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 마음은 어디서 나왔나? 종소리는 어디서 나왔을까요? 소리에서 나왔습니다. 특수는 보편에서 나옵니다. 그 소리는 그냥 소리가 아니고 보편의 소리입니다. 이 원칙은 모든 분야에 적용됩니다. 이번 문제는 마음은 어디서 나왔느냐입니다? 마음은 어디서 나왔을까요? 마음은 마음에서 나왔다고 대답할거 같은데 그 마음이 무슨 마음이냐는 질문입니다. 보편에서 특수가 나온다고 했으니 보편적인 마음에서 나왔다고 대답하면 됩니다. 그렇다면 보편적인 마음은 무엇입니까? 비는 하늘에서 내려오는게 아니고 물에서 나옵니다. 세상의 모든 물은 한 덩어리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돌은 돌에서 나오고 나무는 나무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연결되어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마음은 한 덩어리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빛은 태양에서 오는게 아니고 우주에 가득찬 빛에서 나옵니다. 우주흑체복사인데 그 온도는 영하 270도입니다. 온도에서 빛이 나온다는게 흑체복사입니다. 우리는 밤 하늘이 깜깜하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가시광선만 볼 수 있기 때문이고 실상 우주는 하얗게 빛나고 있습니다. 빛으로 가득차 우주 전체가 한 덩어리를 이루고 있습니다. 신은 왜 터무니없이 우주를 크게 만들어 텅 비워 있게 했을까? 아닌데요? 우주는 빈틈없이 꽉 차 있는데요? 바늘 꽂을 틈도 없는데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상식이 틀렸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런 저런 판단을 하고 결정을 내리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좌표들이 있습니다. 우주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존재란 무엇인가? 사회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구조론은 여기에 상식과 다른 답을 제시합니다. 모든 종교는 다 같다구요? 천만에. 앎과 모름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깨달음과 그렇지 못함은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모든 가르침이 다 같은데 아니고 분명히 다릅니다. 그 가르침을 갈구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다 같을 뿐입니다. 그 차이는 대상을 통제할 수 있느냐입니다. 대상과 상호작용할 수 있느냐입니다. 대상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느냐입니다. 하나가 아니면 안 됩니다. 둘과는 대화할 수 없습니다. 머리가 둘 달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과의 대화는 피곤해질 것입니다. 입이 둘 달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과의 대화는 힘들어질 것입니다. 상호작용의 현장에서 대상은 반드시 하나여야 합니다. 하나이려면 상부구조에서 만나야 합니다. 하부구조에서는 제어할 수 없습니다. 마음은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주관식입니다. 1) 욕망에서 나왔다. 2) 부처에서 나왔다. 3) 존엄에서 나왔다. 4) 관계에서 나왔다. 5) 유전자에서 나왔다. 힌트 – 빛은 어디에서 나왔는가? 빛은 빛에서 나왔다고 하면 동어반복이고 우주흑체복사에서 나왔다고 해야 ‘이 분 뭔가를 아시네’ 하고 감탄합니다. 빛은 온도에서 나온 겁니다. |
고도의 낚시네요.
저처럼 주입식 입시교육에 찌든 사람은
주관식이라는 글씨를 보고도
1)
2)
3)
4)
만 보아도 객관식이라고 여겨버리니까요. ㅎㅎ
다만 인간을 포함하여 생명체를 전제하지 않고 마음이라는 개념을 사용할 수 있는지
그것은 의문입니다.
법은 마음이 없을까요?
저도 유전자가 아닐까 생각하다가
유전자라면 유전자 이전의 유전자는? 이라는 의문이 튀어나옵니다.
유전자가 단백질 덩어리였다면 그 단백질은 어디서 나왔나?
우주의 대부분을 이루는 물질인 수소와 헬륨은 거의 빅뱅의 과정에서 나왔고
그 이후 별의 핵융합 과정에서 헬륨보다 무거운 원소들이 나오고
철보다 무거운 원소는 초신성 폭발과정에서 생겨났다고 합니다.
결국 수소와 헬륨에서 이후의 모든 물질이 파생되어 나온 것이라고 본다면
수소와 헬륨의 상호작용, 관계가 마음까지도 연결된다고 생각합니다.
단, 인간이 발견한 물질보다 암흑에너지, 암흑물질이 더욱 많다고 하고
지구를 비롯한 별, 은하를 이루는 것들은 전체 0.4%에 지나지 않을거라고 하니
좀 당황스럽기는 합니다만...
마음의 출처를 물었는데 삼천포로 가버렸네. 헐
마음은 머금는 것이오.
무엇을 머금냐면 정보를 머금소.
정보는 무엇이냐면 외부 환경과의 상호작용이오.
결국 마음은 외부 환경과의 상호작용인 정보를 머금는 것이라 할 수 있소.
근데 그 머금는 정도가 원자가 분자와 다르고, 또 분자가 유기체와 다르고, 또 유기체가 동물과 다르고, 또 인간이 동물과 다르오. 뒤로 갈 수록 외부 환경과의 상호작용의 정도가 깊어지고, 그만큼 마음의 레파토리도 풍부해지게 되어 있소.
이러한 마음의 근원을 우리는 의식consiousness이라 표현할 수 있소.
원래 마음=의식인데, 인간들이 보통 마음을 인간의 마음에 국한시켜 생각하고 소마음, 돼지마음, 개마음, 돌멩이 마음, 심지어 원자마음도 있다는 것을 간과하기 때문에 일부러 의식이라는 표현을 썼소,
원래 이 우주 자체가 의식 덩어리이기 때문에 무언가 작용을 가하면 반작용이 성립하면서 어떠한 형태로든 에너지를 소비하고 엔트로피가 늘어나며 그 결과 정보를 남기게 되어있소. 따라서 어떤 사건이 일어날 떄마다 우주는 더욱 많은 정보를 축적하게 되어 있소. 우주 자체는 점점 엔트로피를 축적하면서 정보를 축적하게 되어 있고, 그래서 우리가 전파망원경 등을 통해 우주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것이오. 모든 사건이 흔적을 남기기 때문이오. 원자도 아원자 수준의 결합이라는 관계의 정보가 들어 있으며 그 만큼 의식이 있는 것이오. 세포 역시 분자 수준의 결합이라는 관계만큼의 정보를 머금고 있는 것이고 따라서 의식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고. 이렇게 의식이라는 것은 인간 만의, 혹은 생명만의 전유물은 아니오. 모든 존재는 의식이 있고 다만 그 의식의 정도와 수준이 다른 것일 뿐이오.
외부환경과의 상호작용을 정보의 형태로 머금는 것이 마음인데, 이 정보는 보통 파지prehension(원자 수준), 감각sensation, 정서emotion, 인지cognition, 메타-인지meta-cognition(한 마디로 지금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를 아는 것) 순으로 고도화되오. 여기에서 고도화된다는 것은 그만큼 환경과의 상호작용이 깊어진다는 것이오.
마음의 수준 중 가장 고도화된 것은 구조론으로 말하자면
정신이오. 정신은 거의 신의 눈높이에서 우주를 바라볼 정도로 상호작용이 고도화되고 정보가 최고도로 압축된 상태라 할 수 있소. 이러한 정신은 비유하자면 구글 검색창을 통해 전세계 모든 정보를 검색이 가능한 상태와도 유사하오. 이 우주는 통째로 의식의 그물망, 네트워크이고 우리는 두뇌라는 단말기를 통해 이 네트워크에 곧바로 접속할 수 있소. 신은 바로 헤아릴 수 없이 무수히 많은 개체의 의식이 결합된 집단 의식을 칭하는 것이라 볼 수 있소.
졸라 얘기가 길어졌는데, 얼른 구조론 모임가서 동렬님의 답을 들어야 하므로
일단, 마음의 근원을 묻는다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마음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통짜 덩어리 의식, 마치 인터넷처럼 모든 마음을 하나로 연결하는 <의식의 그물망>을 답으로 하겠소.
상호작용을 언급했으므로 정답으로 해드리겠소이다만
제가 구하고자 하는 것은 '보편의 마음'을 한 단어로 나타내는 것이오.
예수의 사랑이나 석가의 자비가 그런 뜻에서 출발하고 있지만
대개 왜곡하여 두 단어로 만들어 버렸소.
보편의 사랑이 아니라 어떤 사랑,
보편의 마음이 아니라 어떤 마음을 뜻하는 것으로 변질되었소.
마음은 성장하려고 합니다.
공동체도 진보하려고 합니다.
자연도 진화하고,
자본도 팽창하려고 합니다.
여기서 보편은 팽창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주의 팽창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마음의 욕망이 있습니다.
마음은 성장하고 발달하려고 합니다.
마음에게 마음의 욕망을 허락해야 합니다.
마음은 최고와 만나서 최고가 되고 싶어 합니다.
마음은 부처와 만나서 부처가 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존엄해지고 싶습니다.
마음은 최고와의 관계에서 편안해집니다.
그러지 못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병이 납니다.
대한민국은 집단으로 마음에 병이 걸렸습니다.
최고와 만나지 못해서 생긴 병입니다.
최고든 최악이든 만나려 하는 건 유전자의 명령입니다.
유전자는 우주의 명령을 담고 있습니다.
성장하라는 명령입니다.
팽창하는 우주를 닮아 있습니다.
팽창하는 우주에서 마음의 성장이 나왔습니다.
마음은 우주의 팽창에서 나왔습니다.
성장이라는 표현을 썼으므로 정답으로 보겠소.
우주의 마음이 있고 그 마음을 성장시키는 것이 우리의 존재이유요.
요즈음 자고 일어나면 문제가 하나씩 뜨고,
엄청난 답변이 달려있는 글을 봅니다.
글 읽는 재미가 쏠쏠 합니다.
마음은 어디에서 나왔나.
핵심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므로
아예 나왔다가 아니라 "어디에 있었나?"라는 질문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스스로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어디에?"라는 의문사를 덧붙이는 것이 사족이겠습니다만....
마음은 어디에 있었소?
마음은 - 밖으로 표현된 타인의 생각을 나의 소위 '거울 뉴런'을 통해 내 생각 속에 복제하고, 그것이 나의 생각과 상호작용하여 생겨난 것들의 집합체.
일단 거칠게나마 써놓고, 좀 더 다듬어 보겠슴다~~.
바깥을 보고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소.
마음이라는 것이 보통 인간에게 100 있으면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에게 70 있고
침팬지에게 50 돌고래에게 30 바퀴벌레 10 이렇게 하기는 어색하니
마음이 인간에게만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들 모두의 마음은 어디서 왔는가?
마음은 뇌의 신경세포의 전기신호이다.
이 전기신호가 어떻게 될 것인가는 두가지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
하나는 그 뇌 신경세포의 배열을 결정짓는 DNA 구조
나머지 하나는 그 생물이 살아있을 때의 외부의 자극
그런데 이 두 요소 모두는 철저히 외부로부터 온 것이다.
왜냐하면 DNA 구조 역시 부모 세대에서 타인과의 교배에 의해 결정된 것이며
짝짓기를 하지 않는 하등한 종이라고 할지라도
어떤 유전자가 살아남는 가는 주변 환경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답 : 마음은 자연을 복제한 것이다. 마음은 자연의 연장이다!
써놓고 보니 아직도 갈길이 멀다는 .....
제 경험으로 생각해보자면 마음이란 '나'라는 하나의 인식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나'라는 인식을
하고 있다고 흔히들 생각하고 이른바 자의식 과잉이니 이기주의
라는 말을 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엔 이런 말을 듣는 사람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논리나
사유에 파묻혀 오히려 자아 즉 '나'를 잊은 사람으로 보입니다.
물론 그들은 생각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생각이 아닐겁니다.
물론 그들은 마음으로 행동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마음이 아닐겁니다.
자신도 모르게 세상을 복제해 자신의 안에 심어놓고 그것을 마음이라
생각이라 합리화하며 자아라는 이유를 하나 둘씩 그 허수아비같은
자아에 덕지덕지 붙여나갑니다. 재미있는 건 그 허수아비를 자아로
완성해나가는 그 의식 자체가 자신의 진짜 자아라는 사실입니다.
그 하고자 함이 허수아비임을 느끼고 바로 무위가 자신의 참된 자아라고
느낄 때만이 자신의 마음을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이란 태어날 때부터 자신에게 주어진 이미 완성된
일종의 방향성이니까요.
아무런 인식도 갖추지 않은 것같은 무생물들이 널린 이 세상에서
이러한 인식과 마음을 갖춘 인간이라는 존재가 도출된 것이
자연의 과정인지 아니면 자연의 오류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과정과 오류 그 자체가 이 세상, 이 우주의 흐름에
속한다면 인간이 갖는 이 마음이란 세상이 허용한 한정된
삶 속에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대한의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그 자유가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이브의 과실에서 온 것일
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을 유혹한 뱀이 모두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덕분에 인간은 신의 섭리를 슬쩍이라도 엿볼 수 있으니 말입니다.
자유라는 표현에 꽂혔소.
관계요. 두뇌 IQ 수준의 정도에서. 이것과 저것의 사이를 판단하는 정도에서. 배고픔과 아픔을 인식했던 순간에서부터.
관계는 1과 2 사이에서 중립적인 표현같소.
확실히 1을 바라보고 있는지는 세모표요.
주관식 5가지 예제 모두를 통털어 보면...
답은 신이오.
마음은 신에서 나왔소.
보는 방향에 따라 프리즘을 통과하듯이 갈라지지만 연역으로 보면 신이오.
프리즘을 통과하는 마음은 욕망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부처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존엄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관계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유전자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이기도 하오.
그런데 이렇게 뭣뭣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이는 것을 하나로 묶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오.
이 모두를 포괄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하오.
인간은 신의 마음을 유전자로 전송 받고 있으며, 욕망하는 수준을 상승시켜 자유(부처)를 획득하고 관계를 통하여 존엄을 발견하오. 마음은 신과 대등해질때 안정되고 존엄해지오. 마음은 언제라도 신의 눈높이를 갖고자 하오.
그러면 신은 어디서 왔는가? 라고 묻는다면
신이 어디서 왔을까?
왜 신이 어디서 와야하지?
누구를 위하여? 무엇을 하기 위해서?
왜 신이 어떤 목적을 가져야 하지?
신의 마음이 무엇이냐를 묻고 있지 않소?
어쨌든 신에게 도달했으므로 정답으로 보겠소.
난 그걸 '꼬랑지'라 부르겠소... 그걸 내팽겨치는 것.
그게 궁극이지 싶소.
여지를 남기지 않는 거...!!
마음은 환경과의 관계에서 나오는것 아닐까요?
환경과의 균형이 곧 복제 그것이 마음.
존엄과는 구분되어야 할 것이며,
존엄은 신의 섭리에 따른 반응이고.
그다지 느낌이 안 오오.
마음은 심입니다.
중심, 핵심, 코어라고 할 때 그 심입니다.
무게중심입니다.
심은 어디에서 나왔느냐.
우유에 열을 가하고 저으면 치즈가 생기듯이
우주에 충격을 주고 휘저으면 별이 생기듯이
당구공에 큐를 가해 다른 공을 맞추면 갖가지 길이 생기듯이
저울에 추를 달고 물건을 올리면 눈금이 생기듯이
우리 사이에 사건이 생기고 시간이 지나면 심이 생깁니다.
심은 있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없는 마음을 먹기도 하고, 버리기도 하고, 생기기도 합니다.
희노애락애오욕, 형태도 있고, 크기도 있고, 다양합니다.
좋은 답변이나 느낌이 없소.
그 심을 어떻게 때려잡느냐가 질문이오.
그네가 당선되서 1000만명이상이 집단 멘붕에 빠지듯
주머니가 비면 기분이 우울해지듯
마음은 환경변화와 한쌍을 이루고 있음.
마음은 환경변화에서 나왔다
그다지 좋지 않소.
그 환경변화를 어떻게 때려잡느냐가 질문이오.
뭔가를 느끼면 마음이 생기던데요
육체와 정신의 감각에서 나오는걸까요?
가장 가까운 답은 4번 관계 같습니다
상대가 없으면 느낄수가 없으니까요
사람이든 기온이든 꽃이든 빛이든..
좋은 말씀이나
문제해결에는 이르지 못했소.
열이 찼으면 얼음을 잡숴야겠구먼유.
누구든지.
yes or no
답은 YES인데 or가 붙었으므로 무효.
마음은 존재에서 나왔다. 존재가 없이는 마음도 없겠지요.
신은 내가 없어도 존재한다. 내가 존재하기때문에 신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내가 존재함으로 신의 존재를 깨달을 뿐이다.
본래 있었던 것이 나의 존재와 비존재로 있거나 없거나 하지 않는다.
내가 존재하는것을 있게하거나 없게 할수는 없다.
신의 존재가 먼저고 그리고 나는 나중이다. 신이 마음을 주었고 마음이 먼저이고
나의 존재는 그 이후다. 마음은 내것만이 아니다. 마음은 관계다.
사람과의 관계속에 마음의 존재를 깨닫고 신의 존재속에 마음이 존재함을 인정한다.
마음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다. 아픔도 나만느끼는 것이 아니고 기쁨도 내 소유가 아니다.
같이 느끼고 같이 아는 것이다. 마음은 나의것으로만 보면 안되는 이유다.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 중심에 신이 있고 신은 마음을 연결해주고 있다.
인간은 마음을 통해서 하나라는 것을 깨닫는다. 나와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결국 그 마음도 내 마음의 한 조각이리라.
조각들이 모여서 마음을 이룬다. 마음이 존재하고 내가 존재한다. 상대방이 존재하고
나도 존재한다. 마음이 닫힌자는 외로운 자이다. 마음이 닫힌자는 고립된 자이다.
마음이 닫힌자는 소통하지 못하는 자이고 신의 존재를 깨닫지 못하는 자이다.
마음이 열린자는 소통하는 자이며 신의 존재를 깨닫는자이며 존재의 의미를 아는 자이고
나의 마음과 상대방의 마음을 동일시여길수 있는 자이다.
인간은 절대로 혼자서 존재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마음도 혼자의 것이 아니다.
함께 느끼는 것이다. 고로 마음이 존재하는 곳에 인간이 존재할수 있는 것이다.
소통하는 곳에 사람이 거할수 있는 것이다. 소통이 막힌곳 마음이 존재하지 않은곳에
사람은 존재할수 없다.
신을 언급했으므로 정답으로 보겠소이다만 방향성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소.
이 정도로는 때려잡기 어려울 것이오.
마음은 우주와의 상호작용입니다.
이 상호작용의 상부구조는 깨달음입니다.
마음안에 우주를 다 담을 수 있다면 재귀적으로
우주는 다 마음입니다. 결과적으로 마음=우주가 되어 버립니다.
우주를 안이비설신의 라고 한다면 우주는 '나'가 되고
우주를 '너' 라고 하면 우주는 '너' 가 됩니다.
우주는 '나'도 되고 '너'도 됩니다.
'나'와 '너'가 하나인 지점은 깨달음입니다.
깨달음이 보편 '나' 와 '너' 가 특수
마음은 깨달음에서 옵니다
정답이나 외어서 말한다는 느낌이 있소.
자기 생각이라는 증거가 약하오.
마음은 포지션에서 나온다.
때려잡을 수 없소.
마음이란 "아는" 성질이 있다.
빛처럼 훤하게 밝은 상태라서 모름이 없는 상태가 "깨어있음"의 실제적인 정의이다.
마음은 어디에서 왔는가?????
옴도 없고 감도 없다. 항상 여기에 있다.
마음이란 "아는" 성질이 있다.
빛처럼 훤하게 밝은 상태라서 모름이 없는 상태가 "깨어있음"의 실제적인 정의이다.
여기까지는 정답
마음은 어디에서 왔는가?????
옴도 없고 감도 없다. 항상 여기에 있다.
굉장히 맞는 말 같은데 어디서 베낀 느낌.
재치는 있으나 자기 생각이라는 증거를 내보이지 못했소.
마음은 거리에서 나옵니다.
마음은 위상차가 만들어내는 에너지가 아닐까요?
시간적 공간적 거리가 주어지지 않으면 아무것도 가늠할 수 없습니다.
관측하는 순간 자신도 관측당하게 되어 마음이 한 통속임이었음을 들키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 몸 안의 세포들간에도 마음이 작용한다고 볼수있습니다.
좋은 말씀이나
어떤 문제가 있을 때 어떻게 때려잡을 수 있느냐가 질문이오.
마음은 환경과의 상호작용으로 때려잡소.
예수는 사랑으로 때려잡고 석가는 자비로 때려잡소.
에너지가 있어야 하고 트래픽이 있어야 하고 온도가 있어야 하오.
마음의 정의만 물으신줄알았더니 쓰임새까지 물으셨군요.
이번에도 역시 질문 자체에 빠져서 질문자의 의도를 읽어내지 못했습니다.^^;
문제를 때려잡으려면 마음을 일으켜 기와 승에서 연역해야겠지요.
전과 결에서 귀납하면 에너지가 없어서 상호작용의 실패.
50점 맞은걸로 해주시오.
50점 드리겠소.
마음은 인간 이전에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집에 동물을 키워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동물들도 외부 자극에 따라
그에 따라 반응도 하고
낯빛을 바꾸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마음은 5)유전자에서 왔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