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60561 vote 0 2013.07.18 (17:07:01)

 


    일의성과 상호작용 메커니즘


    일의성
    모든 추론의 단서가 되는 엮임의 단위다. 수학의 =다. 어떤 둘이 한 세트로 작동할 때 둘을 잇는 연결고리다. 사과를 둘로 쪼개면 두 단면의 모양은 같다. 이 원리로 인터넷 아이디의 패스워드를 만들고, 자물통과 열쇠의 조합을 만들고, 경찰은 지문조회를 하고, 과학자는 진리를 추적한다. 사물로 보면 일의성이 포착되지 않을 때가 많다. 사건으로 보면 부모와 자식 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자식의 존재는 엄마와 아빠가 언젠가 한 공간에 있었던 적이 있었다는 절대적 증거다. 존재하는 것은 기능하며 기능하는 것은 파트너가 있고 둘 사이에 공유하는 하나가 반드시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리를 파악할 수 있다.


    상호작용 메커니즘
    메커니즘은 ‘A면 B다’의 형태로 전제와 진술을 연결하여 사건의 엮임을 나타낸다. 메커니즘에 에너지를 투입하면 한 방향으로 작동하므로 한 번의 조작으로 둘을 동시에 통제할 수 있다. 물고기가 꼬리를 좌우로 치면 앞으로 간다. 이스터 섬의 거석상 모아이를 옮길 때 이 방법을 썼다고 한다. 모아이를 앞으로 살짝 기울인 상태에서 좌우로 흔들어주면 거석상이 뒤뚱뒤뚱하며 걸어간다. 메커니즘은 기계장치에서 널리 사용된다. 기계장치는 기어들이 대칭을 이루나 한 방향으로 작동한다. 시계추는 대칭되어 좌우 2를 왕복하지만 초침은 시계방향으로 돈다. 모든 것이 메커니즘이다. 정치는 여야의 대칭 2를 진보 1로 풀어낸다. 생물은 식사와 배설 2를 성장 1로 풀어낸다. 계절은 여름과 겨울의 대칭 2를 세월 1로 풀어낸다. 남녀는 대칭 2를 자녀 1로 풀어낸다. 시장은 수요와 공급 2를 이윤 1로 풀어낸다. 대칭에 에너지가 들어가면 1로 수렴되는 것이 메커니즘이다.


    전제와 진술


    전제
    사건을 보고할 때 원인측 보고가 전제다. 일상의 대화에서는 전제가 생략된다. 많은 오류가 전제의 생략 때문에 일어난다. 결과측만 주목하기 때문이다. 과자가 먹고 싶다면 배가 고프기 때문이다. 과자가 맛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버린다. 배가 고픈 것은 사건이고 과자는 사물이다. 사건은 보이지 않지만 사물은 보인다. 놀이개를 흔들면 고양이가 달려든다. 인간은 보이는 사물에 달려든다. 전제를 놓치고 진술만 주목한다. 전제를 볼수 있는 사람은 적다. 바른 어법은 전제와 진술을 연동시켜 ‘A면 B다’의 형태로 문장을 조직하는 것이다. 절대어 사전은 둘씩 짝지워져 있으며 앞이 전제측, 뒤가 진술측이다. 둘을 합쳐서 봐야 한다.


    진술
    진술은 사건의 결과측 보고다. 인간은 눈에 보이는 사물을 추적하므로 전제를 망각하고 진술에 진술을 더하는 동어반복의 오류를 저지른다. 먹기 위해서 먹는다는 식이다. 틀렸다. 배가 고파서 먹는 것이다. 맛이 있어서 먹는다는 표현도 잘못이다. 먹으니까 맛이 있다. 맛은 다른 것이 아닌 하필 그것을 선택한 이유는 되어도 먹는 행위 자체의 이유는 될 수 없다. 많은 오류가 이 패턴으로 일어난다. ‘위하여’라고 말하면 대개 잘못이다. ‘의하여’가 맞다. 일을 하면 돈을 번다. 돈벌기 위하여 일한다면 원인과 결과가 바뀌었다. 인과법칙 위반이다. 공동체와의 상호작용에 따른 동기부여에 의해 일한다고 말해야 맞다.


    소통과 소외


    소통
    보여지는 대상과 보는 자신을 하나의 사건 안에서 연동시키는 것이 소통이다. 꽃이 피면 시를 읊는다. 친구를 만나면 차를 마신다. 자신이 그 공간의 그림 속으로 들어와서 그 공간을 한 폭의 멋진 그림으로 연출한다. 그렇게 연출된 팀 안에서 각자 포지션을 나누어 가지는 방법으로 소통은 가능하다. 사물이 아닌 사건을 구성할 때 진정한 소통은 가능하다. 남녀라면 하나의 사건 안에서 역할을 나누는 것이 소통이다. 남자가 양파를 까고 여자가 양파를 볶는다면 요리라는 하나의 사건 안에서 일어나는 소통이다.


    소외
    소외는 사물을 대상화 한다. 사물의 밖에서 바라본다. 자신이 밖에 있으므로 엮임이 없다. 자기 포지션이 없으므로 어색하다. 뻘쭘함을 타개하려고 함부로 개입한다. 쓸데없이 참견하고 잔소리한다. 대개 나쁜 결과를 낳는다. 보여지는 대상에 주목하지 말고 함께 공유하는 공간에 주목해야 한다. 그 공간을 아름답게 완성할 때 소외는 극복된다.


    주체성과 타자성


    주체성
    주체성은 사건의 관점으로 보며 그 사건의 원인측에 선다. 자신이 사건 안에 있으므로 이미 포지션이 획득되어 있다. 상대방을 해꼬지할 이유가 없다. 어떤 문제든 자신이 적절히 제어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자동차의 운전수와 같다. 자동차 바깥에서 맞설게 아니라 자동차 안에서 차근차근 풀어야 한다. 강둑을 쌓는 것은 밖에서 맞서는 타자성이고 수로를 파는 것은 안에서 풀어가는 주체성이다. 에너지의 입력부를 장악해야 주체성의 관점을 가질 수 있다.


    타자성
    타자성은 사물의 관점으로 볼 때 무의식적으로 수비수의 포지션을 차지하는 것이다. 발언권을 획득하려면 상대방이 먼저 내게 공격했다는 전제를 깔아야 한다. 괜히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네가 먼저 침범했지 않느냐고 상대방을 추궁한다. 피해자 코스프레다. 이는 대상과의 엮임을 유발하여 포지션을 획득하려는 노력이다. 소외를 유발하는 대상화다. 자신이 강할 때 상대방을 대상화 한다. 자신이 약자일 때는 타자성의 관점으로 바라본다. 북한이 한국보다 군사력이 강하다는 전제를 깔고 들어가는 수구꼴통이나 미국의 침략이 두렵다는 북한의 입장이 전형적인 타자성의 관점이다.


    객관과 주관


    객관
    사건으로 볼 때 관측자인 나와 대상과의 엮임을 유발하는 에너지가 사건의 주인공이다. 내 앞에 축구공이 있다면 축구시합이라는 사건을 통해서 축구공과 나의 엮임이 조직된다. 이때 사물인 축구공을 이기려 하지 말고 사건인 축구시합을 멋지게 완성하려고 할 때 나의 시점은 객관화 된다. 사건의 주인공은 축구시합이고 나는 객이다. 그러므로 객관이다.


    주관
    사물의 관점으로 볼 때 나와 대상 사이에 엮임이 없다. 내 앞에 축구공이 있지만 축구시합은 열리지 않았다. 그럴 때 어색해져서 공연히 대상에 개입한다. 그 축구공을 찬다. 남의 집 유리창이 깨진다. 실패다. 자신이 대상에 개입하면 그 대상에 대해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 대상의 거울로 삼은 역설적 자기소개가 된다. ‘나는 축구공이 싫다’고 말하면 그것은 축구공의 사정이 아니라 자기 성격의 문제다. 누가 물어보지 않았는데 왜 자기 성격을 말하는가 말이다. 자기를 배제하고 축구공도 배제하고 둘을 하나의 사건으로 통일하는 축구시합을 멋지게 완성시키자는 방향으로 말해야 한다. 어떤 대상이 자기 눈앞에 있을 때 그 대상에 주목하지 말고 둘이 공유하는 그 공간의 밀도에 신경을 써야 한다. 내 감정을 표현하지 말고 상대방 비위를 맞추지 말고 그 공간의 분위기를 달구어야 한다.


    진보와 보수


    진보
    존재를 연출하는 것은 대칭원리다. 질량보존의 법칙은 대칭을 해명하고 엔트로피의 법칙은 비대칭성을 해명한다. 자연의 진화는 한 방향으로 전개된다는 점에서 비대칭적이다. 별의 생성, 결정의 발달, 우주의 팽창, 생물의 진화는 일방향으로 전개하므로 서로 상쇄되지 않는다. 만약 대칭된다면 서로 상쇄되어 사라진다. 진보는 역사의 전개가 대칭되거나 순환되지 않고 하나의 방향으로 일어난다는 관점이다. 백 마리 양이 사방으로 흩어져도 확산이라는 한 방향으로 간 것이다. 백마리 토끼가 굴 속에 모여도 수렴이라는 한 방향으로 간 것이다. 역사는 자기 계획을 가지고 한 방향으로 진행하며 순환되거나 대칭되지 않는다.


    보수
    대칭이 비대칭으로 올라설 때 점차 가속되어 J커브를 그리면서 폭주한다. 진보의 폭주를 막는 방법은 상호작용을 일으켜 51 대 49와 49 대 51을 시계추처럼 오가게 하는 것이다. 이에 진보의 속도조절로 보수가 기능한다. 보수는 판을 통제가능한 구조로 만들 뿐 직접 통제하지는 못한다. 자신을 수동의 포지션에 놓기 때문이다. 수동은 에너지가 없기 때문이다. 보수는 진보의 하부구조로 종속되므로 독립적인 자기 가치를 주장하지 못한다. 반면 진보는 방향성이 있으므로 주장할 자기 계획이 있다. 그러므로 진보는 있고 보수는 없다. 있다해도 하부구조이므로 안 쳐준다. 오늘날 보수가 주장하는 가치는 모두 과거에 진보가 일으킨 것이다. 진보가 새로운 가치로 관심을 돌리면 보수가 그것을 가져간다. 보수는 남의 가치를 훔칠 뿐 자기 가치를 세우지 않는다.


    긍정적 사고와 부정적 사고


    긍정적 사고
    긍정적 사고는 사건으로 볼 때 인간에 의해 통제가능하다는 생각이다. 막연히 ‘다 잘 될거야!’ 하고 자기암시를 하는 미국식 긍정주의는 가짜다. 긍정은 실행을 낳고 실행하다 보면 상호작용이 증가해서 의미있는 사건이 세팅될 확률이 높다. 그러므로 긍정적 사고와 행동은 일단 긍정적이다. 그러나 이 논리를 무기로 삼아 무조건적인 복종을 강요하는 잘못된 논리구사는 허다하다. 긍정주의가 무기로 쓰일 때 위험해진다. 히틀러의 침략전쟁까지 긍정하는 오류가 있다. 사물은 방어의 방법으로만 통제할 수 있다. 사건은 공격과 방어의 방법으로 통제할 수 있다. 사건에 대한 긍정이 진짜다. 현재를 비판하고 미래를 긍정해야 진짜다.


    부정적 사고
    존재의 본질은 무질서하므로 통제불가능하다는 생각이다. 허무주의, 비관주의, 불가지론에 해당된다. 존재는 메커니즘에 의해 통제된다. 반드시 켜고 끄는 스위치가 있다. 긍정과 부정의 용어는 흔히 거꾸로 사용된다. 노자의 도덕경을 ‘부정적 사고의 힘’이라고 말한 노만 빈센트 필이 그렇다. 노자는 유가 강을 이긴다고 말했다. 진정한 문제해결의 방법론을 제시한 것이다. 이는 큰 틀에서 세상에 대한 긍정적 시선이다. 사물에 대한 부정이 사건에 대한 긍정이다. 강은 대칭되나 유는 비대칭된다. 유는 흐름이고, 흐름은 가속되며, 가속되는 것은 비대칭이기 때문이다. 표피를 부정하고 대신 근원을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비대칭과 대칭


    비대칭
    비대칭행동은 상대방에 대한 응수타진 없이 자신의 계획대로 판을 끌고간다. 권權을 조직하고 이를 행사한다. 우주의 근본원리는 대칭이며 이는 작용과 반작용이 짝을 짓고 메커니즘을 이루어 일의적으로 통제되는 것이다. 이때 한 번의 스위치 조작으로 작용과 반작용 두 포지션을 동시에 결정할 수 있다. 대상이 작용보다 강하면 반작용하고, 반대로 대상이 약하면 수용한다. 작용에 반작용하거나 수용하는 방법으로 대칭되며 그 사이에 스위치를 두어 대상을 임의로 통제할 수 있다. 그 중간에 중간자 역할로 핵이 자리잡는다. 핵은 남자와 여자, 작용과 반작용 사이를 오가면서 스위치 역할을 한다. 비대칭은 핵의 역할에 의해 계를 한 방향으로 수렴하는 것이다. 이때 대칭이 깨지고 큰 힘이 이루어진다. 비대칭행동은 스스로 사건의 핵이 되어 계를 한 방향으로 수렴하는 것이다.


    대칭
    작용과 반작용, 혹은 작용과 수용으로 포지션을 나누고 상대방의 반대로 돌거나 혹은 하부구조에서 상부구조를 추종한다. 같은 층위에서 작용에 대해 반작용하거나 다른 층위에서 작용을 수용한다. 대칭행동은 계를 통제가능한 상황으로 만들고자 하는 무의식을 따른 행동이다. 인간의 사회적 본성에 따라 공동체를 행위의 주체로 보고 자신을 집단의 부속품과 같은 기능적 존재로 설정한다. 대칭행동이 지나치면 소외를 일으킨다. 대칭행동에 의해 사회는 통제가능해지나 지나치면 닫힌계가 열린계로 바뀔 때 레밍의 집단질주와 같은 비극을 낳는다.


    추상과 구상


    추상
    추상은 계에서 사건의 존재를 포착한다. 사건의 완전성을 찾아 계를 하나의 통제가능한 입자로 보는 눈을 얻어야 한다. 사건에는 반드시 에너지의 입출력과 제어가 있다. 축과 날개가 시소구조를 이루고 사건을 판정하는 것이 제어다. 이때 구조는 각의 형태가 된다. 각의 꼭지점이 소실점이 되어 방향성을 제시한다. 축은 핵core, 혹은 심心이다. 핵은 외부에서 들어오므로 통제할 수 있다. 사건이 현재 진행중이거나 배후에서 조정될 때는 잘 포착되지 않는다. 사건을 포착하는 방법은 반복되는 부분을 제거하는 것이다. 반복을 제거하므로 뺄 추抽를 써서 추상이라고 한다.


    구상
    구상은 관측되는 사물의 존재를 포착한다. 관측되었다면 이미 결과측이다. 사건이 종결된 현장에서 남은 단서를 추적하여 과거로 간다. 현장에 담배꽁초만 남았다면 나머지 사라진 부분을 복원하는 것이 구상이다. 구상은 추상을 역으로 되짚는다. 추상에 의해 소거된 부분을 복원하여 사건 당시의 형태를 재구축한다. 구상은 마음 속에 남은 잔상에 형태를 부여한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1]까뮈

2013.07.19 (10:34:09)

본문 "진보는 보수의 하부구조로 종속되므로 독립적인 자기 가치를 주장하지 못한다." 중 

'진보는 보수의 하부구조=>보수는 진보의 하부구조'로 수정 요망.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3.07.19 (10:51:58)

고쳤음다 ^^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2692 신은 쿨한 스타일이다 image 13 김동렬 2013-08-15 57468
2691 양식과 디자인 image 김동렬 2013-08-14 11048
2690 에로스와 타나토스 image 김동렬 2013-08-14 11804
2689 집단광기와 마녀사냥 image 3 김동렬 2013-08-11 14971
2688 방향성과 관점 image 김동렬 2013-08-10 11392
2687 철학의 모형들 image 1 김동렬 2013-08-09 13279
2686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3 김동렬 2013-08-08 16332
2685 사과는 어디에서 왔는가? 2 김동렬 2013-08-07 10720
2684 주체의 영역은? 1 김동렬 2013-08-06 10642
2683 구조론의 최종결론 1 김동렬 2013-08-05 10747
2682 구조론이란 무엇인가? 5 김동렬 2013-07-31 15322
2681 연역어와 귀납어 6 김동렬 2013-07-30 11575
2680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 1 김동렬 2013-07-29 11397
2679 실존과 본질 1 김동렬 2013-07-28 11904
2678 구조론 개요 김동렬 2013-07-28 10774
2677 생각을 잘 하는 방법 11 김동렬 2013-07-24 11537
2676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2 김동렬 2013-07-23 11104
2675 미스터 고 흥행 될까 말까? image 16 김동렬 2013-07-19 12549
2674 존재론과 인식론 3 김동렬 2013-07-19 15509
» 진보와 보수 2 김동렬 2013-07-18 605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