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예전에 갖고 있던 생각들을 중심으로 쓴 것이니
구조론의 '마음'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았더라고 이해 바랍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몸과 영혼으로 이루어져있다.(나= 몸/영혼 = 육체+정신/자유의지)
여기서 몸은 육체와 정신을 의미하고
영혼은 자유의지(선택권자)를 의미한다.
(생리학적으로 인간 = 육체 + 정신(정신에 자유의지 포함됨)
다시 육체는 뇌를 포함한 몸덩이를 말하고
정신은 뇌의 활동영역을 말하는데
생각하고 감정을 느끼는 것 등을 말한다.
자유의지는 육체활동과 정신활동을 하게 하는 자를 말한다.
정신의 생각, 감정을 제어하고
육체의 활동을 통제하는 자를 말한다.
이런 자유의지(선택권자)는 구조론에서
입자의 대표자, 축을 장악하는자, 주체성(or타자성)을 갖는 자를 뜻한다.
입자의 대표자가 자유의지와 선택권을 가진다.
입자의 대표자는 밸런스를 판정하고, 힘으로 교섭한다.
달리 말하면 자유의지(선택권자)는
진아, 각성, 이성 등으로 표현될 수 있다.
('각성'에 관해서는 '나는 누구인가'에서의 한겨레신문 참조
http://gujoron.com/xe/gangron/336042)
구조론에 등장하는 '나'를 정리하면
나는 뇌의 독립적 의사결정영역이다.
나는
너를 만나기 전에는 밀도(질)이고,
너를 만나고 나서부터는 선택권자(=자유의지)가 의사결정하는 영역이다.
만나기 전의 나(절대성) = 밀도(질),
만난 후의 나(상대성) = 선택권자 + 선택권자의 의사결정영역.
(자기의 의사결정(능동)+ 타인의 의사수용(수동)=하나의 상호작용)
예컨데 형법에서는 인간을 두부류로 나눕니다.
자유의지를 가진 이성적 인간상(=비결정론)과
소질(=유전자)과 환경에 영향받는 반사회적 인간상(=결정론)으로요.
비결정론은 범죄인은 자유의지를 갖고 범죄를 선택했기 때문에
후천적으로 범죄인이 되는 것입니다.
결정론은 범죄인은 선천적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고
범죄행위는 생래적 범죄인 속에 내재된 반사회성의 발현으로 봅니다.
범행을 저지른 사람을
비결정론은 후천적 범죄인, 결정론은 선천적 범죄인으로 보는 것입니다.
구조론과 관련해서 보면
범행을 저지른 사람은
범행대상을 만나기 전에는 밀도(질)입니다.
유무형의 범행대상을 만난 후에는 범죄인(=선택권자)이 되는 것입니다.
밀도(질)가 입자로 바뀌고
입자의 대표자인 선택권자(=범죄인)가 범죄대상과 힘으로 교섭하고,
범죄를 행하는 운동하므로써
범행결과(=범죄)가 량으로써 나타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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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만나다.../
<내가 너를, 네가 나를 만나기 '전'>
나는 닫힌계1 속의 밀도1(질1)이다.
너는 닫힌계2 속의 밀도2(질2)이다.
- 사건의 시작-
<내가 너를, 네가 나를 만날 '때'> = 시간은 없고 공간만 존재한다.
나는 닫힌계1 속의 밀도1(질1)이다.
너는 닫힌계2 속의 밀도2(질2)이다.
밀도1은 입자1로 변하면서 입자1의 대표자를 내세운다.
그가 선택권자1이다.
밀도2는 입자2로 변하면서 입자2의 대표자를 내세운다.
그가 선택권자2이다.
선택권자1은 힘1로 힘2에 대해 선택권자2와 교섭한다.
선택권자2는 힘2로 힘1에 대해 선택권자1과 교섭한다.
<내가 너를, 네가 나를 만난 '후'> =시간이 공간과 함께 존재한다.
선택권자1은 (운동2와 함께) 운동1을 한다.
선택권자2는 (운동1과 함께) 운동2를 한다.
선택권자1은 (량2와 함께) 량1이 된다.
선택권자2는 (량1과 함께) 량2가 된다.
-사건의 종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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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성 (추가)
솔숲길님이 올려주신 아포리즘을 보고 느끼는 게 있어
몇자 적습니다. (완전성 안의 그대)
<신은 늘 그대가 된다>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은 무엇입니까?
뜰앞의 잣나무로다.
(祖師 西來意 庭前 栢樹子)
그대가 어떤 질문을 하든, 혹은 어떤 대답을 하든 질문은 물음표고 대답은 느낌표다.
물음표와 느낌표가 서로 대칭을 이룬 채로 마주본다.
그 사이에 무엇이 있는가?
사이가 존재한다.
사이는 존재한다.
깨달음은 관계를 깨닫는다.
(관계는 한자어고 우리말은 사이다.)
요는 그 사이가 존재하여 있다는 거다.
알겠는가? 사이가 있다.
그 사이를 보았는가?
사이가 보이지 않던가?
.
.
.
다시 묻는다.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은 무엇인가?
답은 나왔다.
질문이 물음표면 답은 느낌표다.
느낌표는 완전선이다.
완전할 때 인간은 감탄한다.
그래서 느낌표다.
<주객은 전도된다>
http://gujoron.com/xe/?mid=gangron&page=1&document_srl=341761
언어는 전제와 진술의 구조를 가진다.
인간이 주관에 빠지는 이유는 진술포지션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이때 상대방은 전제 포지션이 된다.
상대가 묻고 내가 답하는 형식이다.
이건 자신이 중심에 선 것이 아니고 변방에 선 것이다.
---> 선문답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많이 발견됩니다.
(언어의 형식 = 전제+진술 = 질문+대답)
예컨데 추석명절날 시골에 살던 형이
도시에서 추석 쇠러온 동생을 만납니다.
(사례1)
형 ; 어어~ 왔네.(=?)
동생 ; 네, 왔어요.(=.)
동생을 중심으로 사건을 보면
동생은 형의 질문에 답했습니다.
형은 전제 포지션에서 질문을 하고
동생은 진술 포지션에서 답을 한 것이지요.
(사례2)
형 ; 어어~ 왔네.(=?)
동생 ; 반가워요.(=!) or 형님, 어떻게 얼굴이 이렇게 좋아지셨어요?(=!)
동생을 중심으로 사건을 보면
동생은 형의 질문에 답을 안하고 있습니다.
딴소리를 하고 있죠. (= '누가 물어 봤냐고'입니다.)
형님과 동생 모두가 전제 포지션에 서있습니다.
서로 딴소리를 하면서 대칭(작용반작용)을 이룹니다.
그런데 형님과 동생의 대화에서
둘다 서로를 반가워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방향성입니다.
형동생이 딴소리하며 서로 대칭을 이루며
작용과 반작용을 하지만
그러한 힘의 교섭과정은
반가움이라는 하나의 흐름(방향성) 위에 올라타고 있습니다.
사례1은 형과 동생이 전제와 진술 포지션에 서 있지만
사례2는 형과 동생이 모두 전제 포지션에 서 있습니다.
(사례2의 형동생의 전제 포지션을 하나로 묶는 '숨은 전제'가 반가움 입니다.)
사례1은 형과 동생이 만났지만
둘의 관계가 정체된 상태입니다.
형과 동생이란 두 존재가 질입자힘운동량의 만남을 거쳤지만
새로운 관계(=반가움)를 형성하지 못한 상태인 것이죠.
반가움을 낳지 못하고
그냥 묻고 답하는 정보만 주고 받는 단계죠.
동생이 형에게 끌려다니는 형국입니다.
둘의 관계에서 동생은 타자성을 가졌습니다.
(형은 주체성을 가졌음)
사례2는 둘 모두가 전제 포지션에서 작용반작용을 하며
힘을 교섭하는 (그 뒤에 운동하고 량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소통이고,
교섭과정(질-->량)이 하나의 방향(=숨은전제)을 갖고 진보하는 것이 완전성입니다.
형과 동생 모두가 주체성을 갖고 사건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정리하면
완전성이란 존재1과 존재2가 만나서(=질1과 질2가 만나서)
입자의 대표자1(선택권자1)과 입자의 대표자2(선택권자2)가
모두 주체성을 갖고,
힘으로 교섭한 뒤 (= 상부구조)
힘으로 교섭한 뒤
한방향으로 서로 어울어지며 운동하면서
두개의 량처럼 보이는 하나의 량을 낳음으로써 (= 하부구조)
둘의 관계를 한단계 멀리 나아가는 것입니다.(진보)
해와 달이 하루를 낳는 것처럼...
선택권자1을 중심으로 사건을 보면
선택권자1이 주체성을 가지면
선택권자1이 선택권자2의 의사결정영역을 잠식해 나간다.
선택권자1의 의사결정영역은 넓어지고,(넓어지는 쪽으로 운동하고,)
선택권자2의 의사결정영역은 좁아진다.(좁아지는 쪽으로 운동한다.)
선택권자1이 타자성을 가지면
선택권자2에 의해 선택권자1의 의사결정영역은 잠식당한다.
선택권자1의 의사결정영역은 좁하지고,(좁아지는 쪽으로 운동하고,)
선택권자2의 의사결정영역은 넓어진다.(넓어지는 족으로 운동한다.)
선택권자1과 선택권자2 모두 주체성을 가지면
선택권자1과 선택권자2의 의사결정영역은 중첩되고,소통되고,(같아지는 쪽으로 운동하고,)
마지막엔 멋진(스타일리쉬한) 새로움을 낳는다. 진보한다. 이것이 완전성이다.
새롭고 멋진 것을 낳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