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소와 맹자 – 성선설 홉즈와 순자 – 성악설 로크와 고자 – 성무선악설
라임이 딱딱 맞아떨어지는 게 흥미롭지 않은가? 우주에는 에너지의 연결과 단절이 있을 뿐 선악이라는 것은 없다. 성무선악설이 옳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적 연결은 선이고 단절은 악이다. 성선설이 옳다. 교육은 단절에서 연결로 간다. 성악설이 옳다. 각자의 관점에서는 각자의 말이 옳다. 전체를 볼 줄 알아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성선설이 옳다. 에너지는 방향성이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는 유체다. 유체는 방향이 있다. 성무선악설은 강체에만 해당된다. 강체는 방향이 없으므로 선악이 없다. 인간은 유체다. 물은 좌우가 없다. 고자의 성무선악설이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간다. 맹자의 성선설이다. 교육은 아래에서 위로 간다. 순자의 성악설이다. 인간의 본성은 본래 악하다고 할 수 있고 선하다고 할 수 있으며 선악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선악은 없지만 권력은 있다. 권력은 전체에서 부분으로 간다. 권력은 집단이 먼저다. 성선설이 옳다. 각자의 관점에서는 각자가 옳지만 관점을 통일시켜야 한다. 출발점은 교육이다. 교육은 일단 성악설이 옳다. 인간은 혼자다. 교육을 통해 점차 사회로 나아간다. 부모가 일깨워줘야 한다. 사회로 가라고 해야 간다. 가만두면 인간은 히키코모리가 된다. 사회를 두려워한다. 교육은 원래 성악설에 기초한다. 인간이 원래 악한 존재라면 교육되지 않는다. 인간의 착한 본성은 숨어 있고 환경이 좋을 때 나타난다. 전쟁과 재난이 인간을 악하게 만든다. 인간의 사회성은 원래 잠복되어 있으므로 성선설이 옳다. 교육은 악한 인간을 선하게 바꾸는 게 아니라 원래 선한 인간에게 선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여친을 사귀는 방법을 모르면 성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원래 사귀는 방법을 모르므로 성악설이 맞는다? 사회가 각박해서 그렇지 자연스러운 상태에서는 저절로 알게 된다. 들개들은 자연스럽게 사귀는데 인간이 집에서 키우는 개는 사회성 교육을 시켜야 된다. 인간 본성이 원래 선한데 부모를 잘못 만나 악해진다. 야생동물은 강간이 없는데 인간이 키우면 강간한다. 브리더가 동물을 교배시키는 게 강간이다. 동물은 짝짓기를 저절로 배우는데 인간이 사육하면 짝짓기를 못한다. 동물원에서 사육하는 오랑우탄은 새끼에게 젖을 먹이지 않는다. 인간의 악한 본성은 사회에 의해 만들어졌다. 사회의 발전이 인간 본성을 추월했다. 성악설은 문명의 고도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교육이 못 따라오는 정신적 지체현상이다. 원시인이 동굴에서 살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저절로 깨닫는다. 인간이 문명사회에서 너무 많은 일을 해서 교육이 망했다. 남녀칠세부동석이 오히려 교육을 망치고 있는 게다. 1. 선악은 없고 연결과 단절이 있다. 2. 사회적 연결이 선이고 단절은 악이다. 3.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성선설이 옳다. 교육이라는 특정 분야로 좁히면 성악설이 맞다. 특히 문명의 진보가 인간의 본성을 추월해서 거대한 갭이 만들어졌다. 현대문명은 인간의 본성으로 감당할 수 없고 반드시 교육을 해야 한다. 인간을 초월하면 성무선악설이 맞다. 우주의 근본원리는 성선설이다. 1. 자연의 원리는 마이너스다. 성악설이 옳다. 2. 자연에는 선악이 없다. 진보와 보수가 없다. 성무선악설이 옳다. 3. 우주는 팽창하고 생물은 진화하고 문명은 진보한다. 성선설이 옳다. 니체의 '선악의 저편'이나 바가바드기타의 가르침이나 이런 것을 초딩들이 잘못 배우면 망한다. 애들 앞에서는 냉수도 함부로 못 마신다. 이런 이야기는 말귀를 알아듣는 사람들을 상대로 해야 한다. 강체의 관점을 넘어 유체의 관점을 얻어야만 이해할 수 있다. 이런 것이 이해가 안 되는 사람은 구조론을 배울 자격이 없다. 구조론은 아는 사람들이 아는 이야기를 하는 곳이다. 생각하면 이걸 제대로 알아듣는 사람은 백에 하나도 안 될 것이다. 진보나 보수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보면 진보보수는 없다. 권력의 작동이 있다. 범위를 좁혀서 보면 언제나 보수가 옳다. 범위를 넓혀서 보면 언제나 진보가 옳다. 특정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그게 보수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행동은 보수다. 인간은 오직 보수할 수 있을 뿐이며 진보는 개인이 아닌 집단이 하는 것이다. 집단은 언제나 진보다. 집단이 보수하면 그게 독재다. 그 경우 집단이 개인에 인질로 잡힌 것이다. 전쟁 상황에서 그렇게 된다. 우크라이나인은 젤렌스키에게 잡혔고 이스라엘인은 네타냐후에 잡혔다. 그들은 노예 상태이며 의사결정권이 없다. 전쟁에 의한 자유의 박탈이 집단적 보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