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장동 개발 사업의 그 모든 것 정리 -
* 하도 복잡하게 나열되어 있어서 제 자신을 이해시켜려 대장동 지구 개발 사업 개요를 정리해 본 것인데 구조론에도 올립니다.
* 미리 써 둔 글을 수정 보완한 글입니다.
<대장동 개발 사업이 변곡점을 맞은 시기 - 이재명, 성남시장 당선 직후>
*인터넷과 유튜브에 나와 있는 공통 자료들을 토대로 특이점을 일으킬만한 사건들을 글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각 해당 년도에 일어난 공식적인 기록들은 모두 거의 동일합니다. 그 동일한 기록들을 토대로 그 사이에서 일어난 사건들에 관해서는 서로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느라 해석을 달리하여 주장하고 있어서, 그 동일한 자료 기록을 토대로 ‘대장동 개발 사업’을 글로 재구성해 본 것입니다. 그리고 최근 3월 7일에 공개된 <김만배 녹취록> 내용에 맞춰서 추가로 첨언한 내용도 있습니다. 퍼즐 조각을 맞추는 데 아주 용이한 공개였다고 여깁니다.
대장동 지구 개발은 한 마디로 말해서 “니들이 성남도시개발공사 기준에 맞춰라, 싫으면 말고, 딴데 알아보겠다!” 라는 배짱의 한판 승부수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오랫동안 알박기로 준비한 대장동인데 아무데도 넘겨줄 수 없으니, 시키는 데로 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울분들도 쌓였을 것이고 자기들끼리는 속 꽤나 끓였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직접 방어하려고 대선에 뛰어 들었나봅니다. 최근에 시청한 드라마 <공작도시>가 떠오릅니다.
<사람이 하는 일은 그 어떠한 것일지라도 제대로 무르익으려면 적어도 30여 년이 걸리는 것 같다>
부동산 개발 사업도 한 땀 한 땀 장인의 인고의 시간처럼 대략 30여 년이 소요되는 것 같다. 보통은 바로 바로 다 될 것 같지만, 대장동 개발 사업의 역사를 살펴보니 한 세대가 걸리는 시간이 필요했던 듯하다. 그러니 땅과 관계된 일은 오랜 시간을 걸쳐야만 어떤 결과물을 얻는다는 말이 맞는 듯도 하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 한 해 농사는 그 해 봄에 파종하고 여름에 가꾸고 가을에 수확하는 사이클을 갖고 있고 가을보리처럼 밭이모작의 윤작이라면 가을에 파종하는 방식이다. 이런 윤작 농사 방식은 계절이 맞물리는 방식이다. 앞그루 작물을 수확하기 이전에 뒷그루 작물을 앞그루 작물 사이에 미리 파종해 놓는 방식이다.
투기토건세력들의 부동산 수확도 윤작 방식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서 투기토건세력은 대장동 지구에 시공사로 참여한 모든 사업체들을 통칭하는 것이 아니라, 2000년대부터 대장동 지구에 투기회사들을 설립한 이들과 그 후속을 계속 이어온 세력을 뜻한다.
이들이 대장동 부동산 개발에 쏟은 시간은 대략 30여 년 정도 된다. 30여 년 동안 그들은 그들끼리 윤작 릴레이 게임을 진행했다. 그러니까 터를 닦아 놓은 투기세력이 좌초되면 그 다음 투기세력이 바통을 이어 받아서 이권을 챙긴다. 그들은 모두 좌초되기 이전에 이미 서로 연계되어 있는데, 그 중 한 라인이 살아남아서 계속 일을 추진하는 형태이다.
하나의 촉수가 죽으면 다른 곳에서 촉수가 자란다. 또 하나의 라인이 살아나는 것은 전 특검 박영수에서 의해서였다. 그리고 살아난 그 라인은 다시 새로운 라인을 만들어 낸다. 그들도 시간동안 진화해서 융통성을 발휘한다. 다 먹지 말고 나누는 방식을 취한다. 시간동안 상황이 변했기 때문이다. 일면 다 일치하지는 않겠지만 본질적으로 보자면 모든 일의 구조는 동일한 방식을 취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이쪽이든 저쪽이든 어떤 식으로든 뻗어가는 형태는 같은 양상이다. 그 목적하는 바가 무엇인가에 따라 일이 형식을 취하는 모양은 달라지겠지만 하나의 어떤 일이 시작되면 그것은 시간 속에서 형태를 갖춰간다.
그리고 어느 순간 가시화된다. 우리 눈에 보이는 부분은 바로 그런 가시적인 부분들이다. 다만 그 가시화가 어느 방향을 선택했는지에 따라서 결과적인 양상은 다르게 나타난다. 바로 이 차이적 차이에 의해 우리의 가치관도 차이적 양상을 나타낸다. 어느 하나가 시작되면 어느 하나도 동시에 시작된다. 그 두 개의 출발선은 서로를 휘감고 계속 붙어서 시간 안을 휘돈다.
대장동 지구 개발 사업은 그러한 시간 안에서 진행되는 일의 비가시적인 부분과 가시적인 부분의 구조를 드러내는 표본과 같다고 여긴다. 앞으로 어떠한 개발 사업적인 것은 대장동 지구 개발 사업을 깊게 연구하다 보면 우리나라 부동산 개발 사업이나 방향성에 있어서 참고 자료로서 충분하다고 여긴다.
땅과 관련된 그리고 도시와 인간과 사회가 첨예하게 맞물리는 지대에서는 인간의 모든 욕망과 그 사회의 정점의 욕망이 분출되는 현장이기도 하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생활의 모든 기준은 서울 특히 강남과 분당 등에 집중되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욕망의 기준이 그렇게 맞춰져 있다. 빠르게 전파되는 요즘 시대에는 더 그러한 욕망의 차등이 약해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분당과 서판교에 이웃한 대장동 지구 개발에는 그런 욕망들이 이미 집약되어 있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대장동 지구에 청약을 하려는 이들은 최소한 신축 아파트가 기존의 아파트보다는 더 나아야 한다는 욕망이 있었을 것이고, 또한 새로 짓는 아파트는 가장 최신 트렌드를 반영하는 것이니까 어쨌든 더 차별화 시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한 미분양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시공사들 역시 그런 소비자의 기호를 충족 시켜야 했을 것이다.
<대장동 지구 공영개발 좌초 시기 - 이명박과 투기토건세력의 결탁/ 로비>
대장동 지구는 2000년 대 이전에는 전형적인 농촌지역이었는데, 대장동 개발에 대한 기대가 형성되자 그 일대의 땅을 매집하는 부동산 투기세력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고 한다. 그 대표격으로 ‘씨세븐’의 ‘이강길’이다. 이들은 소규모 부동산 개발회사를 설립하여 ‘지주공동사업’의 형태로 원주민들에게 땅을 매입한다.
시세보다 더 많은 땅값을 준다고 약속한 후 계약금을 지불하고 ‘토지승낙사용서’를 받아낸다. 토지사용승낙서를 가지고 있으면 개발사업 부지에 대한 토지소유권이 이전되지 않아도 인허가를 받는데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인허가를 받으면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을 수 있으니, 대출 받아서 토지 값을 지불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 당시 2000년 1월 28일에 도시개발법이 제정되어 ‘도시개발 사업에 민간 참여’가 가능하게 되자 대장동 지구에 상당한 땅을 소유하게 된 부동산 개발업자들은 대장동 지구를 민간개발 하려고 준비하는 중이었다.
2000년대 중반 시기 대장동 지구는 난개발이 우려되어 주택공사가 2005년부터 공영개발을 적극 추진하였다. 2008년 2월에 이명박은 대통령에 당선 되었다. 2009년 10월 1일에는 주택공사와 토지공사가 LH공사로 통합하여 출범하였다. 이때 대장동 지구를 민간 개발하려는 투기토건세력들은 정치권에 각종 로비를 하였다. 그리고 LH공사는 정치권의 압력을 받게 된다.
그 당시 LH공사는 토지공사와 주택공사가 통합한 이후로 부채율이 합산된 상태라서 부채가 많은 공기업을 오명을 쓰고 있었고, LH공사는 전국 414개가 되는 사업지구에 대한 전면적인 사업구조 조정을 감행하여 개발사업 폐지, 중지, 축소, 연기 등으로 가닥을 잡게 된다.
2009년 10월 7일 LH공사 창립식에 참석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축사발언에서 “민간과의 경쟁하는 사업은 지양하고 민간이 사업하기 어려운 사업을 LH공사가 하도록 하여 공적 역할을 다 하라”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한다. 다음 날 10월 8일에 LH공사 사장 이지송은 “민간과 경쟁하는 부분은 폐지하겠다.”고 하였다.
같은 해 10월 20일 첫 국감에서 성남시 수정구 지역구 출신 새누리당 국회의원 신영수가 이명박의 발언을 언급하였다. “대장동 주민들은 대장동 개발을 민간에서 추진하자고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대통령께서 말씀하셨고, 취임하시면서 ‘민간하고 경쟁하는 사업은 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신영수는 질의 하였다. LH공사 사장 이지송은 “그렇게 하겠다.”고 답변한다. 그때 LH공사 사장 이지송은 이명박의 측근이자 현대건설 사장 출신이었다. 그 이듬해 2010년 6월에 LH공사는 행정적인 절차를 거친 후 공식적으로 대장동 지구 공영개발 사업에서 손을 뗀다.
이명박의 민영개발 우선주의 노선 역시 이런 투기토건세력들과 밀착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신영수 역시 투기토건세력들의 로비를 받고 움직인 것이다. 신영수와 신영수 동생 신동수는 2015년에 불법 로비와 뇌물수수로 처벌 받게 된다. 대장동 지구 부동산 투기회사 씨시엠 대표 강윤길로부터 뇌물 총 2억여 원을 받은 혐의다. 대장동 지구 초기 투기업자들과 LH공사 임직원들 몇몇도 그때 같이 처벌된다.
< 대장동 지구 개발 사업에 변화가 생겨나다 - 이재명, 성남시장 당선>
대장동 지구가 이러한 상황으로 전개되어 오고 있던 가운데 대장동 지구를 둘러싼 투기토건세력들에게 그동안과는 전혀 다른 상황전개가 펼쳐지게 되었다.
그 상황을 변화시킨 사건이 바로 2010년에 이재명이 성남시장으로 선출된 것이다. 대장동 지구 개발이 급물살을 타게 된 것이다. 그들이 오랜 시간 작업해 오던 대장동 지구 민영 개발이 물 건너가려고 하는 중이었다. 왜냐하면 이재명은 대장동 지구 개발을 공영개발로 개발하려고 가닥을 잡았기 때문이다.
대장동은 분당과 근접해 있고 분당에 대규모 아파트가 건설된 것이 1990년대 중반이고 그 후 입주가 이루어졌으므로 그 과정을 지켜보던 이들은 1990년대 후반과 2000년 대 초에 충분히 대장동 개발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 확률이 높다. 즉 꿈을 꾸기에 충분했던 상황 조성이 되었던 것이라고 보인다.
대비되는 풍경, 이웃한 화려한 분당의 아파트 불빛과 대장동의 어둠 컴컴한 농촌의 불빛에서 곧 대장동이 분당처럼 개발될 거라는 꿈은 투기세력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흥분 에너지에 의해 부동산 투기세력들은 대장동 지구에 몰려든 것일 거다. 그때는 곧 바로 될 거라는 부푼 희망이 있었겠지만 그 사업 완공이 그 후로도 이십년이 걸릴지는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이재명 역시 대장동 지구에 대한 개발 압력과 개발 기대를 갖는 이 역학적인 구조에 관하여 인지가 있었을 것이다. 다만 개발 방식이 어떤 방식이냐 하는 것만 남은 상태였을 것이다. 그 이전에 극명하게 대비되는 신분당과 성남 구 도심지의 주거환경에 집중되었을 것이다. 성남시의 주변 환경이 변화해 가는 동안 성남시 도심 자체는 낙후된 상태 그대로였다. 성남시를 개발하고픈 욕망이 없었다면 이재명은 성남시장에 도전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해결해야할 문제가 산적한 도시에서 시장이 어느 방향을 보고 일을 해 나갈 것인가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였을 것이다.
만약에 이재명이 대장동 지구를 민영개발로 방관했다면 어땠을까? 하지만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재명은 공약으로 신흥동 제1공단 지대를 근린공원으로 만들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모든 공약이 다 지켜지는 것은 아니지만, 도심지에 근린공원을 만드는 일은 이재명 자신이 성남시를 변화 및 발전시키는 것에 있어서 우선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왜냐하면 이재명 그 자신의 발언을 참고하면 성남시민들이 휴식할 공간, 자전거를 탈 공간, 산책을 할 공간이 없는 성남 시민들에게 여유로운 공간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로 요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시는 공원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뻗어나간다. 넓은 공원이 생겨나면 그 주변 지역 모두가 혜택을 본다. 그리고 도심지의 삶의 환경도 그 방향에 맞춰서 변화해 간다고 여긴다.
이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신흥동 제1공단 부지에 조성할 근린공원 건립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이재명은 그 자신이 시장으로서 할 수 있는 시도들을 다 했던 것 같다. 대장동 지구 개발사업의 초기 명칭은 이 근린공원조성이 함께 결합된 ‘대장동 제1공단 결합도시 개발구역 개발계획’이었다. 공원을 조성한다는 것인지 대장동 지구를 개발한다는 것인지 얼핏 보면 헛갈리는 명칭이다. 그만큼 근린공원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방안으로 대장동 지구 택지 개발 사업과 택지 분양 대금 환수에 대한 목적성이 명칭에 부각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성남시 입장에서는 ‘우선주’로 배당 받을 약정된 배당금을 미리 받아서 안정적으로 공원조성과 그밖에 공사를 시작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비용은 대장동 택지 분양과 관계된 배당금이다. 아파트 분양과는 상관없는 택지 분양 배당금이다. 그 후로 분양 한 택지들에 시공사들을 통하여 아파트가 지어진 후 2017년 까지는 아파트 분양 이익금이 크게 높은 편이 아니었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분양이 이루어지고 입주가 시작된 2018년부터 아파트 값이 치솟은 것이라고 한다.
<성남의 뜰- 시행사/ 화천대유 - 운영회사 및 시공사>
‘성남의 뜰’이라고 이름이 붙은 ‘시행사’에서 만든 운영회사가 ‘화천대유자산관리’이다. ‘성남의 뜰’은 특수목적법인인 페이퍼 컴퍼니이다. 그러니까 시행사인 ‘성남의 뜰’은 지분만 명시되어 있는 형태이다. 그러므로 ‘성남의 뜰’은 실질 운영사가 아니다. 해서 사람이 상근하며 근무해야 하는 실질 운영회사가 필요하다. 그렇게 만들어진 회사가 ‘화천대유자산관리’회사이다. 이곳에서 실질적인 운영을 했다. 화천대유라는 '실질운영회사=시공사'를 운영한 사람이 김만배이다.
(첨가 *최근 2022/03/07일 뉴스타파가 내보낸 ‘김만배 음성 파일’에서/ 이 화천대유가 ‘성남도시개발공사’ 운영비용 250억 원을 주도록 약정으로 명시해 놓았다고 밝히고 있다. 이 비용은 우선주 배당 약정과는 상관없는 금액이었다. 그래서 김만배가 이재명에게 공산당 같은 XX라고 떠들자 성남시의원들이 찾아와서 말렸다고 한다. 이러한 김만배의 불만섞인 소리들을 그대로 모아서 이재명이 반시장주의자라고 ‘국민의 힘’에서 이재명에게 덧씌운 거 같다. 이번 대선에서도 그 프레임을 그대로 뒤집어씌우는 형태로 선거 전략을 짰던 거 같다.)
그러니까 성남시는 50%+1주 라는 지분을 갖고 나머지 49%는 참여한 하나 컨소시엄과 여러 업체들에게 할당되었다. 시행사 ‘성남의 뜰’은 성남도시개발공사 + 하나 컨소시엄이 만든 특수목적법인이다. 이 시행사를 운영할 비용 250억원을 김만배 즉 화천대유가 지급하도록 성남도시개발공사 방침을 미리 정해 놓았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방해를 무릎 쓰고 만들어진 성남도시개발공사는 일단 돈이 없었다. 지방채 발행도 좌절되었기 때문이다. 대장동 개발 사업을 하려면 이 시행사 비용도 충당해야 한다는 조건을 붙여 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성남도시개발공사는 실질 운영에는 참여하지 않고 택지 분양 비용만 환수했고, ‘대장동 제1공단 결합도시 개발구역 개발계획’ 입찰에 낙찰된 하나 컨소시엄에서 ‘운영회사’를 만들었고 그 회사가 ‘화천대유자산관리사’이다. 화천대유는 택지분양 등의 실질적인 일을 처리했고, 택지 분양 대금 및 여러 가지를 처리했던 것 같다. 그리고 성남도시개발공사와 약정한 금액 3700억 원을 우선 성남도시개발공사에 지급하였다.
화천대유에서 SK 증권을 끼고 신탁 지분을 만들었는데, 바로 천하동인 1호~7호이다. (첨가 * 최근 2022/03/07일 뉴스타파가 내보낸 ‘김만배 음성 파일’에서/ 원래는 김만배가 천하동인 1호~18호를 만들었는데, 법조인들이 20여 명 대거 참여하려고 했었는데, 성남도시개발공사가 택지분양 대금 3700억원을 선 배당 받아가자 모두 참여하지 않겠다고 하여 하나도 팔지 못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래서 그 자신이 그것을 다 떠안아서 지분을 많이 소유하게 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천하동인 1호는 김만배 100% 지분 소유라고 하고, 나머지도 모두 화천대유와 연관된 사람들의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천하동인 신탁 구좌를 팔지 못하게 되어 김만배 자신과 그 주변과 가족이 대신 떠맡은 셈이 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이것을 팔아야 자금을 모으거나 담보 대출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김만배가 천하동인 1호 18호를 팔려고 하는 대상들이 대체로 법조인들 이었다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왜 법조인들이 주축이 된 것일까? 후에 50억 클럽 명단에 든 이들은 나중에 합류한 것일까? 대장동 개발 사업 김만배 게이트의 특이점은 단순 투기세력이 아니라 법조인들과 정치인들이 개입되어 있다는 것이다. 기업들도 아니고 법조인과 정치인들이 연관되어 있어서 기존의 땅 투기 세력과는 양상이 조금 다르다고 여긴다. 본격적으로 이러한 루트를 열어 놓은 것은 이명박이다. 이번 대선의 형태도 법조인이 전면으로 부각되었고 출마도 하였다. 이렇게 대놓고 자신들의 정체를 수면 위로 떠올리는 형태는 그 자체로 국민을 겁박하는 양상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다.
정리하자면, 성남시는 ‘성남도시개발공사’가 입찰에 낙찰된 업체와 함께 ‘성남의 뜰’이라는 시행사를 만든다. 그 낙찰된 업체가 하나 컨소시엄이다. 지분 구성은 성남도시개발공사가 ‘우선주’ 50%+1주를 갖고 나머지 49%는 하나 컨소시엄을 비롯해 배분된 ‘보통주’ 형태이다. 우선주는 택지개발 분양에서 파생한 이익금을 우선적으로 배당 받는 것을 말한다. 보통주는 수익이 나는 형태에 따라 배당률이 달라진다.
이 보통주는 나중에 깡통주가 될 수도 있고 이번 집값 폭등 사례처럼 대박을 치는 경우도 있는 유동성이 큰 형태라고 생각 된다. 위에서 말했듯이 성남도시개발공사가 우선주로 배당금을 현찰로 미리 확정 받으면 나머지 지분으로 그들이 알아서 하는 구조이다. 그리고 운영회사는 하나컨소시엄에서 만든 것이므로 그 이후 자본금을 끌어 오는 것은 그들의 몫이었을 것이다. 김만배는 자본금을 끌어 오기 위해 천하동인 1호 ~18호를 만든 것이 된다.
성남도시개발공사 역시 화천대유처럼 성남시 몫으로 택지를 분양 받았다. 임대아파트를 짓는 용도였다. 다른 택지들은 그 택지를 사들인 건설사들이 시공사가 된다. 화천대유가 아파트 건축 시공사를 겸한 것은 화천대유가 분양 받은 택지들에서였다. 대체로 대장동에 아파트를 건축한 시공사들은 모두 브랜드 회사들이다.
이 브랜드 회사들이 시행사를 겸하지 않은 이유는 그것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부채율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한 택지분양이라는 시행사의 선점을 화천대유가 맡아서 한 것이고, 그만큼 화천대유는 성남도시개발공사가 만든 조항에 따랐어야 한다는 말이 된다. 이러한 시행사와 시공사의 분리작업은 다른 건설사들에게도 나쁠 것이 없었던 것이라고 보인다.
그리고 분양을 시작할 당시에 분양이 생각보다 잘 이루어지지 않아서 모두 남판교라는 명칭을 꼭 붙여서 판촉활동을 했다고 한다. 서판교 이름값에 묻어가는 형태였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다가 집값이 폭등했던 것이다.
시공사들에게도 난제는 있다. 시공사들에게 이익을 보지 말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화천대유 안에서 일어난 일은 그들 간의 커미션이므로 그들 간의 관계를 파악하여 법적으로 하자가 있으면 처벌하여야 할 것이다. 투자자를 모집한 것과 분양하는 과정에서 어떤 문제들이 있었는지는 그들 안에서의 일이었다.
성남도시개발공사가 시행사가 될 수는 있지만 시공이나 등등에 있어서는 역량 부족이라서 민간에게 맡겼다고 한다. 성남도시개발공사 설립 후 바로 추진된 계획이기에 더 그랬을 것이다. 그 역할을 화천대유가 한 것이다. 성남도시개발공사는 대장동 지구 개발 사업에 있어서 택지 분양 이익금 환수만 했고, 그 이후 추가로 성남시의 부대 시설 시공을 화천대유에게 추가로 부담 시켰다.
한편으로 임대아파트는 대장동 지구 분양에서 임대 아파트 건설은 별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고급 아파트들이 들어선 아파트 단지에 임대아파트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애로 사항은 크다고 여긴다. 이미 뉴스나 기사에서 공공연하게 그런 이야기와 장면들을 목격하며 사는 시대가 아닌가.
대장동 지구 개발 사업 명칭 변경이나 임대아파트 건설 계획이 바뀐 것이나 모두 분양과 관계된 일이지 않을까. 우선은 개발사업 명칭이 다소 모호하다. 근린공원이 대장동에 조성되는 것은 아니고 성남시 도심지인 신흥동 제1공단 지대에 건립되기 때문에 거리상으로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러니 근린공원과 대장동 개발사업이 하나의 명칭으로 묶여야 할 하등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단지 명칭으로 묶여 있었던 이유는 ‘대장동 개발 택지분양 이익 배당금’이 근린공원에 사용될 재원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아파트를 분양해서 이윤을 보든 적자를 보든 그것은 아파트를 지은 후의 시공사들의 문제이고, 근린공원 조성비용은 대장동 택지 개발 분양 비용으로 충당한다는 것이 우선 조건이었던 것이다. 성남도시개발공사는 약정대로 택지 분양 후 분양 이익금 대금을 우선 배당 받았다.
그 이후는 분양 받은 택지들에 아파트를 짓는 시공사들의 문제였던 것이다. 아파트 미분양이 속출하면 시공사는 망하거나 타격이 크다. 대장동 지구 개발 사업 초기 명칭이 변경된 이유는 이런 이유들에서일 것이다. 사업자들도 이득을 남겨야 회사에 타격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회사들도 모두 사람들이 근무하며 운영되는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화천대유가 모든 시공사들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그러니 화천대유 기준으로 모든 시공사를 모두 매도하는 것은 경계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된다.
화천대유가 이렇게 큰 이슈화가 될 것을 그때는 보이지 않게 은폐되어 있어서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시공사들 역시 분양으로 이득을 볼지 안 볼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어떻게든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 그들은 뛰고 또 뛰었을 것이다. 그것이 로비의 한 방법이었는지 아니면 아파트를 짓기 위한 투자금을 끌어 오기 위한 방편이었는지 아니면 인지도가 필요했는지, 어쨌든 대출을 받고자 하는 용도도 있었을 것이다.
만약에 성남도시개발공사가 우선주가 아닌 보통주로 지분을 가지고 있었다면, 성남시는 아직 근린공원과 터널 등등을 확충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시공사들이 이익금 배당이나 환수금 상환 거치가 5년이어서 제때 납부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공사가 언제 완공될지, 분양이 언제 마무리되어 배당금과 개발이익금을 환수할지, 그리고 50%와 1주에 대한 이익배당금이 얼마가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해서 이재명은 그런 우려를 미리 차단하여 성남시 개발과 변화에 주력하고자 하였던 것 같다.
(첨가 * 2022/03/07일 뉴스타파가 내보낸 ‘김만배 음성 파일’에서/ 다시 재구성해 보자면, ‘조우형’은 부산저축은행 박연호 전 회장의 사촌 처남이다. 2009년에 ‘조우형’은 대장동 민간개발업자들인 ‘이강길, 남욱, 정영학’에게 1,155억원을 부산저축은행이 불법으로 대출해 주도록 알선하고 10억 원을 받은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었다. ‘윤석열’이 조우형을 봐주고 수사를 덮은 이유는 '박영수'가 주선했기 때문일 것이다.
조우형은 2011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부산저축은행 사건 조사와 관련해 조사만 받고 입건되지 않았다. 당시 불법 대출 사건으로 70여 명의 관련자를 대거 구속기소했으나 ‘조우형’만 무혐의 처리되었다. 2015년 수원지검 재수사 때 조우형은 구속 기소되어 징역 2년 6개월을 복역했다. 이때 기소한 이유도 쓸모가 다하였기 때문이지 않을까./
결국 조우형이 알선해준 부산저축은행 불법 대출 자금은 대장동 택지 매입으로 흘러들어 왔고, 그 흘러들어 온 돈을 ‘성남도시개발공사’가 회수한 셈이 된다. 부산 시민의 돈이 대장동으로 흘러 들어와 다시 성남시가 회수한 셈이 되므로 부산시민의 돈이 성남시민에게 되돌아간 셈이 되었다.
부산저축은행에 억울하게 당한 부산시민의 돈이 비록 성남시민을 위해 쓰여 졌지만 어쨌든 그 돈이 회수되었다는 것에 일말의 안도감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돈을 먹으려고 여기저기 매수하고 인맥을 동원하였다. 결국 검찰의 파워가 커진 이유가 돈 때문이지 않을까? 그 돈줄을 직접 조달하는 형태로 바뀌었기 때문일 것이다. 브로커나 로비스트 그리고 투기토건업자들이 돈을 가져다 바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서로서로 봐주기를 하면서 공생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성남도시공사 설립 배경 / 대장동 지구 개발 분기점 - 민·관개발로 방향 선회>
2009년 10월에 LH공사가 대장동 지구 공영개발을 철회한 후 이재명은 2010년 7월에 성남시장이 되었다. 이재명은 공영개발이 이미 좌초된 상태에서 성남시장이 되었다. 이재명은 공영개발로 방향을 다시 선회하려고 성남시의회에 지방채 발행을 건의 했으나 성남시의회에서 지방채 발행을 부결했다. 그리고 ‘성남도시개발공사’ 설립 조례안 역시 부결되었다. 새누리당 소속 시의원 박00가 대장동 공공개발을 반대하여 등원을 거부 했다. 그리고 2014년 1월에 ‘성남도시개발공사’가 설립된다.
<대장동 지구 개발 분기점 - 민·관개발로 방향 선회>
바로 2014년 1월이 ‘대장동 지구 개발 사업’의 방향이 바뀐 변곡점이었다. 성남도시개발공사가 어떻게 설립하게 되었는가를 따져보는 것은 대장동 지구 개발 사업의 전후를 파악하는데 아주 중요한 열쇠란 생각이 든다. 살아남은 남욱 라인과 연계된 김만배 라인은 모두 박영수와 연관이 깊기 때문이다.
대장동 개발 사업이 중대한 전환점을 맞은 시기는 2013년이다. 이때 성남시의회에서 ‘성남도시개발공사 조례안’이 통과되었기 때문이다.
성남시의회에서 ‘성남도시개발공사’ 조례안이 통과되어 '2014년 1월에 성남도시개발공사가 설립'된 배경은 이러하다.
전 성남시의회 6대 후반기 의장 최윤길은, 2010~2012년 6대 성남시의회 전반기 당내 경선에서 의장 선출에서 탈락한다. 이에 새누리당 소속 시의원들과 당내 내분이 있었고, 최윤길은 새누리당을 탈당한다. 이에 김만배(전 마니투데이 법조팀장/이때는 아직 화천대유자산관리사가 만들어지기 이전)가 최윤길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더불어민주당 윤창근 시의원을 설득한다. 후반기 의장 선출 시에 최윤길을 지지해달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김만배는 최윤길에게 하반기 시의회 의장 선출을 도와주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의장이 되면 ‘성남도시개발공사’ 조례안이 통과되도록 도와 달라고 했다고 한다. 대가성에 대한 의혹은 조사에서 밝혀질 것이니 여기에서는 생략한다. 그 무렵 최윤길은 새누리당을 탈당하여 무소속 상태였다. 그 무렵 성남시의회 원내 구성은 새누리당 19명, 민주당 15명이었다. 탈당한 최윤길을 비롯해서 2명의 시의원이 민주당에 입당한다. 그래서 인원이 역전되었다. 새누리당 16명, 더불어민주당 18명이 되었다. 그리고 최윤길은 2012년에 무소속으로 성남시의회 후반기 6대 시의회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그 후 최윤길은 더불어민주당도 탈당하여 2018년에 무소속으로 시의원에 출마하지만 낙선하였다.
과연 최윤길은 김만배의 말만 믿고 김만배의 뜻을 선선하게 따라 준 것일까? 배당금이 대가성이라고 하지만, 김만배의 뒤 배경을 더 믿은 것은 아니었을까? 최윤길은 2021년 2월 화천대유 부회장으로 채용되어 화천대유에서 근무한다. 그리고 2022년 2월에 구속 기소되었다.
이러한 과정은 국회나 정당 활동의 방식 그대로이다. 서로 과반수를 충족하기 위해 혹은 그 자신의 이해득실에 따라 옮겨 다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는 국민이 그 과반수 충족을 선거에서 결정해 주기도 하지만, 항상 선거가 끝나고서는 옮기거나 부정부패에 연루되어 자격을 박탈당하거나 등등에 있어서 결원이 부족해지기도 한다. 각 정당의 정족수를 더 채우려고 하거나 혹은 빼앗기지 않으려고 갖은 수를 쓰지만 대체로 그 자신의 이해와 충돌하면 더 유리한 쪽으로 결정 하는 것 같다. 성남시의회에서도 마찬가지 방식이었던 것 같다. 철새라고 욕을 먹기도 하고 기회주의자라고 비난도 받는다. 문제는 얼핏 보면 욕을 먹을 거 같은 이들의 행동에 의해서 오히려 성남시와 민주당에게는 유리한 포지션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는 어떤 이해관계가 한 점으로 모아지고 있다. 이재명과 성남시는 ‘성남도시개발공사’ 설립 조례안이 통과되기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었던 상태라고 볼 수 있고, 거기에 더불어민주당 소속 성남시의원들 역시 조례안을 통과 시키려고 당력을 집중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최윤길은 시의회 의장이 되려고 사활을 걸었다고 볼 수 있다. 거기다가 조례안 통과를 학수고대하는 김만배가 있었다. 모두 같은 방향으로 바람의 키가 작동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단, 새누리당만 ‘성남도시개발공사’ 설립 조례안 통과를 부결시키려고 하였다. 조례안 통과 시에 몸싸움과 등원 거부 등이 있었고, 시의원 박00는 밖으로 나가려고 했는데 저지당해서 못 나갔고, 등원으로 인정되어 과반수 참석이 확정되어 조례안이 통과되었다고 하는 것을 어떤 글에서 읽었다. 이런 장면은 예전에 숱하게 보아 온 국회의 한 장면이기도 하다.
새누리당 소속 성남시의원들이 대장동 개발 지구를 LH공사에 맡기려고 했다고 주장하는 글을 읽었다.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전까지 쭉 공영개발을 반대하던 이들이 갑자기 LH공사에 맡기려고 했다는 주장은 신빙성이 없다. 그리고 이명박 때는 이명박이 대놓고 LH공사는 민간사업과 경쟁하지 말라고 공공연하게 발언했다.
2014년은 박근혜 때이고, 그들이 1년 사이에 공영개발로 태도가 바뀌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그 당시 LH공사 사장 이재영은 부채를 절감하느라 경기 정자사옥 1층 로비 벽면에 부채시계까지 걸어 놓고 ‘부채 줄이기 운동’을 하고 있었고, 전국의 사업 진행은 41개 정도였다. 과연 대장동 지구를 공영개발로 할 여력이 있었는지 의심스럽다. 아마도 했다고 치더라도 이재명이 고안한 방식이 아니고서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이재명이 그것을 박근혜 정부에게 덥석 안겨 줄 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그리되면 개발 이익 환수는 요원했을 것이다.
대장동 개발을 민간개발로 추진하려는 시도는 2010년 이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다. 2010년은 이재명이 성남시장으로 당선된 해이고 그 이후로도 공공개발 시도는 모두 좌절되었다. 성남시장 이재명과 성남시의회가 추진하는 ‘성남도시개발공사’ 설립은 대장동 지구 개발을 순수하게 공공개발로 추진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못한 상태에서 성남시가 대장동 개발 사업에 주도권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기도 하였다. 이 ‘성남도시개발공사’를 설립하는데 어찌 보면 김만배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김만배는 왜? 성남시장 이재명을 도운 것일까? 성남도시개발공사 설립은 이재명은 숙원사업이기도 하였는데 말이다. 그리고 한나라당은 오랫동안 대장동 개발을 민영개발로 추진하려고 온갖 방해를 시도하였는데 말이다. 김만배가 국민의 힘과 엮여있다는 것은 화천대유에 소속된 사람들 명단과 50억 클럽 명단만 보아도 확연히 드러난다. 그런데 왜? 김만배는 ‘성남도시개발공사’ 설립을 나서서 도운 것일까? 기회는 아무 때나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김만배는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재명을 도운 것이 아니라 김만배는 그 자신을 도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대장동 지구 개발 사업이 진행되어야 지루한 답보 상태를 벗어나서 뭔가 일을 진행 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일은 진행되어야 하는 것이고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느냐 일 것이다. 김만배는 스스로 이재명 방식을 따르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정치에서 누가 누구를 활용했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고 본다. 서로 활용할 여지를 주는 것이 정치고 또한 모든 관계의 기본이다. 자신은 철벽치고 남만 활용하겠다고 생각한다면 애초에 관계는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이야말로 도둑심보일 것이다.
서로에 대해서 활용할 여지를 주는 것에서는 반드시 직접적일 필요는 없다. 수용 가능한 선이란 것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상대가 수용할만한 조건을 제시하는 것에서 보자면 먼저 그런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 환경을 만드는 것에 동참하는 것이 무엇보다 그 자신의 의지를 드러내는 일일 것이다. 그 정도의 여지를 열어 놓은 것에서, 다양한 모색이 가능해진다.
‘민과 관이 공동개발하자’라는 그런 여지의 한 모퉁이를 통해서 저들은 스스로 길을 찾고 ‘방해벽’을 제거한 것일 것이다. 자신들이 다 먹지 못하고 나눠줄지라도 사업을 할 수 있어야 뭐라도 건질 빌미가 생길 것이고 그 다음은 그 자신들 하기 나름이라고 여겼을 테니까. 이명박이 2009년 LH 공사 축사에서 한 발언은 여기에도 잘 들어맞는 것 같다. “오로지 스스로와 경쟁하라” 는 바로 “스스로 길을 찾아서 그 자신들이 로비로 세웠던 방해벽을 다시 해체하라”였지 않을까.
이재명은 여지를 열어두고 게임의 장에 변화가 오도록 유도했다. 부동산 업자들에게 이재명은 반시장주의자가 아니라고 어필된 것 자체가 바로 '민과 관이 결합된 개발 사업 형태를 구상한 것'이었다. 사업에는 이윤이 남아야 한다는 것 또한 이재명은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었다고 여긴다.
그러므로 김만배가 이재명을 도운 것이라기보다는 그 자신의 목적을 위해 성남도시개발공사가 설립될 수 있도록 한 것이겠다. 어쨌든 ‘성남도시개발공사’가 만들어져야 뭔 일이 되어도 될 상황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김만배 회사에 온통 그들 자신과 관계된 사람들뿐인 것을 보면 그것은 더욱 더 분명해진다. 그러니 김만배는 오히려 다시 이명박과 싸운 셈이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방해벽은 모두 이명박 때 세워진 것이니까 말이다.
*한편으론 김만배 이 사람, 진짜 재밌는 사람이란 생각을 해본다. 이러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이쪽과 저쪽을 연결하여 상대가 원하는 것을 취하도록 하고 그 자신도 취한다. 문제는 부동산 값이 오를 거라는 예상은 쉽지 않은 문제다. 그리고 왜 50억을 기준하여 돈을 나눠 준 것일까? 거기에도 어떤 이유가 있겠지만 말이다. 이러한 일들이 분명 드러날 테인데도 그렇게 해야 했었던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낙후된 도심지 안에 새 공원 건립과 도시 주변부에 새롭게 개발된 새 아파트 단지와의 차이>
대장동 지구와 제1공단에 들어 설 근린공원, 이재명이 그토록 만들고 싶었던 공원이 들어 설 도심지의 환경과 개발될 대장동 지구와의 환경 차이는 아마도 천지 차이일 듯하다. 부자동네 개발해서 서민층 지역에 근린공원을 만드는 것은 강남구 세금을 서울 전역에 배분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하나의 지구가 개발되면 그곳이 하나의 구가 되거나 동이 될 텐데, 새로 만들어진 지구단위 동네는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같은 도시 안에서도 지역구 차별이 생겨나고 있다.
그것을 그나마 방지하려면 도시 안의 생활환경이 전반적으로 비교적 균일함을 갖춰야 한다. 완전히 평등해질 수는 없겠지만, 평균 형태로까지는 다른 지역구들 역시 균형 발전이 있어야 할 것이다. 대장동 지구에 들어선 아파트 면면을 보면 새 아파트이고 또한 가장 최근에 완공되었고 아파트 값이 폭등하였으니 그 위세가 얼마나 양양할지는 불을 보듯 빤하다. 새로 개발된 곳이나 신도시들은 모두 새로게 조성된 환경이다. 당연히 구 도심지와 환경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런 과정에서 소외와 차별이 발생한다.
해서 낙후된 도심지에 공원이 생기면 그 공원을 중심으로 생활환경은 개편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활이 변화하면 사람도 덩달아 변화한다. 세상에 고착된 것은 오직 편견뿐일 것이다. 환경이 바뀌면 사람도 바뀐다. 또 사람은 그렇게 적응하며 산다. 환경이 좋아지면 삶도 좋아지는 것은 당연지사 아닐까. 그렇게 어느 정도 평형이 이루어지면, 자기 사는 곳 환경이 사는 데 크게 불편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불필요한 곳에 욕망을 덜 낭비하게 되지 않을까. 물론 인간의 욕망이 반드시 자로 잰듯 그렇게 계산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충족선이라는 것은 분명 있다고 여긴다. 우선은 도심지에 근린공원이 들어선 것은 무조건 잘한 일이었다고 여긴다. 이렇게 가도 저렇게 가도 공원은 남는다. 그리고 그 주변을 어떻게 재편성 하는가의 문제일 것이다.
한편으론 아파트 값이 치솟은 이유는 고급 아파트, 녹지가 풍부한 아파트에 대한 갈망, 새 아파트에 대한 갈망도 컸다고 여긴다. 그러니 청약률 경쟁이 그리 치열했던 것이겠지. 집값이 폭등한 이유는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그동안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아파트를 생각보다 많이 짓지 않았었고 짓고 있던 물량과 문재인 정권에서 대폭 아파트 물량을 늘렸기 때문일 것이다. 집 공급을 늘리니 집값이 상승한 이유는 그동안 억눌린 집에 대한 욕망이 한꺼번에 분출되었기 때문이라고 여기며, 신축 아파트의 분양가들이 기존 아파트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해본다.
그리고 신축 아파트로 이주하는 이들이 아파트를 매물로 내놓았기 때문에 서울과 경기도에서 사람들의 대이동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물론 부동산 투기세력 역시 한몫을 했을 것이다. 기존 아파트 값으로 새 아파트 값을 충당하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고, 또 한편으로 5년 사이에 우리나라 상황이 몰라보게 변화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일련의 변화가 코로나시국에 집값에 모두 반영되어 버린 것이라고 여긴다. 코로나 시국에서 집의 문제는 곧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다고 모두 생각하게 된 것이지 않을까.
인간의 심리를 이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더구나 그 자신이 부동산 업자가 아닌 이상 부동산 시장 판세를 완전히 꿰뚫기는 어렵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 부동산 지식을 익혀야 하는데, 솔직히 대장동에 관해서 그곳과 관계된 부동산 업자가 아니라면 그 속내를 속속들이 알기는 어렵고 또한 어느 부동산 업자가 이재명 시장에게 부동산 값이 오를 거라고 말해주겠는가? 다들 죽는 소리만 늘어놓거나 겨우 투자금이나 건질 거라고 우는 소리를 하겠지.
그리고 이재명이 우선주와 보통주에서 우선주를 선택한 것은 마치 매트릭스에서 빨간약과 파란약 중에서 선택해야 했던 것 같다고 여긴다. 무엇을 선택했던지 간에 그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의 관심은 근린공원 건설과 터널 공사, 도시의 부대시설 등등의 숙원 사업을 해결하는 것에 있었다고 보인다. 돈은 그때 바로 필요했고, 아파트 분양은 그 후 몇 년이 지나서 이루어졌다. 이미 환경이 또 바뀌었다. 처음 성남시장이 된 그 당시의 이재명에게 우리는 지금 기준에서의 이재명을 투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지금의 이재명은 성남시장을 거쳐서 경기도지사를 하고 있는 상태에서 대선 후보가 되었다. 지금과 2015년의 환경은 또 다르다. 지난 5~6년 동안은 대한민국이 갑자기 점프한 시기이기도 하다. 모든 면에서 변화되었다. 그리고 부동산 가격도 그에 맞춰서 뻥튀기 되었다. 그것이 이재명 탓은 아닐 것이다. 코로나 시국이기는 하지만 나라의 전반적인 형태는 예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상황이 좋아져서 그 혜택이 부동산으로 튄 것은 모순이지만, 가장 쉽게 영향을 받는 것이 부동산인 것은 사실이다. 그동안 억눌려진 부동산에 대한 갈망이 그렇게 폭발한 것은 어떻게 하기는 어려운 문제라고 여긴다.
그 억눌림은 모두 이명박·박근혜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집을 짓지 않았고 LH 공사의 손발을 묶어 놓은 것도 모두 두 정권에서이다. 그리고 집을 사라고 독려 했던 것도 모두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였다. 그러나 국민들은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부동산 경기가 장기 침체 상태였었기 때문이다. 저렴한 이자로 대출해준다고 해도 집을 사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미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이었지 않을까? 무엇보다 살만한 집이 부족했기 때문이었지 않을까? 그리고 돈 되는 아파트 개발은 모두 민영개발에 밀어 주고 서민들에게는 헌 집을 사라고 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리고 새로 지은 아파트는 인프라가 형성이 안 된 외진 곳이 많았다고 한다. 집만 덩그러니 있는 형태여서 집을 사고 싶어도 살 수가 없는 그런 시대였지 않을까. 그리고 뉴타운 건설로 몸살을 앓았기 때문에 모두 재개발이나 또는 집을 사는 것에 회의적이었을 것이다. 뉴타운 역시 이익의 관점으로만 접근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집값이 올라야 재개발 했을 때 아파트 한 채를 그나마 보상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지 않을까.
뉴타운 이외의 지역들도 개발을 해야 했는데 하지 않았기에 집이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그러니 서민들의 실수요에 맞춘 정책이 아니었기 때문에 서민들이 뉴타운이나 재개발 그리고 신축 아파트로의 이주에 거부감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니 부동산 정책이 지지부진 되어 장기 부동산 침체기로 접어들었던 것일 것이다. 그리고 문재인 정권에 들어서서 신규 아파트 단지들이 보급되고 새 주택 물량이 풀리면서, 그 장기 침체기에서 벗어나는 순간과 대장동지구 새 아파트 분양과 맞물려 돌아간 것일 것이다. 해서 대장동은 분양은 폭발해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대장동 아파트 분양 수익이 폭발하지 않았다면 지금 대장동은 이렇게 쟁점화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이재명과 성남도시개발공사가 환수한 금액을 덮으려고 하거나 이익금 환수를 과하게 했다며 공산당이라고 몰아세웠을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과는 방대 상황이 펼쳐진 상태에서 반시장주의자라고 몰아세웠을 것이다.
해서 이번 대선에서 윤석열과 국민의 힘이 왜 더 환수하지 못했냐고 적반하장을 부린 억지들은 결코 윤석열과 국민의 힘의 진심이 아니다. 속에서 올라오는 쓴 물을 삼키며 국민들을 속이려고 억지로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 말에는 그들의 억지스런 원한이 숨겨져 있다. 다시는 국가나 지자체가 민영개발을 방해하지 못하게 하고 개발 이익을 환수하지 못하게 하려고 윤석열을 앞장세운 것이니까 말이다. 정권을 되찾겠다고 저러고들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아니다. 윤석열을 앞장세운 것이 아니라 국민의 힘이 검찰에 접수된 듯하다.
그렇구나, 검찰 손아귀에 국민의 힘이 접수된 것인가 보다 싶다. 매개물 없이 직접 돈과 소통하겠다고 전직 검찰총장이 정치 경험도 없이 대선에 뛰어 든 것을 보면 말이다. 아서라! 그동안 자기 집단의 경력만 가지고 대권에 도전해서 된 사람은 없었다. 정치는 정치 밥을 적어도 몇 십 년 먹어야 되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그것이 그나마 공정한 게임 아닌가 싶다.
실무형 정치가 이번 대선에서 가능한 이유는 그만큼 시간 안에서 축적이 이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 자산이나 경제적 자산이 축적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실무형 정치가 발을 디딜 틈은 없다. 그만큼 대한민국 안에 ‘축적’이 형성된 것이다. 저들도 그것을 알기에 뛰어들어 챙겨가고 싶겠지만, 절대로 안 될 일이다. 모든 것에는 주인이 있고, 이 축적된 자산의 가치는 ‘대한민국인의 것’이기 때문이다. -끝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