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지성인가? 인간은 사회단위로 의사결정을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사회가 고정된 모습을 갖지 않는다는데 있다. 그 사회는 유전자에 새겨져 있다가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현장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순간에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상호작용의 환경은 변한다. 지성인은 집단을 대표하여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집단의 규모는 상호작용의 단위다. 단위는 고정되지 않는다. 자기 자신도 단위가 되고, 더 작게는 자기 마음도 단위가 된다. 크게는 가족과 부족과 국가와 인류와 우주가 지성이 대표해야 할 의사결정의 단위가 된다. 지성인은 자기 마음을 통제할 수 있고, 자신과 그 영역을 통제할 수 있다. 필요한 때 가족과 부족과 국가와 인류를 대표할 수 있다. 반면 비지성인은 본능의 명령에 의해 상부구조에 의사결정을 떠넘긴다. 응석을 부리거나, 혹은 화를 내며 울부짖거나, 흥분하여 날뛰는 방법으로 집단을 호출한다. 이는 유독 인간에게만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본능이다. 지성은 특별히 훈련되어야 하며, 훈련되지 않으면 욕망에 따라 즉흥적이고 이기적인 행동을 한다. 그러나 이기심은 착각에 불과하며 대개 이타적인 결과를 낳는다. 누군가 커다란 욕망을 품으면 그의 가족이 이득을 본다. 남에게 더 큰 이득이 돌아간다. 인간은 문제를 발견하면 곧바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덤비는게 아니라, 화를 내거나 응석을 부리는 방법으로 집단에 스트레스를 전가한다. 그것이 옳은 행동이다. 모르는 사람이 무턱대고 덤비면 역효과가 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문제의 원인은 그 층위에 없고 반드시 상부구조에 있기 때문이다. 상부구조를 호출하는게 정답이다. 어린이는 울고, 여자는 비명을 지르고, 남자는 고함을 지른다. 겁을 집어먹고 벌벌 떨기도 한다. 이는 집단을 호출하는 본능이다. 어차피 자기 수준에서의 해결방법은 없으니까. 반면 문제가 없을 때는 놀이와 웃음과 대화로 집단에 활력과 생기를 불어넣는다. 인간이 가진 욕망의 90퍼센트는 자신에게 그다지 이익이 되지 않는 승부욕, 허영심, 명예심, 질투심 따위다. 승부욕은 몸과 마음을 다치게 할 뿐이며, 허영심은 장시간 노동을 유발하여 자신도 모르게 사회의 노예가 되게 하며, 질투심 역시 해롭기는 마찬가지다. 진화의 원인이 되는 생존개념으로 볼 때 대부분의 욕망들은 사실 필요가 없는 것이며, 오로지 가족과 집단의 유지에 기여할 뿐이다. 인간이 소비하며 지불하는 옷값이나 신발값 중에서 추위를 막고 신체를 보호하는데 드는 비중은 10퍼센트 이하다. 인간에게 적당한 크기의 집은 세 평 정도다. 원시의 동굴에서는 1평 정도를 차지하고도 다들 만족했다. 넓은 평수의 집과 비싼 옷과 많은 지식은 집단에 긴장과 활력을 불어넣어 집단의 결속을 끌어내는데 사용된다. 그리고 대개 과소비된다. 집단의 결속을 포기하면 노숙자처럼 된다. 인간에게는 원래 노숙본능이 있다. 노숙자를 설득하여 성실한 근로자로 만들고자 하는 시도는 대개 실패한다. 정글의 부족민은 노동하지 않는다. 그들을 성실한 노동자로 만들기는 어렵다. 그들에게는 문명사회의 욕망이 없기 때문이다. 동기부여가 불가능하다. 문명인의 욕망은 대부분 타인을 위한 것이다. 오로지 자기만을 위한다면 문명은 필요하지 않다. 인간이 무인도에 고립되어 혼자 산다면 오직 생존이 필요할 뿐이다. 생존에 필요한 것만이 자기를 위하는 것이다. 나머지는 집단의 결속에 기여한다. 배고픔이나 성욕과 같은 고유한 욕망은 확실히 개인의 생존에 필요하다. 허영심, 질투심, 명예심, 승부욕은 생존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성욕도 상당부분 집단의 결속을 위해 가공된다. 정글의 부족민은 문명인 만큼 성욕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래서 결혼도 하지 않는 부족이 많다. 동물 중에 인간만큼 섹스에 집착하는 동물은 없다. 그다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족민은 가족이 없거나, 가족간에 존재하는 잠재적인 전쟁상태, 비교우위가 없다. 열등감이나 우월감이 없다. 이웃사이에 흐르는 미묘하고 긴장된 공기가 없다. 문명인은 가족이 있으며 가족간의 유대가 강하고, 모든 가족들 사이는 잠재적인 심리적 전쟁상태의 공기가 있다. 부족민은 부족단위의 전쟁상태가 존재하며 가족단위나 개인단위의 경쟁심이 없다. 옆집보다 잘살아야 한다는 생각이나 누구보다 더 잘나야 한다는 생각이 없다. 굳이 잘난 사람이 될 이유가 없다. 노력해서 족장이 되고야 말겠다는 생각이 없다. 구태여 좋은 평판을 바라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열등감도 없고, 우월감도 없기 때문에, 비교하고 평가하여 욕망을 부추기는 동기부여 방법으로 부족민을 설득할 수는 없다. 가족을 만들고, 가족의 전통과 역사를 만들어 거기에 자부심을 주어야 한다. 가족간의 보이지 않는 경쟁상태가 있어야 한다. 비교하고 평가해야 한다. 그래야 개인의 욕망이 발동하고, 그래야 집단에 대한 의존심이 생기며, 그래야 집단에 문제를 떠넘기고, 그래야 사회단위의 의사결정이 가능하다. 그러나 부족민에게는 무리다. 부족민은 집단에 스트레스를 전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집단적 의사결정이 없거나 약하다. 식민지 지배자가 침략해와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 ‘쟤들 또 왔네 왜 왔지?’ 하고 고개를 갸웃하는 정도다. 국경이 침범되었으며 주권자가 모욕을 당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물론 전혀 그런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나 무슨 사건이 있을 때 일시적으로 모여서 떠들 뿐, 확실히 집단적 의사결정의 의지가 약하다. 사건은 곧 잊어버린다. 국가의 역사가 없거나 옳게 교육되지 않은 제 3세계의 국가들이 산업화에 실패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나라의 역사가 없으면 개인이 집단에 화를 내지 않으므로 국가단위 집단적 의사결정이 불가능하다. 우선 동기부여가 안 된다. 그러므로 화를 내야 한다. 스트레스를 전가해야 한다. 욕망을 발동시켜야 한다. 비교하고 평가해야 한다. 거룩한 분노를 일으켜야 한다. 집단을 호출해야 한다. 인간은 집단의 결속을 유지할 의도로 욕망을 생산하며 더 많은 욕망, 더 높은 욕망을 생산한 집단이 경쟁에서 승리한다. 화를 내야 할 때 화를 낼줄 아는 민족이 이긴다. 그러므로 욕망의 생산은 경쟁에 의해 점차 가속화 된다. 인간은 아기의 웃음, 사랑하는 이성의 생기있는 목소리, 가족의 따뜻한 격려에 취해 있는 존재다. 그 힘은 마약보다도 강력하다. 그리고 많은 경우 집단을 위한 무의식적인 행동을 자신을 위한 이기적 행동으로 착각한다. 그러므로 개인에게 도움이 안 되는 잘못된 결정을 내린다. 언제라도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시피 하다. 개인의 잘못된 의사결정은 대칭행동으로 나타난다. 대칭행동은 누군가에 심리적으로 의존하거나 혹은 무조건 반대하는 행동이다. 어린이는 무조건 의존하고 소년은 무조건 반항한다. 대칭행동은 공동체에 긴장과 활력을 불어넣으며, 공동체의 결속되지 않은 약한 고리를 찾아내게 한다. 그 시작은 어린이의 말대꾸다. 어린이는 무조건 반항적으로 말한다. 씨바와 졸라를 접두어로 붙이지 않으면 말을 꺼내지 못할 정도가 된다. 이러한 반항행동에 의해 집단의 약한고리는 찾아지며, 그 약한고리를 보호하려는 노력에 의해 집단의 결속은 강화된다. 그러므로 신경질적인 캐릭터를 가진 안티히어로가 집단을 강하게 한다. 인류학자의 보고에 의하면 모든 부족민은 잠재적인 전쟁상태에 머물러 있으며 반드시 적대부족이 있다고 한다. 평화만을 추구하는 부족은 없다. 그 경우 집단의 의사결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린이도 도둑과 경찰 이야기만 나오면 눈을 반짝이고 귀를 쫑긋한다. 어린이는 선과 악의 대립구도로만 가치판단을 할 수 있다. 여야의 대립이나 남북한의 대립, 중국과 미국의 신냉전도 의사결정을 위해 집단에 스트레스를 끼얹는 본능에 따른 대칭행동이다. 이러한 신경증적 행동이 집단의 약점을 찾아내고, 그 약점을 보완하는 형태로 인간은 진보한다. 그러나 지성인이 아닌 자가 지도자 노릇을 할 때 브레이크 없는 대칭행동은 무한폭주하여 집단에 재앙을 유발한다. 첨단무기로 무장한 현대사회는 더욱 위험하다. 적절히 브레이크를 걸어줄 지성인이 필요하다. 지성인은 의사결정본능에 의한 대칭행동의 무한폭주를 극복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특별히 훈련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이 올바른 판단을 하는 것은, 이성적이어서가 아니라 본능의 요구를 극복하고 올바른 판단을 하는 집단이 경쟁에서 승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경쟁이 없이 지리적으로 고립된 지역은 결국 퇴행한다. 고립된 국가는 반드시 쇠퇴하고 고립된 문명은 결국 멸망한다. 집단을 승리로 이끄는 훈련된 지도자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지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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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어린아이의 약함에 대해 반응하는 사회가 집단트라우마에 걸려있다는 거지요.
그래서 본능적으로 반응하게 되는데 과연 이 사회에 그러한 본능에 대한 무한 폭주를 극복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는지요?
국민의 48%?
조작된 거라고 보면 50.1%?
어쨌거나 감정을 넘어, 생각을 넘어 집단지성이 제대로 터져나와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