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할리 딜레마 로버트 할리의 남자 연인이 함께 입건되었다고 한다. 기독교 안에서도 보수적이고 성소수자 탄압을 열심히 하는 모르몬교 신도가 이상한 방법으로 커밍아웃을 하고 있다. 모르몬교는 술, 담배, 마약은 물론 커피와 홍차도 금지하는 지극히 보수적인 신흥종교다. 순결의 법이라는 게 있을 정도이다. 요즘은 달라졌다는 말도 있다. 역설이다. 모르몬교는 영화 맨인블랙처럼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를 두 명씩 짝지어서 미남계로 선교활동에 종사하도록 파견하니까 자동 파트너 공급 시스템이 갖추어진 셈이다. 이상한 방법으로 걸러진다는 말이다. 사회에 다양한 인간이 있지만 이런 식으로 몇 차례 체로 걸러버리면 순식간에 비슷한 사람들로만 모여버린다. 소수파라도 순식간에 그 구역의 다수파가 된다. 그들은 끈끈하게 결속하게 된다. 소수파를 만만히 보면 안 되는 거다. 예컨대 성소수자 탄압에 앞장서는 모르몬교 지도부가 알고보니 전원 성소수자로 모였다든가 하는 식의 이상한 일이 현실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진보운동을 하는 단체에 꼴통들만 잔뜩 꼬일 수도 있다. 일본이라면 차별받는 재일교포가 스포츠계와 연예계를 장악한다거나 하는 식이다. 빠찡꼬는 확실히 장악했다. 중국이라면 탄압받는 위구르인이 대도시의 우육면 시장을 석권한다거나 하는 식이다. 다수파는 소수를 만만히 보고 탄압하지만 어느 분야로 좁혀 들어가면 유태인이 그 바닥을 장악했다거나 하는 일이 일어난다. 그 경우 소수파가 사회의 급소를 틀어쥐게 되는 것이다. 탄압하고 차별할수록 체로 거르는 효과가 강화된다. 소수파의 결속은 강화되고 사회의 리스크도 증대된다. 물론 후진국이라면 아무 상관이 없지만 선진국 되면 극적으로 변한다. 한국이 우주인 다섯 명을 선발했는데 알고보니 그들이 모두 특정한 고리로 연결된다면? 그 지점에서 차별주의는 사회를 파괴하는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 남자 두 명을 짝지어 그것도 미남으로만 골라서 한국과 같은 후진국에 파견하여 모르몬교를 선교하자고 하면 거기에 누가 자원하여 오겠는가? 해병대처럼 마초다움을 강조하면 거기에 누가 오겠는가? 근육마초가 아니라 그 근육마초를 좋아하는 사람이 온다. 그 비율은 일반인의 짐작과 판이하게 달라진다. 좋은 남자 고르다가 나쁜 남자 만나는 역설이다. 나쁜 남자를 피하므로 나쁜 남자를 구분하는 능력을 잃게 된다. 사회에는 기본적으로 체로 거르는 쏠림현상이 존재하며 특정 집단이 사회의 급소를 틀어쥐게 된다. 이런 현상은 개인의 재능이 강조되는 선진국에서 두드러진다. 후진국이라면 다 같이 농사지어 먹고 사는 판이라서 차별할 사람도 없고 차별해도 그냥 웃어넘기면 되는 거였다. 공옥진 여사가 병신춤을 춰도 상관이 없다. 언청이와 곰배팔이와 절뚝발이와 귀머거리를 놀려먹어도 그냥 낄낄거리고 살았다. 시골이라는 닫힌계가 리스크의 증폭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현대사회는 그렇지 않다. 사금을 채취하는 접시로 강물에서 사금을 골라내듯이 순식간에 걸러서 한곳에 모아놓는다. 눈빛만 보고도 서로 알아보고 견고하게 단결한다. 조중동도 같은 놈들로만 모여 있고 한경오라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국민을 배반하는 쪽으로 견고하게 결속해 있다. 판새들도 그렇고 검새들도 마찬가지로 강용석들이 판치고 있다. 통제가능성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소수파의 끈끈한 응집력이야말로 사회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촌놈이 강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촌놈은 어디를 가도 소수파다. 625 때 월남한 38따라지도 에너지가 강하다. 반대로 정치인들은 소수파를 차별하여 산술적 다수를 끌어내려 한다. 숫자만 많으면 이기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에너지는 소수파가 강하지만 표는 다수가 많기 때문이다. 이들 사이에 긴장이 있고 밀당이 있고 상호작용이 있고 뒤엉켜 굴러가는 방정식이 있다. 우리는 전방위적으로 힘의 균형을 추구해야 한다. 약자를 돕고 강자를 견제해야 한다. 적절한 힘의 분산으로 리스크를 낮추어야 한다. 에너지를 통제하는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원심분리기와 같다. 비중대로 줄을 서게 된다. 소수파를 탄압하면 그들이 한곳에 집결한다. 그것이 사회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내막을 알고 대응하는 것이다. 조중동이 바보들만 한곳에 모아놓는 효과도 있다. 요즘은 유튜브에 모인다는 데 반대로 보면 거기에 갇힌 거다. 그들은 태극기를 들고 할배라는 한 가지 색깔에 갇혀 버렸다. 색깔론을 써먹다가 스스로 색깔을 뒤집어썼다. 할배라는 좁은 울타리에 갇혀서 외연의 확대는 차단된다. 마찬가지로 진보도 엘리트주의라는 좁은 울타리에 자신을 가두지 않았는지 반성해야 한다. 스스로를 차별하고 있는 것이다. 보편성을 얻은 진보가 진짜 진보다. |
"우리는 전방위적으로 힘의 균형을 추구해야 한다. ~ 적절한 힘의 분산으로 리스크를 낮추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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