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한 표가 백 사람을 살린다 언론사 여론조사는 믿을게 못 되고, 알짜배기 정보는 재벌과 경찰, 국정원, CIA가 가지고 있다는거 아시죠? 이쪽저쪽의 비선으로 들은 바로는 지금 1, 2퍼센트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대략 30만표로 보는데, 판세는 총선과 큰 차이 없다고 보고, 총선의 15만표에 투표율 증가분 감안한 숫자입니다. TV토론 뒷바람이 부는데다 새누리가 요 며칠 초조한 표정을 들키고 있으니까 막판에 조금 더 올라갈 수 있겠습니다. 보통 이런건 3개월 전에 판세가 결정되어 있고, 먼 길을 돌아서 원래 갈 곳으로 가는게 보통입니다. 지난 총선은 새누리가 워낙 잘했고 우리가 못했습니다. 진보당의 자중지란, 구럼비와 FTA, 김용민, 한명숙의 무기력, 민간인사찰이 모두 대형악재였습니다. 저쪽은 투표장으로 갔고 우리는 안 가서 졌지만, 판 구조는 원래 우리가 이기는 구조였습니다. 수확은 못했지만 파종은 잘 했다는 거죠. 그 구도는 대선까지 이어지고 있고, 대선 기간 동안 양쪽이 다 안전운행을 해서 원래 정해진 판 구도만큼 각자 자기표만 가져갈 것으로 보는데, 그 경우 우리가 반집 승입니다. 물론 투표율 70퍼센트 전제로 하는 말입니다. 옛날에는 돈선거를 많이 했기 때문에 투표율이 80퍼센트에 달했고, 돈선거 없이 올라갈 수 있는 최대치가 70퍼센트입니다. 최대한 해야 합니다. 수도권 30대와 지방의 20대가 투표해야 확실하게 이깁니다. ### 저의 마지막 주장은 ‘사람을 살리자’ 입니다. 미국도 그런데 공화당 정부가 들어서면 사람이 많이 죽습니다. 자살, 교통사고, 살인, 전쟁, 테러 다 합쳐서 그렇다는 말이지요. 어떤 명목이든 보수가 집권하면 사람이 죽어나갑니다. 그 이유는 보수의 본질이 인간의 무의식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집단에 위기가 오면, 어떻게든 그 위기를 테스트하려는 본능이 있습니다. 마을에 낯선 사람이 이사를 오거나, 학교에 누가 전학을 오면 일단 붙어서 싸움서열을 정하려고 하는 본능입니다. 그들은 적이 눈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 합니다. 적이 눈에 보이는 위치에 있어야 안심하며, 적의 힘이 얼마나 되는지 수시로 테스트해야 직성이 풀립니다. 이는 원래 인간의 타고난 본능이므로 어쩔 수 없습니다. 수구꼴통이 멍청하다는건 세상이 다 아는데 왜 국민의 절반이 수구꼴통에 투표를 할까요? 유전자의 명령 때문입니다. 왜 교실에서 왕따나 이지메가 일어날까요? 왜 정글의 부족민들은 해마다 전쟁을 해서 사람을 죽일까요? 다 유전자의 명령 때문입니다. 원래 보수 유전자가 있습니다. 태어날때부터 진보, 보수 성향이 정해진다는 학계의 보고도 얼마전에 있었습니다. 보수유전자는 합리적으로 생각을 해서 판단하지 않습니다. 대신 집적거려 보고 판단합니다. ‘노숙자가 얼마나 힘들까?’ ‘얼어죽는지 보자.’ ‘농민이 얼마나 힘들까?’ ‘농약 먹고 자살하는지 보자.’ ‘학생이 얼마나 힘들까?’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리는지 보자.’ ‘북한이 얼마나 위험할까?’ ‘테러하는지 보자.’ ‘북한이 테러를 안 하면?’ ‘테러를 할 때까지 자극해보자.’ 그들은 인간을 수치심과 모욕감에 노출시킵니다. 그래서 대상의 반응을 보고 대응합니다. 이는 진화법칙이며 자연의 작동원리입니다. 자연의 법칙은 밸런스입니다. 밸런스의 원리는 절대강자의 출현을 절대로 막도록 되어 있습니다. 절대강자가 생태계를 초토화 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절대강자인 인간은 전쟁을 해서 서로 죽임으로써 숫자를 줄이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인간은 자연법의 한계를 넘었고, 절대강자로 군림하고 있고, 제 3차 생물 대멸종을 야기했습니다. 브레이크 없는 폭주가 시작된 거죠. 자연법의 시대는 가고, 이성법의 시대가 온 것입니다. 이제는 전쟁을 통한 자연적인 인구조절이 아니라 합리적인 이성의 판단을 통한 정밀제어로 가야만 합니다. 그것이 진보입니다. 제임스 길리건의 저서를 참고할 수 있습니다. ###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의 저자 제임스 길리건은 미국 정신의학자로 40년 이상 폭력의 원인과 예방을 연구해온 사람이다. 1900년부터 2007년까지의 살인율과 자살률에 대한 통계를 분석해 보수(공화당)가 집권하면 ‘폭력 치사’(자살과 타살을 아울러 ‘폭력 치사’라고 부른다)가 크게 증가하고 진보(민주당)가 집권하면 감소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폭력 치사 발생률이 급증한 세 번의 시기가 모두 공화당 소속 대통령이 집권한 시기와 겹쳤다. 폭력 치사의 증감에 영향을 끼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실업이었다. 실업률이 높아질수록 살인율과 자살률이 높아지며, 실업과 연관된 경제 변수인 빈곤, 불평등, 불황 또한 폭력치사 발생률과 정비례했다. 사람들을 강력한 수치심과 모욕감에 노출시키기 쉬운 정책을 펴는 공화당 집권기에 사회.경제적 지위를 상실했을 때, 특히 해고를 당했을 때 극도의 수치심과 모욕감을 경험한 사람들이 ‘폭력 치사’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더 많이 했다. ###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까? 그리고 이명박 5년간의 무수한 죽음이 과연 우연일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이성적 판단보다 유전자의 명령을 따르며 유전자는 끝없이 나약한 인간의 귀에 속삭입니다. “뭐 해? 사람을 죽이지 않고?” 사람을 죽여야만 공동체가 스트레스 받는 정도가 테스트 되며 그들은 끝없이 스트레스 테스트를 자행합니다. 그들은 사회에 모순과 혼란, 부조리, 경쟁, 악행이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도둑도 있고 경찰도 있어야 한다는 식이지요. 도둑도 없고 경찰도 없는 사회가 이상사회입니다. 사람이 죽을때까지 몰아붙여보고, 사람이 죽으면 큰 제사를 지내서 그것으로 주의를 환기시켜 손쉽게 의사결정을 하려는 본능이 있습니다. 이는 원시 공동체가 작동하는 방식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무지 의사결정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결정을 내려도 발목잡는 사람이 항상 있기 때문에 사람을 죽입니다. 희생자가 나오면 발목잡던 사람이 정신차려서 뒤로 물러서는 거지요. 당신의 한 표가 최소 100명에서 최대 1000명을 살립니다. 그 이상일 수도 있습니다. 꼴통들은 자연법주의자입니다. 자연법은 전체의 맥락을 통해서 이성적으로 생각해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사안이 발생할때마다 스트레스 테스트를 해서 ‘상대의 반응을 떠보고 판단한다’는 것이며, 그 반응을 보는 방법은 노숙자가 얼어죽는지 보는 것이며, 농민이 농약병을 따는지 보는 것이며, 학생이 옥상에서 떨어지는지 보는 것이며, 노약자가 우는지 보는 것이며, 북한이 남침하는지 보는 것입니다. 어떻게든 그들은 그것을 확인해내고 맙니다. 그 결과는? 사람이 죽습니다. 당신의 한 표가 사람을 죽이거나 살린다는 사실을 똑똑히 기억하십시오. 살인자가 되지 마십시오. 살인방조자가 되지 마십시오. 어떤 이유로든 수구세력의 집권은 살인의 증가로 귀결됩니다. 이건 정확하게 입증되는 정량적 분석입니다. ### 인간은 이성적인 동물이 아닙니다. 우리가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이유는 첫째 비합리적인 인간이 0점을 맞아서 발언권을 잃기 때문이고, 둘째 비합리적인 기업이 망해서 발언권을 잃기 때문이고, 셋째 비합리적인 국가가 멸망해서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경쟁의 끝에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거지, 원인측에서 보면 인간은 매우 비합리적인 동물입니다. 그런데 정치는 언제나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합니다. 축적된 경험을 지워버리고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므로 비합리적인 생각에 빠져 지난 번에 망한 코스로 한 번 더 갑니다. 합리성을 회복하려면 역사를 보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아는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하부구조로 전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을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보면 안 됩니다. 자연법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안 됩니다. 전체의 흐름과 방향성을 알고 가야 합니다. 처음부터 정답을 알고가야 합니다. 반집으로 이기는 이세돌 같은 사람이 그런 사람입니다. 답을 모르고 가는 사람은 절대 반집승을 할 수 없습니다.
http://gujoron.com/xe/?mid=Moon ∑ |
그 잔인함이 요즘 유독 역겹게 느껴집니다..
요즘 지인들을 만나게 되면 자연스럽게 문재인 후보를 소개합니다.
고등학교 소풍얘기, 친구 판사 얘기만 해도 문재인의 인간됨에
다들 드라마 같은 얘기로 감동받습니다.
이 정도만 해도 중도층에게 충분히 어필이 됩니다.
사람이 먼저였던 분. 이제 누가 장애우를 인간답게 대했는지에 대해 희야 얘기도 들려줘야 겠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마음이 많이 착잡했습니다.
제가 몸담았던 대기업 조직이 딱 저런 형태를 가지고 있었거든요.
저는 사회생활을 벤처기업-->외국계기업-->대기업 순서로 다녔는데, 대기업 조직에서 사람을 부리고, 업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깔짝깔짝 찔러보는거(스트레스 테스트!) 때문에 아주 죽을 맛이었는데, 아래 부분을 접하게 되니 제 경험과 딱! 맞네요. 실제로 사람도 죽고 ㅠ.ㅠ...
사람이 죽을때까지 몰아붙여보고, 사람이 죽으면 큰 제사를 지내서 그것으로 주의를 환기시켜 손쉽게 의사결정을 하려는 본능이 있습니다. 이는 원시 공동체가 작동하는 방식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무지 의사결정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결정을 내려도 발목잡는 사람이 항상 있기 때문에 사람을 죽입니다. 희생자가 나오면 발목잡던 사람이 정신차려서 뒤로 물러서는 거지요.
매일매일 비슷한 업무가 반복되는데, 매일매일 새로운 경험을 하는 조직은 최악이었습니다.
경험을 쌓아 시스템을 구축할 줄 모르고,
늘 문제가 생기면 떠넘길 희생자를 찾기 때문에,
모두가 노예가 될 수밖에 없었던 그 곳.
저는 개인적으로는 이 곳을 '도가니'라고 부릅니다만...
해결책은 탈출하는 수 밖에 별다른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방법이 있었을까요?
'조직'이라는 괴물이 관리자의 귀에 대고 나직이 읊조리는군요.
“뭐 해? 사람을 죽이지 않고?”
이 말이 참으로 두렵습니다.
글을 읽다보니 요즘 미국에서 가장 핫한 이슈인 '초등학교 총기난사 사건' 이후 미국의 여론 추이가 '총기규제' 쪽으로 기운다는 기사가 생각났습니다.사람이 죽기전에는 어떻게 해결을 못보다가, 일단 사람이 죽어야 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는 얘기가 딱 들어맞는 사건인 것 같습니다.
http://media.daum.net/foreign/newsview?newsid=20121218070817399
기존 법률을 유지하면서 시행을 강화하는 것보다는 총기규제를 강화하는 새로운 법ㆍ제도 마련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높아진 셈이다.
특히 민주당원은 새로운 규제법 처리에 찬성하는 응답 비율(50%)이 공화당원(16%)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 총기 규제 못합니다. 그럴수 있는 지경이 아니죠. 이미 발포했는데 (역사적으로 먼저), 그걸 먼저 감추면, 반대쪽이 발포할거고, 이거 규제 하지 못할겁니다.
총기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총기로서만 해결되는 사안이 문제죠. 전 미국 총기 문제 생각할때마다, 텍사스와 미국 남부 백인들의 잔혹사가 떠오릅니다. 피비린내.
보수 유전자. 끔찍하지만, 암유전자 만큼이나 지독합니다.
항상 궁금하던 사실이었습니다.
얼마나 멍청한지 눈에 빠안히 보이는데 왜 닭 을 지지하는가?
본능이어서 그랬군요. 이제 확연히 납득이 갑니다.
본능으로만 살려면 지금이 21세기일 이유가 없지요. 절벽에 토굴파고 살던 시절과 본질적으로 같은 거 아니겠습니까.
이웃나라는 확실히 토굴 파고 살던 시절로 회귀한 듯 합니다. 이시하라 신따로 류가 득세하는 걸 보니.....
우리는 왜구들과 좀 다를 겁니다.
오늘, 내일 그리고 그 다음 날 한국인들에게 본능을 뛰어넘는 엄청난, 순간적인 각성이 일어나서 본능이 "앗" 소리도 못하는 대승이 오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