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선(線)’ 찾기
2012년 6월 25일 월요일
상대방과의 대화, 혹은 어떤 일을 추진함에 있어서 효과적은 의사소통을 진행하기 위해서 고안한 방법이다.
앞으로 지속적인 수정이 있을 예정이다.
I. 대화의 수준
대화에 수준이 맞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수준이 맞지 않는 사람과 대화를 포기하기도 하고 그런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어떠한 메시지를 던지는 것에는 자신과 비교하여 수준이 낮은 사람 조차도 듣는 이에 포함 된다. 오히려 자신과 수준이 맞는 사람을 찾기가 더 힘들다.
수준이 맞는 사람, 대화가 통하는 사람을 찾는 것, 만나는 것은 인연이 닿아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오래 걸릴 수도 있고, 짧게 걸릴 수 있다. 다만 그런 이들을 만날 때까지 부단히 스스로 준비하여야 한다.
초등학생에게 미적분을 가르치면서 그 아이들에게 수학을 알지 못하는 바보 같은 놈들이라고 탓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누가 더 병신일까? 그들은 당연히 모른다. 모르니까 그들을 탓할게 아니라 모르니까 알려주면 된다. 다만 그 안에서 ‘되는 놈’ 이 있고 ‘안되는 놈’이 있다. 그 옥석을 가리면 된다.
수준에 맞게, 눈 높이에 맞게 대화를 해야 한다.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해라’ 는 말이 있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에도 그랬다. 그는 눈높이를 맞출 줄 아는 인물이었다. 세계 각국의 유명인들 및 대통령들 앞에서도, 일본 천황 앞에서도 허리를 굽히는 법이 없었다. 그는 한국의 대통령이라는 자각이 있었고 그들과 동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면 어린 아이들과 노인들 앞에서는 한없이 약했고 한 쪽 무릎을 꿇고 넓은 어깨로 그들을 안아주었다.
의사소통의 효율을 높이고 보다 많은 사람들을 참여시키고, 인재를 생산하고 교육할 확률을 높이는 방법은 바로 눈높이를 맞추는 데 있다. 수준에 맞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것도 능력이다. 자신이 정작 그런 능력이 없으면서 청중들, 혹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며 그들을 탓하는 것은 바보 같은 행동이다.
지식이 살아있는 지식, 집단 지성화 되려면 바로 위와 같은 작업이 필요하다. 그것이 속도와 확률을 높이는 길이다. 이것은 상대를 배려하기 위함도 아니요, 자신이 하는 행동과, 말, 일의 최대의 성과를 높이기 위한 것이다. 결국 남을 위한 행동이 자기 자신에게 더 득이되는 행동이 되는 것이다.
II. ‘선(線)’을 찾는 매커니즘
‘선(線)’ 이란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중간지대를 뜻한다. 흔히들 ‘선을 넘었다.’ ‘도가 지나치다’라는 말을 쓴다. 그것이 바로 ‘선(線)’ 이다. 선을 찾고 선을 지킨다는 것은 상대를 존중할 줄 안다는 것이며 다른 말로 자신의 대화를 컨트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선을 지키는 사람들은 자존감이 높다. 선을 아는 사람들은 대화를 할 줄 안다. 대화가 이루어 지는 매커니즘을 감으로 알든, 배움으로 알든 그 느낌을 알고 있다.
이 선을 지킬줄 안다는 것은 ‘자존감’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자존감이 높다는 것은 어떤 일에 대해서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고 평정심을 지킨다는 것을 말한다. 더 쉬운말로 자존감이 높다는 것은 ‘여유’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여유’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이다. 누가 자신에게 욕을 하고 비난을 하더라도 그것을 흘려버릴 수 있는 혹은 튕겨낼 수 있는 아니면 반사해서 상대를 더 당황하게 만들 수 있는 재주가 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이렇게 행동할 수 없다. 상대가 자기를 무시한다고 생각하거나, 상대가 자기를 공격하면 쉽게 화를 내거나 당황한다. 그래서 내공이 낮다.
연애에 있어서도 이 선을 찾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대화에 센스가 있다’, ‘대화가 재미있다’고 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사람이다. 연예인 중에서도 이런 선을 매우 잘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MC를 보더라도 다른 사람들과 확실한 차별이 있다. 물론 대부분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대표적으로 신동엽이 있다.
신기한 점이 있다. 그건 일반 사람들이 신동엽이나 다른 MC들의 진행을 따라하려 할 때는 항상 어색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역효과다. 보통 사람이 신동엽 수준의 섹드립을 작렬하면 대화에서 소외 당하거나 한 소리 듣기 십상이다.
나 역시 그런 적이 있다. 한창 섹드립에 열을 올리고 내가 하는 대화 마다 섹드립을 시전한 적이 있었다. 한 번은 ‘좆선왕조실록’ 이라는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글을 읽고 그것을 써먹으려고 벼르고 있었다. 때마침 같이 일하는 선생님들과 회식을 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다들 친한사람들이기도 해서 거기서 읽은 것을 읊어보았다. 나는 입에 침을 튀기고 외운 것을 기억해내려고 머릴 쥐어짜면서 이야기를 했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썩 좋지 않았다. 웃어는 주는데 ‘그런거 너랑 안어울린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무안해서 한참을 술잔만 들이키고 있었는데 그냥 생각없이 툭 뱉은 말이 테이블을 뒤집어 놓았다. 무슨 말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그렇게 웃기려고 미리 준비한 이야기는 냉랭한 반응이었는데 웃기려는 의도도 없었고 별로 애쓰지도 않은 말이 그렇게 터질 줄은 몰랐다.
남자들이 연애를 할 때 하는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좋아하는 여자가 있을 때 그녀와 도대체 무슨 대화를 할 지 모른다는 것이다. 나는 예전에 올린 포스팅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냥 하세요’ 라고. 예전에 글을 올릴때는 나 역시도 어떤 패턴이나 구조를 찾는데 익숙하지 않았기에 통밥으로 때려 맞춘 경향이 있었다. 느낌으로는 아는데 표현에 효과적인 툴이 없었다고 하는 게 더 옳은 표현일 것이다.
최근에 구조적으로 말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하던 중, 몇 가지 패턴이 떠올랐다. 이 패턴들은 상황파악이 되는 지, 자존감이 있는 지, 상대의 의도를 알고 있는 지 등의 여부에 따라 총4가지로 나뉜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1. 구조도 모르고 상대를 이해도 못하는 수준
구조도 모르고 상대를 이해도 못하는 수준은 상대가 어떤 상황인지 알지도 못하고 자신 역시 뭘 알고 말하는 게 아닌 수준이다. 자기 할 말만 하고 마는 수준이다. 이런 수준의 사람들이 주로 하는 말들이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 ‘왜 자꾸 저한테 삐지는 거죠?’, ‘쟤가 무슨말을 해야 할까요?’ 등이 있다.
쉬운 예를 들자. 아들과 아빠가 있는데 아빠는 과거에 아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아들은 아빠의 과거 자체만 생각한 나머지 아버지가 왜 그런 상황을 했어야만 했을까 하는 그 이유 (이게 구조로 표현할 수 있다) 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 이유(구조)를 알지 못하니 자연스럽게 아빠를 이해할 수 도 없고 따라서 아빠를 피하거나 자꾸만 싫어하게 되고 아빠를 멀리하게 된다. 그래서 가족관계는 회복이 불가능해 진다.
아들이 아빠가 어떤 식으로 살아왔는 지, 어떤 식으로 사고를 해왔는지, 어떤 경험들을 해왔는지를 아는 것이 구조를 이해하는 지름길이다. 아빠는 자기가 살면서 늘 반복해왔던 패턴이 있었다. 아들은 그것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아빠를 이해하든 이해하지 않든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
이런 수준의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이 힘든 이유를 알지 못하면서, 한탄을 하면서도 늘 똑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외부환경에 쉽게 영향을 받고 흔들린다. 남이 자신에게 던진 말이나 행동, 다른 사람을 보며 느낀 감정 그리고 그런 것들이 내 속으로 들어와서 만들어 낸 상상 등에 쉽게 기분 나빠하고 힘들어한다.
남이 자신에게 키가 작다고 놀리면 그것을 ‘자기 문제’로 받아들여 버린다. 여자친구가, 남자친구가 던진 말에 자꾸만 의미부여를 하고 그것 때문에 힘들어한다.
커뮤니케이션의 효과는 4위.
2. 구조는 아는데 상대를 이해 못하는 수준
이 사람들은 뭔가를 아는데 그것을 상대의 눈높이에 맞게 표현하는 데 인색하거나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다.
어떤 전문가 집단에서 이런 사람들을 많이 찾을 수 있다. 대체로 권위적이고 독선적인 사람들이 많고 사람들의 등급을 나누어 자신과 수준이 맞지 않는 사람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대체로 겸손하지 않으며 오만하다.
그들이 주로 하는 말은 ‘왜 내 말을 알아듣질 못하는 거지?’, ‘도저히 수준이 안 맞아서 같이 못 놀겠네’, ‘내가 너무 수준이 높나 봐’ 등이 있다.
이들은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든지 아니면 스스로 고립을 자처하든지 둘 중 하나다. 은둔형 외톨이가 많고 주로 혼자서 연구나 공부를 하는 사람들 중 이런 사람들이 많다. 사람들이 자신을 이해 못하니 내가 세상을 등지며 살겠다는 부류다.
혹은 남을 이해하는 수준이 되고, 충분히 할 수 있지만 성격상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자신보다 수준 낮은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시간낭비라고 생각하고 그것에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들은 알면서도 피한다.
커뮤니케이션 효과는 3위.
3. 구조는 모르는데 상대를 이해 하는 수준
이 사람들은 어떤 명확한 패턴이나 매커니즘은 모른다. 하지만 인격 혹은 타고난 성격으로 남을 쉽게 이해하고 배려심이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 친화력도 높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묵묵히 기다려 줄 줄 안다는 것이다. 잘 다독여 준다.
여자친구가 자신에게 투정을 부리거나 화를 내더라도 다 이해해 줄 줄 안다. 여자친구가 왜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고 의도가 무엇인지는 정확히는 모르지만 키다리 아저씨처럼 감싸주고 이해해 주는 제스처를 잘 취한다.
재밌는 것은 그들이 무언가를 알고 하는 행동은 아니지만 이 것이 충분히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크게 감동하는 순간은 나는 삽질을 자꾸 하는 데 이 사람은 내 삽질을 다 받아주고 이해해 주는 것을 알 때 크게 감동한다. ‘이 사람은 내 편이구나’ 하는 생각을 갖는 것이다.
즉, 나는 현실반복을 하는 데 이 사람은 현실반복을 하지 않는다고 느꼈을 때 사람은 감동하고 그 사람에 대해서 의지하고자 하는 마음이 든다.
픽업에서 통용되는 말 중에 ‘센터링’ 이라는 말이 있다. ‘마음의 중심잡기’를 지칭하는 말이다. 여자가 하는 행동의 어떠한 것에도 흔들리지 않고 흔들리더라도 금새 마음을 다잡는 것이다. ‘센터링이 털린다’라고 하는 것은 여자에게 마음을 뺐겨서 그녀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어 여자가 전화를 받지 않거나 문자를 씹거나 문자에 답장을 하지 않는 것 등에도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또한 만나기로 했는데 당일에 약속을 갑자기 취소하거나 여자친구가 클럽에 놀러 간다고 했을 때 행여나 다른 남자를 만나지는 않을까 마음 졸이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말한다. 여자가 설령 신도림 역에서 옷을 벗고 스트립 댄스를 추더라도 영향을 받지 말라고.
픽업을 하는 자들, 혹은 여자 꽤나 만나고 다니는 선수들을 보면 그들은 여성에게 마음을 주지 마라고 한다. 그 이유는 센터링이 털리지 않기 위해서다. 그래서 어장관리를 하고 여러명의 여자를 동시에 만난다. 낚싯대를 여러 대 드리우라고 말하는 이유도 바로 그런 것이다.
나는 의문을 가졌다. 그게 진정한 의미의 센터링을 지키는 걸까? 대답은 너무도 간단 명료했다.
‘아니다’
그건 그냥 꼼수다. 결국 자기가 상처받기 싫어서 남에게 상처를 전가시키거나 눈가리고 아웅하는 것이다. ‘직면’ 하기를 두려워 하는 것이다.
픽업아티스트들, 선수들은 그런 식으로 현실반복을 한다. 자기들이 상처받기 싫어서 여자를 만나는 행동을 반복한다. 그들은 여자를 믿는 순간 자기 자신들의 행동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여자를 믿지 못한다. 아니. 여자를 믿지 않는다.
설령 여자에게 빠져서 좋아져 버린다고 할 지라도 이미 그런 현실반복을 해왔기 대문에 그 여자에게서 만큼은 사랑을 느끼길 원하지만 왠걸, 그 여자도 지금까지 그가 만났던 여자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사람은 똑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남자는 남자고, 여자는 여자다. 그저 지금 만나고 있는 그 사람이 다른 수많은 사람들 중 더 눈에 띄였을 뿐이다. 어쩌면 지금까지 만났던 여자들 중 지금과 같이 사랑을 했을 수 있었던 사람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는 그런 식으로 자신이 만나고 있는 대상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하고 그 사람 자체를 사랑한다기 보다는 사랑이라는 ‘관념’ 그 자체를 좋아한다.
그들은 잘못된 방식으로 매커니즘을 이해한다.
현실반복을 하는 사람들은 현실반복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감정적 의지를 하고 감동을 느끼기 때문에 그들을 좋아하게 된다.
흔히들 나쁜남자 혹은, 모든 것 다 받아주는 키다리 아저씨가 이상형이라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와 다름아니다. 나쁜 남자는 내가 어떤 짓거리를 하던 자기 멋대로 행동하고 리드한다. 그리고 짜릿함을 선사한다. 그래서 내 현실반복 패턴을 잊게 만든다.
반대로 키다리 아저씨는 내가 무엇을 하든지 그것에 ‘영향을 안받는 것처럼’느껴진다. 그리고 한없이 따뜻하고 뭐든 받아줄 것 만 같다. 그래서 편하고 사랑스럽다. 의지하고 싶다. 나이 많고 경험많고, 거기에 능력도 좋으면 금상첨화다. 이런 사람들은 결혼하고 싶은 신랑감 베스트다.
하지만 나쁜남자와 위의 키다리 아저씨가 구조적인 매커니즘을 모르고 겉으로만 이해하는 척 하면 문제는 언젠가는 발생한다. 그들의 인내심은 한계가 있다. 혹은 겉으론 다 받아주는 척 하면서도 뒤에서는 그녈 욕하고 다닐 수도 있고 다른 여자를 만날 수도 있는 것이다.
어떤 여성은 남자가 그러고 다닌 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이 겉으로 자신에게 주는 호의때문에 인정하고 들어간다. 등가교환을 하는 것이다. 그들의 돈이 주는 풍요와 자신의 외모의 매매다.
남자쪽에서는 연기하는 데 여자는 그걸 착각하는 경우가 생기는 거다.
‘이 남자는 다 받아주는 사람이야’ 라고.
이들의 연기는 언젠가는 끝이 난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자존감은 진정한 의미의 자존감이 아니다. 그들도 결국 현실반복 패턴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역할극과 상황극에 중독되고 마는 것이다. 외부요소에 의해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의 효과는 2위
4. 구조도 알고 상대를 이해도 하는 수준
이 수준이 가장 이상적인 수준이다. 외부요소에 반응하지도 않으며 자존감도 이미 충만한 상태다. 스스로 자기 감정을 지켜 볼 수 있는 눈도 있다. 자기가 스스로를 지켜보는 만큼 다른 사람들도 점점 보이기 시작하는 단계다.
‘나의 모습을 보면 너의 모습을 알 수 있고 , 너의 모습을 보면 내 모습을 알 수 있다’ 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다.
내가 내 삶 속에서 해왔던 현실반복의 요소를 확인할 수 있고 그런 관찰 작업들을 하면서 세상을 보는 이치를 점점 깨달아 간다.
자신만의 현실을 보는 눈이 생긴다. 이게 바로 구조를 아는 것이다. 이 방법은 자신만의 방법이 아니면 소용이 없다. 남의 것을 그대로 베껴서는 곤란하다. 훔치되 그것을 자기 것으로 소화해야 한다.
상대가 왜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왜 힘들어 하는 지, 왜 기쁜지 그것을 보는 자신만의 눈이 생긴다. 그러면서 상대가 이해가 된다. 예전에는 억지로 칭찬을 하고 다독여주고 보둠어주고 달콤한 말을 하려 애를 썼다면 이제는 더 이상 그러지 않고 상대를 가만히 안고 있어도 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다.
억지로 나쁜남자인 척, 키다리 아저씨인 척 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나쁜남자가 될 수 있고 키다리 아저씨가 되는 것이다.
말이 적어진다. 그리고 나의 그런 모습을 상대가 느끼는 순간 그 사람은 진정으로 나를 의지하게 된다. 이것은 어떤 알량한 유혹의 기술로도 상대가 안되는 방법이다. 유혹의 기술은 일시적이고 일회성이다. 순간의 사람의 관심은 끌 수 있고 그 사람의 현재 상황에 따라서 얼마든지 자빠뜨릴 수도 있고 사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관계를 지속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요컨대 기술이란 마법과도 같은 것이다.
내가 대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당시 내가 좋아하는 여자애가 있었는데 나는 그 친구를 포기했었고 내 친구는 그 여잘 좋아하게 되었다. 내가 좋아했던 애를 그 친구가 좋아하게 된 것이다. 그 친구의 장기는 마술이었다. 수준급은 아니었고 그래도 자실자실하게 재주는 좀 부리는 친구였다.
그 친구는 여자애의 마음을 사로 잡기 위해서 여러가지 이벤트를 했었다. 그 중에 마술도 있었다. 신나게 그 여자 앞에서 마술을 보여줬다고 했다. 그는 결국 차였다. 얼마 후 그는 내게 와서 이런 말을 했다.
‘마술로 사람의 눈은 끌 수 있어도, 마음은 끌 수 없나 봐.’
내가 신동엽의 섹드립을 외워서 읊어줘도 신동엽 만큼의 뜨거운 반응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내가 신동엽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동엽 만큼의 내공이 없다. 어떤 멘트와 대사를 쳤을 때도 그런 말이 나올 만한 ‘히스토리’가 필요한데 내게는 그런 히스토리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내 이야기,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사람들은 귀신같이 그런 냄새를 잘 맡는다. 이 사람이 내공이 있는 지 없는 지. 그래서 그런 사람들 곁에는 늘 사람들이 따른다. 알파메일이 되고 싶어서 알파메일, 우두머리 수컷, 리더가 되는 게 아니라. 그런 사람 곁에 사람들이 모이고 추종자가 생겨서 자연스럽게 그가 리더가 되는 것이다.
내가 애써서 꼬시려고 하면 여자는 달아난다. 굳이 꼬시려 하지 않더라도 내가 충분히 유혹적인 면모를 갖고 있다면 내 냄새는 자연스럽게 여자가 맡게 된다. 그래서 싫어도 여자가 꼬이게 된다. 수많은 유혹자들, 수많은 락스타들, 수많은 배우들, 수많은 정치가들이 그랬다.
상대에게 내 포지션을 맡겨 버리는 것이 아니라 내 포지션은 내가 결정한다. 그리고 융통성을 발휘하여 최고의 팀플레이를 구사한다. 그 팀은 너와 나 단 둘이 할 수도 있고 셋이서도 할 수 있고 열이라도 좋고, 한 국가 안에서도 가능하며, 지구촌 전체와도 가능하다.
진짜는 진짜를 알아보는 법이고 내가 진짜인 척 하지 않더라도 내가 진짜라면 나와 비슷한 진짜들은 귀신같이 진짜인 내 냄새를 맡고 몰려드는 법이다.
다이아몬드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자들에게 다이아몬드는 그저 아무짝에도 쓸 모 없는 돌덩이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런 진짜를 알아보는 눈은 스스로 키우는 것이며 그 것은 훈련에 의해서 충분히 가능하다.
이 정도 되면 수준에 따른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진다.
당신이 강사라면 청중의 수준에 맞는 강의가 가능하고, 당신이 경영자라면 회사의 사정에 맞게 그들이 알기 쉽게 솔루션을 제시할 수 있다. 당신이 선생님이라면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당신이 연애를 하고 있다면 연인의 눈높이에 맞춰서 연애를 할 수 있다. 당신이 회사를 다니고 있다면 상사에게 이쁨받고 후배에게 존경받는 사원이 될 수 있다. 당신이 정치를 하면 국민과 소통하는 정치를 할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의 효과는 1위
III. 거듭나는 법 (Reborn Method)
지금까지는 커뮤니케이션의 유형에 대해서 알아보았으니 그렇다면 위의 매커니즘을 계발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도록 하자.
1. 관찰(See, 현실반복 관찰)
가장 중요한 것은 관찰이다. 관찰이 시작이고 이 시작이 없으면 끝을 향해 갈 수 도 없다. 대부분은 이 관찰에서 실패한다. 관찰을 할려는 의지도 없을 뿐 아니라 제대로 관찰하지도 못한다. 보지 않으려 하거나 봐도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이 함정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어떤 생각 때문에 힘들어 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 포인트를 찾아내고 집어내서 그것을 수정해야 한다.
지난 날 자신이 어떤 가정환경에서 살아왔고 어떤 트라우마를 겪어 왔는지 자신의 성격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사건을 생각해 보는 것도 아주 유용한 관찰이다.
스스로 자신이 처했던 상황, 내면의 어린아이가 치유받지 못하고 방치되었던 그 상황을 지켜 보는 것 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 스스로 나에게 관심을 주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와 친해지는 것이다. 스스로와 라포를 쌓는다. 내가 나와 친하고 나를 인정하는 정도가 자존감이며 그 것에 따라서 타인과의 라포도 비례한다.
대개 타인과 라포를 쌓지 못하거나 트러블이 발생하거나 소통이 되지 않는 이유는 자기 자신과의 라포가 깨졌기 때문이다.
관심 다른 말로는 호기심이 모든 것에 출발점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좋아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사람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먼저다. 관심과 호기심의 이유는 상관없다. 일단 호기심을 가졌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사랑의 반대는 무관심’ 이라고 했던 것이 바로 이것과 일맥상통한다.
나를 사랑하지 않고,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내가 나에게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을 사지로 내몰고 무리를 하고 스스로 힘들어하고 나쁜 선택을 하고 우울과 좌절에 빠지고 거기서 금방 헤어나오지도 못하며 늘 사랑에 실패하고 남을 정죄하고 결국은 자살에 이르게 된다.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을 때 사람은 큰 위안을 얻는다. 내가 내 스스로를 인정할 때 내면의 나 역시 위안을 받는다. 나에게 투자를 할 때 나는 위안을 얻는다. 무엇가 가치있는 일에 돈을 쓰면 기쁘듯이 나를 위해서 돈을 쓰는 것은 굉장히 기쁜 일이다. 자기에게 인색한 사람은 타인에게도 인색하다.
스스로를 구박하고 타박하고 자해하며 구렁텅이로 내 몬다. 어린시절에 가장 교정이 쉽지만 시간이 지나 나이가 들수록 그것을 교정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막장으로 치닫는다. 그래서 어린시절의 교육이 매우 중요하다.
나이가 들어서는 자신이 현실을 바라보는 패턴이 잘못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잘못되었다고 느끼지 못할 정도로 그 패턴에 중독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빠져 나오려고 하면 이미 늦은 경우가 많다.
암도 초기에 치유하면 치료가 빠르지만 말기에 치료하면 암에 걸린 이유는 알아도 치유는 이미 늦을 때가 많다. 그래서 조기에 근절해야 한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이 것들을 하기 위해서는 애써서 여유를 갖는 시간을 마련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이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가고 시류에 편승하다가는 이런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지 못한다.
그래서 가끔은 또라이가 될 필요가 있다. 변종이 될 필요는 있다. 욕을 먹어도 좋다. 그리고 아마도 주위로부터 욕을 먹을 것이다. 하지만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 남의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욕을 먹을 만한 행동을 하는 것은 내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 번쯤은 세상이 만든 규칙이나 시스템에서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것들을 위에서 바라 볼 필요가 있다. 그러면 조금씩은 보인다. 그것들이 쌓여서 나중에는 구조를 보는 눈이 생길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아주 작은 행동들이 쌓여서 그것들이 습관을 만들고 지금의 당신을 만든 것이다.
마찬가지다 구조를 보는 아주 작은 출발은 사물과 세상, 사람에 대한 관찰이다. 그 관찰이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좋다. 그게 구조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갖게 할 것이다.
2. 발견(Find, 패턴찾기)
세상과 사람, 사물을 관찰하다 보면 어떤 규칙을 발견할 수 있다. 이상하게 그것들의 유사점 혹은 공통점을 찾게 된다. 그것들이 이루어진 매커니즘을 발견 할 수 있다. 이것들은 당신이 지금껏 자신과 세상에 대해 관심을 갖은 만큼 보이게 된다.
이 패턴은 컨버전스, 통섭의 원리 이기도 하다. 지식의 줄 세우기가 가능해진다. 어떤 지식과 경험들이 한데 모여서 그것들이 더 큰 지식을 만들어 낸다.
또한 통합이 가능한 것처럼 분화가 가능하다. 디버젼스다. 어떤 큰 덩어리에서 작은 하위구조들을 보는 눈이 생기고 해체가 가능하다.
어떤 큰 목적이나 틀 안에서 요소요소들을 결합하는 것이 가능하고 재조립이 가능하며 그 것들을 다시 뜯어볼 수 있게 된다.
이것 역시 쌓이고 쌓이다 보면 어떤 것을 가져다 놓아도 그 안에서 패턴을 찾을 수 있게 된다. 이게 사물의 원리를 파악하는 능력이다.
일의 ‘업’, 본질을 아는 것도 이 패턴을 찾는 것과 유사하다. 일에는 그 일이 가지는 속성이 있다. 그 속성을 파악하면 그 속성에 걸맞는 하부구조를 만들면 된다. 대개는 그 일이 가지는 본질조차 모르고 일을 진행한다. 그래서 실패한다. 일의 본질과 순서를 알면 일은 착착진행이 된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과 관련한 저서들을 몇 권 보면 그는 그렇게 뛰어난 인재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선대 이병철 회장이 더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한 인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20대 후반에 들어서 조금씩 깨우치기 시작했다. 아마 선대 회장의 교육 방식이 한 몫 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부품을 뜯어보고 분해해보고 해체 시켜본다. 자동차를 사면 그 자동차를 엔진까지 뜯어본다. 영화나 다큐멘터리도 수십 번, 수백 번씩 돌려보면서 본다. 그런 관찰하는 습성들을 통해 사물을 보는 습관을 길렀고 어떤 원리를 찾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이면 미래를 보는 눈 역시 가질 수 있게 되리라.
세상은 잘나가는 사람이나 천재들을 볼 때 그들의 겉만 볼 뿐, 이면은 보지 못한다. 그저 쉽게 부러워하고 ‘우와’ 하며 감탄할 뿐이다. 그러면서 ‘나는 저렇지 못할거야’, ‘다들 자기 운명이고 팔자소관이야’ 하면서 자위하거나 합리화 할 뿐이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축소시켜나간다. 가능성을 버린다.
옛 선현들이 꿈을 크게 가져라. 목표를 크게 세워라. 그리고 정진해라고 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꿈을 크게 꾸지 않으면 자기가 스스로 자기 한계를 축소해 버리기 때문이다.
3. 표현(Produce,창조)
마지막 방법이 바로 ‘표현’ 하는 것이다. 이것은 앞선 1,2단계를 반드시 거쳐야만 할 수 있는 작업이다.
대개는 1,2단계를 거치지 않고 타인의 것을 그대로 훔쳐서 모방한다. 물론 그 나름대로의 효과는 있으나 일시적이며 지속가능 하지 못하다. 사람들은 냄새를 아주 기가 막히게 맡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스스로 창조했다고 말한 내용물이 내공이 실린 것인지 그 사람만의 노하우가 실렸는지 안 실렸는지 기가 막히게 알아차릴 수 있는 능력이 인간에겐 본능적으로 있는 것이다.
창조 혹은 표현을 위해서는 배운 것을 다른 곳에 적용해 볼 수 있는 습관이 중요하다. 지식을 써먹지 않으면 그 지식은 죽은 지식이 된다. 배운 것을 나누지 않고 자기만 갖고 있으면 그건 그냥 ‘지식’일 뿐 ‘지성’은 되지 못한다.
지성이 되야 만이 그 것이 전파가 되고 확산이 되며 더 많은 성과를 창출 할 수 있다. 이미 지식들은 인터넷에 깔려 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새로운 지식을 찾는 게 아닌 이미 나와 있는 지식들을 선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래서 선별한 것들 중에서 쓸만한 것들을 모아 자신의 것으로 재창조 해야 하는 것이다.
이 것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학문, 국가, 윤리, 도덕, 나이, 인종, 종교, 문화, 계급 등 모든 종류의 경계는 허물어야 한다.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고정관념, 그리고 자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교만은 창조의 가장 큰 적이다. 언제든지 새로운 것을 흡수할 수 있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 창조가 가능하다면 이제 당신의 삶은 풍요로워 질 것이다. 돈이든 사랑이든, 건강이든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게 된다. 하나의 창조는 다른 창조를 위한 초석이 되며 지금 내가 창조한 것이 비록 미비하고 인정을 받지 못하더라도 언젠가는 그것이 복리가 되어 당신에게 큰 재산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아, 재미있네요.
님이랑 팀플레이 하는 거 즐거워요.
하나를 가르치니 열을 안다는 말은 님을 두고 생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