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론이란 무엇인가? 구조론은 한 마디로 ‘하나의 점에 다섯개의 포지션이 겹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세상 모든 이론의 뿌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이해하는데 있어서의 근본적인 딜렘마는 세상이 작은 원자의 집합으로 되어 있다면 그 원자를 집합시키는 접착제는 무엇이냐입니다. 그것이 구조입니다. 구조가 원자 혹은 원소들을 집합시킵니다. 하나의 지점에 다섯 포지션까지 들어가므로 집합되어 우주가 탄생하였습니다. 과학자들은 인과율을 근대과학의 기반으로 삼지만 ‘인과’라고 하면 벌써 원인과 결과의 둘로 나누어 지는데 이는 우리의 직관과 어긋납니다. 엔트로피의 법칙에 의해 우주가 한 방향으로 작동함은 진작에 규명되었습니다. 허블망원경에 의해 우주가 가속팽창하고 있음도 알려졌습니다. 빅뱅이론에 의해 하나의 출발점이 있다는 사실이 규명된 것입니다. 밑도 끝도 없는 무한 우주관이나 순환론적 우주관은 명확히 부정되었습니다. 옛날부터 제 1원인이니 일원론이니, 제 1철학이니 하며, 너도나도 1을 강조해 왔는데 ‘인과법칙’이라 하여 2부터 시작된다면 어불성설이지요. 모든 것의 출발점인 첫번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1이면서 동시에 2인 것, 혹은 1이면서 2가 되고 3이 되고 4가 되고 5가 되는 것입니다. 흔히 일원론이니 2원론이니 다원론이니 하며 말합니다. 그런데 일원론의 원(元)은 으뜸원인데 으뜸이 둘이거나 다(多)라면 자가당착입니다. 일원론이 아니면 이차론이라 해야 맞지 이원론일 수는 없습니다. 으뜸은 하나이기에 으뜸인 것입니다. 다원론이 아니라 다양론이 맞습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아는 인과율은 시간적 순서입니다. 공간이 아닌 시간이라는게 벌써 이상합니다. 자연은 공간에 펼쳐져 있습니다. 구조론에 의해 하나의 지점에 다섯이 들어가서 원자론의 원자와 같은 덩어리를 이룬다는 사실이 규명됩니다. 그것이 만유의 으뜸입니다. 여기에 에너지를 투입하여 사건을 끌어내면 시간적 순서로 풀어놓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풀면 인과율도 되고 질량보존이 법칙도 됩니다. 기하학도 되고 대수학도 되고 다 됩니다. 이것이 모든 학문과 사상과 예술의 궁극적인 출발점입니다. 그것이 일의적 동시결정입니다. 이는 결과에서 원인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우리의 인식방법과 완전히 상반되는 것이기에 이를 포착하려면 특별한 훈련이 필요합니다. 일의적 결정에서 중요한 것은 동시성입니다. 흔히 원인 다음에 시간이 흘러서 결과가 온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원인 안에 결과가 있습니다. 원인과 결과가 하나의 스틸컷에 동시에 공존하여 있음을 포착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는 텍스트가 아닌 이미지로만 포착됩니다. 텍스트는 이미 시간적으로 해체된 것입니다. 그래서 233개의 그림을 모았습니다. 원인과 결과가 한 지점에 공존하여 있음을 포착하십시오. 대표적인 예는 원근법입니다. 소실점을 찾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소실점에 의해 전체가 한 줄에 꿰어져 있습니다. 그림에 과학이 있습니다. 원근만 있는게 아니고 명암도 있습니다. 요철도 있고, 양감도 있고, 질감도 있고, 동세도 있고, 균형도 있고 비례도 있고, 공간감도 있습니다. 233개의 이미지로 깨달음을 훈련하시기 바랍니다. 이는 상부구조를 보는 훈련입니다. 배후에서 작동하는 보이지 않는 손을 보는 훈련입니다. 구조론의 이론적인 부분을 여러분이 다 알 필요는 없습니다. 질, 입자, 힘, 운동, 량을 따지는건 몰라도 됩니다. 그러나 아셔야 합니다. 허블망원경이 우주의 가속팽창을 확인한 것은 불과 10여년 전이 일이라는 사실을. 허블망원경이 우주에 대한 개념을 단번에 바꿔놓았습니다. 시간이 과거로 무한하다든가 하는 무책임한 관점은 완전히 부정된 것입니다. 우리 우주 안의 시간은 우리 우주의 탄생시점부터 카운트 됩니다. 단지 구조론적 세계관만 얻으셔도 확실히 유리한 지점에 올라서게 됩니다. 보통사람은 99.9999퍼센트 귀납적으로 사고하기 때문입니다. 논쟁을 하든 무엇을 하든 일단 유리하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는 자세만 얻어도 됩니다. 방향감각만 얻어도 됩니다.
점, 선, 면, 입체, 그리고 4차원 포함 자연에는 다섯 차원이 있습니다. 그런데 차원이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원자를 붙이는 접착제입니다. 가족은 무엇으로 접착되어 있나요? 핏줄로 접착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회사는 무엇으로 접착되어 있나요? 이익으로 접착되어 있습니다. 국가는 무엇으로 접착되어 있습니까? 집단적 의사결정으로 접착되어 있습니다. 종교는 무엇으로 접착됩니까? 공동체적 삶으로 접착됩니다. 만화나 게임은 재미로 접착되고 소설이나 영화는 반전으로 접착됩니다. 그렇다면 그림은 무엇으로 집착되고 음악은 무엇으로 집합됩니까? 그렇다면 자연은, 우주는, 세상은 무엇으로 접착되어 있습니까? 세상을 움직이는 모든 힘은 전자기력입니다. 전자기력은 무엇으로 접착됩니까? 수학은 전부 집합론입니다. 집합론은 무엇으로 집합됩니까? 모든 것을 그것이게 하는 그것은? 우주에 질량을 불어넣는 힉스입자 같은 것은? 두 당구공의 접점이 점입니다. 그 중 하나를 회전시키면 표면에 선이 그어집니다. 이런 식으로 4개의 당구공을 한 점에 집적시킬 수 있습니다. 거기에 일정한 크기를 부여하면 4면체가 만들어져 입체가 성립합니다. 여기에 에너지를 투입하면 4차원 밀도가 탄생합니다. 이상은 없습니다.
여러분은 바다 위의 배가 4면체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림을 잘 살펴보세요. 보입니까? 배에는 짐이 실려있습니다. 정확히 5소실점이 있습니다. 미술수업 때는 3소실점까지 배웁니다. 그러나 자연은 5소실점입니다. 이것이 출발점이며 사건의 진행은 여기서 하나씩 제거하는 형태로 갑니다. 여러분이 사업을 하든, 장사를 하든, 예술을 하든, 스포츠를 하든 게임을 하든 한 점에 다섯 개의 포지션을 물려놓고 시작해야 합니다. 단지 이것만 알아도 매우 유리해집니다. 축구라도 공과 그라운드와 두 팀과 승부를 합하여 다섯이 한 점에 맞물리면 게임이 시작됩니다. 여기서 하나가 빠지거나 하나가 남으면 뭔가 잘못된 것입니다. 구조론을 알면 직관적으로 지금 뭔가 잘못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5개가 한 점에 물려야 비로소 사건이 촉발되는데 그게 아니면 뭔가 허전합니다. 뭔가 어색하고 부자연스럽습니다. 그 느낌이 맞습니다. ‘사과가 왜 떨어지지?’ ‘그야 무거우니까 떨어지지.’ ‘아 그렇구나. 이제 답을 알았어.’ 근데 뭔가 허전하지 않습니까? 그 느낌이 맞습니다. 왜? 다섯 개가 한 점에 맞물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다섯 개의 포지션을 찾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과와 지구를 붙이는 본드는? 1) 사과 2) 무게 3) 지구 4) 떨어진다. 5)? 사과에 무게가 있다면 지구에도 뭐가 있어야 궁합이 맞지 않습니까? 그래야 떨어진다는 운동이 양쪽을 잇게 됩니다. 만유인력 발견입니다. 남녀가 데이트를 해도 남자가 창밖에서 휘파람을 불면 여자가 창가에서 손을 흔들고 뭐 그런 조합이 맞아야 하는거 아닙니까? 당연하지요. ‘돈오’의 233개 그림은 그 빠짐없이 갖추어져야 하는 다섯 개의 포지션을 알아채는 감각을 훈련합니다. 있을게 갖추어져 있음을 알게됩니다. 그림에서 있을 것이 있어야 하고, 만약 없으면 허전하고 이상하고 부자연스럽다는 사실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센스를 기를 수 있습니다. 세상은 일의적 결정원리이며 하나 안에 다섯까지 들어가서 0차원~4차원을 이루며 이것을 전개하면 상호작용이 되고 곧 인과율로 나타납니다. 그것이 펼쳐지기 전에 모여있는 것이 진리이며 펼쳐진 것이 질서나 인과율이나 질량보존의 법칙 따위입니다. 그 펼치는 과정이 구조론입니다.
###
깨달음의 그림 교과서 돈오가 새로 나왔습니다. 하나의 점에 다섯 포지션이 들어갑니다. 다섯이면 뿌듯하고 하나가 모자라면 어색하고 하나가 남아도 이상합니다. 그 감각을 훈련하십시오. 어색함과 자연스러움을 분별하여 느끼는데 성공하기 바랍니다.
∑ |
ㅉ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