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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0]아란도
read 5100 vote 0 2013.02.13 (04:4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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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느끼는 상실감은 여러 종류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여러 종류가 하나로 모여져 귀결되는 것은 결국 '꿈' 에 대한 상실이다. 인간이 꾸는 가장 큰 꿈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는 바로 그것. 그것이 모든 것의 원인이니까. 바라는 세상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것 말이다.

 

개인의 상실감은 개인을 넘어서면 되고, 공동체에 대한 상실감은 공동체를 넘어서면 되고, 세상에 대한 상실감은 세상을 넘어서면 된다. 상실감이 찾아 오는 이유는 부조리 때문이고 이는 어떤 모순을 봤기 때문이다. 이 모순을 크게 느낄수록 세상에 대한 분노의 크기도 커진다. 그럴때 사람은 뭔가를 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아니면 좌절해서 세상을 등지고 고립되는 길을 선택하거나 이다.

 

상실감이 개인 때문이냐 공동체 사회 때문이냐 세상 때문이냐 하는 문제가 대두 되지만, 비록  개인이 겪는 문제일지라도 그 원인을 파헤쳐 보면 원인은 사회이다. 상실감의 모든 원인은 그 사회가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가 아프기 때문에 개인도 아프다. 그 아픈 것을 보면 같이 고통을 겪는다. ' 이유 없이 아프다. 딱히 설명하기 어려워도 표현이 안 되어도 이해를 받지 못해도 아픔을 느끼기에 고통 받는다.' 그런데 대체로 그 고통의 원인을 개인에게 다 떠 넘긴다. 개인이 참거나 인내하거나로 해결점을 찾고 그 지점에서 마무리 지으려 한다. 그래서 세상은 더 병들어 가게 된다. 이러한 아픔이 존재한다는 것을 직시해야 하고 인정해야 한다. 개인이 겪는 고통이 사회와 세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러한 개인들의 아픔을 사회와 세상이 받아 들여야 한다. 개인이 겪는 고통이 개인의 고통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될 때  생각의 사이즈가 달라진다. 세상을 보는 각도가 달라진다.

 

부조리의 발견은 세상의 모순을 본 그 크기 만큼의 분노에서 비롯되었다, 그에 상응하여 일어서는 존엄에 대한 자각이 이 부조리에 대하여 정면으로 직시하여 한판 붙은 크나큰 비판이었다. 부조리라는 것을 발견한 유럽인 그 자신들이 본 세상과의 상호작용의 결과였고 대안이기도 했다고 보인다.

 

한국과 세계에 사는 우리는 우리만의 혹은 우리와 연동된 부조리를 본 것이므로 그에 맞는 대안이 나와야 한다. 엄청난 비판의 크기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무거우므로 피해버릴 확률도 높다. 시대가 주는 상실감이라는 독에 맞은 이들이 다음 시대를 등져버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보인다. 이 독을 방치하고 그대로 살기 때문이다. 모두 피해 버리면 누가 있어 이 부조리에 맞설까?

 

이런 복합적인 것에서 오는 상실감이란 것의 극복은 그 상실감이 이끄는데로 끝까지 제대로 보아주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잃어버린 것을 보고 있는 자신을 보게된다. 개인의 꿈 이던지 지난 시절의 삶 이던지 관계에 대한 것 이던지 바라던 이상 이던지, 그것들과 마주보고 있는 자신을 보게된다. 이미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 빠져나가듯 사라져 버린 것에 대한 미련과 회한이 그 자리에 있는데 그것을 마주 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이 무엇을 보고 있고 어디를 보고 있었는지 알게되면 자신이 시간속에 갇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몸은 여기에 있는데 자신이 보는 시선은 과거의 어느 시간의 어디쯤에 갇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잃어버렸다 생각되어 드는 상실감은 시간의 한정성에 갇혀 있을 때 느끼는 감정이어서 시간은 계속 흐르고 나는 이 공간에 존재하고 있다라는 것을 자각하면 그 지나버린 시간에 갇혀버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삶도 인생도 역사도 진보도 진리도 계속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만 멈추어 서 버리면 갑자기 고통이 시작 된다. 이미 지나가 버리거나 지나고 있는 시간에 갇히기 때문이다.

 

방향을 틀어서 세상이 가고 있는 방향을 보아야 한다. 역사가 진리가 가는 방향을 자신도 같이 바라보아야 한다. 그럴때 상실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보인다. 왜냐하면 꿈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고 이루지 못하고 잃어버린 것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삶은 역사는 진보는 진리는 계속 한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은 과거로 회귀하지 않는다. 세상 그 자체가 가는 방향이다. 세상 그 자체가 가는 방향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한다. 그 신뢰를 가져야 인간은 상실감에서 벗어나게 된다.

 

사람의 상실감은 시도 때도 없이 문득 찾아오게 된다고 보이는데, 다른 이유 없이 그저 나이만 먹어가도 상실감은 저절로 찾아 온다. 지난 시간의 대한 상실감에 몸살을 앓기도 한다. 상실감은 시간의 흐름이 어느 순간에 멈추고 특정한 시간에 갇혀버린 것에서 기인한다고 보는데, 거기에 갇혀버리면 답이 없다. 상실감에 빠진 인간을 위로할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현실이 암울할수록 상대적으로 그런류의 상실감은 더 커진다. 이건 인간이라면 대체로 공감할만한 감정이다. 외로움 고독 상실감은 인간이 늙어가는 존재이므로 생기는 것이다. 다시는 그 시간으로 그 시절로 그 관계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 변하기 때문이다. 변한다는 것은 인간에게 상실감을 준다. 그런데 이 변한다는 것이 인간에게는 또한 가능성이기도 하다. 단지 어느 방향을 보느냐에 따라 상실감인지 새로운 가능성인지가 달라질 뿐이다. 단지 고개만 돌리면 된다. 이런 기본적 베이스를 갖고 상실감은 자기 복제를 하여 꿈의 상실 공동체에 대한 상실 세상에 대한 상실도 느끼게 한다.

 

김어준이 강연하는 동영상들을 보고 상실감이 들었던 까닭은 어쩌면 자유에 대한 상실일지도 모르겠다. 그가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자유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듯이. 자유가 제한되었다라는 것은 이미 존엄에 손상을 입었다는 말이 된다. 자유가 있어서 존엄한 것이 아니고 존엄하기에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는 것이듯이. 부조리가 존엄을 자각하자 발견되었듯이. 내가 존엄할수록 세상의 부조리는 눈에 띠게 된다. 그래서 고통스럽게 된다. 모순들이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가 변화하기를 아프지 않기를 갈망하게 되는 것이다.

 

김어준이 지금 대한민국에 없어서 혹은 활동을 못하고 있다보니 미처 깨닫지 못한 느낌들을 마저 알게 된듯하다.

김어준 관련 동영상을 보며 내가 상실감에 빠져 있다라는 것을 알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내 가슴을 쏴하니 흝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뭔가 소중한 어떤 가치가 사라질지도 모르고 그것을 방관한것 같은 자책이 들기도 했기 때문이다. 한 인간이 살아온 그 길들에 대해 너무 피상적인 것만을 보고 싶어 했던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을 우리 사회가 정치가 구경꾼 되어 구경하듯이 대한다는게 미안했기 때문이다. 바로미터...김어준이 우리사회 공기측정의 바로미터였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사회 공기 정화 그 자체 이었다는 것을. 김어준은 우리 사회에서 지금보다 더 나은 대접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소중한 가치판단을 해야 하는 우리와 이 시대는 시험대에 지금 올라서 있는 것이다.

 

김어준이 활개칠만한 세상이 우리 모두 숨쉬기 좋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활기없는 사회가 되어가는 지금에 김어준이 활개칠 그 세상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상실감 이었다. 그러니 이는 어쩌면 아직 오지 않은 세상에 대한 상실감 인지도 모르겠다. 기다리기 지쳐서 말이다. 그러니 과거를 보는 상실감과는 조금 다를 수도 있다. 미래에 대한 희망에 대한 지금 바로 이 순간을 잃어버린 것 같은 바로 그 상실감이었다. 지금 그것을 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지금이란 시간에 갇혔다. 그래서 지금을 살아야 하는 이들의 상실감이 매우 크다. 그런데 말이다 지금도 지금의 시간에 갇히지 않고 세상 그 자체가 가는 방향을 보면, 세상 그 자체에 대해 신뢰를 가지면 세상이 가는 결이 보인다고 여겨진다. 거기가 우리가 바라보고 가야할 방향이다. 시간에 갇히지 않아야  유쾌하게 반전을 이루어 이 시대를 걸어나갈 수 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5]pinkwalking

2013.02.13 (07:06:09)

상실감이 크다는 건 그 이전의

실망감을 제대로 의식하고 대면하지 못한 우울증의 시작.

감정과 이성이 뒤섞여 만들어진 태풍이 내 속에 자신의 눈을 만들었다. 때로는

과하고 때로는 모자라게, 이렇게저렇게 내뱉다가 울컥, 뜨끔거리며 밀려오는 그리움이랄까.

김어준이 혹은 그의 웃음 소리와 거친 말이, 섬세하던 단어 하나하나가 유물이 되는 건 곧 우리의 죽음.

어디서든 언제든 우리가 김어준들이 되고 그의 짐을 함께 나누어 지어, 이 시대가

준 서늘한 상실감을 뜨겁게 삼켜버리자.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3.02.13 (16:48:26)

상실감은 무엇을 결핍하고 있는지 보게하기에 그 때문에 보기만 하고 상실감에 먹히지는 말아야 한다고 여겨져요. 인간에게는 암이나 질병도 치명적이지만 이런 상실감이 병이 되면 약도 없으니까요....
아니다... 뇌에는 신선한 공기가 필요 하듯이 상실감에는 에너지가 필요함. 인간의 마음에 병은 그 환경을 먼저 치료해야 한다고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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