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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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2056 vote 2 2012.03.09 (00:27:44)

 

어느 분야든 그렇다. 그 사람이 뭘 좀 알고 떠드는지, 모르고 떠드는지 몇 마디만 나눠보면 단박에 알 수 있다. 탁상시계라도 줘보라. 뚜껑을 열고 내부를 들여다 보고 있으면 진짜고, 잔뜩 인상을 쓰면서 바깥을 쓰다듬고 있으면 가짜다.

 

예컨대 이런 거다. 19세기 중국은 왜 낙후했을까? 그게 다 무능한 서태후 때문이라거나, 혹은 욕심쟁이 위안스카이 때문이라거나, 혹은 만연한 부정부패 때문이라거나, 혹은 아편중독 때문이라거나, 혹은 난립한 동북의 군벌 때문이라거나, 혹은 서구열강의 침략 때문이라거나 이런 소리 하는 사람은 보나마나 가짜다.

 

아는게 통 없는 사람이다. 외부의 거창한 것에서 답을 찾으려 하면 안 된다. 그거 다 결과론일 뿐. 안쪽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당시 중국이 낙후한 이유는 이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장이라는 표현은 일종의 비유.)

 

루신의 아큐정전을 읽어본 사람은 뭔가 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뭔가 빠져 있다. 내부에 당연히 있어야 할 포지션들이 없다. 마을은 있는데 이장이 없다. 양반도 없다. 어른도 없다. 뭔가 겉돌고 있다. 아큐가 누구를 찾아가서 의논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오늘날 낙후한 후진국들 보면 대부분 이장이 없다. 제대로 된 족장이 없다. 족장을 자처하는 자가 있긴 하지만 실제로 내막을 알아보면 암것도 아닌 자가 내가 족장인데 하고 나선 거다.

 

현지를 방문한 외부인이 족장을 찾으니까 그 자리에서 족장이 문득 발생한 것이지 원래 그곳에 족장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수요에 따라 공급하는 것이다. 뭐시라? 족장이 필요하다고? 그렇다면 까짓거 내가 족장하지 뭐. 여기 족장 계시다고 전해. 시장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조선도 비슷했다. 당시 골치아픈 외교문제는 중국에 떠넘기면 되었기 때문에 책임자가 없었다. 시스템이 없었다. 아무 것도 없었다. 의사결정을 잘못한 것이 아니고 의사결정할 확실한 주체가 없었다. 혹은 약했다.

 

인디언은 추장이 없다. 추장이 있을 거라는 짐작은 백인들의 생각이다. 추장이라고 알려진 사람은 그냥 부족의 유력자일 뿐이다. 시팅불과 크레이지호스 중에서 누가 리틀빅혼에서 제 7기병대와 싸웠는지는 불분명하다.

 

정답은 원래 없다. 인디언은 추장이 없고, 추장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백인들이 신문을 찍기 위해 붙인 것이다. 추장이 없는데 전투를 한다? 이해가 안 된다. 말이 안 되잖아. 누가 추장이야! 이름을 대라고. 아무나 한 명 대 봐!

 

시팅불은 훙크파파족의 유명한 무당일 뿐이고, 크레이지호스는 오글라라족의 이름난 전사일 뿐이다. 당시 그들이 상당한 발언권을 행사했지만 우연히 일이 그렇게 되었을 뿐 그들이 부족에 의해 선출된 확실한 지도자는 아니다.

 

인디언 부족의 지도자들은 대개 백인들이 제조한 것이다. 백인들이 계속 싸움을 걸어왔고, 대부분 떠났지만 몇몇 인디언들은 끝까지 남아 싸움을 했고, 싸움에 져서 이리저리 쫓겨다니다 보니 유명해져서 지도자가 된 것이다.

 

분명히 말한다. 인디언 사회에는 추장이 없다. 단지 일시적으로 추장처럼 행동하는 자가 있을 뿐이다. 그것도 백인들의 침략 때문에 갑자기 생겨난 것이다. 그게 다 시골 신문사의 작품일 뿐이다.

 

덧붙이자면 서부시대 무법자 이야기도 대개 시골 신문사가 날조한 거다. 다만 그런 찌라시 소설을 쓸만한 단서가 되는 사건은 몇 건 있었다. OK 목장의 결투 좋아하네. 또라이들의 우발적인 총격전에 불과하다.

 

요즘 말로 하면 일진 비슷하다. ‘일진회’라는 것은 경찰이 지어낸 가짜다. 그런거 없다. 조직이 없다. 그냥 반에서 잘 나가는 몇몇 애들과 그 주변의 추종자들이 있을 뿐이다. 수학여행 갈 때 버스 맨 뒷줄 가운데 앉는 녀석이 일진이다.

 

조폭은 직업이 아니라 속성이라는 말이 있다. 경찰이 조폭을 잡으려 하나 간판걸고 일하는 조폭업 종사자가 없기 때문에 잡지 못한다. 겉으로는 멀쩡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데 문제가 생기면 폭력으로 해결하는 자가 있고 그들이 휘하에 애들을 거느리고 있으면 그게 조폭이다.

 

합숙소 같은 것을 구해 놓고 젊은 애들을 깍두기로 만들어서 모아놓은 집단도 많다. 그 깍두기들은 제대로 된 조폭이 아니다. 꼴망파니 목공파니 남문파니 하는 이름은 경찰이 그냥 붙인 것이고 조폭은 이름이 없다.

 

알고보면 대한민국 조폭은 전부 연결되어 있다. 우리나라에는 거대한 하나의 조폭집단이 있으며 그 안에서 형님, 동생 하면서 안면 트고 경조사에 얼굴 내미는 자가 조폭이다. 조폭의 실체는 애매하나 조폭의 속성은 분명하다. 암암리에 연결된 일종의 인맥집단이다.

 

조선시대 양반이라는 것도 계급이 아니라 일종의 사교클럽이라는 말이 있다. 양반이 따로 있는게 아니고 양반집에 출입이 허용되면 곧 양반이다.

 

청나라를 말아먹은 서태후는 자신이 일국의 지도자임을 인식하지 못했다. 자기 입장에서는 단지 왕실의 한 어른일 뿐이었다. 그러니 잘못한게 없다. 추장이 아니니까. 국가의 대표자가 아니니까. 이는 명성황후도 비슷하다. 서태후나 명성황후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대개 봉건시대의 시스템을 이해 못한 것이다.

 

서부시대 시골 찌라시 신문사가 소설 쓸 요량으로 '아무나 한 명 대봐. 니가 추장이지?' 하고 한 명을 지목하듯이 서태후를 지목한 것이다. 누가? 당신이. 왜? 포지션의 필요에 의해.

 

러시아는 야당이 없다. 형식적인 야당은 있는데 제대로 된 야당은 없다. 역시 시스템이 없다. 이장이 없다. 중앙의 몇몇 명망가들이 홀로 떠들 뿐 조직이 없다. 우리가 푸틴을 나무라기는 쉽지만 달려들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징기스칸은 이장을 뽑았다. 그리고 성공했다. 금나라의 맹안모극제에 기초하여 10진법 단위로 백인장, 천인장, 만인장을 선출한 것이다. 그것이 세계정복의 밑거름이 되었다. 로마군은 원래 백부장이 있었다. 일종의 직업군인제였다.

 

이장이 없다는건 포지션이 없다는 말이다. 공격수와 수비수의 역할이 나누어져 있지 않다. 팀이 없다. 내부에 구조가 없다. 직책이 분명하게 나누어져 있지 않다. 아무 것도 없다. 동학농민군처럼 그냥 우르르 몰려와 있다.

 

이장을 뽑으면 되지 않느냐고? 사이비 종교집단을 보라. 왜 이렇게 숫자가 많냐? 이장을 뽑으려 할 때마다 새로운 종파가 하나씩 생긴다. 그거 안 된다. 에너지를 공급하는 상부구조가 없기 때문이다.

 

구조는 내부에 있다. 문제가 생기면 그 안쪽을 들여다보고 내부에 질서를 만드는 사람은 좀 아는 사람이고, 외부를 보고 쓸데없이 구호나 외치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이다.

 

장개석 군대가 패한 이유는 내부에 구조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떤 아저씨가 개인적으로 지팡이 짚고 어찌어찌 장개석 군대를 찾아가서 누구 친척입네 하고 연줄을 대서 소령 계급장이 붙은 군복을 하나 얻어와서 그걸 자랑하며 마을 청년들을 모으는 식으로 군대를 만들었다.

 

동학도 비슷했다. 18세 소년 백범은 홀로 충청도까지 내려가서 교주를 찾아 인사를 드리고 명함 한 장 얻어와서 ‘접주’라는 타이틀 걸고 지역의 포수를 모아 군대를 조직했다. 혼자 한 거다. 몇 달 못 가서 붕괴되고 말았다.

 

장개석군대든 동학군이든 이장이 없어서 망한 것이다. 반면 중국 공산당들은 나름대로 이장을 뽑았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다. 중국공산당은 원래 학생조직이 그대로 당과 군대로 변한 것이다. 학교가 상부구조 역할을 하며 에너지를 공급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도 중국은 뭔가 나사가 빠져 있다.

 

일본은 이장이 있었다. 사무라이들이 실제로 봉건영주 밑에서 직책을 가지고 일을 했다. 조선은 실무자가 아전인데 아전들은 신분이 낮아서 나설 형편이 안 되었고 선비들은 실무를 몰라서 역시 나설 형편이 안 되었다.

 

MBC 다큐 아마존의 눈물에 여러 남자와 중혼한 여자가 나오는데 이는 문명인의 관점에서 본 것이다. 부족민들은 아무 남자나 같이 살면 다 ‘아빠’라고 부른다. 그 남자들 중에 하나는 오빠거나 사촌일 가능성이 있다. 촌수를 구분하는 단어 자체가 없다. 문명인의 관점으로 보면 곤란하다.

 

아프리카에는 족장이 있지만 족장이 판결하지는 않는다. 족장은 중재자 정도다. 문제가 생기면 마을 어른들이 다 모여서 주구장창 떠들어 대는데 그 광경은 가히 볼만한 것이 논리적인 의견개진이 아니라 감동적인 퍼포먼스의 연출에 의해 판결이 나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이 열시간동안 토론하여 대강 의견을 모아놓으면 갑자기 사건의 당사자 친척의 사돈의 팔촌 중에 하나가 난입하여 대성통곡하며 바닥에 한 번 뒹굴어주시면 모두가 즐길만한 볼거리다. 그러면 토론은 처음부터 다시가 된다.

 

이렇게 한 3박 4일 해주면 모두 지쳐서 나가떨어지게 되는데 촌장은 그때쯤이 자신이 나설 타이밍임을 안다. 마지막에 한 마디 해서 정리해준다. 가해자는 피해자 집안에 소 20마리, 양 50마리 내는 걸로 타결보자.

 

모두 수긍하면 촌장의 위신이 세워진 것이다. 그 위신이 촌장의 유일한 힘이다. 자기 위신 깎을 결정은 절대로 안 한다.

 

아프리카의 부족장은 말이 부족장이지 실질적인 결정권이 없다. 판단하지 않고 결정하지 않는다. 백인들이 그를 족장 대접 해주니까 족장일 뿐이다. 대부분의 족장들은 백인들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낸 것이다.

 

예컨대 식당이 장사가 안 된다면 어떨까? 음식맛부터 조사해봐야 한다. 밖에서 불경기 어쩌고 이명박이 녹색성장 어쩌구 하며 엉뚱한 이념 드라이브 하다가 돌연 기도합시다 이러면 보나마나 나가리다.

 

진보는 인류의 집단지능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이쪽이나 저쪽을 주장하며 우기는건 진보가 아니다. 이명박이 환율을 올리니까 환율을 내리는게 진보라는 식으로 말하면 그게 초딩이다.

 

브라질은 금리 올리다가 경제 망했다. 브레이크와 엑셀 중에 하나만 쓰자는 넘은 운전수가 아니라 미친 놈이다. 밖에서 이렇게 하자거나 저렇게 하자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이고 이렇게도 저렇게도 하는 내부의 시스템을 만들자고 말하는 사람이 뭔가를 아는 사람이다.

 

지금 민주당 문제도 내부에 구조가 없는데 있다. 추장이 없다. 박근혜는 분명한 추장이지만 한명숙은 확실한 추장이 아니다. 전혀 의사결정이 안 되고 있다. 민주당의 의사결정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안 되는게 문제다.

 

(솔직히 말하자. 당신은 민주당이 어떤 공천을 하든 불만을 터드리며 한 번 뒹굴어볼 마음이 있었다. 왜? 이장이 없으니까. 대표성이 없으니까. 권한을 위임한적 없으니까. 언제나 그렇듯이 그런 절차를 거쳐서 결정하는 거다. 인디언처럼.)

 

크게 고민할 일은 아니다. 우리쪽에 문재인이 있지만 안철수를 의식해서 공석으로 남겨두는 편이다. 추장은 없지만 이장은 제법 많다. 새누리당은 족장은 있는데 이장이 없다. 조만간 서태후 꼴 난다. 구조적으로 그렇게 되게 되어 있다.

 

선거를 앞두고 있다. 선거는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결정구조를 만들어가는 절차다. 이장을 뽑고 족장을 임명하여 내부에 구조를 만드는 자가 이긴다. 판단이 옳았는지 틀렸는지 고민할 필요없고 구조를 세팅해야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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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사카

2012.03.09 (09:48:02)

오랫동안 눈팅만 하다가, 처음으로 질문드립니다.

추장이 없었다는 말이 고개를 끄떡이게 합니다.

 

그런데, 평소에 했던 생각입니다만, 

많은 경우,  외부에서 추장을 찾거나 낙인하면서,

실제로도 추장이 되가지는 않나요?

 

추장이 없었다가도, 전쟁이나 협상 등 환경변화에 의해,

외부에서 (백인들이) 추장을 계속 찾게 되고, 누군가를 그들이 추장으로 생각하고 대접함에 따라,

저절로 추장이 되고 실제로도 그런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

 

이런 경우는 어떻게 되는걸까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2.03.09 (10:13:41)

그렇죠.

제가 추장이 없다고 말하는건

백인의 선입견 기준으로 그렇다는 말이고

추장이 있다면 있는 겁니다.

 

그런데 흐지부지 되곤 합니다.

절차에 의해 선출된 추장이 아니니까

추장을 먹여 살리는 것은 권위고

권위는 명성에서 나오고

따라서 추장은 자기 명성이나 위신을 실추시키는 결정은 절대로 안 합니다.

그러므로 점차 망할 수 밖에 없는 거지요.

강력한 리더십 따위는 기대할 수 없어요.

 

대표자 나와라 해서 나오면 그 사람이 추장이지요.

백인은 그 추장으로부터 인디언 땅을 사는데 나중 다른 인디언이 나타나서

우리는 땅을 판 적이 없는데?

그 아무개가 도장 찍었어.

그 아무개? 그 사람이 뭔뎅?

 

인디언에게 돈 주고 땅 샀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대표자가 없는데 무슨 땅을 팔아.

 

 

[레벨:2]사카

2012.03.09 (14:53:18)

답변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는 종종 질문을 올려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많은 도움이 됩니다.

 

두가지 질문을 더 드립니다. 

질문의 전제들은 어디선가 주워들은 것(구조론 포함) + 제 생각과 경험에 의한 것입니다.  

(다만, 잡다하고 비체계적으로 읽어 오독이 있을 수 있는 점은 먼저 이해구합니다. ㅜㅜ;) 

 

1.

절차에 의해 선출된 리더와,  

공식적 계급장은 없더라도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상향식 지지와 신뢰에 의해 명성과 권위를 획득한 리더.

그들의 권력, 리더쉽, 카리스마 등은 후자 쪽이 더 쳐줘야 하는거 아닌지요?

언뜻 구조론에서도 관련된 글을 읽었던 기억이...(정확하지는 않습니다만!)

만일 이 말이 어느정도 맞다면 인디언 추장관련 이야기는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지요?

 

 

2. 조직에서의 리더

잘되는 조직을 관찰하면 실질적으로 리더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물론, 그 중간보스들의 비젼, 로열티, 관계조율 등은 보이지 않게 꽉 잡고 있으리라 추정되지만..)

중간보스들이 거의 모든 것을 다 알아서 하는 느낌이 듭니다. 그것도 자발적으로!

 

반대로 리더가 이래라 저래라 일일이 나서는 (이른바 현장형 지도자들의) 조직은,

구성원들의 자율성이 상실되고 수동적이 되어, 한마디로 구경꾼이 되버리는...

리더만 나 잘났네 하고 다니는 꼴.

(선생님의 조광래, 최강희, 징기스칸 등 관련 글들도 이런 느낌의 선상에서 많이 읽었습니다. )

 

그런데, 일본식 예쁜 축구를 잡는 법이라는 글에서

다케다신겐은 리더가 뒤로 빠져 있고,

반대로 징기스칸은 현장에서 일일이 수없이 많은 명령을 내렸다는 글을 보았습니다.

 

가령, 선생님의 김성근과 김응룡이라는 글을 보면,

김응룡은 뒤에 빠져 고참들이 다 알아서 하는 최소한의 개입을 하는 리더였고, 

김성근은 모든 것을 다 일일이 관여하는 지도자였다고 봅니다.

김응룡이 구조론적으로 더 고수라고 하셨습니다. (공감합니다.)

 

이 두가지는 어떻게 조화되어야 할지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2.03.10 (11:02:54)

이런 건 피상적으로 접근하면 안 되고 본질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징기스칸은 평생동안 40여회의 전쟁을 치르면서 한 번도 같은 전술을 두 번 연속해서 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말년에는 직접 전투를 지휘하지 않습니다. 부하에게 2만명 정도의 많지도

않은 병사를 딸려서 이 나라 저 나라에 보내놔도 나라 하나씩 따옵니다.

 

그 부하들은 천하의 인재가 아니고 그냥 우연히 만난 동네 친구거나 자기집 종입니다.

전쟁의 시스템은 건설과정에 어렵지 건설되면 쉽습니다. 그 다음은 공짜먹기죠.

 

공자의 인위와 노자의 무위.

흔히 이걸 제멋대로 해석해서 현장을 뛰지 않고

 

놀맨놀맨 하는게 최고수라는 식으로 말하곤 하죠.

그건 단순한 착각에 불과합니다.

 

구조는 반드시 상부구조가 있어야 합니다.

자발적 지지에 의한 자생적 리더는 그야말로 오합지졸이죠.

 

그런 리더는 부하들이 싫어하는 명령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함부로 약탈을 저지르다가 개판되어 망하고 마는 거죠.

위에서 명령한 즉 절차를 밟은 리더는 일은 잘 하는데 어떤 변화에 적응을 못합니다.

 

그러므로 최고의 리더는 완벽하게 갖추어진 조직체계 안에서

상향식으로 밑에서 커온 잡초같은 리더입니다.

 

잡초판에서 성장한 리더는 그냥 잡초에 불과하고

온실에서 성장한 리더는 그냥 온실 속의 화초에 불과합니다.

 

최고의 리더는 잡초같이 성장하다가 제대로 된 시스템에서 발탁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징기스칸도 잡초같이 굴러다니다가 금나라에 잡혀가서 금나라의 완벽한 시스템을 베껴온 거죠.

 

제가 강조하는 것은 무위라고 해서 암것도 안하는게 아니고

베테랑들은 눈빛만으로도 소통되기 때문에 그 안에 무수한 상호작용이 있는 겁니다.

 

그냥 뒷짐지고 암것도 안 하는건 미친 짓이에요.

워낙 많은 훈련과 경험 때문에 리더가 일일이 말 안해도 그냥 알아먹는게 최고수죠.

 

김성근 감독도 연승할때 한동안 작전을 내지 않은 적이 있습니다.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면 전혀 작전을 안 내도 상대가 알아서 승리를 헌납합니다.

 

작전을 내든 안 내든 그 안에 무수한 의사소통이 있습니다.

좋은 팀은 감독이 말 안해도 1루에 주자가 있으면 일루 쪽으로 칩니다.

 

팀배팅 하는 거죠.

그거 일일이 감독이 '얌마 팀배팅 하라니까 누가 2루쪽으로 치래?' 하고 인상쓰고 그러면 이미 나가리죠.

 

김응룡 감독은 선후배관계를 이용하는데 선배들이 후배를 갈궈서 팀배팅 하게 만듭니다.

LG는 그 반대죠. 다들 잘나서 개인기록만 신경쓰고 팀배팅 안 합니다.

 

선행주자 아웃시키고 자기는 1루에 나가 있죠.

감독이 멍청해서 암것도 안 하는 것과 충분히 시스템을 만들어놨기 때문에 구태여 할 필요도 없는 것은 다르죠.

 

메시와 호날두가 한 팀에서 뛰고 있으면 감독이 가만있어도 됩니다.

 

 

구조론적으로는 세력전과 조직전 돌파전 기동전 동원전이 있는데

세력전이 가장 우수한 전쟁형태인 세력전은 리더가 일일이 개입하지 않고

 

내부에 여러개의 우두머리가 있어서 이들이 서로 손발을 맞춥니다.

그런데 세력전은 장기전의 방법이고 단기전에는 리더가 일일이 지시하는 조직전이 최강이고

 

한 회의 전투에는 돌파전이 가장 효율적인 전투형태입니다.

일본기업은 세력전을 하는 척 하지만 그건 환상이고 실제로는 세력전이 아니라는게 문제죠.

 

여러 개의 머리가 있어서 팀플레이 하는게 아니고 그냥 개판인거죠.

2차대전때 일본군은 러일전쟁에 참여한 원로가 다케다신겐처럼 뒤에 앉아있고

 

젊은 장교들이 앞에서 전쟁을 했는데 한동안 잘나갔죠.

근데 왜 러일전쟁 원로들은 뒤에 앉아서 가만 있었을까요?

 

그 영감쟁이들이 전차가 먼지 전투기가 먼지 압니까?

사실은 조또 아는게 없으니까 가만있는 거에요.

 

이게 일종의 사기라는 거죠.

세력전을 흉내내고 있지만 실제로는 돌파전을 한 겁니다.

 

일본의 재벌들이 암것도 안 하고 사상가인척 하는 이유가 머게요?

조또 아는게 없으니까 그런 겁니다.

 

가장 좋은 전쟁형태는 리더가 명령을 전혀 안 내리고 팀원들에게 맡기는게 맞습니다.

근데 그건 사기고 그냥 조또 아는게 없어서 입 닫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히틀러가 초반에는 간섭을 안 했어요.

근데 창의적인 장교들이 재능을 발휘해서 연전연승을 했지요.

 

그러자 암것도 안하는게 최고구나?

천만에. 구데리안 만슈타인 로멜 등이 잘 하지만 이들은 돌파전이고

돌파전은 보급이 안 되어서 수비를 못합니다. 

굉장히 위험한 짓을 한 거에요.

 

근데 전쟁또라이들은 돌파전을 하는 맹장들을 찬양하고 히틀러를 등신 취급하는데 그게 모르고 헛소리 하는 겁니다.

돌파전은 초반에만 먹히는 거고 장기전으로 가면 죽어납니다.

 

히틀러가 계속 간섭 안하고 팔짱끼고 있었다면 장수들이 자기네끼리 멱살잡고 싸웁니다.

지원은 한정되어 있는데 맹장들이 다들 내쪽으로 보내라 이런다 말에요.

 

히틀러가 적극 개입하는게 맞습니다.

문제는 히틀러가 등신이라는 거에요. 이론적으로는 히틀러가 개입하는게 절대로 맞습니다.

 

놔두면 전선 길어지고 보급 안 되고 지원 끊기고 맹장들이 서로 싸움질해서 개판 됩니다.

괴링은 공군지원 안 해주고 로멜은 괴링부터 죽이려 들었을겁니다.

 

괴링 때문에 졌다는 식으로 말하는건 착각입니다.

최고의 조종사는 원래 숫자가 적으며 초반에는 최고조종사들이 나서지만

 

나중에는 베테랑  조종사가 다 죽고 없다 말입니다.

괴링만 탓할 일은 아니라는 거죠.

 

겁쟁이 신참 조종사가 포위된 아군에게 보급될 식량을 포위하고 있는 적군에게 주고 옵니다.

집에까지 가려면 비행기 기름 아껴야 되니 보급품 투하하고 가야하는데

 

멍청이 신참 조종사가  이미 비행기 기름 다 써버렸고 적군의 포화도 무섭고.

 

김성근도 최고의 선수들이 있었다면 작전 안 하고 가만 있었을 겁니다.

아직 그 정도 수준에 도달하지 않은 거죠.

 

최고의 선수들만 모아서 작전 안 하고 이기는게 최선인데 그러려면 최고의 구단이 있어야 합니다.

구단지원이 개떡인데 감독이 재능없는 선수들 데리고 이기려면 일일이 명령을 내릴 수 밖에 없지요.

 

 구조론은 질 안에 입자, 입자 안에 힘, 힘 안에 운동, 운동 안에 양이 있는 겁니다.

 

리더가 팀을 만들어놓고 가만있는건 세력전이고, 일일이 잔소리하는건 조직전인데

세력전 안에 조직전이 있어요. 허정무가 가만있으면 박지성이 그 역할을 하는 겁니다.

 

근데 허정무도 가만있고 박지성도 가만있으면 당연히 패배할 밖에.

김응룡이 가만 있으면 고참들이 그 역할을 대리하는 거죠.

 

머니볼은 감독이 가만있고 대신 빌리빈 구단주가 이리저리 뛰어다녔죠.

감독이 가만있어도 구단에서 최고의 선수를 구해주면 이기는건 당연하지요.

 

세력전과 조직전 중에서 하나를 택하는게 아니라 세력전 안에 조직전이 있어요.

노무현 대통령이 가만 있으면 이해찬 총리가 열심히 뛰는 겁니다.

 

둘 다 가만있으면 망하죠.

최고의 리더가 가만있는 리더여야 하는 이유는

 

최고의 리더는 밖에서 자원을 조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만있는게 아니고 더 중요한 일을 하는 거죠.

 

유방은 전쟁을 할줄 몰라서 가만있고 현장은 한신과 경포가 뛰었는데

유방이 가만있은게 아니고 장량 진평 소하 등을 데리고 와서 최고의 팀을 조직한 거죠.

 

결론은 리더가 가만있는다고 하면서 돌파전을 세력전으로 사기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돌파전은 뛰어난 선수 한 명에게만 몰아주고 원맨쇼 하게 하는건데

 

초반에 잘 나가다가 뒷심이 달려 망합니다.

 

가만있어도 될 정도로 선수를 키워놓고 시스템을 만들어놓고 실세총리를 앉혀놓고 가만있는것과

사실은 아는게 없어서 그냥 가만있는건 다르다는 거죠.

 

상부구조 - 질 입자 힘

하부구조 - 힘 운동 량

 

질과 힘이 비슷하기 때문에 속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2차대전때 일본군은 질인척 했지만 실제로는 힘이었죠.

 

 

[레벨:1]쉬엄쉬엄

2012.03.12 (19:40:26)

원문보다 주석이 명료하고 명쾌하게 다가옵니다.

저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이렇게 떠넣어줘야 먹을수가 있나 봅니다.

다른분의 질문덕에 제가 풍성한 저녁상을 받아서  배부른 느낌입니다.

감사합니다.

[레벨:2]사카

2012.03.11 (17:10:18)

답변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생각할 거리가 많네요.

저녁에 찬찬히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항상 많은 영감을 주는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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