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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1980년대 우리의 가슴과 머리를 휘저은 진보적 사상, 이론 체계는 과학적으로도 엉성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인문학적 깊이랄까, 영적인 깊이가 없었다. 성경, 불경, 중국고전 등 동서양 고전의 지혜와 담을 쌓아도 너무 쌓았다. 지난 몇 년 동안 형편없는 보수에게 당하고, 아직도 그 원인 조차도 모르고, 중년이 되어서도 행복하지도 않고, 앞 세대에서도 뒤 세대에서도 별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근원적으로는 한국 진보와 386의 사상이론적, 영적 내공과 깊은 관련이 있어 보인다. 물론 오늘날 북한의 참담한 모습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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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과 진보, 개혁, 민주를 부르짖던 사람들이 젊은 혈기에 ‘욱’하는 심정으로 ‘데모’를 잠깐 한 것이 아니라, 역사의 수레바퀴를 정방향으로 굴리기 위해 온갖 유혹을 떨쳐내고 시대의 어둠과 장기간 조직적으로 싸웠던 사람임을 감안하면 중년이 되어 별로 행복해 뵈지 않는 인생을 산다는 것은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가방 끈이 짧고, 물질적으로 곤궁하고, 세속적 성취가 적은 것이야 우리의 숙명으로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지적으로 게으르고, 이념적으로 경직되고, 정신적으로 의연하지 못하고, 생활조차 건전치 못하다는 세평을 듣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세평이 오해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버릴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대로 가면 진보, 개혁, 민주를 부르짖던 사람들은 모순.부조리에만 유달리 예민한, 분노와 고집이 센 사람들로 대중적으로 각인 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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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goodpol.net/discussion/progress.board/entry/214
의견이 있다면, 확실히, '생활'에서 그리고 '문화'에서 저들을 압도해야합니다. 그렇고 그런 튀는 사람들이 모인공간이 아니라, 영적으로 깊이가 있는 그래서 차한잔 두고도 천하를 나누는 그런 세력이어야 승리합니다.
다시, 고문치사 사건이 벌어지지 않으려면, 그길로 가야합니다.
독재와 싸우던 사람들이 겪게될 수 있는 맛 간 상태 중 하나로 "보편성의 상실"이, 독선과 독단으로 나타나는 거.
그러나 그런 상태에 빠지지 않는 사람들도 있고, 극복한 사람들도 있으니, 그들이 판을 주도하도록 하는 것, 그들을 높이 들어 올려 본을 삼는 것이 대안 중 하나.
조금 더 가 보면, 시대를 읽는 감각의 부재 탓. 인터넷세력의 걸맞는 완성도를 달성하지 못하면 싸워도 욕먹고, 안싸우면 잊혀지고.
김대중정권은 반독재 투쟁의 결과물로 볼 수 있지만, 노무현정권은 인터넷혁명의 결과물. 인터넷혁명을 주도한 세력이 원하는 혁명의 속도를 따라가 주지 못한 관리형 정치인들의 한계가 드러난 것. 반독재 투쟁에서 멈춘 관리형 정치인들은 싸워도 궁물, 안싸워도 궁물 소리를 들을 수 밖에 없는 상태.
인터넷세력과 맞는 정당과 언론을 완성할 때까지. 혼란은 기본.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 일어날 수 있는 과정일 뿐.
386의 경우, 역사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 한세대의 문제로 지나치게 싸잡아 가두려는 경우가 있는 것 같소.
물론 나 역시 친구였던 자들에게 역겨운 피로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지연이나 학연 연고이외에 정치인에게 기부한건, 노사모가 처음입니다.
그 잘난 진보사람들이, 왜 한낱 목사들보다도 사람들을 흥겹게 못하는지
어린시절부터 늘 궁금했답니다.
이제와, 깨달아보니, '영'성에 주목하지 못했기때문입니다.
영성이란
외부 세계와의 소통능력이오.
여기 독자들은 다 알고 있겠지만.
소통하려면 보편되어야 하고 보편되려면 완전해야 하오.
완전성을 가지는 것이 영성을 얻는 것이오.
세상의 끝 '세계'를 본 사람만이 완전성을 포착할 수 있소.
부디 세계를 사유하기 바라오.
2500년 전에 알렉산더가 했던 그것.
성경이 창세기 곧 천지창조부터 시작하는 것은 역시
세계로 통하는 문을 열어젖히는 것이오.
카톨릭이 보편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도 마찬가지.
불교의 해탈 개념도 마찬가지.
껍질을 벗어던지면 그곳에 세계로 통하는 문이 있소.
세계정신을 얻을 때 신과 통하오.
오 무섭소. 이 그룹이 60이 되믄 저 분노와 고집의 크기가 더 커질거 아니오?
오 겁나오.
난 이 그룹에서 빠질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