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으로는 존엄을 찾지 못한다. 가장 중요한 것을 각성하지 못한다.
사람의 삶은 "존엄"에서 시작한다. 존엄없이 산 즉, 짐승.
대충 그렇다고 믿고 고고싱? 본문대충 그렇다고 믿고 고고싱?
-----세월호 참사 이후 대학에서건 청소년들을 만나는 자리에서건 '좋은 삶'이란 무엇인지 토론을 해보자고 한다. 대다수 학생들은 좋은 삶을 행복한 삶이라고 답한다. 그럼 다시 무엇이 행복이냐고 물어본다. 여기에서 학생들의 반응은 반반 정도로 갈린다. 한쪽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사는 삶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나머지 반은 그런 삶이 진짜 행복이지만 그건 이상적인 것이고, 행복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고 답한다. 그러나 이 둘 모두 그 행복을 한 단어로 무엇이라고 할 수 있는지 물어보면 '자유'라고 답한다. 전자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사는 것이 자유라는 것이고, 후자는 돈이 많아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을 자유라고 말한다. 행복한 삶이란 결국 자유로운 삶이라는 것이다.
다시 그들에게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사는 것이 혹시 자유가 아니라 오히려 억압되고 종속된 '노예의 삶'은 아닌지 물어보면 대다수 학생은 슬슬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어떤 학생들은 "아 뭘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합니까. 자기 좋아서 하는 것을 하면 행복한 거죠. 너무 피곤해요"라고 대놓고 말하기도 한다. 사실 이렇게 대놓고 말하는 학생들이 고맙다. 그가 이렇게 말함으로써 다른 학생들이 비로소 자기감정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학생들도 이렇게 자꾸 질문에 질문을 이어가는 것이 피곤하냐고 물어보면 대개는 웃으면서 그렇다고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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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성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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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가 좋은 삶을 못 찾는 것입니다." 좋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좋은 삶인지 알아야 한다. 그런데 좋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힘이 결여되어 있다. 바로 질문에 질문을 이어가는 힘이다. 좋은 삶에서 행복으로, 행복에서 자유로, 딱 3단계만 넘어가도 짜증이 나고 질문을 이어가는 걸 포기한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충분히 시간을 들여 생각하고 점검하는 것이 아니라 대충 그렇다고 믿고 있는 것에 판단을 맡겨버린다. 충분히 점검해보지 않고 그렇다고 믿고 그냥 '고고싱' 하는 것이다.-----
원래 뇌사상태에서도 신체반응은 합니다.
그래서 가족들이 끝까지 희망고문을 당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