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론이 어렵다고 말하는 분이 많은데.. 솔직히 뭐가 어려운지 모르겠다는게 필자의 심정이다. 사실이지 이 논의에는 많은 숨은 전제들이 있다. 애초에 대화가 성립이 안 되는 지점인 거다. 뉴턴이 처음 미적분을 제창했을 때 수학계는 시큰둥했다. 수학은 완전성의 학문인데 limit는 뭔가 미심쩍다. 야매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편법으로 능구렁이 담 넘어가는 느낌. limit는 하나의 단어다. 중요한건 이 개념을 받아들일 것인가이다. 수학계는 이 문제에 대해 아직도 결론을 내놓지 못한다. limit가 수학계에서 확실히 받아들여진 것은 그로부터 100년 세월이 흐르고 난 뒤였다. 그것도 진심으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남들이 limit로 문제를 척척 풀어내니까 대항을 포기한 거다. 수학계가 limit의 문제를 논리적으로 납득한게 아니고 limit를 반대하던 할아버지들이 모두 돌아가셨기 때문에, 인적청산에 의해 저절로 정리가 된 것이다. 무려 100년 만에. 구조론도 비슷하다. 수학은 수학의 문제를 풀 뿐이다. limit는 언어의 문제다. 언어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이며 이는 수학을 초월해 있다. 수학을 넘는 초수학이 필요하다. 그렇다. 바로 그것이 구조론이다. 부피를 계량하려면 가로*세로*높이를 측정하면 된다. 그 대상이 꼬부장하게 패인 홈이어서 자를 댈 수 없다면? 물을 담으면 된다. 들어간 물이 1리터이면 그 공간은 1리터의 부피다. 근데 이거 편법이다. 수학은 원래 야매다. 자로 잰다고 해도 엄밀한 자는 없다. 국제원기가 있지만 그것도 하나의 관념일 뿐이다. 다중의 약속이다. 무엇인가? 물을 집어넣어 부피를 측정한 사람은 아르키메데스다. 물도 집어넣을 수 없는 공간이라면? 언어를 투입하면 된다. 왜 물을 넣을까? 왜 돌을 넣지 않나? 돌은 부피가 커서 빼꼭하게 들어차지 않기 때문이다. 물은? 물분자의 크기는 무시해도 되나? 물의 점성은? 결국 자도 믿을 수 없고 물도 믿을 수 없다. 언어만이 믿을 수 있다. 언어를 투입하면 된다. 물은 H2O 물분자 크기보다 작게 쪼갤수 없지만 언어는 무한대로 쪼갤 수 있기 때문이다. 무한대로 쪼개진 언어가 limit다. 이쯤되면 여러분도 뉴턴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이해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이 미적분학 문제를 풀 수 있게 된 것은 아니다. 근데 그걸 왜 풀어야 하지? 문제풀이는 컴퓨터에게 맡기면 된다. 중요한건 이것이 수학의 문제가 아닌 초수학의 문제이며 초수학의 문제는 언어의 문제이며, 언어를 받아들이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구조론도 같다. 어려운 것이 아니라 언어를 받아들일 마음이 없는 것이다. 1은 크기가 절대적이다. limit는? 정해진 크기가 아니다. 이해할 수 없다. 천만에. 1은 정해진 크기가 아니다. 당신이 사과든 호박이든 1이라고 하면 1이다. 1은 당신이 정하기 나름이다. 반면 limit는 정해진 크기다. 관점의 문제인 것이다. 대부분 플러스적 사고에 빠져서 1을 고정시켜놓고 2는 1의 두 배라고 여긴다. 착각이다. 2를 고정시켜 놓고 그 2를 쪼개면 값이 1이다. 1에서 2를 바라볼 것인가 아니면 2에서 1을 바라볼 것인가다. 그 시선의 방향만 바꾸면 된다. 인간은 1부터 셈하지만 자연수는 2가 먼저 만들어졌다. 1은 셀 필요가 없다. 둘은 짝지워진 것이며 짝짓기에 의해 수가 탄생한 것이다. 눈앞에 사과 하나가 있더라도 그 사과가 당신과 짝지어져야 수를 이룬다. 생각해보면 limit가 제대로 짝지워져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limit는 방향을 가리키고 방향은 반드시 둘 사이에서 성립하기 때문이다. π와 같다. 파이는 둘레와 지름 사이에서 제대로 짝지워졌다. 1밀리라는 크기는 믿을 수 없다. 그 규격이 제대로 국제원기의 표준을 따랐는지 알 수 없거니와 그 원기 역시 제대로 만든 것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π는 믿을 수 있다. 언제든 원의 지름과 둘레를 자로 재면 되기 때문이다. 어차피 그 자가 고무줄인 판에 뭘 더 바라겠느냐 말이다. π의 정확성은 자의 정확성에 비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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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론이 어렵게 여겨지는 이유는 자신의 태도를 바꾸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1에서 2를 바라볼 것이 아니라 2에서 1을 바라봐야 합니다. 연역적 사고가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자신이 실제로 하고 있는 일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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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사과 하나가 있더라도 그 사과가 당신과 짝지어져야 수를 이룬다.
원의 둘레/지름 = 파이 (원의 둘레는 곡선이고, 지름은 직선. 곡선을 지름의 잣대로 잴수 없을때, 파이라는 비례상수로 표현)
그래서 한 선사가 진리를 손뼉 소리로 표현했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