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와 하수의 차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나의 오래된 화두 중에 하나였다.
스무살에 내가 내린 결론은 하수는 "어떻게?"를 생각하고, 고수는 "왜?"를 생각한다는 것이다.
방법론에서 존재론으로 인식이 전환될 때에 고수가 된다.
서른살에 내가 내린 결론은 하수는 '시스템'으로 행위하고, 고수는 '감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사실 모두 같은 얘기인지도 모른다. 맞다. 같은 얘기다.
방금 '마크 제이콥스'라고
루이비똥의 세계적인 패션디자이너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느낀 것이 바로 그런 연장선에 있다.
난 옷차림이라거나 유행에 대해서 둔한편이라서 그가 만든 결과물이 훌륭한지 잘 모르겠더라.
확실히 그의 작품은 예술이 아닐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가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예술인것은 분명하다. 그는 감각으로 움직인다.
색상의 냄새를 맡을 줄 알고, 형태의 맛을 느낄줄 안다.
그것이 예술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시스템을 파괴할 줄 알아야 한다.
시스템을 파괴해야지 이야기가 생기고, 이야기가 나와야지 완전히 다른 형태로 출력이 가능하게 된다.
원래 파괴와 창조는 하나였다. 파괴가 창조이고, 창조가 파괴인 것이다.
내가 나의 세계를 파괴하고, 새로운 결과물을 창조하면,
그것으로 사람들의 의식이 파괴되고, 그들의 삶속에서 또 다시 재창조되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예술' 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때문에 내 기준에서 '예술' 이라고 할 만한 것은 세상에 그리 많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구조론으로 말하자면,
'틀의 파괴 - 작가의 창작 - 임팩트 - 사람들의 인식 - 의식의 진보' 라고 이름 붙여본다.
그렇다. 예술에는 분명 임팩트가 있어야 한다.
임팩트는 깨달음이고, 송신자가 수신자가 만나는 하나의 점이다.
그 점은 시스템에서가 아니라, 감각에서 소통한다.
뭔가 아는 분이 봐도 예술이고, 통 모르는 녀석이봐도 예술인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을 내가 예술가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의 삶을 통하여 정치를 좀 안다는 놈과도 소통할 수 있고, 정치를 모르시는 분과도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눈높이다. 내가 널 깔 수 있고, 네가 날 깔 수 있다. 네와 내가 다를 수 있다. 달라야 한다.
노무현은 삶이 캔바스였다.
끊임없이 문제를 만들어야 한다. 틀을 깨야한다.
사실은 촛불시위도, 노무현 대통령을 추모하는 것도, 세상과 끈임없이 각을 세우는 것도, 모두 파괴의 영역이다.
그곳에서 이야기가 탄생한다. 우리가 광장에서 시스템에 따라 모이고 흩어졌던가?
단지 우리 머리위의 더듬이가 가리키는 곳으로 왔을 뿐이다.
무엇이 옳은 길인가? 감각이 향하는 곳이 옳은 길이다.
때문에 우리는 옳은 길 만 간다. 뒤돌아보지 않는다.
왜? 1%의 감각을 타고났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다. 운명이다.
내 머리위의 더듬이를 외면할 때, 무시했을 때, 내가 나를 '변절' 하는 것이다.
원래 '변절'은 상대적인 개념이 아니다. 절대적이다. 누가 판단할텐가?
자신의 의지, 인생, 철학에의 배신인데, 그것을 누가 알겠는가?
자기 자신이 제일 알 알터...
나는 언제고 변절 할 것이다. 언제라도 변절 할 수 있다.
내 스스로 머리위의 더듬이를 가위로 싹뚝 잘라버릴 수 있다.
되뇌인다. 이렇게라도 나를 향하여 가까스로 안전장치를 만든다.
자신을 변절한 자는, 자신이 변절할 거라고 한번도 생각치 않은 사람이라고 했다.
두근거렸다.
내 삶이 예술로 남기를...
결국 나는 지금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해하기 바란다.
파괴도 고통이고, 창조도 고통이다. 고통과 고통사이에 또 쾌락이 존재한다. 자유다.
감각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글을 마친다.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문. 그 앞에서 지난 한달동안 서성였던게요.
심미또한 감각의 영역속의 한 부분이오. 하지만 문턱이 너무 높은거요.
내가 글을 쓴 것은 그렇게 서성이다가 문턱을 넘고, 다시 뒤를 돌아보지 않으려는 거요.
난 두렵소. 하지만 이미 돌아가기엔 늦었다는 것도 알고있소.
두려운게 아닌거요.
희망의 끈을 잡았기때문에.
한번 잡고 올라가 보시오.
뭐가 있는지 궁굼하지 않소?
포기하지않는 불굴의 의지 따위는 집어던지시오.
아님말고 정신!
이것이 답이오.
일단 가보시오.
척 보고 아는 사람이 고수라고 들었소.
칼 안 부딪혀도 승부내는 사람,
승부 밑에서 판을 열어 주는 사람,
삶의 자기 완결성을 아는 사람,
승부사가 아닌 예술가
노무현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