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판승 사판승 얘기까지는 알고 있었는데 오늘 검색해보니
확실한 근거는 없고 이런 얘기가 떠돌고 있었습니다.
1. 첫 번째 배경
조선시대에는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제하는 정책(숭유억불)을 폈다.
이 때 승려들은 두 가지 방향에서 활로를 모색하게 되었다.
사찰을 존속시키는 것과 함께, 불법(佛法)의 맥을 잇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다.
그래서 일부 승려들은 절을 살리기 위하여 온갖 고난을 이겨내고, 절을 지키는데 모든 노력을 바쳤다.
그런 이들이 바로 사판승이고, 별칭으로는 살림승이었다.
또 어떤 승려들은 이와는 달리 속세를 피해 은둔하면서 참선과 독경으로 불법(佛法)을 이어온 승려들도 있었다.
이들이 이판승이고, 별칭 공부승이라고도 했다.
모두 특징이 있었지만, 약점도 있었다.
공부만 하던 스님은 불교의 외형적 발전에 기여를 못했고,
살림만 하던 스님은 공부를 못 했으니 교리에 어두웠다.
그런데 해방 후 비구승과 대처승의 다툼이 있었을 때
각기 서로를 이판승, 사판승에 비유해 상대를 비판했던 적도 있었다.
사실 조선 5백년 동안 불교가 살아남은 것은 두 승려 집단의 공이었지만
이들이 추구하는 것이 달라 다툼은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이판&사판을 다 시도했지만, 묘안이 없어 자포자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이판사판', '자포자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것이 그 첫 번째 유래 중 하나다.
2. 두 번째 배경
어느 고을에 조상 대대로 높은 벼슬을 지낸 이름난 양반이 살았다.
이 양반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어느날 두 아들이 양반에게 찾아와 머리를 조아리고 중이 되겠다고 하였다.
"아버님, 누구도 저희 결심을 꺾을 수는 없습니다. 부디 허락해 주십시오.
오늘 당장 절로 들어가 형님은 도를 닦고 불교의 경전을 공부하는 이판이 될 것이고,
저는 절의 살림을 꾸리는 사판이 될 것입니다."
양반은 이게 웬 날벼락인가 싶었다.
조선시대의 스님은 아주 천한 취급을 받았기 때문에,
두 아들이 이판이 되건 사판이 되건 집안은 그야말로 끝장이 나기 때문이었다.
양반은 자신과 집안을 막다른 궁지에 몰리게 한 두 아들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이리하여 '이판사판'은 궁지에 몰려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상황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고 한다.
뭐가 정답인가요?
저는 두 번째가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둘 다 부자연스럽소.
두 번째는 민간어원설인데 거의 99퍼센트 거짓으로 보면 됩니다.
abandon은 포기한다는 뜻인데
ban은 부른다는 뜻이고 banner가 깃발인데서 보듯이(부름을 넣은 것이 배너)
군대에 소집당하면 가진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언어는 대개 이런 식으로 만들어집니다.
이판사판은 이판이 되든 사판이 되든
중이 되어 속세를 떠나면서 다 포기한다는 뜻입니다.
출가해야 하는 상황은 병사가 소집당한 상황과 비슷하지요.
옛날에는 군대 한 번 가면 20년 안에 돌아온다는 보장이 없지요.
만리장성 성 쌓는 인부로 가면 살아서 돌아온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복잡한 설명 들어가면 대개 거짓입니다.
이판사판은 중이 되어 속세를 등지면
아싸리판이 되어 에라 모르겠다로 되는 것입니다.
빌려준 돈? 안 받아.
갚을 빚? 안 갚아.
여자친구? 모르겠어.
약속? 없었던 일로.
소는 누가 키우고? 낸들 아나?
이판 사판 아싸리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