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는 어디에서 왔는가? 태양에서 왔다. 사과를 논하려면 태양을 논해야 한다. 태양에서 사과까지 어떻게 왔을까? 뚜벅뚜벅 걸어왔을까? 그대는 어디에서 왔는가? 조상에게서 왔다. 아담과 이브에게서 여기까지 왔다. 족보타고 왔다. 태양은 무엇타고 왔는가? 족보타고 왔다. 그것이 구조다. 구조는 존재의 족보다. 족보를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결혼이다. 짝짓기다. 비단 남녀간에만 짝짓기가 있을까? 천만에. 모든 존재는 고유한 짝짓기를 가진다. 왜? 에너지 때문이다. 모든 존재는 그냥 있는게 아니라, 에너지를 태우고 있다. 그 지점에서 의사결정이 필요하다. 스위치가 필요하다. 볼펜은 잉크를 태워야 볼펜이 되고, 찐빵은 앙꼬를 태워야 찐빵이 되고, 책은 글자를 태워야 도서가 되고, 찻잔은 홍차를 태워야 제 구실을 한다. 예외는 없다. 반드시 무언가를 태운다. 그것이 컵이든, 주전자든, 활이든, 나팔이든 마찬가지다. 컵에 든 우유, 주전자에 든 물, 활에 든 화살, 나팔에 든 소리와 같다. 무언가를 태운다. 짝을 짓는다. 그 짝짓기를 보고 그 존재를 규정해야 한다. 무엇과 짝짓는가에 따라 신분이 규정된다. 양반과 짝지으면 양반이다. 상놈과 짝지으면 상놈이다. 내부에 고유한 무언가는 없다. 이성도 없고 영혼도 없고 절대정신도 없다. 7을 결정하는 본질은 7 안에 없고, 6과 8 사이에 있다. 사과를 규정하는 본질은 사과 안에 없고, 태양과 대지 사이에 있다. 그대를 규정하는 본질은 그대 안에 없고, 그대가 소통하는 대상이 무엇인지에 따라 그대의 존재는 규정된다. 의미가 아니라 맥락이다. 가치가 아니라 권權이다. 사물이 아니라 사건이다. 상대어가 아니라 절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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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