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양자론의 세계가 우리의 직관과 어긋나는 생소한 영역이기에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한다. 틀렸다. 양자론의 세계는 우리의 직관과 일치한다. 양자론이 직관과 충돌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실은 직관이 없는 거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직관으로 문제를 해결 본 경험이 있느냐고. 양자란 간단히 대칭이다. 주변에 대칭은 너무나 많다. 음양, 상하, 남녀, 좌우, 전후, 고저, 장단, 원근, 대소, 등등을 열거할 수 있다. 다 모으면 한 트럭이나 될 것이다. 우리는 온통 대칭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산이 높으면 강이 깊다. 여름이 더우면 겨울은 춥다. 오르막이 높으면 내리막도 길다. 베토벤이 있으면 모짜르트도 있다. 괴테가 있으면 실러가 있다. 대중음악이 있으면 고전음악이 있다. 인파이터가 있으면 아웃복서도 있다. 투수가 있으면 타자도 있다. 이것이 직관과 다른가? 천만에. 양자의 세계는 간단히 양파의 껍질을 한 층 더 벗긴 것이다. 그러자 새로운 세계가 드러났다. 이런 감추어진 세계가 없다는게 더 이상하다. 자동차는 있는데 자동차 공장은 없다거나, 건물은 있는데 설계도는 없다거나, 생물은 있는데 유전자는 없다거나 그게 더 이상한 것 아닌가? 마술사는 있는데 속임수는 없다거나 바둑은 있는데 정석은 없다거나, 노래는 있는데 악보는 없다거나, 컴퓨터는 있는데 스마트폰은 없다거나, 911은 있는데 음모론은 없다거나, 연예인은 있는데 팬클럽은 없다거나, 양반은 있는데 족보는 없다거나, 명바기는 있는데 사대강은 없다거나, 닭그네는 있는데 윤창중은 없다거나 외려 그게 더 이상하지 않나? 양자는 대칭이다. 세상은 온통 대칭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칭은 ‘이게 이렇게 되면 저게 저렇는 된다’’는 비례식이다. 이런 비례식이 없이 단순하게 설명되는게 더 이상하다. 외려 더 직관과 맞지 않다. 산이 높으면 강이 깊다고 해야 직관과 맞다. 그냥 산만 높다고만 말하면 다단계 판매업자의 사탕발림 유혹처럼 뭔가 수상하다. 배후의 감추어진 세계가 없다고 보는 원자론이 더 직관과 불일치한다. 영화는 있는데 배우는 없다는 격이다. 믿을 수 없다. 원자는 하부구조이고, 상호작용은 상부구조다. 어디가나 배후세력이 있고, 윗선이 있고, 감추어진 부비트랩이 있고, 보이지 않는 손이 있고, 음모론이 있고, 은폐된 상부구조가 있다고 보는게 우리의 상식과 맞고 직관과도 맞다. 양파껍질은 한꺼풀 더 있어야 안심된다. 뉴턴이 세상의 모든 비밀을 밝혀버렸고 더 이상의 비밀은 없다거나 자동차를 발명한 이후 발명할만한 것은 모두 발명되었고 이제 더 이상 발명할 것은 없다고 주장하면 그게 더 이상하다. 다 끝났는줄 알았는데 앵콜이 있고, 다 끝났는줄 알았는데 숨은 반전이 하나 더 있는 법이다. 다 끝났다 싶으면 이제 인터넷이 나오고 스마트폰이 짠 하고 나타나주는게 직관과 맞다. 여우가 있으면 배후에 여우굴이 있는 법이고, 새끼곰이 있으면 배후에 엄마곰이 있는 법이고, 치즈가 놓여 있으면 배후에 쥐덫이 설치되어 있는 법이고, 화장지가 닳았으면 어딘가 야동이 저장되어 있는 법이고, 입자가 있으면 배후에 양자가 있는 법이고, 물질이 있으면 배후에 에너지가 있는 법이고, 사물이 있으면 배후에 사건이 있는 법이다. 용기있게 한 층 더 높은 세계로 올라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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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론은 대칭을 기본으로 하며 대칭이라고 하면 동양의 음양론이 있습니다. 양자론의 세계가 우리의 직관과 어긋난다는 생각은 대칭적 사고에 익숙하지 않은 서구인의 편협한 생각입니다. 동양은 모든 것을 대칭으로 설명해 왔으며 동양철학에서 양자론과 유사한 부분을 포착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거꾸로 생각해야 합니다. 서구가 풀어헤치는 논리적 사고에 익숙하다면 동양은 원래부터 얽어서 짓는 직관적 사고에 익숙합니다. 양자론이 우리의 직관과 충돌하는게 아니라 반대로 서구에 직관이 없으며 현대문명은 논리적 세계에서 직관의 세계로 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작은 그릇에 큰 그릇을 담을 수 없는 법, 논리는 직관을 아우르지 못하나 직관은 논리를 아우릅니다.
지금 문명은 텍스트에서 이미지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사물의 나열에서 사건의 엮임으로, 개체중심에서 모형중심으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텍스트문명은 서구가 승리하였습니다. 이미지 문명이 도래하고 있습니다. 직관에 강한 자가 이 문명을 선점합니다. 위축되지 마십시오. 그대가 동양의 음양론이나 석가의 깨달음이나 노자의 역설에 대해 약간의 들은 풍월을 가지고 있다면 이 세계는 이미 그대에게 친숙한 세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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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언젠가부터 사람들의 충고를 잘 듣지 않습니다.
그게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이든, 아이이든.
내 마음에서 나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제고 하고 싶은 일이 제대로 되어가지,
타인의 말은 그저 하나의 참고 일뿐
그렇게 많은 도움이 되지는 않습니다. (ㅠ.ㅠ;;)
저의 하나의 나침반은 책(많은 책이 아니라 무슨 책을 읽느냐가 중요하겠지요.)이고
또 하나의 나침반은 구조론이고
또 하나는 "감"입니다.
저에게는 뭔가 나도 모르게 배후를 찾아가는 것이
습관이 된 것 같습니다.
많이 안 살았지만
살다보면
남의 충고가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더라고요.
내 맘 속에서 나오는 감이 더 중요합니다.
제가 클래식을 자주 듣는 이유가
이 감을 예민하게 하려고 자주 듣습니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어쩔 때는 마냥 즐겁지만
쇼팽이나 베토벤은 확실히 심연으로 빠지게 하는 그 무엇이 있습니다.
감히 뉴턴 할아버지 까기가 두려웠던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잘못하다가는 밥그릇 날아갈 지도 모르는 일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