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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9959 vote 0 2014.01.05 (23:33:44)


    과학과 비과학의 구분


    ‘종교는 과학이 아니다.’ 이 말의 의미를 바로 이해했으면 좋겠다. 다 아는 사실을 구태여 강조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는 필자가 어떤 개별적 사실을 주장하자는게 아니라 이를 추상화시켜, 만유에 공통된 보편적 메커니즘을 이야기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려는 것이다.


    결론은 구조다. 살을 배척하고 뼈를 취하는 구조의 관점으로 보라. 먼저 그 관점을 얻으시라. 종교는 과학 중에 틀리거나 의견이 다른게 아니고, 원초적으로 번짓수가 다른 거다. 이발소그림은 그림이 아니고 전혀 다른 거다. 과학책에 절대로 종교 챕터가 들어가면 안 되고, 그림 코너에 이발소그림이 있으면 안 된다. 음식과 쓰레기만큼 차이가 있다. 음식을 쓰레기와 같은 공간에 두면 절대로 안 된다. 이를 개별적 사실의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추상화시켜 메커니즘 수준에서 이해하자는 것이 구조론이다. 이러한 절대적 공존불가의 규칙은 다른 분야에도 널리 적용된다는 말이다.


    “김종배의 사사로운 토크를 요약하면, 애덤 스미스는 주 4일만 일해도 된다고 했고, 상여금을 주되, 직원들이 과로하지 않도록 조심하게 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속에 착취와 수탈이 있으며, 이는 노동자에게 갈 부분을 자본가가 훔친거라고 봤다. 막스 베버는 천직과 검약이라는 미덕을 강조하는 칼뱅파 프로테스탄트들의 근면성 속에서 자본주의가 싹텄다고 말했지만, 이것이 절대조건이란건 아니었다. 칼 폴라니는 햇빛, 공기처럼 노동은 팔려고 생산한 경제재가 아니라고 말한다. 공산주의 방식의 국가단위 계획경제는 불가능하지만 협동조합은 가능하다고 말한다. 케인즈는 자본주의는 대공황 같은 문제를 일으키게 되어있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인간은 비이성적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현실을 비꼬기보다는 인정하고 받아들인 상태에서의 문제해결을 주장했다. 공황이 일어나면 소비가 없어지고, 다시 생산도 못하게 되는 악순환을 돈을 풀어서 끊는 것이다.(하략. 페이스북에서 정기욱님의 글 발췌)


    과학과 종교의 구분법을 경제학에도 적용해 보자. 이들 유명한 다섯사람 중에서, 올바른 과학의 관점에서 경제문제를 바라본 사람은 없다는게 인류가 맞닥들인 비극의 진정한 원인이다. 에너지의 입구와 출구를 찾는게 과학이다. ‘닥치고 머리와 꼬리를 말해줘!’ 이런 거다. 이들은 모두 핵심을 비켜나 있다.


    경제가 인간의 사회적 행위의 결과라는 관점을 배척해야한다. 수학자가 수를 탐구하거나, 혹은 물리학자가 물질을 탐구할 때 인간의 사회적 행위는 배제된다. 인간과는 상관없이 그냥 물질이 있고, 수가 있는 거다.


    종교는 다르다. 종교는 모든게 인간과 완벽하게 결부되어 있다. 이는 자기를 개입시킨 것이다. 객관이 아니고 주관이다. 과학은 객관의 영역이다. 인간중심 사회학과, 자본중심 경제학의 분리가 이 논의의 출발점이다.


    다섯 사람은 사회학과 경제학을 명료하게 분리하지 않았다. 왜인가? ‘자’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학은 숫자로부터 출발하고, 물리학은 소립자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고, 화학은 분자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고, 생물학은 세포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자(者, 字, 子)가 있다. 독립적인 의사결정의 최소단위인 자가 나와주어야 비로소 학문은 시작된다. 경제는 인간의 의도와 관계없이, 경제 자신의 머리와 꼬리를 가지고 있다. 인간과 무관하게 독립적인 에너지 입구와 출구가 있다. 말하자면 경제자가 있다.


    칼 폴라니는 ‘인류에게 경제와 시장은 고대로 부터 보편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18세기 영국으로부터 촉발된 산업혁명과 무관하게 경제는 있어왔다. 왜 한 걸음 더 나아가지 못하나? 경제는 인류와 무관하게 자연에 있다. 생물도 경제원리를 따라 경제한 결과로 생장한다. 다를 수 있나? 경제라는 보편원리 안에 인간경제와 산업경제가 있다.


    먼저 경제자를 찾고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아직 경제자를 찾지 못했다면 과학의 자격은 없다. 학문은 공자가 6예를 분류하면서 처음 시작되었고, 과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분류로부터 시작되었다.


    과학은 구분하여 과科를 나누는 데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무당의 주술과 의사의 치료는 분명 다른 것이다. 무당과 의사는 결코 공존할 수 없다. 물론 애매한 것, 어중간한 것도 있다.


    전통 노동요는 가락만 있었고 가사라는게 불분명했다. 곡이 모호해서 어디가 노래의 시작이고 끝인지가 정해져 있지 않다. ‘옹헤야’라든가 ‘퀘지나칭칭나네’가 대표적이다. 아리랑의 가사나 악보를 주장하는건 무리수다. 이는 노동요를 모르는 사람의 헛소리다.


    후대에 누가 편곡하여 창가처럼 만들어놓은 근대의 아리랑은 다른 거다. 우리가 아는 아리랑은 잘못된 창가 아리랑이며, 이는 서양음악에 덧입혀놓은 가짜 아리랑이다. 학자의 본분은 이를 연구해서 출발점과 종결점을 찍어주고 독립적인 존재자를 일으켜 세우는 거다. 엄밀히 말하면 민요라는 것은 없고, 창가와 노동요가 있으며 둘은 형식이 다르다.


    ‘김매기 소리’를 하는데 김은 매지 않는다? ‘타작하는 소리’를 하는데 타작은 하지 않는다? 노동요는 노동과 붙어 있으며 뗄 수 없다. 우리가 아는 민요 중의 상당수는 이를 떼어낸 가짜다. 과학가라면 이 부분을 엄격하게 진단해서 어디가 머리고 꼬리인지 입자를 정해야 한다. 하나의 독립적인 존재자가 발굴될 때 비로소 학문은 입지를 얻는다.


    의학에 비유하면 병病이라는 관점이 서야 한다. 한의학처럼 음양의 조화가 깨졌다니 어쩌고 하면 피곤한 거다. 아프다는 것과 질병은 다른 거다. 때리면 아프다. 병 걸려서 아픈 것과, 매 맞아서 아픈 것은 다르다. 이를 구분하지 않으면 의학은 성립하지 않는다.


    질병이라는 독립적인 의사결정단위가 나와줘야 비로소 의학이 된다. 병을 치료하는 데는 약으로 처방하는 법, 스님을 불러 독경하는 법, 도사를 불러 술법쓰는 법, 부적을 쓰는 법이 있다는 식의 동의보감 수준으로는 의학일 수 없다. 아닌걸 확실히 배척하고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의醫와 비의非醫를 구분하고, 병과 병 아닌 것을 구분해야한다. 경제학도 마찬가지로 숫자단위나 세포단위나 원자단위처럼 최소단위 의사결정 실체인 경제자가 나와주어야 과학의 범주에 드는 이야기가 된다.


    앞의 유명한 다섯 사람에게서 그러한 부분을 찾아볼 수 없다. 물론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아담 스미스의 시장원리라든가 하며 비슷한 것이 제법 있지만 분류가 확실하지 않다. 접근법이 틀렸다. 원소기호 없이 화학하는 셈이다.


    경제의 원자는 무엇인가? 정의되어야 한다. 경제의 출발점은 공간의 교착을 시간으로 변환하여 타개하는 문제다. 신용의 조달이다. 계획을 세우고 다음 실행을 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데, 그 긴 시간을 어떻게 보장하느냐다.


    시계와 같다. 시계태엽이 1초만에 다 풀리지 않게 조절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을 발명한 시점에서 시계는 발명된 거다. 시계 안에 앵커라는 것이 앞뒤로 오가며 되먹임을 하는데 그것이 시계의 원자다.


    앵커가 바늘이 앞으로 간만큼 뒤로 되돌아가며 조속기 역할을 해서 시계가 성립된다. 진자의 등시성으로 조속하는 괘종시계도 있다. 자연에는 지구의 자전과 공전이 그 역할을 한다. 시계는 자연에 있는 것을 복제한 것이다. 경제학도 마찬가지다. 경제는 인류와 상관없이 자연에 있으며 그것을 복제한 것이 경제다. 경제를 처음 자연에서 유도하는 절차가 나와주어야 한다.


    경제는 돈부터 찍어야 한다. 생산보다 계획이 먼저다. 수렵이나 채집은 엄밀한 의미에서 경제가 아니다. 계획이 없기 때문이다. 수렵이나 채집이 경제면 쥐나 닭도 경제활동을 한다는 말이 된다.


    비경제에서 경제로 도약하기는 매우 힘들다. 이 부분에 주목해야 한다. 넘사벽의 장벽이 있다. 대부분 그 엄중한 장벽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므로 논의가 산으로 간다. 앵커를 발명하지 못한 채로 시계를 만들려는 노력과 같다. 핵심인 탈진기(밸런스)가 없으면 거의 시계같지만 그게 시계는 아니다.


    시계를 발명하기 전에 탈진기를 발명해야 하고, 탈진기를 발명하려면 핵심부품인 앵커를 발명해야 하고, 그 앵커를 추나 진동자로 흔들어주는 메커니즘을 통째로 발명해야 한다. 여기에 입력에서 출력까지 에너지의 1순환이 있다. 그런데 그 앵커가 구조론의 ┳다. 딱 시소모양으로 생겼다. 구조는 만유에 보편되며 이 구조가 없으면 무조건 가짜다. 앵커 없는 시계는 인정할 수 없다.


    제레미 다이아몬드의 총균쇠에 나오는 내용이지만, 사냥꾼을 유목민으로 만들기 어렵고, 유목민을 농경민으로 만들기 어렵다고 한다. 된다 해도 같은 위도를 따라 같은 기후대에서만 된다.


    그래서 문명은 동서로는 잘 가고 남북으로는 안 간다. 동서로는 유럽문명이 구대륙을 거쳐 일본까지 가고 미국까지도 갔는데, 남북으로는 유럽문명이 이집트를 통과하지 못해서 아직 수단까지도 못갔다.


    수렵채집인이 유목민을 보고 배우거나, 혹은 유목민이 농경민을 따라하는 경우는 드물며, 대개 농경민이 정복하여 유목민의 땅을 뺏는 식이다. 왕족이 왕되고, 원래 상인이 장사하고, 유대인이 금융을 한다. 상商나라 사람만 상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의사결정단위라는 본질이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의사결정원리가 시계의 탈진기이며 앵커이고, 구조론의 ┳다. 앵커가 1왕복을 하듯이 계획과 생산이 경제의 1 사이클로 기능한다. 여기에 경제의 머리와 꼬리가 있고, 에너지의 입구와 출구가 있다. 구조론으로는 계획이 생산에 앞선다.


    대개 이 부분에서 막혀 있다. 계획 다음에 생산, 생산 다음에 거래다. 아담 스미스의 시장원리는 거래원리다. 제 1원리, 제 2원리 지나서 제 3원리에 해당한다. 태엽과 탈진기를 지나서 밖으로 드러난 바늘이다. 계획과 생산을 끌어내기 위한 동기부여가 경제시스템의 상부구조다. 이 부분이 중요하다.


    경제는 생산현장에서 일어나는 공간대칭을 시간대칭으로 전환한다. 농부가 봄에 밭을 갈고 씨를 뿌리면 수확까지 6개월이 걸린다. 종자를 보관하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1년의 계획이 된다. 누가 그 1년을 보장하는가이다. 이는 신용의 창출이다. 신용이 탈진기다. 인간이 직업을 잘 못바꾸는게 이 때문이다. 상나라 출신의 상인이 장사를 독점하듯이, 국가족이 출현하여 국가짓을 해서 된 거다.


    탈진기의 핵심은 일의성에 있다. 동시에 결정되어야 한다. 생산한 다음에 나눠갖는다는 말은 거짓말이고, 나눠가진 다음에 생산한다. 그러므로 산업화는 대개 시민혁명에 따른 신분상승에 의해 촉발된다. 그래서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물론 화폐도 기여한다. 투자자는 지분을 나누는 방식으로 공간의 교착을 타개하지만 노동자는 그게 안 되므로 화폐로 갈음하는 것이다.


    일본이 비교적 빨리 근대화에 성공한데 비해, 중국과 조선이 늦은 이유는 국가족의 절대 숫자가 적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수백개의 봉건소국이 있었는데 비해 중국은 황제 한 명이 있었고, 조선은 국왕 한 명이 있었다. 조선은 청나라의 외교간섭을 피할 의도로 외교 자체를 없앴다. 청나라 사신이 시시콜콜 따지고 드는 것을 막기 위해 조선과 접촉하려는 외국인은 모두 청나라로 보냈다.


    유럽 역시 국가족 숫자가 절대로 많았던 것이 강점으로 작용했다. 구조는 상부구조에서 하부구조로 복제된다. 국가족의 의사결정을 하부구조로 복제하는 중간고리로 중세에는 기사가 그 역할을 하고, 근대에는 지식인과 중산층이 그 역할을 한다. 조선이라면 선비다.


    현대는 의회가 국가족 역할을 한다. 국가족과 이를 내부에서 복제한 중산층이 먼저 분배하고, 후에 생산하는 구조를 만들어가는 것이 신용창출이다. 결혼제도가 특히 그 선분배의 기능을 상당부분 담당한다. 자본주의는 결혼제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한국에서 문제가 되는 입학과 취업의 신분고착화 경향도 선분배의 일종으로 보아야 한다. 노동조합에 대한 관점도 선분배 개념으로 풀어야 한다. 이 부분이 확실히 화폐역할을 대행한다.


    경제하려면 생산하기 전에 돈부터 찍어야 하고, 창업하려면 직원 뽑기 전에 주식부터 발행해야 한다. 시중에 풀려나간 돈이 생산을 거치지 않고 바로 은행으로 되돌아오지 않게 붙잡아두는 방법은? 시계태엽이 바로 풀리지 않도록 붙잡아두는 탈진기의 역할은?


    선분배가 정답이다. 한국의 과잉교육, 과잉스펙, 결혼집착, 가족집착, 부동산 폭등도 선분배 관점으로 풀어야 답이 나온다. 노동자의 임금도 신분안정과 현찰수익 중에서 선택하는 지렛대로 풀어야 한다.


    정규직은 임금을 깎는 대신 안정된 신분을 보장하고, 비정규직은 신분이 불안정한 대신 높은 임금을 받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한국은 그게 거꾸로여서 잘못된 것이다. 그래서 국가의 할일이 있다.


    생물학이라면 하나의 세포, 물리학이라면 하나의 원자, 수학이라면 하나의 숫자가 있다. 경제에서 그것은 계획과 생산의 1사이클이다. 구조론의 핵심은 일의성이다. 생산 후에 분배한다는 거짓말이고 먹고 튄다가 진실이다. 어떻게 양측을 일의적으로 동시에 결정하느냐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탈진기를 내장한 1경제단위 개념이 서야 비로소 경제학이 출발할 수 있다.


    ◎ 동기≫계획≫생산≫거래≫소비 

    ◎ 신분≫신용≫산업≫유통≫문화


    동기부여는 노숙자, 가정주부, 백수, 도둑과 같은 비경제족을 어떻게 산업활동에 종사하는 경제족으로 바꾸느냐의 문제이다. 탈진기가 있어야 하며 전통적으로는 가족제도가 그 역할을 해왔다. 현대사회는 국가의 선제대응 및 교육된 개인의 교양으로 대체해야 한다. 깨어있는 시민이 필요하다.


    경제계획은 투자와 생산 소비까지 걸리는 시간간격을 어떻게 보장하느냐다. 대개 화폐가 기능한다. 종이화폐 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화폐역할을 하는 대체수단이 강구되어야 한다. 증권이나 보험, 부동산도 그 역할을 한다.


    미국은 가족주의 강조로 때우려는 경향이 있고, 북유럽의 사민주의는 국가의 능동적인 역할로 가족의 기능을 대체한다. 근대의 교육제도는 가족주의 수준을 개인주의 수준으로 끌어올린다. 개인 단위에서 경제하는 동기를 조달하는 것이 교육의 진정한 목적이어야 한다.


    경제학의 목적은 가족이나 기업이 담당하는 신용창출을 국가와 개인으로 다원화 하는데 있다. 최종적으로는 사회관계의 밀도를 끌어올리고 상호작용의 총량을 끌어올리는 데서 답을 찾아야 한다.


    의도와 달리 경제학의 상부구조인 정치학, 사회학의 중요성을 말한 셈이 되었는데, 하부구조만으로 보면 시장원리가 탈진기 역할을 한다. 경제학은 경제영역 안에서 완결된 이야기구조를 만들어내야 한다.


    비유하면 건축과 토목은 다르다. 그런데 토목 없이는 건축을 못한다. 아마 건축과에서도 토목을 조금 배우긴 할 것이다. 어쨌든 건축은 토목이 아니며, 토목은 토쟁이가 하고, 건축은 집쟁이가 한다. 마찬가지로 정치학, 혹은 사회학과 경제학은 담당분야가 다르다. 각자 자신의 탈진기 하나씩 가지고 있다.


    야구선수들은 일도 하기 전에 계약금이라 해서 많게는 수백억을 받는다. 전형적인 선분배다. 월급쟁이도 취직만 하면 신용카드에, 마이너스통장에, 신용대출까지 거액을 운용할 수 있게 된다. 결혼만 해도 신용창출이다.


    이러한 부분은 국가의 능동적인 정책집행을 통해 해결되어야 한다. 지나치게 이 부분을 강조하면 사회학이 되지만, 국가의 역할과 상관없이 경제의 메커니즘 속에 원래 그런 원리가 있다는 거다. 탈진기가 있다. 기업, 조합, 가계, 개인이 경제의 주체이듯이 국가도 경제의 한 주체다.


    ‘동기≫계획≫생산≫거래≫소비’로 이루어진 경제행위의 연쇄고리를 생명활동의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 사람은 호흡을 한 번 하고, 시계는 앵커가 한 번 움직인다. 고리 하나가 끊기면 전체가 죽는다.


    대개 이들 고리 중에서 하나만 손보면 나머지는 저절로 해결된다는 망상을 갖고 있다. 시장주의자는 거래만 하면 다 된다고 믿고, 공산주의자는 계획만 하면 다 된다고 믿는다. 그 반대다. 이 다섯 포지션은 순환구조를 이루며 하나가 끊기면 전체가 다 죽는다는데 방점을 찍어야 한다.


   


[레벨:8]상동

2014.01.06 (10:28:19)

신분 > 신용 > 산업 > 유통 > 문화 

^^

[레벨:2]수학의 눈

2014.01.06 (13:57:00)

경제의 기본단위=생명의 기본단위...생명의 기본단위가 뭘까?


여기서 생명의 기본단위로 세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세포는 지방, 단백질, 탄수화물 등의 유기물의 집합체일뿐이다. 유기물들을 모아 놓은다고 세포가 되지는 않는다.


세포는 에너지를 흡수하고 노폐물과 폐열을 배출한다. 그런 사이클을 작동시킨다.


그런 사이클을 작동시키는 것은 모두 생명이며, 경제도 일종의 생명이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4.01.06 (14:36:55)

그게 구조론이죠. 

프로필 이미지 [레벨:11]오맹달

2014.01.06 (14:38:02)

겉핥기로 들은 팟캐스트에서 배운 내용을 흘려버리지 않고 복기하여 제 것으로 만들려는 독백에 이런 장문의 좋은 글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1.덕분에 탈진기, 나아가 시계의 원리를 찾아보아 이해했습니다. 

결국은 자연속의 진자의 법칙을 가져다가 시계를 만든 것이군요.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102&contents_id=3889

2.위 경제학의 대가들에 대한 변명을 하고 싶지만 그건 보라는 달을 보지 않는 행위이겠습니다. 

참고로 사사로운 토크의 "꼬투리 경제학"은 경제학자의 삶과 배경을 흝어주고, 

주요 이론에 대한 설명과 이를 오늘날의 한국에 대비하여 이야기해주는 구조입니다. 


3.팟캐스트의 내용이 떠오르는 부분이 많습니다. 말씀하신 "국가의 능동적인 정책집행"이 바로 케인즈라고 생각합니다.

케인즈가 제시한 방법 중 하나로 국가가 돈을 풀어서 막힌 순환을 풀라 하였는데 

그렇다고 4대강 22조 같은 걸 해봤자 재정건전성만 해치고, 똑똑한 정부가 제대로 사용해야 합니다. 

예로 든 방법중 하나는 육아 지원금을 줄게 아니라 나라가 국립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것이 있습니다. 

고용창출과 육아부담을 동시에 덜어주는 좋은 케인즈적 방법이겠습니다. 


신용의 부분에 있어서도 스웨덴은 한때 노동쟁의때 군대가 발포해 사람이 죽기도 한 나라였다 합니다. 

그러다가 동일임금 동일노동 같은 대타협을 할때에 월급주는 대기업 노동자, 임금 많이 줘야하는 중소기업 

사장들의 반발이 있었지만 그 전에 일정기간 쌓아왔던 신뢰, 신용의 바탕이 있었기에 극복할 수 있었다 합니다. 


4.가족제도가 경제의 탈진기였다고 말씀해주셨는데 이는 가족제도가 집사기, 결혼하기, 아이낳고 교육시키기 

등등의 경제활동의 동기부여를 해줬다는 말씀이신지요? 
북유럽 국가의 능동적 역할이 이를 대체한다는 말은 실제적 예로 어떤게 있을까요?
개인단위의 경제하는 동기, 탈진기라면 어떤 실제적 예가 가능할까요? 

부족한게 많아 질문이 많습니다. (__)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4.01.06 (14:55:12)

구조론은 구체적인 내용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보편적인 관점을 논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제학자가 매우 좋은 말을 했다고 해도 여기서는 논외입니다.

제가 주장하는 것은 탈진기라는 핵심개념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는 경제 뿐 아니라 다른 모든 부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컨대 역사에 대한 관점도 마찬가지인데


조조가 둔전을 실시하고 능력위주로 관료를 뽑는 등
백성을 살리는 많은 정책을 폈지만


본질에서 하극상의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조조 이후 300년간 난세가 이어졌는데 모두 조조에게책임이 있지요.


300년간 혼란으로 죽은 사람의 총 숫자를 3천만명으로 본다면

조조 혼자서 3천만명을 때려죽인 셈이 됩니다.


그런데 역사가들이 이런 중요한 부분을 간과합니다.

그러므로 좋은 학자가 시스템을 망치는 경우도 많고


반대로 나쁜 학자가 오히려 살리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이런 것을 객관적으로 볼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막연히 좋은 사람이 좋은 일을 한다는 식이면 매우 위험한 생각입니다.

경제라는 것의 핵심은 신용을 설계하는 시스템인데


국가에서 풀어야 하는 상부구조와 

시장 안에서 풀어야 하는 하부구조가 있습니다.


시장 안에서 풀어야 하는 하부구조는 금리라든가 잡다한게 많은데

이번에 인준하는 재닛 옐런에게나 알아봐야 할 문제이고 


제가 너무 깊숙히 논하는건 일단 무리.

중요한건 경제 안에서 완결된 이야기구조가 있으며 


거기서부터  풀어가야 한다는 관점입니다.

근본적으로 궤도를 벗어나면 곤란한 거죠.


가족제도와 자본주의 함수관계는 엥겔스 시절부터 논의된 겁니다.

제가 새로운 이야기를 꺼내는건 아니고


원래 인간은 경제하는 동물이 아닙니다.

미쳤어요? 그걸 왜 해요?


왜 경제를 하죠?

이런 근본적인 의문에 대한 해답입니다.


우리는 문명생활에 젖어있기 때문에 

당연히 인간이 사는건 이런거 아니냐는 식인데 아니죠.


우리가 사는 방식은 누군가에 의해 발명된 하나의 양식이며

그 양식을 근본적으로 의심해야 하며, 거기서 포착된 것이 가부장적 가족제도입니다.


결혼을 하려면 집이 있어야 한다는 데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거죠.

부족민.. 인간에게 왜 집이 필요하지? 그냥 정글에서 자면 되는데? 10만년 동안 그렇게 잘 살았잖아?


가족이 경제적 의사결정 단위의 하나로 기능하며 국가는 확대된 가족입니다.

제가 말하는 가족은 요즘의 핵가족이나 전통의 대가족 뿐이 아니라


인간의 공동생활 일체을 말하는 것입니다.

국가에서 가족의 기능을 대체하는 것이 복지제도이고 


개인이 대체하는 것은 교양이죠.

개인은 교양인, 지성인, 자유민, 깨어있는 시민이 될 의도로 경제를 하는 것이며


가족은 의식주 등 기본적인 욕망을 충족시킬 의도로 경제를 하는 것이며

국가는 전쟁에서 이길 의도로 경제를 하는 것입니다.


구조론으로 경제는 다섯 뿐인데

의식주차휴입니다.


휴는 휴가, 여가, 문화생활인데 이는 부자에게만 해당되므로 빼고

차도 부자가 굴리는 것이고


보편적으로는 집입니다.

집이 왜 있을까? 


가족 때문에 집이 있다. 그래서 가족을 논하는 거죠. 

의와 식은 경제라고 할 것도 없잖아요.


노숙자도 의와 식은 있습니다.

경제라는 것은 식량을 쟁여놓는 것인데


쟁여놓을 공간이 있어야 하고 

따라서 집이 경제의 핵심이고, 집은 가족인 거죠.


1인가족도 가족으로 봐야하구요.

가족이 없으면 인간은 장기적인 단위의 의사결정을 안 합니다.


경제를 안 한다는 거죠.

안해도 되는데 왜 합니까? 


배고파? 훔치면 되잖아.

못훔쳐? 죽이면 되잖아. 


무인도에서 가장 쉽게 부자가 되는 방법.

무인도에 둘이 있다면 그 중 한 명을 죽이면 두 배로 부자가 된다는 거.


경제는 어리석은 선택이며 살인이 가장 현명한 방법.

이를 실천한 사람은 징기스칸.

프로필 이미지 [레벨:11]오맹달

2014.01.06 (15:10:41)

댓글을 통해서 많은 부분 머리가 맑아집니다. 감사합니다. 

마침 이중텐의 삼국지 강의를 최근에 다시 읽었었는데, 말씀을 듣고보니 조조는 정도전과는 대비되게 어떠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구체적인 이상이 없었네요. 상대적으로 제갈량은 촉한을 "의법치국 허군실상"이라는 유사 입헌군주제를 그려본 듯 합니다. 


좋은 학자가 망칠 수 있고, 나쁜 학자가 살리는 경우가 많다. 

게으르고 막연한 생각을 경계하겠습니다. 


가족에서 국가와 개인에 대한 부분도 좀 더 이해가 되었습니다. 

가족이 책임지던 주거, 교육, 육아 등등을 국가가 복지로 챙겨주는 것이고, 

개인의 깨어있는 경제는 충분히 이해했다 볼 수 있을지 몰라도 책을 사서 읽기, 나쁜 기업 불매운동하기 같은 것도 

포함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결국 가족의 의식주 욕망 충족 발진기의 상당부분을 국가가 대체해 줄 수 있는거고

그 부담에서 벗어난 개인은 좀더 높고 멋진 수준의 경제를 할 수 있겠습니다. 


국가는 전쟁에서 이기려 경제를 한다. 

느낌이 오는 문장입니다. 이것 만으로도 글타래를 또 하나 풀어내실 수도 있을듯 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4.01.06 (15:15:55)

전쟁이라고 표현했지만 

꼭 총알이 난무하는 열전을 말하는건 아닙니다.


가만 놔두면 상대방이 자기를 규정하게 됩니다. 

상대가 나를 규정하기 전에 내가 상대를 규정해야 합니다.


이것이 국가의 작동원리지요.

국가에 인구가 한 명이라도 이 원리는 작동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4.01.06 (15:22:16)

가족은 섹스라는 자연의 본능에 의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경제의 논의는 일단 가족으로부터 출발하는게 맞습니다.


만약 인간에게 섹스가 없다면 원시인으로 그냥 살았겠죠.

섹스 때문에 인간은 붙어있게 되고 붙어있으면 도망칠 수 없고


도망을 못 치니까 울타리가 필요하고 

울타리를 치다보니 집이 만들어지고 집을 만들다보니 저장을 하고


저장을 하다보니 결과적으로 경제한 셈이 된 거죠.

경제는 이렇게 자연발생한 거.


근데 국가는 상대방이 완전한 타자라는 전제를 깔고 들어갑니다.


'상대가 나를 규정하기 전에 내가 상대를 규정해야 한다'는 권리관계의 본질이 작동한다는 거죠.

잘못하면 노예가 될 판이라는 거죠.


가족은 먹고 살기 위해 경제하는 단위인데

국가는 노예가 안 되기 위해 의사결정하는 단위입니다.


근데 먹고 사는 일보다 노예가 안 되는게 더 중요한 일입니다.

국가의 역할은 신분보장, 신분상승, 신분안정입니다.


복지는 뭐 그것을 구체화 하자면 그렇다는 말이고

비정규직이 사실상의 노예상태라면 국가가 잘못한 증거죠.


만약 비정규직이 노예상태라면 타자에 대해 전쟁할 권한이 있습니다.

파업권을 인정하는 것은 전쟁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타자가 나를 규정하기 전에 내가 타자를 규정해야 한다는 본질이 있는 한

인간은 천부인권으로 전쟁권을 타고 나며 그것이 파업권, 저항권으로 표출되는 거죠. 

[레벨:15]오세

2014.01.06 (16:34:39)

구조론 경제의 핵심 중 하나는 바로 위에서 동렬님이 언급한 자기규정권을 양적, 질적으로 다양화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문화(음악, 미술, 건축, 패션, 게임, 라이프스타일 등)로 부족과 가족을 해체해서 개인으로 쪼개고 그렇게 쪼개진 개인들의 총 상호작용량을 증대시키는 것이 경제를 굴러가게 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개인들이 문화로, 취향으로, 스타일로 자기를 규정하고 개인으로 독립되어 상호작용하는 것이 '현대'경제의 요체가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 사회도 지금 그 단계에 와 있구요. 우린 아직 쪼갤 여지가 더 남아 있습니다. 유럽과는 다르죠. 아직 성장의 여력이 충분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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