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는 이상한 사람들이다. 보통사람의 도덕규범에 얽매이면 예술은 못 한다. 쿠르베나 마네의 작품을 처음 보면 다들 충격받는다. 저게 제정신인가? 중심을 잡아주는 평론가의 활약이 필요한 이유다. 평론가들이 시류에 영합하면 안 되고 미래를 예언해야 한다. 마광수도 미래를 잘못 예언해서 망했는데 그때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선진국이 될수록 개인의 영역은 확대되고 머지않아 한국에도 누드 해수욕장이 들어서지 않을까? 그렇게 되었으면 마광수는 선지자로 대접받았을 것이다.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에이즈 폭탄에 이어 라즈니쉬 폭탄을 맞고 뉴에이지 운운하던 히피들은 한 방에 갔다. 당시는 지식인 중에 히피를 지지하는 사람이 많았다. 결과적으로 히피도 가고, 뉴에이지도 가고, 라즈니쉬도 가고, 마광수도 가고 분위기에 휩쓸려 까불던 애들은 죽어갔다. 한국에서 누드 해수욕장은 꿈도 못 꾸는 전체주의 사회가 되었으므로 권력을 쥔 승리자 입장에서 마광수가 나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 사람은 예술에 대한 존경심이 없는 쓰레기다. 마광수가 졌다. 현실을 받아들여라. 이런 소리나 하는 자들은 인간실격이다. 그들은 지식인의 대화상대가 아니다. 에이즈의 등장을 어찌 알아? 여기에는 정치적 프레임이 걸려 있다. 이건 예술에 대한 담론이 아니라 권력에 대한 담론이다. 한국에는 좋은 평론가가 없다. 다들 권력의 눈치를 보고, 교회의 눈치를 보고 비겁한 발언을 하더라. 한쪽에는 교주화하고 한쪽에는 악마화하는 게임이 벌어진다. 객관적으로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없다. 김기덕을 악마화하는 프레임은 전체주의 세력이 대한민국에서 승리했음을 의미한다. 예술가의 끼가 있는 사람들은 80년대 히피붐에 편승했다. 마광수처럼 실수했다. 예술가니까 봐주자. 예술가들이 다 그렇지. 하는 시선과 놔두면 교주화된다. 미연에 방지하자. 김기덕을 죽여야 내가 산다고 생각하는 두 종류의 인간 군상이 있다. 나는 그중에 하나는 인간이 아니라고 본다. 김기덕은 아직 죽지 않았다. 지금은 승리자들이 전리품을 챙기는 때니까 숨죽이고 있는 거다. 정치와 예술이 갈등한다면 어느 편에 서느냐다. 정치중독자와 대화할 이유가 있을까? 다산 정약용이 정조한테 쓴 반성문으로 보면 당시에 사회 분위기가 그랬다는 게 정약용의 기독교 변명이다. 이후 서학은 현세를 부정하고 죽음을 찬미하는 반인간 집단이라며 성토하는 분위기로 흘렀다. 처음에는 안 그랬거든. 새로운 것을 숭상하는 기풍이 있었거든. 정조가 권력을 잡자, 태도를 바꾼다. 처음에는 영조가 금지한 술, 담배, 쇠고기를 허용하고 자유로웠다. 이후 문체반정을 하면서 독재로 흘러갔다. 정약용이 잘못했나, 정조가 변절했나? 공산주의도 비슷한데 우리가 아는 공산주의는 스탈린이 만들었고 내막은 나중에 알려졌으며 40년대까지 공산주의는 토지개혁이었다. 한때는 90퍼센트가 공산주의를 지지했다. 사람들이 과거를 잊어먹으니까 소급해서 홍범도를 공산당으로 몰아붙인다.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면 치이는 것은 당연한데 중요한 것은 그런 판단을 누가 하느냐다. 평론가들의 할 일이다. 리버럴과 전체주의 세력의 싸움에서 근래에 리버럴이 패배한 것이다. 반대로 과거에 리버럴이 폭주하던 때도 있었다. 김기덕은 리버럴이 폭주하던 시절의 인물이며 지금은 반전되어 성찰이니, 진정성이니, 품성이니, 인성이니 하면서 좌파가 전체주의와 결탁한 것이 사실이다. 전체주의에 굴복한 좌파를 나는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 결탁의 연결고리가 된 게 주사파 품성론이다. 다들 알잖아. 리버럴의 폭주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버럴은 계속 가는 것이다. 예술은 원래 리버럴이며 그게 아니라면 뽕짝도 예술이고 나비도 새다. 인간을 억압하려는 좌파의 의도를 폭로하지 않을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