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가 전쟁에서 지는 이유는 하나다. 병사들이 말을 안 들어서 지는 것이다. 쏘라면 쏘고, 멈추라면 멈추고, 물러나라면 물러나야 한다. 이것만 되어도 이길 수 있다. 그러나 훈련된 부대만이 그것이 가능하다. 이성 위에 본능 있다. 본능대로 행동하므로 전멸을 피하지 못한다. 지식인들이 아는 척하지만 이성은 힘이 없다. 위기에 몰리면 본능대로 가는 것은 배운 자나 못 배운 자나 똑같다. 훈련된 군대만 극복할 수 있다. 훈련한다는 것은 총검술을 연마하고 체력을 단련하고 각개전투를 익히고 이런게 아니다. 그런거 다 필요 없다. 걍 뻘짓이다. 무엇이 훈련인가? 동료가 훈련이다. 훈련은 육체로 하는 것이 아니고 호르몬으로 하는 것이다. 로마군이 강한 것은 신병을 보충하지 않고 모두 동기로 묶어서 부대 안에 서열을 없앴기 때문이다. 국군처럼 짬밥으로 차별하면 당나라군대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군대에서 새벽구보를 시키고 총검술을 가르치는 것은 써먹으려고 하는게 아니라 호르몬을 짜내려는 것이다. 그러나 동기가 아니면 호르몬이 안 나와준다. 한때 징기스칸은 싸움마다 졌다. 귀족출신의 한계다. 반면 자무카는 평민도 못 되는 노예출신이었다. 노예출신이므로 엄하게 다스려졌고 그러므로 자신이 당한 대로 엄한 군율을 세웠고 그래서 싸움마다 이겼다. 반면 징기스칸은 귀족답게 부하들에게 재량권을 준 결과 참담하게 졌다. 노예가 채찍이라면 귀족은 평판이다. 징기스칸은 좋은 평판을 받아 귀족서열을 높여야 했기에 착해빠졌다. 착해빠졌으니 전쟁에 지는 것은 당연하다. 결정적인 전투에서 자무카는 밤중에 징기스칸과 단둘이 만나서 자기 부대의 포진을 알려주었다. 전술을 다 알려주었지만 징기스칸은 참패했다. 전술을 알려준 덕분에 목숨은 건져서 달아날 수 있었다. 징기스칸을 따라온 사람은 발주나 사람들로 불리는 19명이다. 나머지는 자무카군의 추격을 피하기 위해 흩어버렸다. 징기스칸은 그 상황에서도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해 부하들의 살길을 열어준 것이다. 그리하여 좋은 평판을 얻었다. 전쟁에는 지더라도 부하들은 살리는 착한 징기스칸의 이름은 고원에 널리 알려졌다. 이후 징기스칸이 패배한 적은 없다. 자무카의 방법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부하 족장의 지휘권을 빼앗고 유목민식 편제에서 금나라식 수직구조로 바꾸었다. 평판을 중시하는 징기스칸의 장점과 엄격한 군율을 쓰는 자무카의 장점이 결합되어 완전체가 만들어진 것이다. 한때 징기스칸은 금나라에 복무했다. 백부장의 벼슬을 받아 귀환했는데 그 과정에 금나라식 편제를 배워왔다. 구조론으로 보면 평판을 중시하고 착한 정책을 쓰는 징기스칸은 진보다. 진보는 착한 짓을하다가 망한다. 흥부가 사단장이 되었으니 절대로 이길 수 없다. 엄한 자무카의 방법은 보수다. 보수로 작은 전투를 이길 수 있으나 천하를 차지할 수 없다. 진보의 몰락공식은 착하게 가다가 내부질서가 무너져서 망하는 것이다. 군기를 세워야 한다. 이순신 장군은 군율을 어긴 병사의 목을 베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당명을 따라야 한다. 그러나 엄격한 군율만 주장하다가 자무카 꼴 난다. 초반 반짝하다가 민심을 잃어 김성근 감독 된다. 평등하고 착하면서 엄격해야 한다. 이 가치들은 서로 모순된다. 평등하고 착하면서 엄격할 수 없다. 어머니이면서 아버지일 수 없다. 그렇다면 초반에는 평등하고 중반에는 착하고 막판에는 엄격해야 한다. 선거하기 전에는 평등하고 선거전 들어가면 착하고 선거전이 달아오르면 엄격해야 한다. 평등하자고 하니 안철수짓 하고 착하자니 김종인짓 한다. 지금은 문재인이라도 엄격해야 한다. 왜냐하면 진짜 승부는 다음 총선이기 때문이다. 200석 해야 개헌할 수 있다. 지금까지가 좋은 시절이었다. 이제 봐주는거 없다. 싸그리 족쳐야 한다. 지금까지는 징기스칸의 시절이었고 이제는 자무카의 시절이다. 자무카가 처음 한 짓은 귀족 70명을 가마솥에 삶아버린 일이다. 깝치다가 적폐로 몰려 가마솥행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정신들 차려야 한다. 당신들은 문재인의 진짜를 구경한 적이 없다. 그래야 한다는 말이다. 당을 우습게 보고 당대표를 모함하는 드루킹 새끼들이 가마솥에 삶아야 할 적폐다. 징기스칸 군대는 누가 지휘하든 무조건 이기는 군대다. 시시비비 따지는 자가 적이다. 민주주의는 결코 좋은 제도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도덕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효휼적이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를 채택하는 이유는 민주주의가 이기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여당과 야당이 경쟁하니 내전이나 같다. 비효율적이다. 선거판에 돈을 쓰니 낭비다. 비효율적이다. 상대를 험담하니 부도덕하다. 이겨야 하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하는 것이다. 도덕을 내세워 혹은 효율을 내세워 혹은 합리를 내세워 패배를 추구하는 정의당 또라이들 때문에 이 글을 쓴다. 보수는 말년의 자무카처럼 패배하고 진보는 초반의 징기스칸처럼 패배한다. 무엇이 민주적인가 생각해봐야 한다. 원래 투표는 세금 내는 자에게만 권력이 있다. 이것이 자연권이다. 세금 안 내는 젊은이는 노예와 같으니 참정권이 없다. 그런데 왜 공평하게 1인 1표로 할까? 전쟁이다. 전쟁터에서는 누구나 목숨이 하나이므로 1인 1표가 되는 것이다. 아니면 세금 100만 원당 한 표씩 해서 재용이 혼자 10만 표나 찍을 판이다. 무엇인가? 만인 대 만인의 전쟁이다. 같은 편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만인을 잠재적 적으로 본다. 같은 편끼리는 서열이 있지만 적이라면 서열이 없다. 문재인과 트럼프는 같은 편이므로 보이지 않는 서열이 있지만, 김정은과 트럼프는 적이므로 평등하다. 세금을 얼마나 내느냐로 투표권을 정하는게 아니고 몇 발의 총알에 죽느냐로 투표권을 정한다. 목숨이 두 개라면 두 표다. 민주주의는 끔찍하다. 그래도 이 길을 가는 것은 승리할 목적 때문이다. 돈으로 따지면 부자 순서대로 투표권이 있지만, 구조론으로 보면 권리는 젊은이에게 있다. 구조론은 관성의 법칙을 따르기 때문이다. 가속도가 센 곳, 상대속도가 빠른 것에 권리가 있다. 고속도로 100킬로와 주차장의 30킬로 중에 누가 빠른가? 절대속도는 100킬로가 빠르지만 상대속도는 30킬로가 더 빠르다. 방금 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운전기사가 집중해야 하는 정도는 30킬로가 더 높다. 주차장에서 남의 차 박지 않으려면 말이다. 젊은이에게 더 많은 에너지가 있다는 말이다. 보수는 노인의 은행잔고에 표를 주고 진보는 젊은이의 친구숫자에 표를 준다. 더 많은 친구를 가진 사람이 더 많은 에너지를 가졌으므로 더 많은 표를 가져야 한다. 더 많은 잔고를 가진 사람이 더 많은 에너지를 가졌으므로 더 많은 표를 가져야 한다. 둘 다 맞는 말이다. 새로운 일을 할 때는 더 많은 친구를 가진 사람에게 권력이 가고 하던 일을 할 때는 더 많은 돈을 가진 사람이 권력을 가진다. 우리는 이런 것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자무카를 만나기 전의 순진한 징기스칸들이 주변에 너무 많다. 철이 들어야 한다. 도덕을 높이고 평판을 높이고 명성을 떨쳐봤자 그게 대중에게 아부해서 얻은 것이니 한 방에 훅 간다. 명성이니 평판이니 도덕이니 하는건 신기루와 같은 것이다. 오직 훈련된 군대가 진짜다. |
저도 진짜 승부는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고 봅니다.
미국은 진보와 보수를 떠나서 어제 CNN 뉴스 나와서 인터뷰한 사람들은 보니
백인 우월주의를 가지고 있나고 봅니다. 세계2차대전때 전범국가는 독일, 이탈리아, 일본인데
하필이면 왜 아시아인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했을까? 다시한번 생각해 보겠되었습니다.
CNN뉴스 어조는 북한이 패전국으로 백기투항을 해라 이런 뉴앙스입니다. 오바마와 힐러리를
지지했던 세력입니다.
미국의 엘리트들은 북한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의견이고
남한의 국민들은 항구적인 평화를 원한다는 것을 미국에 보여주어야 합니다.
다가오는 총선에서도 한반도에 항국적인 평화를 원하는 세력에 표를 주어서
미국도 한반도의 상황을 보게 하여야하고 한반도에서 전쟁을 원하는 세력은
영구히 집권할 수 없다는 것을 미국에 보여 주어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뜻을 어길 수 없다는 것을 미국에 보여주어야 하며
그런 민주주의는 미국이 한반도에 심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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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한당은 기울어가는 배안에서 그래도 권력을 잡겠다는 것이 목표지만
지금 국민은 광활한 만주벌판을 달리는 유목민의 DNA를 깨우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