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반에 집중을 잘 못하는-조금 부족한게 아니라 거의 못하는- 친구가 있어서 대각선의 친구에게
좀 잡아달라고 했습니다. 오늘도 준형이는 손장난을 놀면서 교과서를 꺼내지 않았습니다.
책임감이 강한 만석이는 준형이를 지적하기 시작합니다.
"야, 딴짓좀 그만해"
이렇게 하면 준형이는 놀라고 불안해 합니다.
그래서 제가 만석이에게 다른 방법을 주문했습니다.
좀 더 부드러운 목소리로
"준형아~, 딴짓좀 그만했으면 좋겠어~"
말은 부드러워졌지만, 만석이는 목표행동을 배우지 못합니다.
부정어는 뇌가 기억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저의 대화 코칭에 따라 준형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준형아~, 네가 책을 폈으면 좋겠어~~"
사실적 표현으로 정보를 제공할 수도 있습니다.
"준형아, 지금은 수학 시간이야"
사실적 표현은 사람을 비난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방의 기분을 나쁘게 하지 않으면서
우리의 요구를 정확히 드러낼 수 있고, 성공률도 높습니다. 듣는 사람이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본인의 동의에 의해서 일을 해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한 번 해보세요~~.
물론 익숙해질 때 까지 연습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평화 대화법, 존중 - 공감 대화법은 쉬우면서도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쉽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연습하지 않으며, 실제 생활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직, 윽박지르고 나서 후회할 때 생각나는 표현이기 때문이지요.
존중 중심 대화법은 문제행동을 대할 때 상대방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을 기본을 합니다.
이어서 문제를 대할 때 문제의 수렁에 빠지지 않고 문제중심에서 해결중심으로 가는 것을 지향합니다.
원인파악을 시도하기는 하지만 양파껍질 같은 원인파악노력은 실패로 끝날 때가 많습니다.
원인파악과 해결중심의 방향이 같이 가는거지요.
해결중심으로 가는 이유는 그 문제를 해결하는 지름길은 약점을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그사람이 갖고 있는 자원과 강점을 통해서 성장의 생장점에서 성장이 일어나도록 돕는다면
문제는 자연스럽게 사라집니다. 사람들은 문제가 많다고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 문제가 일어나는 것은 짧은 순간에 불과하며, 유지할만한 좋은 습관도 있고, 아직 덜 길러진 능력도 있습니다. 있는 부정적인 것을 억지로 버리려고 명령과 강압으로 하려는 노력과 없는 것을 만들기 위해 사람을 훈련시키는 것은 그 사람을 더욱 열등하게 만들고 방어기제쪽에 관심을 갖게 하여 다른 사람과의 관계마져 끊어지게 만드는 독약입니다. 섣부른 판단으로 버려라, 만들어라 할 것이 아니라 판단을 유보하고 관찰하고 정보를 수집하고 소통하면서 있는 사실뒤에 감춰진 진실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관찰이 전체상황을 파악하는 통찰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해결로 가는 길은 요원합니다.
유지할 만한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덜 길러진 능력을 더 발전시키면 자존감도 올라가고(사실 자존은 이미 존재하는 선험적인 연역의 부분이고, 자존감을 느끼는 것은 경험적인 귀납입니다) 문제는 다루지 않아도 없어지는 경우가 많지요.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에너지의 우위에 있는 사람이 에너지가 부족한 사람을 존중하고 편안하게 대해서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불안과 불신을 녹아 없어지게 할 때 효과를 발휘합니다. 결국 존재의 성장의 열쇠는 관계에 있으며, 양자의 포지션과 둘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의 질과 양에 따라 성장은 판가름납니다.
말씀을 듣고 나니 얼떨결에 하게 된 터라 선생님이 된 포지션에서
제 스스로가 상황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 아이에
대한 관계까지 불안정하게 표출된 것이 아닐까 싶군요.
결국 그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그 상황을 지배하고 세팅하지 못한
제 자신의 문제가 이렇게 비추어진 것 같습니다.
이래서 가르치면서도 배운다는 말이 있는 것 같네요.
돌이켜보니 다른 선생님이 아이를 가르치는 모습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욕심부리지 말아야겠다 하는 생각말이죠.
제가 이 아이들을 올바르게 성장시켜보겠다는 생각, 제가 이 비뚤어진
아이를 바로 잡아보겠다는 생각등 그 전에 갖고 있던 이러한 생각들을
버리게 되었습니다.
어찌보면 현실을 보고 체념하는 뉘앙스로 비추어질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제가 느낀 것은 아이들에게 가르친다는 건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맥락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과 아이들을 연계시키는 접점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선생님이란 존재는 새로운 세상과 아이들의 접점에서 탄생하는 관계,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전제를 가지고
자신을 배제하며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선생님의 모습이 아이들에 대한 애정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상우선생님은 애초에 이러한 전제를 갖고 아이들에 대한 견해를 말씀해 오셨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동안 상우선생님의 말을 이해해왔다고 생각했던 저는 이제야
이러한 전제가 있구나 싶은 생각을 해봅니다.
사람의 대화란 그 말 자체의 의미가 아니라 그 말이 그릇이라면 그 그릇안에 담긴
내용물을 가지고 소통을 하는 거란 사실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하지만 저는 그동안 낼름낼름, 혹은 족족 그 안에 담긴 내용물을 훌쩍 마셔버리고
빈 그릇을 놓고 상우선생님과 대화를 나누었던 것 같습니다.
끽다거. 다시 한번 외우고 갑니다. 부족한 제게 언제나 영감을 주시는 상우님께
항상 감사드립니다.
아르바이트로 어쩌다 겪은 일이었는데 주의가 산만한 아이와 1대 1로
대화를 할 경우 잘 소통하고 서로를 이해하던 것이
다른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수업에서 산만한 태도를 보이는 그 아이와
만날 경우 지도하기가 정말 쉽지 않더군요^^
한번 두번은 타일러도 다른 아이들에게 주위가 분산되니 자꾸 자신에게
관심을 돌리려는 듯 돌출행동을 할 때면 정말 아드레날린이 쫙 분비되는
것을 종종 느끼곤 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제가 가진 포지션에 따라 그 아이와의 소통이 상대적으로
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냥 형으로서의 포지션인 경우 인생상담도 해줄 수
있는 그런 편안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선생님으로서의 포지션인 경우
그 아이의 포지션 역시 바뀌며 또다른 관계가 형성되는 것을 제가 간과했던
것 같습니다.
만약 수업중에 이러한 존중 공감 대화법을 쓰신다면 정말 상당한 인내와 그에 맞추어
사전 작업(당사자 아이와의 긴밀한 유대형성)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정말 말로만 듣고 생각만 해보는 것과 직접 자신이 그 포지션에 위치해 경험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새삼 선생님들의 위대함을 알게 된 경험이기도 했네요.
정말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할 수 없는 일이 선생님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항상 현장에서 고생하시는 상우 선생님을 보면 언제나 그 진심이 느껴집니다.
언제나 응원하겠습니다. 힘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