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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458 vote 0 2024.06.29 (13:18:53)

    모든 것은 요짐보에서 시작되고 요짐보에서 끝났다. 요짐보를 능가하는 작품은 나올 수가 없다. 사실 요짐보도 서부극을 베낀 복제품에 불과하다.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캐릭터다. 영화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관객이다. 관객은 어느 진영에 속할까?

      
    속하지 않는다. 이것이 이 게임의 본질이다. 요짐보는 막대기를 공중에 던져서 막대기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간다. 무슨 뜻인가? 관객 마음대로 영화를 골라본다는 말이다. 관객이 갑이다. 일동 기립! 관객님들께 경례! 이 장면에서 관객은 마구 우쭐해버리는 것이다.

      
    이후 요짐보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흥행영화는 없다시피 하다. 한국영화 흥행의 시발점이 된 영화는 주유소 습격사건이 그렇다. 주유소 습격사건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영화평을 할 자격이 없다. 아쉽게도 한국의 평론가 중에서 주유소를 이해한 사람은 전혀 없다.

      
    주유소가 없었다면 충무로에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고 멀티플렉스를 돌릴 수도 없게 된다. 충무로는 주유소가 혼자 먹여 살린 것이다. 쉬리 같은 영화에 누가 돈을 대겠는가? 본전을 건진다는 확신은? 영화의 예술성보다는 자본이 들어왔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왜 자본이 들어왔을까? 서부극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서부극!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거짓말. 20세기의 이세계물 판타지. 서부는 이세계다. 그런 세계가 없다. 일 년에 서부극이 천 편씩 쏟아지는데. 무조건 돈이 된다. 무조건이 아니면 자본은 들어와 주지 않는 것이다.

      
    전성기 홍콩 코믹액션처럼. 조폭 흑사회가 조잡하게 만들어도 돈이 되었다. 조폭들한테 잡혀서 강제로 일 년에 영화 열 편 찍은 사람이 주성치다. 모두 흥행. 잘 만들어도 흥행, 못 만들어도 흥행. 서부극은 죄다 거짓말이기 때문에 무한복제가 가능한 보편성이 있다.

      
    주유소에서 무대뽀와 사인방은 짱깨군단과 양아치군단을 대결시켜 놓고 튀는데. 주유소의 구조가 요짐보와 같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요짐보 한 사람의 인격을 넷으로 쪼개놓은 것이 주유소다. 세르지오 레오네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은 셋으로 쪼개 놓았다.

      
    사실은 좋은 놈이 나쁜 놈이고 나쁜 놈이 이상한 놈이었던 것이다. 선과 악을 넘나들며 요짐보의 멋대로 행각을 제대로 실천하는 사람이 주유소습격사건의 무대뽀다. 이유는 없다. 그냥. 요짐보의 첫 장면, 막대기를 던져 그 방향으로 간다. 정의를 실현하지 않는다.

      
    게임이다. 설정놀이를 하고 그 세계관 안에서 누가 이기는지 보며 킥킥대는 것이다. 관객은 선과 악 어느 진영에도 가담하지 않는다. 이러한 게임의 본질을 세르지오 레오네가 간파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역시 설정놀이에 밸런스 게임이란 걸 알 수 있다.

      
    좋은 놈과 나쁜 놈 사이의 밸런스를 맞추려고 이상한 넘을 투입한 것이다. 요짐보는 좋은 짓도 하고 나쁜 짓도 하고 이상한 짓도 한다. 요짐보에서 주인공은 시체를 담은 술통으로 운반된다. 장고가 관을 끌고 가는 이유다. 떠돌이 장고는 그냥 서부극의 요짐보다.

      
    매드 맥스는 호주 사막으로 무대를 옮겼을 뿐 본질은 역시 요짐보다. 몇 개의 파벌로 나누고 이들을 대결시킨 다음 튄다. 중요한 것은 캐릭터다. 왜 잘나가던 한석규가 맛탱이가 갔을까? 송강호는 왜 살아남았을까? 범생이 한석규는 요짐보 캐릭터가 아닌게 문제다.

      
    최민식도 그닥 요짐보는 아니다. 송강호가 그나마 요짐보에 가깝기 때문에 연기를 대충 하면서도 천만영화를 다수 찍었다. 매드 맥스에서 멜 깁슨의 건들거리는 행동거지는 그냥 요짐보를 해먹은 것이다. 타란티노도 요짐보를 해먹었다. 하긴 서부극이 다 그러니까.

      
    모든 서부영화가 요짐보를 베꼈으므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고 봐야 한다. 스타워즈도 한솔로가 특히 요짐보 캥릭터다. 한솔로는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는 떠돌이다. 한솔로는 원래 주인공도 아닌데 최고의 인기 캐릭터가 되었다. 요짐보 담당이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흥행영화가 선과 악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떠돌이 캐릭터로 재미를 본다. 대충 찍어도 돈이 된다. 돈냄새 맡고 투자가 들어온다. 비로소 시스템이 굴러가기 시작한다. 이 구조는 백 년 후에도 지속된다. 선과 악은 부담되지만 게임은 룰을 바꾸면 되니까.

 

    여기에는 인류 공통의 코드가 있다. 필연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 다르마다. 바둑의 포석처럼 그것은 반드시 있다. 외계인이 영화를 만들어도 이와 비슷하게 흘러간다. 구조적 필연이다. 바둑은 아무 데나 두어도 되지만 이기려면 정석대로 두어야만 한다. 


    영화는 감독 마음대로 만들지만 흥행하려면 주인공은 선과 악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며 넉살 좋고 건들거리는 무대뽀 캐릭터라야 한다. 서로 베끼는 중에 먹히는 것이 살아남았고 그것은 중립적 캐릭터다. 조절장치다. 주인공은 싸움을 붙일 수도 있고 말릴 수도 있다. 


    밀당을 할 수 있다. 보통은 선이나 악에 속하여 운신이 제한된다. 성룡이 악당을 이기려면 초반에 졸라게 두들겨 맞아야 한다. 요짐보는 맞지 않는다. 스티븐 시걸은 요짐보 캐릭터를 베낀다. 아이디어의 생명력은 끈질긴 것이며 창작이 자유로워 보여도 다르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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