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완전성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완전한 것은 낳는다. 낳음에 의해 이 세상은 이룩되었으므로 낳음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되어야 한다. 낳는 것은 무엇인가? 짝이 있는 것이다. 모든 낳음은 어떤 짝지워진 둘 사이에서 일어난다. 사건은 원인과 결과 사이에 있고, 존재는 작용과 반작용 사이에 선다. 세상은 하늘과 땅 사이에 있고, 사랑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깃든다. 길은 집과 집 사이에 있다. 산은 강과 강 사이에 있다. 들은 산과 산 사이에 있다. 일은 시작과 끝 사이, 화음은 고음과 저음 사이, 명암은 밝음과 어둠 사이, 칼라는 빛과 어둠 사이에 있다. 완전한 것은 짝짓는 것이다. 남녀가 짝지어 생명을 탄생시키듯 모든 완전한 것은 만남과 짝짓기로 가능하다. 그러나 부족하다. 안쪽에 에너지가 태워져야 한다. 에너지가 없을 때 교착된다. 끙끙대고 낳지 못한다. 씨름하고 갈등한다. 여당과 야당처럼 서로 마찰하고, 시어미와 며느리처럼 침범하고, 거간하는 장사꾼처럼 서로 의심한다. 에너지가 없어 자리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완전한 것은 짝지워야 하며, 서로 다름을 유지함으로써 공간을 벌려야 하며 그렇게 각자 자리잡아야 하고, 그 벌려진 사이의 공간으로 에너지를 소통시켜야 한다. 그럴 때 속시원하게 낳는다. 그것은 체계다. 체계에 의해 짝지워진 둘은 일의성을 획득한다. 각각의 것이 다름을 유지하면서 일정한 원리에 따라 계통적으로 결합된 것이 체계다. 일의성에 의해 둘은 다시 하나가 된다. 남녀는 다름에 의해 하나의 부부를 이루고, 명암은 다름에 의해 하나의 빛이 되고, 강산은 다름에 의해 하나의 대지를 이루고, 인과는 다름에 의해 하나의 사건이 된다. 서로를 다치지 않는다. 너와 나는 다르다. 다르므로 만나야 한다. 만나서 이루어야 한다. 별도의 영역을 가져서 서로를 다치지 않고,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체계다. 체계는 낳음의 자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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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을 유지한 채로 짝짓기+에너지 태우기로 일의성을 획득함으로써 일 단위의 완전성이 획득되면, 보편성이 획득되면 그 다음은 낳음에 의한 무한복제에 의해 일사천리로 진행됩니다. 그러나 짝짓지 못하면, 에너지를 태우지 못하면, 서로 으르렁거리며 교착되어 각자의 영역을 유지하지 못하고 서로 침범하여 쪼그라들고 맙니다. 그 경우 죽음과도 같은 영원한 잠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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