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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김동렬*
read 9171 vote 0 2012.10.21 (20:34:41)


    깨달음은 관계다

 

    김기덕 감독의 황금사자상 수상이 용기를 준다. 깨달음의 경쟁력을 확인했다. 한국에서는 몰라도 세계에서는 통한다. 세계가 우리의 깨달음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깨달음이 인류에게 통하는 시대가 되었다.

 

    깨달음은 계 안에서 질서를 찾아낸다. 만약 당신이 이러한 능력을 얻는다면 당신도 자기 분야에서 김기덕이 될 수 있다. 거기서 희망을 발견해도 좋다. 찾아야 할 질서는 관계의 질서다. 왜 관계인가? 일체유심조라 했다. 세상만사 마음먹기에 달렸다. 그런데 내 마음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한다. 틀렸다. 관계가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다.

 

    진실을 보라. 마음은 죄 없다. 관계가 마음을 결정한다. 당신이 화가 난 이유는 당신의 마음이 변덕을 부렸기 때문이 아니라 당신이 갑이 아닌 을의 포지션에 가 있기 때문이다. 관계가 있고 그 관계의 소실점이 있다. 누구든 그곳에 자리를 잡는다면 태산 같은 의연함을 얻는다. 깨달음이 그 안에 있다.

 

    죄 없는 마음을 탓하지 말라. 마음을 다잡는다고 문제가 해결되겠는가? 마음은 관계라는 호수에 비친 그림자다잘못된 건 관계다. 관계를 바로잡아야 한다. 일체유심조가 아니라 일체유관계조다. 문제는 숨은 관계를 알아보는 눈이다. 관계는 너와 나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너와 내가 알게 모르게 공유하는 제 3의 토대에 있다.

 

    서로 다른 둘이 어떤 하나를 공유하는 데서 관계는 출발한다. 상대가 어떤 행동을 하든 반드시 그 토대를 거쳐서 온다. 그 토대를 보지 못하므로 상대의 마음을 읽지 못한다. 더욱 마음결을 타지 못한다. 그래서 화가 나는 것이다. 그 관계를 바꾸어야 한다. 토대를 교체해야 한다.

 

    물에는 수압이 걸려있다. 물속에서는 누구든 수압의 영향을 받는다. 물속에서의 모든 관계는 수압이 결정한다. 공중에는 기압이 걸려있다. 공중에서는 모든 관계는 기압이 결정한다.

 

    날씨가 좋은 것도, 비가 오는 것도, 바람이 부는 것도 기압이 결정한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다. 수압도 보이지 않고 기압도 보이지 않는다.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다. 너와 나 사이에는 관계의 밀도가 걸려 있다. 사랑의 밀도가 걸려 있다. 보이지 않는 밀도를 보는 능력이 깨달음이다.

 

    조주가 ‘차나 한잔 들게.’ 하고 권하면 차에 대한 이야기다. 같은 말을 두 번 하면 그것은 차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누가 주인이고 누가 손님인지에 대한 이야기다.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같은 말을 세 번 반복하면? 둘이 공유하고 있는 토대에 대한 이야기다. 거기서 관계의 밀도가 드러난다.

 

    ‘차나 한잔 들게.’ 당신은 차를 마셔야 한다. ‘차나 한잔 들게.’ 손님인 당신은 주인의 뜻을 따라야 한다. ‘차나 한잔 들게.’ 차가 이 공간의 주인이다. 당신도 손님이고 나도 손님이다. 관계의 소실점이 찾아진다. 관계의 밀도가 찾아진다. 황희정승이 하인더러 ‘네 말이 맞다’고 하면 그것은 말에 대한 이야기다.

 

    ‘네 말도 맞다’고 하면 그것은 입장에 대한 이야기다. 네게도 이 사건에 끼어들 권리가 있다는 거다. ‘부인 말도 맞소.’라고 하면 전혀 다른 거다. 우리는 이 시공간 안에서 공존하고 있다. 이 가을에, 이 하늘아래 우리는 이렇게 만났다. 그러므로 다툴 수 없다. 판을 깨지 마라. 이 가을을 깨뜨리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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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상주의는 장편이 아닌 단편이며 극화가 아닌 만평이다. 인상주의는 한 컷으로 끝낸다. 한 컷 안에 무엇이 있나? 관계가 있다. 남들이 지루한 사건을 화폭에 담아낼 때 인상주의는 다만 관계를 담아낸다. 주산지 왕버들 사이로 배 한 척 띄웠을 때 그걸로 끝났다. 나머지 106분은 서비스에 불과하다.

 

    청계천 공장골목을 부감으로 잡았을 때 그 한 컷의 강렬한 이미지로 피에타는 끝났다. ‘자본주의란 바로 이거다’ 하고 보여줄 수 있는 상징적인 이미지다. 인류 중에 그 누구도 못 잡은 그림을 김기덕 감독이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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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와 원숭이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 사건이 문제가 아니고 관계가 문제다. 둘은 이루어질래야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다. 관계 안에 다 있다. 관계는 만남이다. 만남 안에 다 있다. 그런데 잘못된 만남이다. 개와 원숭이라면 다른 각도에서 다시 만나야 한다.

 

    인상주의는 사건이 아닌 관계를 보여준다. 스토리가 아닌 이미지로 승부한다. 사건으로 하면 돈 많은 사람이 이기고, 힘 있는 사람이 이기고, 배경 있는 사람이 이긴다. 할리우드가 이기고 기득권이 이기고 자본이 이긴다. 관계로 하면 김기덕이 이기고 싸이가 이기고 깨달음이 이긴다. 한 방에 끝내고 한 할에 끝낸다. 깨달음에 진정한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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