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문재인 변호사님을 만난 것은 1988년 쯤 될 겁니다. 처음 다니던 신발공장에서 좀 더 나은 자리 구해보자 싶어서 공장을 옮겼을 때였습니다. ‘큰 공장에서 재봉사 경력이 있으니까 대우 좀 받겠지“ ”월급도 많이 주겠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여우 피해, 호랑이 만난다고, 제가 꼭 그 꼴을 당하대요. 낮에도 쥐들이 재봉틀 밑을 왔다갔다하고, 화장실 칸막이도 없었습니다. <하루 몇 족 달성>이라는 목표를 못 채우면 무급 연장근무에, 철야에,,, 월급도 월급이지만 참 못 살겠데예.
그래서 회사에 요구했습니다.
“점심때 밥 좀 편하게 먹게 해 주라”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잠 좀 자게 해주라”
“쥐 좀 잡아주라,
화장실 칸막이 좀 맨들어 주라”
회사는 꿈쩍도 안하데요.
“불만 있으면 나가라”.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그러더니 우리한테 데모한다고, 주동자를 색출한다고 끌고 가대요. 아무리 억울하다, 외쳐도 누구 하나 들어주질 않대요. 그 당시에 누가 우리 같은 공순이 얘길 들어줬겠습니까?
그런데 그때 누가 그러대요. 자기도 옛날에 그런 적 있다며 <문재인 변호사님>을 찾아가 보라고. 그러면서 자기들이 찾아갔을 때, 하도 얘기를 잘 들어줘서 고마웠다고. “걱정하지 마라. 이길 수 있다” “밥은 먹었느냐” 하시면서 국밥을 사주셨답니다.
그래서 돌아올 때 하늘에 대고 <까불지마라! 우리도 빽있다!!!>하고 외쳤다캅니다. 그래서 저도 무작정 문 변호사님을 찾아갔습니다. 저만 간 게 아니고, 백 명이 한꺼번에 월차를 내서 갔습니다. 얼굴 하얗고, 눈 큼지막하신 분이 앉아 계셨습니다. 정말 멋지대요. 한참을 우리 얘기를 들어주시고, 빙긋이 웃어주시는데, 어찌나 든든했는지 모릅니다.
법정에서는 우리 문재인 변호사님이 판사님께 이리 말씀하시데요.
“저 친구들, 저 고운 손톱에 바늘이 꽂히고, 밥 먹을 시간이 없어 굶어야 되는데, 저 어린 친구들의 심정을 아십니까. 저 표정들 한 번 봐주세요 판사님! 똑똑히 봐주세요 판사님!
눈물이 나오대요. 저만이 아니고 같이 간 사람들 다 울었습니다. 억수로 울었습니다. 세상에.... 어찌나 우리 공순이들의 속을 그리도 잘 아시는지...
그렇게 도와주셔서 잡혀갔던 동료들이 풀려나고 그때부터 문재인은 <우리 문재인, 우리 변호사님>이 됐습니다.
인제 문재인, 하면 그분 나오는 책이고 신문기사고 다 읽습니다. 22년 동안이나 부산에서 저처럼 힘없고 억울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셨습니다. 부산뿐만 아니라 울산, 창원까지 돌아다니시면서 저같은 사람들 변호를 해주셨습니다. 한번은, 92미터짜리 크레인 위에서 농성중인 노동자들을 만나러, 직접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시기도 했답니다.
92미터가 얼마나 높은지, 아십니까? 30층 높이랍니다. 그 높은 데를 겁도 없이 사다리를 타고 우리 같은 사람들 사연을 들으러 올라가신 거 아닙니까?
그뿐이겠습니까. 하도 일을 열심히 하고, 많이 해서 부산,울산,창원에서 인권 변호사 하면 <문재인>부터 떠올린다 아닙니까. 그런 분이 세상천지 어딨습니까.
어떤 친구가 그러대요 “돈 많이 벌었겠다” 그라면 저는 이랍니다. “그게 돈 버는 일이가!. 우리도 10원도 안냈는데” 진짭니다. 사실 그때는 돈 드려야 되는 줄도 몰랐습니다. 돈 달라는 전화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문 후보님은 제가 신발공장 미싱 돌리던 시절, 가진 것 하나 없는 우리들한테 유일한 ‘빽’이 되어준 분입니다. 그 성품 어디 가겠습니까? 대통령이 되시면 더 많은 서민들에게 진짜 든든한 ‘빽’이 되어주실 거라 믿습니다.
멋진 문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