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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관리자*
read 3028 vote 0 2012.10.21 (21:54:10)

학창시절 함께 농구하다보면 유독 룰에 신경쓰는 친구, 꼭 있다. 워킹이 어쩌고 저쩌고 금을 밟았네 안 밟았네, 공을 들고 세 걸음을 걸었네 안 걸었네...... 적당히 떠들면 농구 룰을 숙지할 수 있어 게임진행이 원활하지만 계속 미주알고주알 떠들면 게임이 재미 없어진다. 에이, 더러워서 나 안해 하고 공을 던지고 친구들이 가버린다.


근데 그 녀석은 게임이 파토난 것이 자신의 탓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친구들이 규칙을 지키지 않아서 게임이 파토난 것이라고 생각하고 계속 그렇게 규칙을 강조하며 게임의 흐름을 방해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꼭 심판역할을 떠맡으면서 친구들을 피곤하게 하는 사람 꼭 있다. 


이쯤에서 생각나는 군상들이 있다. 바로 지식인이다.

지식인, 그들은 자신의 전문분야에서나 통하는 룰을 가지고 심판노릇을 하려든다. 


물론 룰은 중요하다. 룰이 있어야 게임을 시작하고 진행하고 마무리할 수 있다. 

룰이 있어야 승패를 구분하고 반칙여부를 판단하여 게임에 긴장을 불어넣을 수 있다. 

따라서 누군가가 룰을 지키는지의 여부를 감시하는 심판의 역할 역시 중요하다. 

반드시 필요한 포지션이다. 


그러나 심판은 게임의 주인이 아니다. 

그런데 그렇게 착각하는 사람, 꼭 있다. 

룰을 엄수하는 것을 지상과제로 삼는 사람이 있다. 특히 지식인들이 그러하다. 


그들은 때로는 어떤 친구가 공을 들고 세 발짝 걸어도 혹은 네 발짝을 걸어도 게임 안에서 용인된다는 것을 참지 못한다.

 왜? 자신들이 믿고 있는 규칙에 어긋나니까. 


그들은 반칙을 하면서도 친구들끼리 낄낄거리며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참지 못한다.

왜? 그것이 반칙이라고 그들이 믿는 룰북에 써져있으니까.


그들은 무엇보다도 게임의 규칙이 고정되지 않고 자꾸 변화하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왜? 자신들이 지닌 지식이라는 이름의 룰북이 소용없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임시로나마 주어진 심판의 권한이 사라진다는 것에, 자신의 포지션이 사라진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들은 심지어 공이 없어도, 코트가 없어도 게임이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을 모른다. 

그들의 눈에는 공을 매개로 규칙을 매개로 형성되는 우정이라는 이름의 상호관계가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 사이의 상호작용 자체가 게임이며 중요한 것은 그 상호작용을 긴밀하게 하는 것이고, 규칙은 바로 그러한 목적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임을 모른다. 


진짜 게임은 규칙이 아니다.

혹여라도 그 규칙을 어길까봐 두 눈 부릅뜨고 친구들을 노려보는 심판은 게임의 주인이 아니다. 진짜 게임이라면 그 자리에서 룰을 만들고 그 자리에서 룰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서로 대화하고 때로는 다투고 때로는 화해하는 과정 자체가 진짜 게임이다. 


2012년 대선.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참여하는 이 신나는 게임에 벌써부터 심판 역할 한다고 애쓰는 자들이 눈에 보인다. 


그렇게 파울하지 마! 규칙을 지켜! 페어플레이 하란말야~ 목청높여 소리지르는 가운데 대한민국 선수들은 새로운 룰을 만들어가고 있다. 정녕, 심판을 하고 싶다면 그 룰이 무엇인지 발견해야 한다. 우리가 지금 만들고 있는 새로운 룰을 두 눈 부릅뜨고 보아야 한다. 


그 룰이 보이지 않는 사람은?


이거라도 읽으셈

http://gujoron.com/xe/296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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