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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수수께끼를 풀다(Consciousness Explained)> 대니얼 데닛 저 인지심리학자 대니얼 데닛의 대표작 ‘의식의 수수께끼를 풀다’가 22년 만에 번역 출간됐다. 대체 의식이란 무엇일까?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에서 주인공 오대수는 영문도 모른 채 15년간 감금되어 매일 군만두를 먹었다. 이 지겹도록 생생한 군만두의 맛을 기억한 그의 복수극에서도 우리는 철학적이며 과학적인 물음을 던질 수 있다. '과연 그 맛을 우리도 똑같이 경험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결국 우리의 의식적 경험에 대한 물음이다. 이 책 이전에 학자들은 의식을 본유적이고, 사적이며, 표현할 방법이 없는 '날감각의 느낌'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에 '감각질(qualia)'이라는 특별한 별명까지 붙여줬다. 즉, 의식은 자기 자신만의 생생하고 질적이며 내밀한 1인칭적 경험이어서 제3자의 접근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과학적으로 탐구 불가능한 마음의 영역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었다. 이 예외는 3인칭적 관점에 서 있는 과학자에게는 찜찜함 그 자체였던 반면, 과학으로 환원되지 않는 최후의 보루를 찾고자 한 철학자에게는 깊은 안도감 같은 것이었으리라. 이것이 1990년대 초, 그러니까 이 책이 출간(1991)될 즈음의 의식 연구의 지형도였다. 이 책은 이런 기존 견해의 근본적 문제점을 지적하고, 의식의 과학적 탐구를 통해 어떠한 새로운 이론이 가능한지를 밝힌 기념비적 저서다. 저자 데닛의 주장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감각질 같은 것은 없다, 다른 하나는 객석 한가운데 앉아 뇌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관찰하고 통제하는 난쟁이(homunculus) 같은 의식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데닛에 따르면, 사람들은 감각 입력들이 모이고 통합되고 상영되는 내적 자아의 공간이 있다고 믿어왔다. 저자는 이걸 '데카르트의 극장'이라 부른다. 하지만 그는 실제 뇌에는 그런 장소가 없으며, 의식은 뇌의 정보가 다양한 메커니즘을 통해 분산적으로 처리되고, 연속적으로 생성·편집되는 이야기들의 흐름 같은 것이라 주장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스스로를 '단일한 의식을 가진 행위자'라고 느낄까? 데닛은 그런 착각에 빠지는 이유가 뇌에서 수많은 원고(또는 이야기)가 병렬적으로 처리되는 과정에서 하나의 이야기가 채택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다중원고' 모형이다. 이건 미국 드라마 제작 과정과 꽤 닮았다. 미드 한 편의 에피소드를 위해 여러 명의 작가는 각자의 스토리로 경쟁한다. 경합을 통해 최고의 스토리가 선정되면, 나머지 모든 작가가 합류해 세련되게 다듬는다. 누구의 어떤 스토리가 선정될지는 그때마다 다르며 대체로 민주적으로 결정된다. 통합의 주체가 없고 매번 스토리가 편집되며, 모든 사건의 인과관계가 추적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미드는 바로 의식과 유사하다. 오대수의 군만두 맛 느낌을 사적 경험이라고만 생각하는 것도 바로 의식의 이 역동성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래서 의식이 과학의 장으로 들어오는 길에는 여전히 비포장도로가 많은 것이다. -감수자 장대익 교수의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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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자기를 자기라고 생각하는건 의식이 아닙니다.
그건 그냥 길 가의 굴러다니는 돌멩이죠.
전봇대나 닭누리나 심지어 일베왜조차도 자기를 자기라고 여깁니다.
그런 벌레들은 하등의 가치도 없습니다.
의식이라는 말은 '너=나'라는 전제 하에서 성립합니다.
당신이 내가 아니면, 내가 당신을 죽인다 해도 눈꼽만큼의 가책이 없겠지요.
의식은 우주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전제 하에서 작동합니다.
당신이 적이 아니라 나의 확장된 일부라는 거지요.
로보트는 자신을 로봇이라고 여기겠지요.
자신을 우주 전체로 여기지 않으면 의식이 없거나 약한 겁니다.
자신을 우주 전체로 여기지 않으면 의식이 없거나 약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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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떨리는 얘기네요.
암흑에너지는 거대한 무의식 덩어리인데... 우주는 암흑 에너지에서 생겨난 핵과 같은 존재라는 거. 우주는 암흑에너지가 자양분. 하나의 핵이 생기자 점차로 우주는 확장되어 가는데 이는 우주의 의식이 점차로 커져가는거. 우리가 보기에 우주는 광대하게 크지만, 우주 자체는 암흑에너지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핵과 같은 존재. 암흑에너지는 우주를 적극적은보 돕고 있다고 보는데, 이는 우주의 의식을 키워 암흑에너지 자체가 의식이 되는 과정이라고 여기는데.....
여기에 인간을 대입하면....인간의 무의식의 범위가 곧 자기 이므로...의식은 무의식 안에 생겨난 핵과 같은데...이 핵에 의해 점차로 의식 확장이 일어나서, 인식의 범위를 넓혀감. 의식확장에 무의식은 자신의 범위의 모든 것을 다 열어줌. 그러나 의식이 무의식을 자양분으로 성장하려면 난관도 많다고 보임. 무의식은 의식이 미처 느끼지 못한 부분도 이미 감지하고 있어서, 의식확장에 무의식을 활용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고 봄. 이것이 직관이라고 여김.
그것을 아는 것과 그것이 되는 것과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군요.
앎이야 여기에 널렸고, 읽기는 했고, 아는 척도 했지만 아는지는 모르겠고.
그냥 앞으로 나아갈 뿐이네요. 적어도 답이 있는 방향은 짐작하니깐.
전쟁과 같은 특수한 상황에 처하면 누구나 됩니다.
심지어 돌두환이 녀석도 청와대에 가둬놓으면 무려 대통령 행세를 하고
닭이나 쥐도 꼬끼요 하며 한편으로 찍찍거리기도 하며 제법 해냅니다.
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그 상황이 안 되니까 안할 뿐이지 되면 합니다.
못할거 같죠? 합니다. 다만 그것을 그러한 상황인지 모르고도 할 수 있는 사람은
훈련되어야 합니다. 훈련한 사람은 언제든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상황되면 합니다.
뛰어난 사람은 아무도 하지 않을때 앞서서 하고, 보통 사람은 고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면 하고
뒤떨어진 사람은 남들이 다 하면 합니다. 일베왜 애들은 안 됩니다. 정신병원 보내야.
그렇다면 일단 뛰어드는 수밖에.
길이나 잃지 않도록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둔하긴해도 눈은 밝은 짐승입니다.
오늘따라 바람 참 많이 부네요.
신의 완전성을 구현해보기 위하여 오랜만에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여 설거지를 하고 왔습니다.
의식이 맑아지는 느낌이군요. 오늘 처음으로 의사결정을 한 듯ㅎㅎ
그렇다면 의식에는 더 이상 수수께끼가 없는 거군요.
쉽게 말해 주변 환경에 휩쓸리지 않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그 순간에 형성되는 의사결정 영역 그 자체가 의식인 것이고.
개인중독 집단중독 세상중독을 끊는 순간 의식이 작동하는 것이고.
그런데 분명히 아픔을 느끼고 갈증을 느끼는 나 자신이있고
나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는 나 자신이 있는데 지금 여기 앉아서
생각을 하고 글을 쓰고 음악을 듣는 나 자신이 누군지가 궁금해집니다.
예를 들어 아주 정교한 인간 기계를 만들면 인간으로 대접해주어야 할까요?
하긴 생각해보면 사람에게 의식이 있다면 원숭이에게도 의식이 있고
개에게도 의식이 있을 것이고 곤충에게도 아메바에게도 있을 것이고.
그러면 돌에도 있고 물에도 있고 공기에도 있고.
의식이라는 게 아예 없나 싶기도 하구요. 그냥 두서 없이 써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