를 신설하며 표피상의 중립을 표방하고 있다. 다들 중립을 말하지만 어느 쪽도 진정한 중립은 아니다. 무엇이 중립일까? 다섯가지 중립을 말할 수 있다. ◎ 기계적인 중립.. 현안에 대한 국민의 여론과 상관없이 여야를 5 대 5로 보고 조중동과 그 반대편의 한겨레, 경향, 오마이뉴스를 절반씩 배치한다. ◎ 여론을 반영하는 중립.. 여론의 찬반이 7 대 3으로 갈리면 찬성기사 7에 반대기사 3의 비중으로 배치한다. ◎ 성향을 반영하는 중립.. 네티즌의 상대적인 개혁성향을 반영하여 국민여론이 5 대 5라도 네티즌 여론이 9 대 1이면 9 대 1로 배치한다. ◎ 적극성을 반영하는 중립.. 현안에 무관심한 다수의 침묵은 배제하고 현안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오피니언리더의 시각 중심으로 찬반을 살펴 기사를 배치한다. ◎ 전문성을 반영하는 중립.. 기존에 널리 알려진 시각과 다른 새로운 시각-새로운 관점을 제공하는 기사, 특종보도, 해당분야 전문가의 시각이 반영되어 있는 기사는 비중있게 배치한다. 네이버든 다음이든 말로 중립을 표방하나 실제로는 예의 여러가지 중립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참되게 중립적이기 어렵다. 중립이 옳다는 근거도 없다. 나라가 잘못가고 있는데 포탈이 중립을 지켰다고 면책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건 왜 중립인가이다. 시장의 신뢰를 얻기위한 것이다. 이랬다 저랬다 하지 않고 한 방향으로 일관되게 가야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여론은 변한다. 광우병 쇠고기 반대하던 조중동이 정권 바뀌자 태도를 바꿨다. 여론따라 변하고 상황따라 변하는 중립은 속임수다. 포탈이 스스로 전문성을 가지고 적극적인 가치판단을 해야 한다. 네이버와 다음의 자기판단 없는 중립표방은 실로 편의적인 양다리 걸치기에 불과하다. 나는 특히 네이버의 중립표방 뒤에 숨은 교활한 처세를 경멸한다. 선과 악 사이에서 중립은 있을 수 없다. 신문과 포탈이 독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으로 역할을 한정한다면 지나치게 소극적이다. 적극적으로 역사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역사는 언제라도 진보한다. 학문은 언제나 새롭지 않으면 안 된다. 지식은 언제나 신지식이어야 하고 신문은 언제나 신문이어야 한다. 신문이 신문(新聞)과 구문(舊聞) 사이에서 중립을 지킨다면 더 이상 신문이 아니다.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는 기사, 창의성이 있는 기사, 전문성이 있는 기사는 비중있게 다루어야 한다. 새롭게 이슈로 떠오른 기사, 특종보도는 중립을 떠나 비중있게 다루는 것이 맞다. 소수의견이라도 목숨걸고 따지는 주장은 비중있게 다루어주는 것이 맞다. 네티즌의 개혁성향도 반영해야 한다. 인터넷의 주인은 네티즌이기 때문이다. 포탈의 편집자는 고도의 전문성을 지녀야 한다. 여론을 반영하고 성향을 반영하고 적극성을 반영하고 전문성을 반영하려면 편집진이 스스로 전문성을 가져야 한다. 지금은 비전문가가 편의주의로 아무 기사나 대문에 올리면서 산술적 중립을 표방하고 있는 것이다. 왜 인터넷이 뜨는가? 기존의 종이신문체제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시선이 인터넷으로 몰리는 것이다. 그러한 역사성을 반영해야 한다. 역사는 언제나 앞으로 나아간다. 중간에 어중간하게 서 있다는 것은 결국 역사의 편이 아니라는 증거다. 역사의 중립이 진짜 중립이다. 그것은 역사를 끌고 가는 동력의 중심에 서는 것이다. 역사가 나아가는 방향을 헤아리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포탈에 요청되는 편집자의 전문성이다. 결론적으로 포탈의 중립표방은 권력측의 눈치를 보는 교묘한 처세에 불과한 것이며 엄밀히 말하면 그런 것은 있을 수가 없을 뿐더러 옳지도 않다. 가장 합리적인 것은? 두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완벽하게 네티즌들에게 편집권을 넘기는 것이다. 점수제, 추천제가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그 경우 일부 조직된 세력의 조작행위가 있을 수 있지만 그 반대편의 대응이 있으므로 광장의 경쟁원리에 따라 시행착오와 오류시정의 절차를 거치면서 점차 답이 찾아진다. 또 하나는 여러 포탈이 제각기 진보-보수를 표방하며 경쟁하는 것이다. 지금 문제가 되는 이유는 네이버가 과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10년 후라면 어떨까? 지금은 네이버가 다른 포탈을 앞서 있지만 그 기술격차는 점차 좁혀진다. 10년 후는 포탈의 정치성향에 따라 그 회사의 실적이 결정될 것이다. 네이버는 알아야 한다. 미래의 이용자들을 배척하고 있다는 사실을. 미래의 제 밥그릇을 발로 차고 있다는 사실을. 미래의 고객과 원수져서 어쩔 것인가? 네이버의 주인은 누구인가? 네이버가 검색하는 웹페이지와 이미지, 그리고 지식인에 축적된 정보들의 주인은 누구인가? 정보의 주인은 언제라도 정보 생산자다. 누가 그 정보를 생산했는가? 포탈이 네티즌의 것을 맘대로 가져다 쓴다. 약관에 동의했다 이거다. 회사는 노동자를 해고하면서 말할 수 있다. 나는 갑이고 너는 을이니 해고는 내맘이라고. 그러나 노동자가 노조를 조직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네이버와 네티즌 개인의 대결로 보면 네이버가 갑이다. 네티즌은 많고 네이버가 다양한 네티즌의 요구를 모두 들어줄 수는 없다. 그러나 만약 네티즌이 조직되어 있다면? 네티즌이 의견을 하나로 모을 수 있다면? 달라진다. 그 경우 네티즌이 갑이 된다. 문제는 노조없는 회사가 노동자의 약점을 악용하듯이 네이버 역시 네티즌의 조직되어 있지 않다는 약점을 악용하고 있다는 거다. 법적으로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거기에 정당성은 없는 거다. www.drkimz.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