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년의 박정희와 지금 박근혜의 공통점은 외롭다는 점이다. 그때 박정희는 부인이 없었고 지금 박근혜는 남편이 없다. 문재인이 대선후보로 나섰다가 살이 빠져서 얼굴이 홀쭉해진 것만 봐도 알수 있지만, 정치 지도자는 원래 스트레스 받는 직업이다. 확고한 정치적 신념이나 원대한 철학이 있다면 스트레스를 극복할 수 있지만, 그래도 인간인 이상 누가 옆에서 스트레스를 받아주는게 맞다. 화가 날 때는 누구에게 그것을 말해야 한다. 의식적으로 화풀이를 해야 한다. 억지로 참으면 병 난다. 스트레스를 안 받아도 위험하다. 만약 전혀 스트레스가 없다면 사이코패스일지도 모른다. (기네스북에 올라야할 정도로 욕먹고도 멀쩡한 이명박은 사이코패스?) 부처님 할배라도 스트레스는 받는게 정상이다.
천하가 아플때는 내가 먼저 아픔을 느끼는게 정상이다. 다만 깨달음이 있으면 그것을 극복할 수 있을 뿐이다. 안 아픈게 아니라 이겨내는 거다. 인간은 원래 스트레스 받도록 설계되어 있다. 공동체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공기를 파악하는 형식이 그러하다. 문제는 누가 그 스트레스를 받아줄 것이냐다. 누구나 다 그렇지만 부인의 역할은 중요하다. 부인이 야당이라는 말도 있다. 폭군이 난폭해지는 것은 스트레스 받아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건 물리현상이다. 집단의 스트레스에 민감한 사람이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덜 중요한지 우선순위를 잘 판단한다. 만약 스트레스를 회피한다면 덜 중요한 일로 업적을 과장하고, 중요한 일을 뒤로 미루게 된다. 스트레스를 받아줄 사람이 없으면 공연히 화가 나고, 국민 때문에 화가 났다고 믿게 되고, 어떻게든 국민에게 화풀이를 하게 된다. 아니면 체념하고 포기하게 된다. 자기만의 세계로 도피하는 거다. 보통 부하에게 정신적으로 의존하고 일을 떠넘기거나, 아니면 모두를 의심하며 폭군이 되거나다. 패왕 항우도 궁지에 몰리자 우미인을 찾았고, 맹장 여포도 하비성에서 포위되자 초선을 찾았다. 인간인 이상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뛰어난 정치인 곁에는 항상 훌륭한 부인이 있다. 박정희가 본격적으로 망가진 것도 부인의 피살이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박근혜에게는 그 부인이 없다. 하긴 결혼도 안 했으니. 대신 내시는 있다. 지금 보여지는 박근혜의 독선, 독주 행태는 전용 화풀이 대상인 측근을 대하는 그의 평소습관이 튀어나온 것이다. 지금 박근혜가 국민에게 선전포고했다. 본인은 노무현 대통령을 흉내낸다고 그러는지 모르겠으나, 어떤 경우에도 국민은 끝을 보고 싶어한다. 필자가 구조론 게시판에서 인용한 ‘더 헌트’의 예나 몰디브의 신체형과 같다. 인간은 위기를 당할 때 자학하는 본능이 있다. 끝단을 보려는 것이며 그것은 상부구조를 만드는 본능이다. 인류의 상부구조는 진리이고 역사이고 문명이다. 그러나 소인은 그러한 상부구조를 모르므로, 가학을 하여 가상적을 만들거나, 자학을 하여 억울한 드라마를 만들려고 한다. 무의식적으로 그 길을 간다. 그래야 기준이 생겨서 집단이 의사결정하기 편하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존재감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집단 내부에 축과 대칭을 만들려고 한다. 무조건 그렇게 한다. 어디선가 마녀를 찾아내고 빨갱이를 찾아내게 되어 있다. 정해진 코스대로 가는 거다. 그 끝에는 멸망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하여 문명은 돌고돈다. 정치도 돌고 돈다. 문명은 쇠퇴하고 대신 배후지로 확산된다. 정권은 교체되고 지도자는 바뀐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그 법칙이 박근혜를 막다른 길로 몰고간다. 박근혜는 알지도 못하면서 휩쓸렸다. 무엇인가? 좋은 정치와 나쁜 정치의 차이는 그 상부구조를 인류, 역사, 문명, 진리의 단위에서 찾느냐 아니면 모든 개인이, 모든 가정이, 모든 마을이, 모든 지역이, 모든 회사가 개별적으로 내부에 축과 대칭의 구조를 꾸려서, 독자적인 의사결정의 기준점이 되는 상부구조를 만들려고 하느냐다. 전 인류가 하나의 상부구조를 공유하면 그것이 좋은 정치다. 반대로 개별적으로 각자 상부구조를 만들고자, 자기 소속집단 안에서 마녀를 발명하고 빨갱이를 발굴하고 낙인찍기를 시도하면 그게 정치의 실패다. 문제는 인간이 원래 망가지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총균쇠의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보고했듯이 부족민은 모두 잠재적 전쟁상태에 빠져 있다. 문명인은 무엇이 다른가? 다만 투쟁의 규모가 인류단위로 크다. 문명인은 야만과 무지를 가상적으로 설정하고 싸운다. 야만인은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을 가상적으로 설정하여 괴롭힌다. 열린 세계에서 이웃과 선의의 경쟁이 붙었을때는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그러한 망가짐의 유혹을 견디고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서 더 큰 진리, 더 큰 역사, 더 큰 설계에서 상부구조를 찾게 된다. 그래야 경쟁에서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고립된 지역에서는 어느 집단을 가든, 어느 마을을 가든 내부를 감도는 나쁜 공기가 있다. 또 그것이 있어야만 한다. 그러한 나쁜 공기는 구한말에 백정과 평민의 부질없는 대결구도로 나타나기도 하고,(일제와 싸우기도 바쁜 판에 우리끼리 싸웠다.) 평민과 양반의 대결의식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중국에는 향당이라고 해서 성씨집단끼리 무장하고 투쟁하기도 했다. 때로는 수백만 단위의 규모로 싸웠다. 그 불길이 잘못 번져나간게 태평천국의 난. 외세가 침략하여 중국을 통째로 집어삼키려 하는 판에 중국인들은 왕씨니 조씨니 장씨니 양씨니 하여 성씨별로 투쟁하였던 것이다. 그 결과는? 패망이다. 즉 인간은 원래 고립된 상태에서 가만 놔두면 자학하다가 죽는 존재다. 이러한 인간의 본능은 이스마일 카다레의 ‘부서진 사월’이 잘 묘사하고 있다. 알바니아 하고도 북부 산악지역의 고립된 지형이 인간의 나쁜 본성을 극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실은 착하고 나쁘고를 떠나 상부구조를 건설하려는 본능이다. 인간은 넓은 세계를 발견하고 진보하여 나아가는 동안에만 선하다. 아니면 백퍼센트 자학적인 빨갱이사냥, 마녀사냥, 낙인찍기에 골몰한다. 그래서 아마존의 야노마미족에는 40살을 넘은 남자가 없고(부족간 모의전쟁으로 남자는 40세가 되기 전에 죽는게 보통) 정글의 법칙의 병만족이 방문한 와오라니족은 인류학자가 8대까지 조상을 조사해보았는데 단 두 명만이 자연사했고, 나머지는 모두 살해되었다고 한다. 살해사가 정상이고 자연사는 거의 없는 일이며, 그 자연사한 두 명 중의 한 명도 죽을때 창으로 찔러주었다고 한다. 문제는 인류가 그 방향을 닫힌세계의 고립주의 모드로 잡는가, 열린세계의 진보주의로 나아가는가다. 박근혜의 당선은 한국이 고립주의로 방향을 잡았다는 의미다. 치고나가는 기세가 꺾였다. 외부와의 에너지 낙차가 바닥났기 때문이다. 개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박정희는 부인을 잃고 심리적으로 고립되자 부하를 불신하여 차지철과 김재규가 서로 다투도록 교묘하게 조종하였다. 내부에 축과 대칭을 만들려고 한 것이다. 왜 이렇게 망가졌을까? 심리적으로 고립되면 그 시점부터 인간은 서서히 죽어간다. 원래 그렇다. 박근혜의 찌푸린 이맛살에서 가없는 심리적 고립을 읽는다. 구중궁궐에 유폐된 그는 닮아간다. 물귀신의 그림자가 얼핏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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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파트너와 가족과 진리와 진보와 발전의 부단한 응원이 없으면 스스로 고립되고 유폐되다 마침내 자기 자신을 제거하고 마는 자학적인 존재입니다. 껍질을 깨고 울타리 밖으로 나와야 합니다. 큰 세력의 흐름에 올라타야 합니다. 에너지를 얻어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제 살을 깎아서, 제 팔을 잘라서 자기 안에서 에너지를 조달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해와 자학으로 치닫는 것입니다. 끝은 죽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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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은 싸이코패쓰가 틀림없습니다.
제가 싸이코패쓰에 관해 미국 전문가가 쓴 책을 두 권(....) 읽었는데 거기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말년에 이명박이 "쵝오로 순수한 정권"이니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니 하면서 댓글 신기록을 작성했는데, 무서운 것은 이명박은 틀림없이 그렇게 믿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게 바로 싸이코패쓰의 무서운 점입니다. 감정이 없고 따라서 남과 감정교류를 하지 못하며 자기 생각을 철석같이 믿고 거기에 한 점 의심이 없습니다.
사대강 하면서 기어코 남한 생태계를 아작을 내고 만 것도 그 일환입니다.
싸이코패쓰의 특징이 있는데, 어려서 자면서 이불에 오줌싸기, 불장난 내지 방화, 동물학대 내지 죽임 이 세가지가 싸이코패쓰의 징조라고 합니다.
박씨할매는 싸이코패쓰는 아닌 듯 합니다.(그나마 다행이려나...)
소통없이 불통에 먹통이니......본래 불통에 먹통이라고 불리던 사람이 더 고립된 곳으로 들어갔으니.....
먹통다음엔 뭐가 존재할까요? 소통없는 사람의 삶이 존재할까? 주변엔 환관들만 존재하고....쓴소리하는 사람은?
다? 어두컴컴한 곳에 가뒀나? 쓴소리하면 요즘 잡혀갈까봐....다 도망간 모양인데.....
더 넓은 세계에 발을 디딜때 인간은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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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가 아플때는 내가 먼저 아픔을 느끼는게 정상이다. 다만 깨달음이 있으면 그것을 극복할 수 있을 뿐이다. 안 아픈게 아니라 이겨내는 거다.
이거 진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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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힘든 상황에 몰아 넣어 버리니까
아플틈도 없는데
깨달을 방도가 없어서요
유일한 도피처예요
깨달음이 뭔지 동렬님 글을 아무리 읽어봐도 모르겠고
질 량 등의 구조도 모르겠고
미치겠네요
잘 모르겠으면
그냥 감만 잡고 따라오세요.
흐름을 타고 가는게 정답입니다.
왜냐하면 흐름에는 에너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구조론의 정답은 에너지입니다.
에너지가 있고 현대성이 있는 곳 근처에서 얼쩡대면 살고
반대쪽으로 가면 죽습니다.
잠깐만요 빗나간 질문같긴 하지만...여기에도 전제가 있는 것인가요? 에너지를 말할 때
'정의의', '올바른' 또는 '삶의 활기를 불어넣는' 에너지 등등의 긍정적 요소(형용사) 말입니다.
아 현대성과 같이하면 자연 이런 전제가 되는가요?
에너지가 잘못 발휘되면 파멸일진대 이때도 (역?)에너지 아니냐 이말이죠.
교육(정치)의 부재로 기존의 인간의 에너지가 부모(사회)를 살해하는 것도 에너지 아닌가 합니다만...
이 에너지를 대체할 수 있는 유사한 단어는 없는가요?
아래 댓글에 "상부구조가 아예 없는 것"이란 설명 감사합니다.
지금 우리는 밖을 향해 '치고나가는 기세가 꺾인 것' 맞죠.
"인류의 상부구조는 진리이고 역사이고 문명이다. 그러나 소인은 그러한 상부구조를 모르므로, 가학을 하여 가상적을 만들거나, 자학을 하여 억울한 드라마를 만들려고 한다. 무의식적으로 그 길을 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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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부구조가 좋은 정치를 담아내는 대인배적, 인류적 차원의 것이 있는 반면,
소인배적 상부구조는 고립속에 자해와 자학으로 드라마를 만들고 "낙인찍기, 마녀사냥, 빨갱이 사냥"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져 끝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인가 보군요...
상부구조는 다 좋은 것이 아니었더 거...^^ 죽음에 이르는 상부구조와 존엄에 이르게 하는 상부구조! 무엇을 택할 것인가?
일부 오독인데
나쁜 상부구조가 있는게 아니고 상부구조가 없는 겁니다.
없으니까 만들어내려고 하는 거죠.
그리고 실패하는 겁니다.
우리는 가족, 민족, 국가 이런게 있지만
부족민 사회에는 그게 없거나 희미합니다.
예컨대 아마존의 눈물에서 한 여자가 두 남자와 결혼한 것이 방송되었는데
그거 통역을 잘못한 겁니다.
그 중의 한 명은 남편 아닙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가족 아니에요.
모든게 불분명합니다.
국가라면 법과 제도 공무원 이런게 있어야 하는데
모든 부족이 국가 행세를 하려고 하는데 법률도 없고 제도도 없고
군대도 없고 외교도 없고 대사관도 없고 휴전선도 없고
그러므로 그걸 정하려고 하지요.
정하려면?
전쟁을 해야 하는 겁니다.
전쟁해서 국경을 긋는데 국경선이 어디인지 금방 잊어먹고 또 전쟁 합니다.
계속 악순환이지요.
즉 상부구조 건설실패입니다.
법이나 제도는 국민 모두가 알고 있는 겁니다.
근데 그게 없으니 소동을 일으켜 부족민 모두가 알게 하려고 하는데
그건 살인 밖에 없죠.
상부구조를 방해하는 거. 뚫고 나가야 하는 거.
성인들은...그래도 쫌 생각한다는 사람들은 그래도 중간 점방에서 머물지는 않았다는 거.
변희재가 박원순 공지영 낸시랭이 종북주의자라고 안보강연을 했다고 합니다. 세상이 어떻게 된건지?
폐쇄된 공간에 고립된 희재류에게는 당연한 것입니다.
측은한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