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정답 2 어제 올린 ‘한국의 정답’과 이어지는 글입니다. 이승만은 미국을 끌어들였고, 박정희는 일본을 끌어들였다. 김일성은 중국과 소련의 힘을 이용했다. 신라는 당나라를 끌어들였다. 이들은 모두 외세를 끌어들였지만 계속 외세에 의존하지만은 않았다. 혹은 의존하지 않는 척 연기를 해야 했다. 혹은 단절하지 못하고 망했다. 이승만은 계속 의존하다가 망했다. 김일성은 의존하지 않는 척 연기하느라 주체사상을 만들었다. 박정희는 자주국방을 떠들었다. 쇠사슬은 가장 약한 고리에서 끊어진다. 외세에 의존하면 그 부분이 약한 고리가 된다. 모두들 그 약한 고리를 끊어보고 싶은 욕망을 느끼게 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일제히 달려들어 물어뜯는다. 노회한 정치꾼은 정적이 배후세력과 연계되어 있다고 모함한다. 대표적인 피해자는 타의로 해외를 떠돌아야 했던 김대중 대통령이다. 친일이든, 친미든, 친북이든 그 수사에는 모함의 의도가 있다. 애초에 그러한 빌미를 주지 말아야 한다. 구조로 말하면 세팅단계와 작동단계다. 플랫폼을 세팅할 때는 외부의 힘을 빌려야 한다. 자동차도 외부에서 운전자가 탑승하고 시동을 걸어주어야 한다. 플랫폼이 세팅된 다음에는 자기 힘으로 주행해야 한다. ◎ 세팅단계 – 개방하고 외부의 힘을 빌려라. ◎ 작동단계 – 독립하여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라. ◎ 완성단계 – 안에서 완성하고 밖으로 나아가라. 먼저 밖으로 개방하고 다음 안으로 자주하며 다시 밖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는 기승전결과 같다. 단지 개방만 하거나 단지 자주만 외친다면 곤란하다. 반드시 꼬이고 만다. 다음 단계로 진도나가야 한다. 승부에 임하여 사람들은 일단 바깥의 도주로부터 확보하려고 한다. 배수진을 말하지만 실제로 배수진으로 성공한 사람은 없다. 도주로가 없으면 불안해서 싸우지 못한다. 한신도 양동작전으로 이겼다. 외부와 연결되어 있다면 안심하게 된다. 이때 무리가 구름처럼 모여들지만 같은 속도로 붕괴한다. 호기심은 금방 실망으로 바뀐다. 반드시 내부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인간은 동물과 다를바 없다. 문을 열면 사람이 모이지만 같은 속도로 흩어진다. 정치인이 캠프를 차리면 각지에서 고수를 자처하며 인걸이 모여들지만 그들은 번개처럼 침뱉고 떠난다. 그들은 모두 선점권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정몽준이 대선캠프를 열자 무리가 구름처럼 모였으나 김흥국, 김민석이 상석에 앉아있는 것을 보고 모두 욕하고 떠났다. ‘김민석 다음 타자는 누구냐’ 하고 언론들이 촉각을 곤두세웠으나 첫차가 막차였다. 인간은 배신한다. 인간을 탓할 일이 아니다. 개업집 효과다. 먼저 와서 터 닦으려 했는데 이미 친노가 터를 닦고 있는 것을 보고 모두 반노로 돌아섰다. 60퍼센트 지지가 16퍼센트까지 떨어졌다. 그게 2002년의 일이다. 딱 10년 전이다. 지금 안철수도 다르지 않다. 무리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지만 윤여준, 박경철이 침발라 놓았다는 사실을 알고 다들 떠난다. 그것이 두려워 안철수는 미적댄다. 인간의 정치본능은 신분상승 욕구다. 내부에서 답을 찾는다는 것은 곧 내부승진을 의미한다. 외부에서 낙하산이 계속 들어오면 곤란하다. 외부의존은 나약한 태도로 보이고 자신감 부족으로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도 처음 DJ와 정몽준의 힘을 빌었지만 바로 정몽준 보내고 DJ와도 간격을 벌렸다. 열린우리당을 창당한 것은 자기 세력을 만들어 독립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반드시 필요한 수순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계속 DJ우산 밑에 있었다면 역시 씹히고 만다. 두 사람의 연결고리를 끊는 것은 매우 손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비록 사후이기는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친노세력 형성에 성공했다. 밖에서 교두보를 얻은 다음에는 반드시 안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안에서는 신통한 답이 나와주지 않는다. ‘우리것이 좋은 것이여’ 하고 신토불이를 떠들어봤자 점점 코미디로 변해갈 뿐이다. 그때의 방법은 앞서가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젊은 세대를 키웠다. 2~30대의 지지를 끌어내고 IT세력의 지지를 받았다. 만화와 영화 등 문화인들의 지지를 받았다. 스마트시대와 맞아떨어졌다. 러시아 혁명기에 그들은 자기네들이 세계에서 가장 앞서있다고 믿었다. 혁명이 다른 나라로 수출되어 세계 모두가 혁명을 하게 되고 그들은 선점권,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나중에 허상으로 밝혀졌지만 그런 믿음이 있었기에 일정부분 성공한 것이다. 러시아는 2차대전 후에 동유럽을 정복하고 실제로 선점권을 행사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곧바로 그들은 고립되었다. 모택동도 문화혁명기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앞서있다고 믿었다. 서구의 히피세대가 호응해 주었다. 동남아와 중남미로 혁명을 수출하기도 했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그들만의 환상이었지만 기능했다. 3단계가 있다. 외부에서 답을 찾은 다음 내부에서 실력을 기르고 다시 외부로 뻗어나가야 한다. 징기스칸도 금나라에 잡혀있으며 전술을 익혔고 몽골을 통일하여 힘을 길렀고 다시 외부로 진출했다. 외부의존도 안 되고, 내부고립도 안 되고, 외부에서 내부로 왔다가 다시 외부로 가야 한다. 그것이 구조의 1 사이클이다. 기승전결의 절차다. 밖에서 시동걸고 안에서 운전하여 밖으로 진출한다. 한국의 실정은 어떤가? 아직도 친미니 반미니 하고 있다. 답답한 노릇이다. 친미는 시동만 걸고있고 반미는 운전만 하고 있다. 그런 식으로는 결코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한다. 다시 진도나가야 한다. 우리가 세계에서 가장 앞서있어야 한다. 김어준이 먹힌 것은 그 시점의 딴지일보가 세계에서 가장 앞서있었고 지금의 팟캐스트가 세계에서 가장 앞서있기 때문이다. 첨단에 서 있기 때문이다. 북한 문제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앞서있고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뒤처져있다. 남이냐 북이냐가 아니라 세계최고와 세계최악의 관계다. 이런 구조를 전제로 해야 이야기가 된다. 우리가 북으로 뻗어가지 못하고 그냥 대등하게 공존한다는 구상은 환상에 불과하다. 역사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세계사를 펼쳐놓고 첫페이지부터 끝페이지까지 보라. 그런 일은 없다. 주도 아니면 종속이다. 햇볕은 다음 단계로 밟아가기 위한 절차일 뿐이다. 햇볕하기 위한 햇볕은 없다. 북한은 우리가 장차 중국과 러시아와 몽골과 동유럽으로 뻗어가는 징검다리에 불과하다. 북한에 집착한다면 곤란하다. 우리가 먼저 세계를 아우르는 시선을 먼저 획득한 다음에 북한을 바라보아야 한다. 선세계전략이 나와야 하고 그 울타리 안에서 후대북전략이 나와주어야 한다. 세계전략 없는 막연한 대북전략은 그냥 뻘짓이다. 북한은 우리의 형제나 이웃이 아니라 우리가 세력전략이냐 생존전략 중에서 선택하는 갈림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 점을 정확히 짚었다. 동북아 중심국가론이다. 그 울타리 안에서 북한을 이용하는 것이다. 북한은 우리의 결혼상대자가 아니라 뚫어야 할 길이다. 산이 길을 막으면 뚫고 가는 거다. 전쟁하지 않고 현명하게 뚫어야 한다. 세계전략이 없는 상태에서 대북전략을 논하므로 답이 나오지 않는다. 러시아의 천연가스와 몽골의 석탄을 쓰며 중국에 팔아치운다는 전제로 북한을 논해야 한다. 세계로 가는 관문을 열어야 한다. 친미든 반미든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절차다. 친미가 목적이 되거나 반미가 목적이 되면 곤란하다. 무언가를 반대하는 것은 저항하자는 것이다. 그것이 목적이 되면 마이너 집단이 되고 만다. 정리하자. 국수주의로 가도 안 되고 사대주의로 가도 안 되고 절충주의로 가도 안 되고 부분개방으로 가도 안 된다. 정답은 첫째는 바깥으로 여는 것이고 다음은 안으로 내실을 다지는 것이다. 선개방 후내실이다. 개방단계는 외부의 힘을 빌리고 내실단계는 다시 내부의 힘을 기른다. 거기서 멈추지 말고 외부로 뻗어나가야 한다. 세계 보편의 가치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외부의 것을 들여와서 내부에서 자기것으로 소화한 다음에 다시 그것으로 외부를 접수해야 한다. 한국은 인류라는 무대에서 한 명의 배우다. 무대를 의식해야 한다. 외부를 의식해야 한다. 지나친 국수주의, 편협한 민족주의는 무대에 오르기를 거부하는 겁쟁이에 지나지 않는다. 반미하기 위한 반미, 반북하기 위한 반북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무대공포증에 불과하다. 외부로 나가야 한다. 무대에 올라야 한다. 그러나 무대에 오른 다음에는 자기 연기를 해야 한다. 거기서 무대청소 하고 있으면 안 된다. 사대주의, 친미주의는 무대에 올려놨더니 무대청소 하고 있는 거다. 무대에 올라야 하고 자기연기를 해야하지만 그냥 연기에 빠져있기만 해도 곤란하다. 관객과 소통해야 한다. 자기안에 있는 것을 전부 토해내야 한다. 신토불이 어쩌고 하는건 무대 위에서 자아도취에 빠진 거다. 배우는 관객을 휘어잡아야 한다. 그러려면 관객이 원하는 연기 말고 자기의 고유한 실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관객이 유행가를 원한다고 유행가나 부르고 있으면 곤란하다. 적극적으로 관객을 리드해야 한다. 무대에서는 배우가 왕이다. 관객은 졸이다. 왕은 왕다워야 한다. 그러나 자기세계에 빠져 있으면 곤란하다. 관객은 배우의 변신을 원한다. 매번 같은 연기만 반복하고 있으면 곤란하다. 관객의 기호를 읽어야 한다. 배우는 매번 새로운 연기를 해야하고 그러려면 시대의 첨단을 달려야 한다. 김어준이 딴지일보만 계속하면 곤란하다. 팟캐스트로 바꿔야 한다. 그러한 변신은 자기의 과거로 가는게 아니라 미래로 가는 것이다. 이문열은 나이가 들수록 자기세계를 고집하고 자신의 과거로 달려간다. 진정한 작가는 관객을 이끌고 함께 미래로 나아간다. 그러려면 자기 스타일을 완성한 다음에 세계의 스타일과 접목시켜야 한다. 한국은 한국스타일을 만들어 세계의 주목을 끈 다음에 한국의 고유한 가치와 세계의 가치를 접목시켜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한다. 끝없이 새로워져야 하며 그것은 첨단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스마트폰과 같은 첨단기기로 세계를 리드해 보여야 한다. 신중현은 록음악에다 우리의 전통음악을 접목시켰지만 과거로 가지 않았다. 기승전결이 있다. 세계의 중심으로 가야 한다. 빈 손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스타일로 가야 한다. 자기스타일을 완성한 다음에는 관객을 리드해야 한다. 그러려면 변신해야 한다. 변신하려면 첨단해야 한다. 첨단하려면 보편해야 한다. 정답은 그곳에 있다. 1) 밖으로 나아가 개방으로 세팅하기. 2) 안으로 들어와서 코어를 형성하며 자기스타일 완성하기 3) 다시 밖으로 나아가 자기스타일로 관객을 이끌고가기. 4) 관객의 기호변화에 대응하며 지속적으로 변신하기. 5) 변신하기 위하여 인류문명의 첨단에 서기. 바보같은 친미반미 논쟁 버리고, 친북반복 논쟁 버리고 이러한 절차를 밟아가야 한다. 옹졸해지지 말아야 한다. 소아병 극복해야 한다. 지금은 1만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이 무대 위에서 조명받는 타이밍이다. 이 기회 다시 없다. 한국의 유일한 장점은 인간존중이다. 인간존중은 동시에 인간차별의 양면성을 가진다. 차별의 단점을 극복하고 존중의 장점을 살려나갈 때 세계는 우리를 주목하고 따라오게 된다. 한국인은 형님 동생 따지며 매우 정밀하게 인간차별을 할줄 아는 나라다. 이는 반대로 매우 정밀하게 인간존중을 할줄 안다는 뜻도 된다. 그러한 문화는 원래 중국의 발달한 차문화에서 시작되었다. 원래 중국인들은 차를 빻아서 말차로 먹거나, 거기다가 색을 넣거나, 밥을 비비거나 하여 개판으로 먹었는데, 어느 순간에 차의 참된 의미를 깨닫고 차를 인간존중 문화의 수단으로 발달시켰다. 과거제도가 없는 일본은 이것이 잘못 나가서 인간감별 도구가 되었다. 일본의 다도는 과거제도가 없으므로 합리적인 인재등용 수단이 없는 봉건 일본에서 숨은 인재를 알아내는 수단이 되었다. 그들은 차를 통해서 인간이 됨됨이를 감별하고 점수를 매겼다. 이는 바보같은 짓이다. 차문화의 진정한 의미를 퇴색시킨 것이다. 한국의 선비문화는 중국과 일본의 단점을 극복해 나갔다. 중국인들은 꽌시라고 해서 사람을 사귈 때는 10년 정도는 기본으로 지켜본다. 10년 동안 온갖 테스트를 해보고 판단을 내린다. 한국인은 성급해서 못참고 나대다가 중국인에게 배신당한다. 한국의 선비문화는 그런 잘못을 바로잡았다. 선비들은 차라는 도구에 얽매이지 않았다. 차를 마실 이유가 사라졌다. 한국은 바닥이 좁고 글읽는 사람이 많아서 사람에 대한 평가가 용이했기 때문이다. 한류드라마란 한국인 특유의 사람평가 교과서다. 미국처럼 실력만 보고 이용하고 버리는 것도 아니고, 중국처럼 10년간 지켜보고 끈끈한 유대를 맺는 것도 아니고, 일본처럼 형식적인 테스트를 하지도 않는다. 한국인은 죽이 맞으면 단번에 친구가 된다. 이용하고 버리지 않으며 끝까지 책임진다. 일본처럼 고용으로 책임지는게 아니라 선비다운 의리로 책임진다. 거기에 21세기 스마트 시대의 정답이 있다.
작금의 정치적 난맥상도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절차로 보면 편합니다. 우리가 지불했어야 하는 통과세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느낍니다. 진보당의 난맥상과 민주당의 허무함. 속을 단단히 다지지 않고 공짜먹으려 했다는 거죠. 비온 뒤에 땅굳듯이 이렇게 다질 것을 다지고 밟을 절차를 밟고 지불할 비용을 지불하고 또 진도나가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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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든 세계와 연결되어 있는
상위 0.1퍼센트의 의사결정능력이 주도합니다.
경제적 어려움은 교육열 등 지나친 욕망 때문에 자초한 것입니다.
일단 긍정적이고 욕망의 부재가 더 큰 문제입니다.
가계부채는 한 방을 맞아봐야 경제학습이 됩니다.
원래 선진국들도 큰 거 한 방씩 얻어맞고 정신차린 거에요.
수업료 없이 공짜먹는 일은 없습니다.
학생들이 선생과 맞서봐야 됩니다.
담배도 좀 물어봐야 하고
선생한테 빌빌 기는 순한 애들이 국제무대에 적응하겠어요?
물론 꼴통들은 해당없고 상위 0.1퍼센트가 그렇다는 겁니다.
정신적으로 선생과 맞서보지 않은 학생이 사회에서 성공하는 꼴을 제가 못봤습니다.
교사와 주먹질 하라는 말은 아니고 심리적으로 그렇다는 거지요.
신이 구와 맞서지 않으면 신이 아닙니다.
하나로님은 시선이 아래로 내려가 있는 거에요.
그런게 눈에 밟힌다는 사실 그 자체로 이미 실패입니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있을때 나쁜 것이 보인다면
나쁜 것에 반응한다는 건데 이미 실패입니다.
그래서, 한국은 '다도' 보다 '주도'가 발달했나보다.
ㅋㅋㅋㅋㅋ
'다도'든 '주도'든
형식은 유연하고 본질은 엄중해야 제맛~
본질을 구속하며
도짜 붙이고 의미부여하고 군더더기 장식짓은
다 꼴통짓 아니면 꼼수질.
ㅋㅋㅋㅋㅋ
동렬님께서 보이는 않는 것을 보고 상부구조를 보는 능력을 키우라고 하셨잖아요.
경제기사를 보 서 항상 의문인 것은
가계부채가 늘면 가계자산도 함께 느는 것인데
가계의 자산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고
항상 가계 부채만 늘었데요.
그리고 기사의 근거되는 data가 없어요.
그러면 가계의 가처분 자산이 정말 처분 할 수 없을 정도로
가계 부채가 가계에 위험을 주는 지
그런 세세한 내용은 기사에 나오지 않아요.
부채의 짝은 자산이니까
정말 가계 자산도 궁금해요.
부채는 다 은행들이 만드는 건데
문제는 은행들이 경영방법을 발전시키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은행은 원래 위험을 회피하도록 세팅되어 있어요.
기업이 망하고 가계가 망해도 은행은 안 망하도록 되어 있고
은행이 망하면 국가도 망하도록 해놨어요.
여기에 대한 답은 국가가 망하면 세계도 망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중국과 미국은 서로 목줄을 쥐고 있어서
하나가 죽으면 다른 쪽도 죽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잘 안 죽습니다.
은행의 문제는 책임자가 없다는 겁니다.
은행이 경영을 잘못하면 징벌을 받아야 하는데
경영을 잘못하면 오히려 혜택을 받는 구조로 되어 있어요.
치명적인 것은 은행이 경영을 잘못할수록 국가에 이익이라는 겁니다.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 리스크를 늘려가는게 낫습니다.
경기부양 한다고 흔히 말하는데 그게 사실은 은행을 부실화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국가는 은행에 압력을 넣어 고의로 부실을 유도합니다.
그래서 은행이 망하고 국가가 망하면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라고 떠들면 되거든요.
언제나 핑계는 있으니까.
가계부채란 것은 결국 가계에 의한 통화창출입니다.
자본주의 바깥에서 맴돌던 가계가 자본주의 안으로 진입한 거지요.
하여간 가계가 자본주의 구조 안에서 일정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는 것은
조만간 전 국민이 경제공부를 해야하는 상황이 온다는 거지요.
경제의 작동원리는 우리의 상식과 완전히 반대입니다.
부실을 만들고 그 부실을 상부구조에 떠넘기는 형태로 경제는 발전하는 겁니다.
유럽의 경제위기도 그리스가 부실을 만들어서 독일에 떠넘기려 했는데
독일이 부실을 안 받겠다고 해서 문제가 되잖습니까?
당연히 독일이 받아야 합니다.
그게 EU의 목적인데.
독일이 안 받는 이유는 담보가 없어서인데
중국과 미국처럼 애초에 같이 죽는 구조를 만들었어야 했다는 거죠.
경제의 핵심은 발권력입니다.
경제의 발전은 하부구조가 능력 이상의 발권력을 행사하고
붕괴되는 상황으로 가면 상부구조가 그것을 받아주는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밑에서는 계속 부실을 키우고 그것을 계속 위로 전가하는 거죠.
근데 위에서 안받겠다고 하면 쫑나버리는 거죠.
답변 감사합니다. 빠른 답변이 신기하기도 해요.
다른 이야기이지만 경제학자하면 항상 케인즈만 들어서 케인즈만 있는 줄 알았더니
"창조적 파괴"를 얘기한 조지프 슘페터라는 오스트리아 경제학자가 계시던데요.
그분의 이론을 제가 이해하기로는 경제가 허약한 곳에 돈 쏟지 말고, 오래된 질서를 파괴하면
새로운 질서를 찾는 과정에서 경제가 회복된다 대충 이렇게 이해하고 있는데요.
지금의 그리스 문제는 어쩌면 당연하다고도 생각됩니다.
그리스와 독일의 경제구조, 규모, 잘하는 경제 종목이 다른 것 같은데
통화주권을 유로에 넘겨주고, 자국에 문제가 생겼을 때 유로를 바라봐야 한다면
스스로 문제를 해결 할 수 없을 것 같은데요.
한국도 앞길이 막막한 IMF 닥쳐도 해치고 왔듯이
그리스도 유로존에서 탈되하여 통화주권 얻고 화폐가치 낮춰서 수출하면 되지 않을까요.
항상 그리스 뉴스가 나올 때마다 (한 2년 끄는 것 같아요)
차라리 슘페터가 얘기한 것 처럼 그리스에 돈 쏟아붙을 궁리하지 말고
그리스의 어려움 유로에서 떠안으려 하지 말고
멕시코처럼 아르헨티나처럼 IMF 받아 들이고 새로운 질서를 찾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해결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어떤 넘이 돈이 없다면 어떻게 할까요?
엄마에게 손을 벌리지요.
엄마에게 돈이 없다면 엄마는 친척을 찾아가지요.
친척도 돈이 없다면 친척은 이장한테, 이장은 면장에게, 면장은 시장에게
계속 올라가서 도지사와 대통령을 넘어 세계왕(있다치고)에게 손을 벌리는 겁니다.
그 과정에서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하부구조가 상부구조에 의존하게 되는 겁니다.
이때 상부구조는 하부구조를 지배할 수 있게 됩니다.
상부구조가 하부구조를 지배하는 지배력 바로 그것을 돈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돈 좀 있나? <- 이 말은 나를 지배할 수 있나? 이런 뜻입니다.
즉 자본의 성장은 각 경제주체가 서로 통제할 수 있는 구조 안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그리스의 문제는 경제권과 주권이 충돌하여
독일이 그리스를 통제할 수 없다는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유로는 결국 각국의 경제주권을 박탈해야만 존립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거 없이 주권은 주권이고 경제는 경제라고 떠들면 답이 없는 거지요.
주권과 경제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유로를 살리려면 반드시 주권을 제약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것이 돈이기 때문입니다.
돈이 있다는 말은 주권이 제약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물론 유로를 탈퇴하면 되는데 그건 애초에 유로를 창설한 이념과 배치되지요.
그건 포기하는거고 지금 상황에서는 유로 안에서 답을 찾는게 맞습니다.
독일이 돈을 찍어서 무담보로 그냥 그리스에 주면 됩니다.
어차피 종이를 주는 것이므로 독일도 손해보는건 아닙니다.
단지 앉아서 받느냐 서서 받느냐 이런 거지요.
이렇다할 경쟁력 없는 그리스가 유로마저 탈퇴한다면 영원히
아프리카의 일부가 되어버리지 않을까요?
갑자기 초대형 유전이 터지지 않는 한.
그리스가 유로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그리스는 단순 지명이 되었고
유로합중국이라는 새로운 제국이 탄생한 것이며
각국은 사라진 겁니다.
답변 감사합니다.
한번도 그 쪽으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새로은 답을 얻은 것 같아서
기분이 좋습니다.
경제쪽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효율이라는 단어와 가치라는
단어가 충돌한다는 느낌입니다.
감사합니다.
한미 FTA 때도 나온 이야기인데
우리가 주권제약을 겁내면 안 됩니다.
고립되어 혼자 살면 자유권이 있는게 아니고 아무 권이 없습니다.
권은 관계를 맺는 순간 생겨나며 먼저 치는 넘이 주도권이고 나중 받는 넘이 저항권입니다.
주도권과 거기에 대항하는 저항권은 같이 생기는 겁니다.
저쪽에서 선공해야 이쪽에서 응수하는 거죠.
그러므로 주도권을 잡는게 우선 중요하지만
저항권, 대항권의 행사도 역시 중요한 겁니다.
반미는 일종의 저항권 행사인데 그것도
상대의 주도권이 있어야 이쪽의 저항권이 있는 거에요.
FTA를 안 하면 주도할수도 없고 저항할수도 없고 암것도 할 수 없어요.
주도하는 쪽은 지대상승의 부담을 지기 때문에
저항하는 쪽이 상당히 이니셔티브를 챙길 수도 있습니다.
다 하기 나름이라는 거죠.
그러한 상호작용 과정에서 데이터를 축적해 가는게 중요한 거죠.
그러므로 상대방의 반격이 두려워 주도하기를 포기하고 눈치를 보는 뻘짓도 나쁘죠.
내가 보기엔 문재인, 김두관, 안철수, 박근혜, 넷 다 눈치보고 있어요.
먼저 치고 나가는 사람이 집중반격 당하겠지만 대신 막판에 패 한 장을 더 볼 수 있습니다.
상대방의 주도를 두려워 하는 것도 나쁘고.
상대가 주도하면 반격하면 되고,
상대가 반격하면 막판에 카드 한 장을 더 받아서 수를 내면 되고.
그렇게 밀고 당기고 하면서 역사는 진보하는 거죠.
한국이 정말 잘 리드 할까요. 주변 돌아가는 형국보면 왠지 성공의 길로 가기보단 망해먹는건 아닌지? 좁은 소견엔 그냥그래보입니다. 주위엔 다들 경제적 어려움에 허덕이고 정말 조만간 가계부채로 뭔가 터질것 같고. 학생들이 선생 때리고, 길거리 아무데나 교복입고 담배물고, 실상 경제나 정치의 후퇴보다 사회 풍속 자체가 망가져가는듯 싶습니다. 이나라의 장래가 성공적이길 바라마지않는 일인이지만 보이는건 왠지 다 부정적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