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이든, 철학이든, 종교든 진짜 목적은 뭘까? 그것은 인격자를 만나 관계를 맺고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이다. 종교라면 그렇다. 일단 목사들은 인격자로 간주된다. 인격이 없다고? 하느님의 인격을 대리한다. 하느님은 인격자로 설정되어 있다. 목사는 하느님을 대리하므로 인격자로 간주된다. 그렇다 치기로 합의해뒀다. 그 다음은? 관계를 맺고 소속감을 느끼는 것이다. 거기서 자존감을 얻는다? 왜 그렇게 하느냐고? 인간은 원래 동굴원숭이 후예다. 동굴에서 수십명씩 모여 살았다. 모여 사는 본능이 있다. 근데 모여 살면 쌈난다. 모여 살고는 싶은데 막상 모이면 피곤하니까 간헐적으로 모인다. 기독교는 일주일마다 모인다. 불교는 법회때 모이고 유교는 제사때 모인다. 자주 모이면 얼굴 붉힐 일 생긴다. 가끔 모이자. 결국 인간은 무리를 짓고 집단 안에서 일정한 역할을 가져야 자존감을 얻고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동물인 거다. 이거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집단의 실체가 있느냐다. 지하철 역에 우르르 모여있는 승객들은 집단인가? 아니다. 말이 집단이지 실제로는 다 남남이다. 가족도 실제로는 남남이다. 이거 인정해야 한다. 가족을 만만히 보다가 원한이 쌓인다. 가까울수록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 현장에 없는 사람을 구심점으로 만든다. 유교는 조상을 핵으로 삼는다. 조상은 없으니까 원한 쌓일 일이 없다. 기독교는 하느님이다. 그래서 허무하다. 차례상 차려놓고 절하는게 사실이지 우스운 거다. 절하다가 웃음 터진 적 없는가? 왜 이런 등신짓을 하고 있지? 기도는 무엇이며 묵주는 또 무엇인가? 그게 다 우상이다. 성경이 큰 우상이다. 진짜라면 성경 버리고, 기도 버리고, 교회 버리고, 목사 버려야 한다. 그런게 왜 나오냐고? 그래서 인격자가 필요하다. 생생한 말을 던져줄 수 있는 살아있는 구심점이 필요하다. 팽팽하게 긴장된 실체가 필요하다. 노자든 석가든 2500년 전 사람이다. 그들은 당대의 천재였다. 천재들과 관계를 맺고, 그룹에 소속되어 집단이 나아가는 방향을 함게 바라본다는 것은 실로 전율할만 한 것이다. 거기서 담대한 기운을 얻는다. 지금은? 그 천재들이 IT사업 하고 있다. 수학문제 풀고 있다. 비트코인 캐고 있다? 종교계엔? 찐따들이 몰려있다. 당대의 천재는 딴 곳으로 가고 찌질이들이 목사하고 스님하고 명상한다. 절에서 고스톱 친다. 명상이 맛탱이가 간 이유는 인격자가 빠져나가고 아닌 아저씨들이 빈 자리를 채웠기 때문이다. 공자나 장자는 당대의 천재였다. 그들은 새로운 사유의 모형을 제시했다. 혜능이나 달마도 마찬가지다. 경허나 성철도 당대의 천재다. 적어도 사회에 하나씩 던져준 화두가 있다. 지금은? 둔재들만 소복이 모였다. 천재가 미쳤다고 거기 가서 쭈그리고 앉아 있겠냐고? 옛날에는 시를 써도 천재들이 시를 썼다. 윤동주나 소월이나 이상은 당대의 천재다. 지금은? 정명석이 형이 시 쓴다. 그러므로 존경할 수가 없다. 전율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똥꼬가 뻑쩍한 기운이 머리꼭대기까지 차올라주지 않기 때문이다. 상태가 안 좋은 형님들이 와서 뭐를 내려놓으라는둥 평상심을 가지라는둥 하며 시시한 소리나 하고 있다. 그때 그시절은 호흡이 느렸다. 강물이 흘러도 천천히 흘렀다. 지금은 급류다. 기본 물살이 빠르다. 잠시 정신줄 내려놓았다가는 물에 빠진다. 내려놓지 마시라. 지금은 술집에서는 마셔주는게 평상심이요 클럽에서는 흔들어주는게 평상심이요 페이스북에서는 좋아요를 누질러 주는게 평상심이다. 트위터에서는 리트윗이 평상심이고 게시판에서는 댓글 달아줘야 평상심이다. 술집에서 점잖게 가부좌틀고 앉아있으면 졸라리 어색하다. 평상심은 결코 평상심이 아니다. 왜? 강물의 흐르는 속도 때문이다. 빠른 대목에서는 빨라주는게 평상심이다. 굵은 대목에서는 굵어주는게 평상심이다. 리듬을 타고 흔들어줘야 한다. 지휘자가 괜히 앞에 가서 서 있겠냐고? 결국 깨달음이든 철학이든 종교든 본질은 같다. 우리가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며, 무리가 한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며, 그 핵이 과거의 죽은 조상이 아니라 팔팔하게 살아있는 현재인물이라는 것이다. 거기서 자존감을 얻는다는 거다. 지금 전율할 말씀을 던져주는 사람은 프란치스코 교황 정도다. 지금 자본과 공동체의 균형이 무너져서 큰 배가 파도와 탁 부딪히며 요동칠 때 되었다. 이런걸 찔러주는게 진짜다. 정신차리게 해줘야 한다. 자기 마음 안에는 평상심이 없다. 우주와 함께 호흡하지 않으면 그대는 결코 편안할 수 없다. 왜? 자존감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원래 전체와 하나로 연동되어 반응하도록 세팅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론은? 우상을 버리라는 거. 성경책부터 던져버려라. 인류의 대표자 마음을 가져라. 세상 전체와 접속하라. 선은 굵게 가고 색은 진하게 가라. 오르면 에베레스트요 연주하면 라흐마니노프라. 그리면 고흐요 여행하면 세계일주요 쪼개면 양자역학이요 합치면 신의 완전성이요. 스케일 크게 가라. 나발을 불어도 바그너처럼 볼때기 터지게 빵빵 불어라. 어중간하니 소심하게 가지 말라. 큰 물에서 자존감을 얻어라. 그것이 당신의 본래 목적이다.
P.S. 뒤가 허전한게 정작 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빠뜨렸다 싶은데. 중요한건 의연한 자세로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계속해야 한다는 거. 그러려면 극을 바라봐야 한다는 거. 절대적인 극한의 경지. 최고의 인격. 봉건시대에 신부나 승려는 당대의 최고 엘리트였다는 거. 어떤 사회든 그 사회의 최고 엘리트가 가는 데로 가는 거. 근데 지금은 그들이 숨어버렸다는 거. 아인슈타인 혀 내민 사진도 기자의 편집인 거. 명상을 하든 종교를 하든 철학을 하든 우수에 젖은 얼굴 펴고, 좀 멋쟁이가 되고 잘나빠져야 된다는 거. 스타가 되면 폼도 좀 잡아줘야 한다는 거. 스타가 되어서 어데 절하고 다니면 짜증남. 엿밥임. 예수보다 유명하지 않으면 TV에 나오지 말라고. 비틀즈는 그런 기개가 있었자너. 서태지는 왜 그런 기개가 없냐고. 스타는 잘나빠져주는게 최고의 팬서비스. 종교든 철학이든 명상이든 마찬가지. |
본문에 몇 마디 추가했는데 이어지는 맥락으로
졸라리 잘난척 하는 구라쟁이 발견.. 이 새뀌는 입만 열면 구라.
그래도 이 정도 해줘야 예의. 페북펌.
<손정의(孫正義): 뜻>
그렇게 피를 토하는 각오로 일했습니다.
1년간 1000억씩, 4년간 적자였고
인터넷 거품 꺼지고난 후, 2천수백억으로 시가총액이 떨어지고 있었을 때였죠.
그 사이 4000억이나 적자를 냈으니 적자도 참 잘 냈었네요.
어떻게든 되는 겁니다.
높은 뜻이 있으면 말입니다.
우리에게는 그것이 곧 '오케하자마 전투'였습니다. (일본 3대 야전(夜戰) 중 하나)
조그마한 우리 회사가, 일본 제일 큰 회사에,
게다가 우리회사 거품이 빠진 뒤에 걸었던 싸움이었죠.
엄청나게 힘들었었죠.
하지만 결과는 이랬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일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항하여 NTT도 열심히 일했지요.
이엑세스도 열심히 일했구요.
그럼 그걸로 된것 아니겠습니까?
누군가가 풍덩하고 연못에 큰 바위를 던져 넣으면,
물의 파문이 출렁 출렁하고 생깁니다.
그랬더니 또 파문이 적에게서 되돌아 오고,
그걸로 된것 아니겠습니까?
적인 NTT도, 적인 이엑세스도,
정보혁명을 일으키겠다는 의미에서는
같은 뜻을 가진 것입니다.
이 나라에서 디지털 정보혁명을 일으키고 싶다라는 같은 뜻...
브로드밴드 혁명을 일으키고 싶다는 같은 뜻 말입니다.
만약에, 우리 회사가 망해버렸다 하더라도
그 결과로 이땅에 브로드밴드의 새벽이 오면,
우리나라 인터넷 사용자의 관점에서 봤을때
그것은 그것대로 목적은 달성한 것입니다.
우리회사가 결과적으로 '버리는 돌'이 되었다 하더라도...
에도 막부말기의 존황양의 혁명의 지사가
도중에 죽음을 당하였다 하더라도...
결국 유신이 일어난다면 그건 업적을 이룬것 아니겠습니까?
만약 내 몸이 썩어 없어진다 하더라도,
내목숨이 썩어 없어진다 하더라도
유신이라는 것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멋진 일을 이룬 것이다.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만일 이걸로 우리가 NTT라는 일본에서 가장 큰 회사에 도전하여
부딪혀 맞서고, 얻어터지고, 소프트뱅크라는 회사가 죽는다 하더라도,
손정의라는 인간이 죽는다 하더라도
그렇게 맞부딛힌 바위로 풍덩하고 파문이 일어,
그 반대측에서, 나도 가격경쟁이다 하고 스피드경쟁이다 하며
그 엄청나게 큰, 굼뜬 회사(NTT)가 이걸로 눈이 뜬다고 하면
그들도 우리 동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새로운 시대가 오면, 그걸로 좋은거 아닙니까.
소프트뱅크 주주들에게는 죄송합니다.
직원들에게도 죄송합니다.
미안해요, 이 뜻을 위해 함께 죽읍시다.
혁명이란... 그런 것입니다.
목숨도 필요없고
돈도 필요없으며
명예도 필요없습니다.
결국 소프트뱅크가 없어지고
결국 소프트뱅크의 명예도 사라져도
그걸로 좋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이땅의 인터넷의 새벽이 밝아오면
이땅의 브로드밴드의 새벽이 밝아오면
그것으로 좋은것 아니겠습니까?
그 정도의 각오가 없으면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세상이 나쁘다든가,
정치가가 잘못했다든가,
경기가 나쁘다거나,
그런 변명을 하는 순간,
그런 푸념을 늘어놓는 순간
자신의 그릇은 작아집니다.
푸념따위를 말한다 하더라도
세상은 아무것도 좋아지지 않거든요.
불평을 말할 여유가 있으면
자기 혼자의 목숨이라도 좋으니까
목숨을 던질 각오가 있다면,
파문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출처: 소프트뱅크 손정의 사장 LIVE2011 강연
(https://www.youtube.com/watch?v=E_d-xbDb-jc)
존경할만하구라.
일본 CEO는 입으로 사업함. 발은 공구리 쳐놨음.
전형적인 왜넘방식.
자존감=좋은 사람과 관계맺기.
구조론 심리치료에서 기억해둘 공식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