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 말 나온 김에 조금 더 진도를 나가보자.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은 무엇인가?’ 하고 물으면 본능적으로 대답하려고 한다. 틀렸다. 왜 대답을 해? 시킨다고 하나? 뭐 이 정도는 이제 다들 알아챘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문답이 당시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는 점이다. 북이 하나 있다. 당신에게 북채를 주면 어디를 치겠는가? 급소를 친다. 그곳에서 소리가 나기 때문이다. 큰 소리가 났다. 그래서 조주록에 기록되었고 기록되었기에 지금 이곳에서 이야기가 되는 거다. 어디서 소리가 났는가? 호국불교라 하면 박정희가 세뇌교육의 의도로 꾸며낸 말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당시에 호국불교가 대박을 터뜨렸다. 왜? 자장이 불교는 과거세부터의 인연에 의해 맺어진 바 사실상 신라의 것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나아가 문수보살이 사는 오대산이 바로 신라에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동대 관음, 서대 아미타, 남대 지장, 북대 석가모니를 아우르는 중대 문수보살의 오대산이 신라에 있다는 거다. 온 신라를 열광의 도가니에 빠뜨렸다. 따지고 보면 오늘날 모든 사이비의 뿌리에 자장이 있는 셈이다. 무엇인가? 그 지점에서 큰 소리가 난 것이다. 단번에 황룡사 구층탑 올라갔다. 황룡사 9층탑은 신라를 괴롭히는 주변의 아홉나라를 제압할 목적으로 세운 것인데 그 아홉나라에는 중국과 오월도 포함되어 있다. 불교가 원래 신라의 종교라고 믿은 신라인의 콧대가 하늘을 찔렀던 것이다. 그 다음으로 대박을 낸 사람은 원효다. 또 미륵신앙이 대박을 터뜨렸다. 이들의 공통점은? 외래종이 아닌 자생종을 주장했다는 거다. 좋은 소식이 외부에서 온다는 말이 아니고, 내부에서 발생한다고 주장된 것이다. 미륵이 머나먼 중국에서 바다 건너 온다든가 하면 싱거워진다. 당시의 공간 관념으로 중국은 꽤 멀다. 무엇인가? 조사가 인도에서 중국을 접수하러 왔다면? 중국사람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조사가 중국인을 구제하러 왔다면? 역시 몰매맞고 쫓겨나기 딱 좋다. 조사가 중국에 세금 받으러 왔다면? 역시 찬밥이 된다. 북채가 주어진다면 그대 어디를 치겠는가? 급소를 쳐야 소리가 난다. 그곳은 어디인가? 완전성이다. 도교사상에 선종의 뿌리가 있다. 죽림칠현으로부터 촉발된 남조문화에 선종의 근본이 있다. 조사가 서쪽에서 와서 중국의 미학적 완전성과 반응한 것이다. 무엇인가? 상부구조가 있었다. 그곳에 에너지가 고여 있었다. 그 순간에 완전해졌다. 조사가 중국을 구제하러 왔다면? 완전하지 않다. 조사가 중국을 혁명하러 왔다면? 역시 완전하지 않다. 조사가 중국을 원조하러 왔다면? 전혀 완전하지 않다. 어색하다. 비뚤다. 조사는 어떤 의도와 목표를 가지고 중국에 오지 않았다. 다만 그렇게 인도와 중국은 그 현장에서 견우와 직녀처럼 만났고 그 만남은 대등한 만남이었으며 그 만남의 현장은 아름다웠다. 그것은 중국인이 원하는 바다. 중요한 것은 중국의 선승들이 이 문답을 듣고 통쾌해 했으며 그 덕분에 이 유행이 널리 퍼졌다는 것이다. 그 유쾌함에서 그들은 커다란 비전을 보았던 것이다. 무엇이 그들을 통쾌하게 했을까? 딱 급소를 쳤기 때문이다. 불교의 많은 텍스트들이 4성제 8정도, 12연기, 108배 하는 식으로 숫자로 표현된다. 이건 중국인의 구미에 맞지 않다. 중국인들이 딱 싫어하는 것이 숫자다. 숫자놀음은 인도인의 취향이고 이미지놀음은 중국인의 취향이다. 이미지 게임의 원조는 장자다. 장자는 곤(鯤)이니 붕(鵬)이니 하며 이상한 동물놀이로 이미지 게임을 펼쳤다. 텍스트는 선으로 나열되고 이미지는 입체적으로 구축된다. 나비가 장자의 꿈을 꾼 것인가 장자가 나비의 꿈을 꾼 것인가? 이건 하나의 이미지다. 머리 속에 그려지는 그림이다. 선종은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필자가 이야기하려는 것은 완전성이다. 무엇이 완전한가? 내가 원해서 짜장면을 먹는다면 그것은 완전하지 않다. 왜냐하면 짬뽕을 먹지 말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짜장과 짬뽕 중에서 내가 결정했다면 이미 실패다. 완전한 것은 무엇인가? 북채를 주고 북을 치라고 하면 그대 어디를 치겠는가? 당신은 어떤 미학적 끌림에 의해 가장 민감한 곳, 가장 팽팽한 곳, 가장 크게 긴장된 곳을 치게 된다. 그것은 당신의 의지와 상관없다. 완전성에 반응한다. 전태일 열사는 짜장면을 먹고 싶어서 먹은게 아니다. 윤봉길 의사는 그러고 싶어서 그런게 아니다. 결코. 이순신 장군이 죽고 싶어서 죽었겠는가? 만약 당신이 북채를 쥔다면 전태일처럼, 윤봉길처럼, 이순신처럼 하게 된다. 완전한 것은 필연이다. 선택의 여지는 없다. 이미 게임의 장 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너무나 숨이 답답해서 도무지 살아있을 수가 없기 때문에, 윤봉길 의사는 백범 선생의 배후조종을 받아서 테러를 자행한 것이 아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미학적 완전성에 의해 폭탄은 던져진다. 김동인의 광화사니 광염소나타니 하는 유미주의 문학에 대해서는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금각사에 대해서도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선택의 장 바깥에서 필연의 에너지가 작동한다. 뉘라서 부인할까? 어쩔 수 없다. 김재규는 쏠 수 밖에 없다. 미학의 원리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진리의 에너지다. 신의 지상명령이다. 북채를 쥐면 본능적으로 급소를 때리게 되어 있다. 권총을 쥐면 본능적으로 그곳을 쏘게 되어 있다. 크게 소리가 났다. 대한민국이 크게 한 번 들썩거렸다. 신의 의지가 나를 통과해 가야 비로소 완전하다. 진리의 의지가 나를 통과해서 또다른 누군가에게로 배달될 때 완전하다. 미학적 원리가 나의 몸을 통과하여 갈 때 찌르르한 느낌이 오는 것이다. 그 통과의 절정에서 짜릿한 반응이 나와주는 것이다. 그래서 오르가즘을 느끼는 것이다. 깨달음은 감정이며 그것은 상쾌한 전율이다. 그 에너지가 몸을 통과해 갈 때 전율한다. 음식이 목구멍을 통과해도 그렇고 배설물이 항문을 통과해도 그렇다. 온 몸을 부르르 떨게 된다. 체온의 변화 때문이다. 전체에 두루 영향을 미친다. 자기가 원해서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자가발전하는 것은 모두 실패다. 위하여는 모두 가짜다. 의하여라야 한다. 상부구조에서 커다란 에너지가 내려와야 한다. 신의 지상명령이어야 한다. 기의 방아쇠가 당겨지면 승전결은 자동으로 진행한다. 신이 기했으니 내가 승하고 그 무대에 타인을 초대하여 전하면 또 결로 전개된다. 그 기승전결의 궤도열차에서 내리지 못한다. 탄환은 날아간다.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은 무엇인가? 김재규가 그곳을 쏜 이유는 무엇인가? 움직이지 말라. 총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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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완전함은 나의 의지와 목적과 의도에 따라 자의적으로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완전성의 미학원리에 의해, 상부구조로부터의 에너지 작용에 의해, 신의 지상명령에 의해, 진리의 작동에 의해, 역사의 필연에 의해, 위하여가 아니라 위하여로, 기승전결의 궤도에 올라탔을 때 쏘아진 필연의 화살이 나의 몸을 관통하여 큰 울림을 일으키며 또다른 누군가에게로 배달되는데 있습니다. 그럴때 마음은 편안해지고 정신은 맑아집니다. 존엄이 그 가운데 있습니다. 그 유쾌함을 지금 체험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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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좋은 표현이오.
존엄에도 운명이 있소. 꿈이라고도 하고
자유에도 운명이 있소. 끼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사랑에도 운명이 있소. 친연이라고 쓴 바 있소.
성취에도 운명이 있소. 끈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소.
행복에도 운명이 있소. 깔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꼴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소.
나의 의지는 조율하여 그 안에 나의 이야기를 태워낼 뿐.
김구 주석은 당시 평범하게 살수있었습니다.
눈앞의 왜정놈을 때려잡지 않았다면 그냥 쫓기지않고 평범하게 식민지 백성으로 살아갔을겁니다.
하지만 때려잡아야 했어요.
왜냐?
때려잡아야 되니까.
안그러면 자신이 제명에 못살것 같으니까.
때려잡고 부터는
도망자- 절 - 독립군 - 임시정부
일사천리로 진행됩니다.
잡혀 죽을수는 없으니 도마치고 절에 숨어있다가 상해로 건너갑니다.
이순신 장군은 변방의 하급장수였습니다. 그러다 얼떨결에 호남지방으로 발령 받죠.
이순신 장군도 당시 다른 장수들마냥 적당히 몸사리면서 생존할수 있었습니다.
초반에 전투때마다 충무공이 하는일이
전투 도중 도망치는 판옥선 책임장수 협박하는거였습니다.
도망치면 반드시 찾아내서 죽인다구요.
전투중에 슬슬 속도를 줄이면서 눈치보다가 뒤로 빠지는게 일이었죠.
임진년 부터 조선정부가 사라졌는데 국가와 국가 간의 전쟁을
이순신 장군 개인이 떠맞게 되버린겁니다.
미칠 노릇이겠죠.
그런데 했습니다.
당장 조선이란 나라의 정부가 일시적으로 사라지니
돈은 어디서 나올까요? 정부가 없어졌는데요.
물자나 보급품을 누구에게도 받을수 없으니
명나라 상인, 조선 상인, 일본 상인들과 교역하면서
무역을 활성화 시켜 경제적인 자립을 합니다.
충무공이 탄핵되서 원균에 의해 진영이 쑥대밭이 되기 전까지
실질적인 조선의 정부 역활을 한겁니다.
의병이나 다른곳에서 뻘짓하던 관군들도 이순신장군의 진영이
계속 승전하니 그에 의지하게 됩니다.
충무공은 국가간의 전쟁을 온몸으로 떠앉아서 수행합니다.
결국 이순신장군이 나라까지 세운겁니다.
충무공이 괜히 탄핵 받았던게 아니죠.
그때 조선은 정부가 두개였습니다.
하나는 선조의 피난정부
다른 하나는 이순신장군의 정부
얼떨결에 나라까지 세워버렸죠.
그리고 그것때문에 죽습니다.
이순신 정부. 말 한마디에 모든게 파악되는군요.
이 모든 과정들이 움직이기 싫은 나를 무엇인가 계속 등떠밀어 여기까지 오게 된 것.
나의 의지라고 생각했던 것이 착각...
그래서 운명!
사람마다 운명이 있다.
어떤 끌림과 등떠밀린 것의 합작.
나의 의지는 그 방향에서 방향키를 잡고
있는 것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