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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871 vote 0 2025.03.14 (09:58:03)

    나는 누구인가? 우리가 '나'라고 부르는 것은 정확히 무엇인가?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봤을 것이다. 내 몸이 내가 아닌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이건 뭐 석가모니 형님이 2500년 전에 떠들었던 이야기다. 내 영혼이 나일까? 그렇다면 영혼은 뭐지? 마음? 생각? 기억?


    아테네인들은 테세우스의 배를 오랫동안 보존하였다. 테세우스의 배에서 판자를 하나씩 뜯어서 갈아끼우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배를 배1이라고 하자. 테세우스의 배에서 갈아끼운 판자들을 버리지 않고 똑같이 생긴 배를 만들어 배2라고 하자. 배1과 배2 중에 테세우스의 배는 무엇인가? 


    테세우스의 배 역설은 예전부터 유명했던 듯 한데 다들 말장난이나 하려고 할 뿐 진지하게 접근하는 사람 하나를 나는 본 적이 없다. 육체는 잠시 빌려 쓰는 물질일 뿐 내가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육체를 나라고 규정하면 똥오줌도 내가 되므로 피곤해진다. 


    육체가 내가 아닌데 영혼이 나라는게 말이 되는가? 결정적으로 영혼은 없다. 존재가 없다. 그러나 보통 말하는 영혼은 종교의 영혼과 다르니까 영혼은 있다고 말해도 된다. 언어라는게 의미를 부여하기 나름이다. 보통은 인격을 영혼이라고 하지만 진짜는 따로 있다.


    종교의 영혼 = 특수한 물질

    보통 말하는 영혼 = 마음, 생각, 기억, 항상성, 인격, 정체성, 동일성

    임무로서의 영혼 = 신과 연결된 나의 역할 


    아테네인들은 무엇을 보존하려고 했던가? 집단적 기억? 테세우스의 배에 부여된 임무가 테세우스의 배다. 아테네인들이 테세우스의 배를 잊지 않게 하는 것이 테세우스의 배에 주어진 임무다. 어느 쪽이 더 아테네인으로 하여금 테세우스의 배를 기억하게 하는가?


    하드웨어는 내가 아니고 당연히 소프트웨어도 내가 아니다. 나라는 것은 나의 주도권이다. 내 권력이 나다. 물질은 권력이 없다. 주도권은 내게 주어진 미션에 있다. 미션이 없으면 권력이 없다. 암행어사의 권력은 임무에서 나온다. 왕의 권력은 의무에서 나온다. 


    의무는 지는 것이다. 진다는 것은 버틴다는 것이다. 무너지면 연달아 모두 파괴된다. 버티는 것은 연결이다. 모든 존재는 하나의 연결단위이며 연결을 유지해야 한다. 의무는 부분에 없고 전체에 있다. 집배원의 의무는 송신자와 수신자의 연결상태를 유지하는데 있다. 


    연극이라면 배우가 내가 아니고 대본도 내가 아니고 캐릭터도 내가 아니다. 배우의 권력은 몸에서 나오는게 아니고 대본에서 나오는게 아니다. 배우의 권력은 역할에서 나온다. 나는 배우의 몸도 아니고 영혼이라는 대본도 아니고 주연이든 조연이든 역할에서 나온다.


    고립된 나는 없으며 연결의 나만 존재한다. 내가 없으면 무대가 작동하지 않고 연극이 망하므로 내가 존재하는 것이다. 나는 무대의 일부로 존재하는 것이다. 집배원은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연결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이 나의 의무이고 나의 존재이고 본질이다.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 17은 아직 안봤지만 복제본 나와 또다른 복제본 내가 대립한다면 사실 둘 중에 어느 쪽이 살아남든 상관없다. 그렇게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동물적 생존본능이 방해할 수 있지만 그것은 극복할 문제다. 바가바드 기타의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


    내게 주어진 임무를 완성하는 쪽으로 행동해야 한다. 장예모 감독의 영웅에서 이연걸처럼 진시황에게 설득되면 안 되고 진시황의 빈틈을 봤다면 찌르는게 진시황에 대한 예의다. 선수가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자격 박탈이다. 자객이 찌르지 않으면 그게 자객이냐고?


    안중근이 이등박문을 죽여서 일제의 조선침략이 앞당겨지더라도 방아쇠를 당겨야 한다. 왜냐하면 일제의 빈틈을 봤으니까. 포먼의 헛점을 봤으면 알리는 때려야 한다. 포먼이 챔피언이 되는게 더 멋지다고 때리지 않으면 도전자 자격이 없다. 권투시합 망칠 셈이냐?


    배우는 그 무대를 완성하는 행동을 해야 한다. 테세우스의 배의 임무는 무엇일까? 부분적 손상이 있지만 배 1이 태세우스의 배다. 테세우스의 배에서 판자조각을 뜯어서 새로 만든 배는 썩은 판자더미에 불과하다. 그것은 똥을 모아서 사람이라고 우기는 것과 같다.


    배 1을 불태워야 배2가 태세우스의 배가 된다. 임무의 완결성으로 봐야 한다. 배 1을 뜯어서 따로 뭔가를 만든 것은 원래 임무를 포기한 것이다. 원본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건 완결성이며 원본을 보강하는 것은 허용이 된다. 완결성을 해치지 않는다.


    테세우스의 배에서 가져온 썩은 나무는 테세우스 전성기의 모습을 간직한 것도 아니고 그냥 만들어본 것이다. 이것은 친자냐 양자냐의 문제와 같다. 양자를 친자로 착각하고 어른까지 키웠다면 친자다. 유전자가 중요한게 아니다. 양자가 친자의 임무를 하면 친자다. 


    중요한건 인간의 의도이다. 양자를 친자로 착각했다면 의도가 친자이므로 친자다. 정체성을 결정하는 것은 권력이다. 권력을 결정하는 것은 임무의 완결성이다. 완결성을 결정하는 것은 의도다. 이 문제는 인간이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하는 문제로 확장된다. 


    나의 권력과, 완결성과, 의도와, 임무가 바로 나다. 육체나 영혼은 내가 아니다.그것은 보조재다. 임무에서 권력이 나온다. 임무가 나를 완결시킨다. 문제는 임무는 전체와 연결되는 형태로만 성립된다는 것이다. 신과 연결되어야 내 임무가 결정된다. 고립은 죽음이다.


    인간은 신에게서 파견된 존재이며 죽으면 신으로 돌아간다. 타인은 나의 다른 버전이며 자식은 나와 동일하거나 나보다 더 나다. 나는 죽지만 나의 임무를 계승하므로 나보다 자식이 더 나다. 이는 독립지사가 자신의 목숨보다 민족의 앞날을 우선하는 이유다. 


    나와 자식 중에 하나가 나라면 내 임무를 이어받는 자식이 더 나에 가깝다. 내 몸도, 마음도, 영혼도 버릴 수 있는데 임무는 버릴 수 없다. 자식과의 연결을 부정하면 신과의 연결도 부정된다. 내가 죽는다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죽은 것은 물질이지 내가 아니다.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죽은 다음에 무엇을 할지 계획이 서 있지 않기 때문이다. 죽음이 두려운게 아니고 뭔가 계획하라는 압박이다. 집단과 연결하라는 압박이다. 집단에서 임무가 나오기 때문이다. 죽음의 공포는 집단과 연결하여 무언가 할 일을 찾게 하는 압박이다.


    죽음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집단과 연결하는 것 밖에 없다. 그래서 장례식을 치르는 것이다. 연결을 확인하고 미션을 계승한다. 신의 계획을 나의 계획으로 삼으면 죽음의 두려움이 없다. 80억의 내가 평행우주로 존재하는 커다란 나로 복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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