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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3]chow
read 273 vote 0 2025.04.07 (00:00:09)

별것도 아닌 게 아니다. 80억명이 매일 신발을 신고 있는데도 아무도 생각을 안 한다. 이른바 쿠션 논쟁이다. 푹신한 게 좋다. 딱딱한 게 좋다. 그런데 아무도 이론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이론은 의사결정 이론이다. 이런건 신발로 보지 말고 다른 분야로 보면 건조하게 판단할 수 있다. 


프로 자전거 선수들의 안장은 쿠션이 전혀 없이 딱딱하게 되어 있는데, 이게 이중 쿠션에 의한 에너지 낭비를 막기 위함일 것이다. 엉덩이가 이미 쿠션인데, 안장까지 쿠션이면 쿠션의 쿠션이 되어 마치 두 개의 스프링을 직결한 것과 같이 되고, 결과적으로 물리적인 의사결정 실패가 발생하며 이에 에너지 소모가 생긴다. 그래서 딱딱하게 만드는 것이다. 운전 초보가 벤츠의 푹신함을 좋아하고 고수?일 수록 bmw의 단단함을 좋아하는 것도 비슷하다. 바퀴나 서스펜션이 물렁하면 조작력이 떨어진다. 당연하다. 핸들 말고 관절이 하나 더 생기는 셈이니깐. 모래밭을 오래 걸어도 발바닥이 얼얼해진다. 뭐 이런 건 흔히 겪는 일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크록스와 같은 단단한 신발이 발 건강에 더 좋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크록스가 너무 단단해서 불편하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지나치게 푹신한 신발을 신으면 편하다나? 침대도 비슷하다. 푹신한 침대가 척추 건강에 좋을 것 같나? 물침대는 최악이다. 푹신한 게 좋을 리가 없잖아. 푹신한 의자가 좋다? 적당히 단단한 의자가 자세를 훨씬 잘 잡아준다.


문제는 개인차가 있다는 거다. 인간의 인지는 상대적인 경우가 많다. 이전의 경험에 비추어 현재의 경험을 판단한다. 이전에 단단한 것에서 어떤 경험을 얻었다면 이번의 푹신한 것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그런데 그 느낌이 맞나? 개인의 느낌을 믿을 수 있나?


말의 편자는 단단하다. 그런데 말은 빠른 속도로 잘만 뛴다. 물론 말은 인간과 같이 앞꿈치가 없다. 4족 보행이기 때문이다. 지지발이 디딤발이 닿기 전까지 지탱하고 있기 때문에 충격이 생기질 않는다. 그래서 2족보행을 하는 인간의 뒤꿈치는 말과 달리 푹신하다. 걷기 메커니즘이 다르기 때문이다. 인간은 한쪽 발바닥이 다른 쪽 발이 딛기 전까지 아치의 힘으로 충격을 흡수한다. 


우리는 딛을 때 딛음발이 충격을 흡수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반대편 발이 상당한 충격을 줄이고 있다. 딛음발이 닿을 때까지 지지발이 근육의 힘으로 버티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4족 보행 동물보다는 충격이 더 발생하므로 여분의 충격은 발바닥의 두툼한 살로 흡수한다.


근데 발바닥이 푹신한 신발을 신게 되면 이 메커니즘이 망가진다. 물론 프로 마라톤 선수들의 신발은 푹신하다고 한다. 최근에는 카본 플레이트를 적용해서 탄력을 늘였더니 기록단축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카본을 발바닥에 붙이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신발 바닥이 안정된다. 당연하잖아. 부분에서 발생한 충격이 전체로 즉시 전달되고 휨에 강성이 생기니깐. 


푹신한 신발은 게다가 발목까지 돌아가게 한다. 지지가 불안정해지기 때문이다. 푹신하면서도 발목이 안 돌아가는 신발이 있다고 하는데, 자세히 보면 쿠션이 상하로만 움직이게 하려고 신발 좌우에 보강물을 붙여놓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단단한 신발이 인간에게 더 잘 맞을 거라고 본다. 제대로 훈련을 하는 놈이 없어서 그렇지 충분히 긴 시간을 가지고 단단하면서도 둥글게 깎인 신발이라면 마라톤 신기록을 세울 수도 있을 것. 그럼 맨발이 더 좋지 않느냐고? 그건 아니라고 보는 게, 마라톤을 아스팔트 위에서 하기 때문. 지면의 열기나 요철이 생각보다 많기 때문에 약간의 쿠션은 필요하다. 충격 흡수가 아니라 요철을 무력화 하기 위해서. 페라리 바퀴는 넓고 얇다. 이유가 있을 것.


인간은 자동차 바퀴는 건조하게 이론을 적용하면서 자신의 몸은 건조하게 바라보지 못 한다. 여전히 푹신한 신발이 잘 팔리는 것은 이유가 있다. 소비자가 그걸 원하니깐. 그런데 소비자가 원한다고 정답은 아니잖아? 단단함의 대명사 아디다스가 슬슬 배신을 때리고 있는데 이놈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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