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무엇이 문제인가? 시대정신이 중요하다. 지금 한국은 주목받고 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존엄이다. 개도 칭찬을 해 주면 가슴을 펴고 어깨를 으쓱한다. 자세가 단정해지고 시선은 높은 곳으로 향한다. 하물며 사람이라면. 박근혜들은 한국을 만만히 봤다. 그들은 한국이 주목받지 못했던 70년대에 그 천신만고 끝에 빠져나온 어둠의 터널 속에서 온갖 만행을 저지른 직접 당사자다.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흑역사의 산증인이다. 무엇인가? 일대일의 법칙이다. 과거 김대중 대통령의 운전사라는 사람이 동교동 24시라는 책을 쓴 적이 있다. 별거 아닌 사람이 감히 일대일로 맞서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딱 그렇게 되는 상황이 있다. 가해자와 피해자로 만나면 설사 대통령과 노숙자의 만남이라도 일대일 관계가 된다. 강병규와 이병헌의 치킨게임이 대표적이다. 사회적 지위는 딴판이지만 법정에서는 대등하다. 지금 누가 그 법정에 섰다. 세상이 온갖 모순에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굴러가는 것은 약자의 대항권 때문이다. 이는 법조문이 아니고 물리학 법칙이다. 어떤 둘이 충돌하지 않으면 몰라도 충돌하게 되면 반드시 1 대 1의 관계가 된다. 그러므로 부자는 담벼락이 높은 저택을 짓고 빈자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한다. 승용차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 걸인과 맞닥뜨릴 일이 없다. 그러나 약간의 빈틈이 있다. 차에서 내려 현관문을 들어서기 까지다.
재벌도 법정에 출두할 때는 기자들 앞에 딱 걸리고 만다. 길어야 30미터 쯤 되는 최후의 난관을 돌파하려면 휠체어 신공으로도 부족해서 마스크를 쓴다. 환자 연기를 한다. 그래도 플래시는 피하지 못한다.
박정희는 너무 많은 사람들과 그 공간에서 맞닥뜨렸다. 손에 피를 묻혔다. 많은 사람을 죽였을 뿐 아니라, 국민의 신분을 강등시켰다. 어제까지 자유민이었던 대한국인이 하루아침에 농노계급으로 떨어졌다. 피해당사자인 국민에게 대항권이 생겼다. 무엇인가? 비토다. 일대일 관계가 된 것이다. 딱 걸린 것이다. 당선되어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을 사람이 대한민국의 1/3이다. 비단 홍성담씨의 그림 뿐이 아니다. 더 지독한 글을 쓴 시인도 있었다. 왜 이런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날까? 국민이 대항권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 권리가 추상적 관념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여 있다는 것이다. 이거 물리학이다. 박근혜는 폭력의 당사자다. 이사라엘이 총을 쏘면 팔레스타인도 쏜다. 북한에서 사격을 하면 국군도 대응사격을 한다. 전두환이 살인을 저지려면 학생들은 화염병으로 맞선다. 이때 과연 화염병은 옳은가? 말이 필요없다. 이러한 대응의 법칙은 물리법칙이라서 옳고 그름을 논할 수가 없다. 왜? 동시성의 원리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양측이 동시에 총을 내려놔야 휴전이 성립된다. 박근혜가 내리면 우리도 내린다. 바로 그 지점이 정치의 출발점이다. 박근혜는 출마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정치다. 출마해도 당선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정치다. 국민은 이렇게 박정희 문제를 정리하고 넘어가는 것이 가장 큰 정치다. 살인자의 죄를 심판하는 것은 피해자가 아니라 법이다. 그러나 검찰청 앞에는 딱 30여미터의 거리가 있다. 재벌도 휠체어로 기어가야만 하는 난관이 있다. 기자들이 카메라 들고 버티어쓴 공간이 있다. 이때 피해자 가족이 달려들어 가해자를 구타한다. 법도 막지 못한다. 왜? 이때 피해자의 피가 거꾸로 서는 것은 제 2의 가해행위이며 법이 이것을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잘못하면 법정도 가해자가 된다. 막으려면 애초에 그 공간과 시간의 특이점 자체를 없애야 한다. 법정에 출두하는 가해자는 호송차에 탄 채로 법정으로 들어가야 한다. 재벌은 자동차를 타고 지하주차장을 통해서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면 된다. 회장실로 직행하면 된다. 해고노동자와 마주칠 일이 없다. 그러나 이 세상의 법칙에 완벽한 차단장치는 없는 법이어서 반드시 뚫리는 지점이 있다. 반드시 약한 고리가 있다. 재벌이 정치 욕심을 냈을 때다. 그 지점에서 주인공과 악당은 운명적으로 조우한다. 왜인가? 현행범이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가해자를 보는 것만으로 이중의 피해를 입는다. 가해자와 같은 공간에 머무른다는 사실만으로도 고통을 받는다.
그것은 분노로 폭력으로 표출된다. 한국은 다시 암흑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피하는 길은 있다. 정치를 하지 않으면 된다. 일본은 과거사 문제를 사죄하면 된다. 재벌은 해고노동자를 재고용하면 된다.
일본인들은 모른다. 왜 한국이 분노하는지. 위안부 문제는 과거의 범죄가 아니라 지금의 현재의 범죄다. 그들이 과거의 범죄사실을 부인하는 행동이 곧 새로운 범죄행위다. 박근혜들의 죄는 현재진행형이다. 왜? 피해당사자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위안부 피해자에게는 과거의 피해가 아니라 지금의 고통이 문제로 된다. 인혁당 피해자는 여전히 살아있다. 지금 현재 일본은 죄에 죄를 더하고 있다. 멈추어야 한다. 박근혜들의 용감한 도발은 현재진행의 범죄다. 그래서 딱 걸리고 만다. 일대일이 되고 만다. 그들은 국민의 신분을 자유민에서 농노로 떨어뜨렸다. 그리고 국민은 상처를 입었다. 존엄이 훼손되었다.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그 악몽을 계속 떠올리게 하는 자가 누구인가? 상처를 덧나게 하는 자가 누구인가? 하늘이 용서하고 땅이 용서하고 역사가 용서해도 물리학 법칙은 용서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어떤 잠금장치로도 막을 수 없는 지점이 있다. 약한 고리가 있다. 딱 걸리고 만다. 일대일이 된다. 작용에는 반작용을 한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물리학은 알고 있다. 그렇게 결말짓고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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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로보려면 발상의 전환, 사고의 전환,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피상적 이해로 부족하고 훈련하고 체험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한 번 뒤집으면 상대편의 입장이 보이고 두 번 뒤집으면 공유하는 토대가 보입니다. 손가락이 아니라 달이 보입니다. 달 하나 띄우십시오. 이 책을 권합니다.
http://gujoron.com/xe/?mid=Moon ∑ |
여자라는 나약한 이미지를 활용해서 동정표를 얻고자 하는것도 문제요.
테러당한 모습을 보여주며 국민들에게 동정을 강요하는것도 문제입니다.
여성 대통령의 이미지는 나약한 이미지가 아니라 어머니의 살신성인의 모습이 보여야합니다.
국민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버릴수 있다는 자신감이 필요하고
그것은 자기 이익이 아닌 국민의 이익을 위해서 자기 희생의 모습이 보여야합니다.
그래야 여성 대통령의 이미지가 부각될수 있는 것이지요.
영국의 대처수상은 결코 나약한 모습으로 동정표를 구걸하지 않았습니다.
국민들은 나약한 대통령을 원하지 않습니다.
거지에게 동전을 주듯이 나라 권력을 그렇게 맡길수는 없는 것이지요.
박그네는 가해자입니다. 범죄자가 권력을 잡겠다는 것 자체가 문젠데....
국민들이 정말로 박그네를 범죄자로 보지 않는것인지?
저는 참 답답합니다.
일본인들은 모른다. 왜 한국이 분노하는지. 위안부 문제는 과거의 범죄가 아니라 지금의 현재의 범죄다. 그들이 과거의 범죄사실을 부인하는 행동이 곧 새로운 범죄행위다. 박근혜들의 죄는 현재진행형이다.
왜? 피해당사자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위안부 피해자에게는 과거의 피해가 아니라 지금의 고통이 문제로 된다. 인혁당 피해자는 여전히 살아있다. 지금 현재 일본은 죄에 죄를 더하고 있다. 멈추어야 한다.
박근혜들의 용감한 도발은 현재진행의 범죄다. 그래서 딱 걸리고 만다. 일대일이 되고 만다. 그들은 국민의 신분을 자유민에서 농노로 떨어뜨렸다. 그리고 국민은 상처를 입었다. 존엄이 훼손되었다.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그 악몽을 계속 떠올리게 하는 자가 누구인가? 상처를 덧나게 하는 자가 누구인가? 하늘이 용서하고 땅이 용서하고 역사가 용서해도 물리학 법칙은 용서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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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든하구려. 물리학 법칙!
박그네 대통령은 상상하기 싢은데 혹여 현실이 되버리면 어떡게 살아야하나 오년전 정동영 별루지만 명박은 정말 쉣이라 찍었는데 이번엔 그래도 그림이 좋은데 결과가 배신때리지말기를..........................
그래도 40%나온다는게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