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재 오닐의 비올라 연주 그것은 예술일까? 재현일까?
한 사람의 영혼이 만들어낸 곡을 200년 후에 젊은 뮤지션이 연주하는 것은 창조일까? 모방일까?
모짜르트는 직접 작곡을 했고 바이올린 연주를 했다
베토벤도 직접 작곡을 하여 음악의 성인이 되었고 피아노 연주를 했다.
용재 오닐은 작곡하지 않고 200년 전에 작곡된 곡을 비올라에 맞게 편곡하고 연주를 한다.
모짜르트와 베토벤이 살던 시대는 작곡가가 연주를 같이 했으나 200년이 지난 지금
젊은 뮤지션 용재오닐은 바이올린곡을 비올라 곡으로 재해석하여 그의 연주에 숨결을 불어넣고 있다.
용재 오닐은 편곡을 할 뿐 작곡을 하지 않는다. 그러면 용재 오닐은 진정한 예술 일까? 예술가가 아닐까?
한 사람의 영혼이 만들어낸 작품을 용재 오닐의 영혼으로 풀어내는 것은 뭐라고 이름 지어줘야 할까?
미술의 미래는 여기에 답이 있을까?
사람의 생각이 희미하게 탄생하던 시대에 그림도 희미하게 탄생하다가
삶이 복잡해질수록 그림은 사람 눈 밖의 사실을 닮아 갔고 200년 전에 삶이 한 층 더 복잡해 질 때
그림은 형태를 벗어나서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사람이 사람 눈 밖의 자연을 완벽하게 캠퍼스로 옮길 즈음에,
사람들이 호랑이를 호랑이라는 그림을 보지 않고도 눈치챌 수 있는 시간이 흘러갈 즈음에,
하늘의 이야기를 캔버스에 옮기는 것에 실증이 날 즈음에,
세상을 사람의 손 보다 더 완벽하게 재현해내는 카메라로 인해,
자연을 잡아 두는 렌즈로 인해,
튜브 물감의 발명으로 인해
캔버스는 세상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감정을 표출하는 도구가 되었다.
그리고 그림도 음악처럼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음악의 리듬이 화가의 마음으로 옮겨가서 캔버스는 사람의 감정을 연주하는 악기가 되었다.
고흐의 선이 캠퍼스에서 자연을 만나 춤을 추었고
그 리듬은 나라 잃은 조선으로 와서 김환기의 캠퍼스에 사람이 우주와 만나는 리듬을 만들어냈다.
(네이버 검색)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1889년작
(우주목님의 블로그) 김환기 론도, 1938년 작
리듬도 캔버스에서 직선으로 변해갈 즈음
형태를 탈피한 리듬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 개념
전시장에 뜬금 없이 나타나는 의자
작품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는 것은 의자에 붙은 작가의 서명
작가의 서명이 없다면 누가 의자를 작품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의자라는 작품에서 작가가 한 일은
작가의 특정한 감정을 의자로 이입시킨 것 일뿐
의자를 만든 사람이 따로 있고
사용한 사람이 따로 있었다.
이 때에 그림은 캔버스를 벗어 난 것이 아닐까?
음악처럼 그림도 작품을 구상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따로 있고
그리는 사람이 따로 있는 시대가 이미 와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하는 행위와 생각을 옮기는 행위가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명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이 아닐까?
한 사람의 영혼을 여러 사람들이 다가가는 음악처럼?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든다.
그 먼 옛날 프랑스의 동굴에서
희미한 불에 의지해 기호같이 탄생하던 그림들이
시간의 흐름 속에 복잡해지고 복잡해지다가
세월이 한층 더 복잡해지니
다시 기호 같은 그림으로 되돌아갔다가
또 다시 시간이 흐르면
종국에는 빈 캔버스만 남지 않을까?
고려의 자기가 천 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 문양 없는 하얀 빛으로 빛나는 것처럼
처음 그림을 시작한 만년전과 같이 그림은 다시 단순해지다가
하얀 빛으로 사라질지 모르지만
현재의 빈 캔버스는 만년전과는 다른 의미로
만년 전에는 생각의 꿈틀거림을 잡아 두기 위해
동굴의 벽화가 단순했다면
이제는 복잡해진 생각이 소멸해지기 위해서
빈 캔버스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모든 예술은 음악의 상태를 추구한다.는 말이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