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는 동기부여다. 어디서 인간의 동기를 조달할 것인가? 봉건모형은 신을 쳐다보는 수 밖에 없다. 칸트모형은 신성을 빌어 이성을 획득함으로써 동물과 차별화하여 모든 인간을 신분상승시켰다. 그러나 잠시의 기쁨 뿐, 허무의 바다에서 벗어날 수 없다.
유교모형은 오랑캐를 멸시함으로써 신분상승을 꾀하고 있으나 역시 1회용이다. 헤겔모형은 인간의 정신 안에 신분상승모형을 구축하고 있다. 절대정신을 획득함으로써 정신승리를 꾀할 수 있으나 현실에는 쓸모가 없다. 마음의 위안은 된다.
마르크스 모형부터 구조론의 횡적구조가 등장한다. 현대성, 현존재, 현상학, 실존의 개념이 암시된다. 넓은 의미로 보면 헤겔모형에서도 암시는 있다. 그러나 가능성을 암시할 뿐이다. 마르크스모형은 횡적구조를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전복의 가능성을 제시하나 실제로는 봉건모형과 차이가 없다. 도로아미타불이다.
실존주의 모형은 확실히 횡적인 구조를 드러내고 있다. 권을 창의할 수 있다. 그러나 상승할 수 없다. 역시 1회용이다. 지금 이 순간의 완성을 즐길 뿐 미래를 조직하는 동력은 되지 않는다. 구조주의 모형은 획일화된 마르크스모형과 달리 다양성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방향성이 없으므로 한 곳에 몰려서 원래와 같아져버린다. 부족민의 삶을 이해할 수 있으나 미래를 조직하는 강력한 동기부여가 될 수 없다.
구조론 모형은 실존주의가 제시한 횡적구조와, 구조주의가 제시한 다양성을 동시에 통섭하고 있다. 위로 올라가는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무한한 복제와 확장성이 있다. 미래를 조직하는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 전복과 창조가 가능하다. 중핵은 관점과 방향성이다.
구조론은 권을 형성시키는 짝짓기를 위한 관점과 공간의 확보를 이루는 방향성을 동시에 잡는다. 구조주의는 다양성을 강조하나 방향성이 없으므로 한 곳에 몰려서 엉킨다. 대안학교들이 자유로운 교육을 주장하나 실제로는 획일화 된다. 이때 교육가들은 어린이들에게 더 많은 자유를 제공하라고 말하나 쉽지 않다. 대안학교의 부분적인 성공도 굉장한 노력과 현명한 부모들의 개입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막연한 자유가 아니라 권을 성립시키는 짝짓기를 가능케 하는 촉수들을 적극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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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론적 관점(부분과 전체를 따져보며 5개의 소실점을 볼 수 있는 입체적 관점)과
방향성(시간의 흐름, 기차가 가는방향, 북방로또의 현대성?)을 가지고
'전복과 창조(횡적구조와 다양성?)'를 끌어냄으로써
미래 사회를 조직하는 원동력이 나온다.
권을 성립시킬 수 있는 짝짓기를 가능케하는 촉수
(치열한 정의로운 노력과 개입?)를 제공하는 서비스가 있어야 한다.
이게 창조, 창의의 선진경제에 대한 답이다.
윗글 '방향성과 관점' 같이 염두에 두며
나름대로 사족을 달아보았습니다...^
아울러 아래사항에 부연설명을 부탁드려요...^
* '권을 성립시킬 수 있는 짝짓기...촉수' 뜻: 판정능력을 형성시키는 두 대칭을 찾을 때 범종과 당목이 마주쳐 소리나듯... 그런 건가요...?
* '방향성은 공간확보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에서 '공간확보'는 자유도의 확보 또는 증가로 볼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