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은 역설이다. 의도와 반대로 된다. 역설이 인간을 당황하게 한다. 좌절하여 타락하게 된다. 인생만사 새옹지마다. 얻으면 잃고 잃으면 얻는다. 살면 죽고 죽으면 산다. 도덕경을 잘못 배우면 허무주의에 빠진다. 모든 것을 의심하게 된다. 나아가지 못한다. 극복할 수 있다. 역설은 지렛대다. 지렛대는 반대로 움직인다. 그러나 인간은 지렛대를 장악할 수 있다. 지렛대는 반대로 움직이지만 가위는 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지렛대 두 개를 대칭시킨 것이 가위다. 놀부처럼 반대로 움직이지만 두 명을 경쟁시키면 된다. 시행착오를 거치게 되지만 오류시정으로 거듭날 수 있다. 역설의 극복은 지렛대 구조를 가위구조로 바꾸는 것이다. 유체를 닫힌계에 가두고 압박하면 강체가 된다. 경쟁자를 붙여서 지들끼리 싸우게 만들면 얌전해진다. 에너지를 한 방향으로 통제할 수 있다. 역설에 당황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타락하지 않고 허무주의와 회의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지렛대를 빼앗기면 당연히 의심해야 한다. 내가 지렛대를 장악하면 믿을 수 있다. 인간들이 다투는 일이 목적달성이 아니라 지렛대 싸움이라는 본질을 알아야 한다. ###
기왓장을 때리면 손만 아프다. 그러나 세게 때리면 기왓장이 깨진다. 노자의 도덕경은 뭐든 반대로 될 수 있으므로 조심하라고만 말했을 뿐 그것을 역으로 이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았다. 역설을 어설프게 알면 위태롭다는 것이 역설의 역설이다. 오른쪽 뺨을 때리면 왼쪽 뺨을 돌려대라. 예수의 역설이다. 역설을 실천한 사람은 예수, 오자, 소진, 장의, 한비자, 마키아벨리다. 모두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말로가 좋지 못했다. 자객에 맞아죽고 임금한테 배반당했다. 도덕경으로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역설은 도구다. 도구로 문제를 해결하면 또다른 문제를 만든다. 조금 알면서 아는 척 하면 큰 코를 다친다. 역설의 역설까지 나아가야 한다. 역시 망치와 모루다. 지혜가 망치라면 세력은 모루다. 개인의 지혜만으로 안 되고 세력의 힘이 뒤를 받쳐야 성공한다. 역설은 지렛대다. 지렛대는 도구다. 도구로 이기면 상대가 승복하지 않는다. 속임수를 썼다며 반발한다. 총을 쏘면 화를 낸다. 숨어서 총질하다니 비겁하다. 사나이답게 들판에서 칼로 용맹을 겨루자. 총을 대량생산해야 총의 시대가 왔음을 깨닫고 승복한다. ### 노자사상, 주역사상, 법가주의, 마키아벨리즘이 모두 위험하다. 바보의 손에 들어가면 의도와 반대로 된다. 지휘관은 당연히 병법을 구사해야 하지만 말단 병사가 제갈량의 꾀를 내면 피곤하다. 노자 도덕경은 원래 제왕을 위한 통치술이다. 바보한테는 해롭다. 뭐든 안전장치가 필요하고 사전작업이 필요하다. 밑밥을 뿌리고 미끼를 던져야 한다. 내가 먼저 요충지를 차지하고 교두보를 확보하고 안전판을 마련하면 된다. 망치를 휘두르기 앞서 모루를 받쳐놓으면 된다. 고백하기에 앞서 경쟁자를 붙여 격동시키면 된다. 병법이 기사도에 어긋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쟁의 규모가 커지면 모두가 병법을 쓰게 된다. 병법이 대세가 되고 규칙이 된다. 전쟁의 패러다임이 바뀐 것이다. 춘추시절만 해도 전쟁의 규모가 수천 단위로 작았기에 송양지인의 삽질이 등장한 것이다. 역설의 파훼법은 반대편에 먼저 조치하는 것이다. 오른쪽으로 핸들 꺾으려면 왼쪽 깜박이를 넣어야 한다. 망치를 휘두르기 전에 모루를 먼저 받치는 것이다. 지렛대 두 개를 사용하여 양쪽에서 압박하면 된다. 양면전쟁과 같다. 양쪽에서 걸어잠으면 닫힌계다. 양쪽에서 협공하면 상대의 의사결정을 방해하므로 두 배가 아니라 열 배의 힘이 있다. 한신이 정형전투에서 3만의 적은 병력으로 진여의 20만 대군을 칠 때 늙은 병사들로 배수진을 쳐서 적을 유인하고 한편으로는 날랜 기병을 보내 본진을 습격한 것과 같다. ### 역설을 극복하는 것은 시스템이다. 어설프게 도구를 쓰다가는 제 꾀에 제가 넘어간다. 도구로 흥하고 도구로 망한다. 일회성의 도구가 아닌 시스템으로 나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총을 한 방 쏘면 자객의 살인도구이지만 만 방을 쏘면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역설을 실천했던 예수, 오자, 소진, 장의, 한비자, 마키아벨리는 대부분 말로가 아름답지 못했는데 사후에 재평가를 받았다. 그들의 명성은 갈수록 높아졌다. 세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닫힌사회에서 열린사회로 바뀌었다. 작은 사회는 역설이 먹히지 않는다. 춘추시절에는 기사도가 중요했는데 전쟁이 십만명 단위로 커지자 너죽고 나죽기로 되어 무조건 이겨야 하는 상황이 되어 재평가 받은 것이다. 예수의 가르침도 마찬가지다. 이스라엘 시골 동네에서 먹히지 않는데 로마제국으로 판이 커지자 가르침이 먹혔다. 1. 작은 사회(정설) - 열린 사회(역설) - 더 큰 닫힌사회(역설의 역설) 2. 단기전은 선빵이 이긴다(정설) - 장기전은 공세종말점에서 막힌다(역설) - 더 큰 장기전은 외교술로 미국을 끌어들이면 이긴다.(역설의 역설) 당나라가 힘으로 이기는게 정설이다. 고구려의 청야작전에 막히는건 역설이다. 중간 보급기지를 만들고 신라를 끌어들여 협공하는게 역설의 역설이다. 임진왜란도 양차 세계대전도 전쟁이 장기화 되어 외교로 승부가 났다. 판이 커지면 이길 나라가 이긴다. ### 어리석은 자는 이용당한다. 영리한 자는 세력있는 자에 당한다. 종횡가의 소진과 장의는 군주 한 사람을 설득했기 때문에 말로가 좋지 못했다. 마키아벨리와 한비자도 마찬가지다. 천하를 설득해야 한다. 이들이 재평가 받은 이유는 세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구조론은 지렛대의 지렛대다. 사람은 지렛대를 이용하지만 천하는 그 사람을 지렛대로 이용한다. 지렛대로 약자를 이길 수 있지만 강자 앞에서는 역효과가 난다. 약자를 속여 이득을 얻을 수 있지만 강자를 속여봤자 신용을 잃을 뿐이다. 패러다임이라야 한다. 역설을 알면 한 몸을 지킬 수 있다. 패러다임을 알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논리는 한 명을 설득하는 기술이다. 심리는 집단을 움직이는 지렛대를 만드는 기술이다. 물리로 완전해진다. 칼은 지렛대다. 무른 것을 쉽게 자르지만 굳센 것을 베려다가 손을 다친다. 칼에 칼을 더하면 가위다. 작두나 펜치는 날이 두 개인 점에서 가위와 같다. 작두는 굳센 것을 자르고 펜치는 철사도 자른다. 손을 다치지 않는다. 도구에 도구를 설치하여 역설의 리스크를 극복헤야 한다. 한 번 때리면 역효과 나지만 두 번 때리면 넘어간다. ### 역설은 시행착오를 일으킨다. 오류시정으로 해결한다. 반대로 되는 것은 부분이다. 부분을 연결하여 패러다임을 만들면 극복된다. 악은 잘게 쪼개서 부분을 이겨먹는다. 국지전, 제한전, 단기전을 시도한다. 선은 부분을 연결하여 전체를 완성하는 방법으로 이기지만 많은 시간이 걸린다. 장기전, 전면전, 무제한전으로 이겨야 한다. 세상은 뜻대로 안 되지만 뜻대로 되게 만들 수 있다. 단 장기전, 전면전, 무제한전을 해야 한다. 고수들은 안다. 미리 길목을 차지하고 함정을 파고 유인하여 뜻을 이룬다. 하수는 자신이 원해서 그 길로 간다고 믿지만 미끼를 물었다. 반대쪽을 틀어막고 이쪽을 열어두면 낚인다. 영웅은 막힌 쪽을 뚫고, 종심을 타격하고, 사방을 에워싸서 압도적으로 이긴다. 하수는 강으로 약을 치지만 고수는 약으로 위장한 유로 고립된 강을 쳐서 이긴다. 테베가 스파르타를 깬 레욱트라 전투가 유명하다. 일점을 돌파하여 부분적인 우위를 달성하고 이를 전면화 시킨다. ### 지식이 있는데 별도로 지혜가 필요한 이유는 인생은 상대가 있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의도와 반대로 된다. 공은 발로 차면 되는데 길고양이는 붙잡아놓고 치료해야 한다. 붙잡지 않고 건드리므로 역설에 깨진다. 샅바도 안 잡고 씨름을 이기려고 한다. 아는 것은 지식이고 행하는 것은 지혜다. 행하기 앞서 먼저 판을 고르고 그라운드를 점검해야 한다. 이 부분은 현장에서 임기응변으로 해결해야 하므로 지식으로 주입하기 어렵다. 아는 것은 도구다. 도구의 운전기술이 지혜다. 지식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지식은 공간이고 지혜는 시간이다. 시간은 단계적 접근이다. 바둑이라면 수순이다. 포석, 행마, 끝내기의 3단계가 있다. 포석은 미리 요충지를 차지하고, 행마는 적을 달고 가면서 키워서 먹고, 끝내기는 방해자를 제거한다. 장기전, 무제한전, 전면전에 승리한다. 포석 - 미리 요충지를 차지한다. 행마 - 장기전으로 몰고가서 적을 키워서 먹는다. 끝내기 - 방해자를 제거하여 리스크를 감소시키는 마이너스를 구사한다. 단번에 이기면 적이 승복하지 않아 전쟁이 재발하므로 장기전에서 확실히 이겨야 한다. 단기전의 승리에 취해 만만한 곳만 때리다가 전투에 이기고 전쟁에 진다. 포석과 행마는 이득을 얻는 플러스지만 끝내기는 리스크를 줄이는 마이너스라는 점이 중요하다. ### 왕 하나만 잡으면 적이 스스로 무너질 수도 있고 반대로 불씨가 하나만 살아있어도 산불이 재발할 수 있다. 공격하려면 패러다임을 뒤집어야 하고 반대로 방어하려면 패러다임으로 막아야 한다. 전부 연결하여 한 덩어리를 만들어 놓아야 한다. 적은 전부 이기지 못하므로 포기한다. 뜻대로 된다고 믿는 사람은 초딩이다. 초딩은 선이 악을 이긴다고 믿는다. 사실이지 초딩에게 역설을 가르치기는 어렵다. 그냥 착한 아이한테 산타할아버지가 선물 준다고 말하는게 맞다. 아기는 가족이라는 집단을 믿고 의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선은 집단이다. 집단이 개인에 앞선다. 중딩이 되면 까져서 반항한다. 이때 역설을 경험하게 된다. 재미들려서 나쁜 짓을 한다. 악이 승리하는 장면을 목격하기 때문이다. 악은 권력이다. 권력은 집단을 장악한다. 집단을 장악하려면 실력이 있어야 한다. 실력이 없으므로 집단을 잘게 쪼개서 장악하려는 행동이 악행이다. 악은 쪼개서 이긴다. 패러다임은 쪼개지 못하게 전부 연결한다. 전체가 부분을 이긴다. 이겨도 패러다임으로 이겨야 결과에 승복한다. 항우가 전투에 이겼지만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지 못하고 봉건제로 돌아갔다. 유방이 뛰어난 외교술로 군국제라는 패러다임을 만들어서 이겼다. ### 백신을 맞는 것은 선이다. 70퍼센트가 코로나 백신을 맞으면 집단면역에 도달하므로 백신을 안 맞아도 된다. 백신을 안 맞고 버틴 자가 이긴다. 반칙하는 자가 이긴다. 얌체가 이기는 것을 봤으므로 이제는 모두가 백신을 안맞고 버틴다. 그 사회는 멸망한다. 백신을 안 맞는 부작위 방법으로 작위하여 집단에 리스크를 부담시킨 얌체들에게는 불이익을 줘야 한다. 의도적인 부작위는 작위다. 작위에 대해서는 응징이 따라야 한다. 사회에는 언제나 얌체가 있고 건강한 사회는 얌체를 손보는 시스템을 가져야 한다. 역사가 직선으로 가지 않고 갈짓자로 가는 이유다. 얌체를 손 보고 가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얌체짓을 드러내는 언어가 없는게 문제다. 무임승차, 모럴 해저드, 공유지의 비극, 책임전가, 기회주의 등이 알려져 있지만 애매한 말이라서 타격감이 약하다.
보수주의는 얌체주의다. 보험에 가입하지 않고 무리한 도박을 해서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친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고 후과에 대해서는 나몰라라다. 청구서는 뒤늦게 날아온다. 시간이 흘러 사람들은 원인과 결과를 거꾸로 알고 삽질을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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