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만큼 우리 역사에 치욕적인 전쟁이 또 있을까?
임진왜란 끝난지 3-40년 밖에 안지났고, 이미 일본의 조총술을 충분히 연마했을 시간인데...
이괄의 난(1624년)때 제일 억울하게 죽은 이들이 바로 임진왜란 때 항복한 왜군들 중 일부였던 130명의 항왜군이었다.
몽고의 침입때도 기병들한테 그렇게 당하고 나서도 대책이 없었나?
기병의 탁월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aid/2012/01/29/6870844.html?cloc=nnc
http://blog.naver.com/jdyi8589?Redirect=Log&logNo=70129985657
조총 4만정? 믿기 어렵소.
조선왕조 후기 내내 청나라가 조총 몇 천정을 요구하곤 해서
조선의 가장 중대한 문제로 되었는데(조선의 국방력을 약화시킬 목적)
4만정의 조총이 있다니 아마 기록의 오류일 것이오.
그리고 왜군도 조총은 선두에 세우고 조총만으로 싸우는 바보는 지구에 없소.
왜군의 주력은 긴 창이오.
조총으로는 기병을 잡고 창으로 싸우는 것이오.
아마 기록의 착오일테고 쌍령전투에 패한 이유는 전투경험 부족이오.
4만정의 조총이 있다면 추가로 몇 만정 더 있을 건데
한번 전투에 져도 다음에 이기면 되지 뭐가 걱정이오?
기병은 절대 조총을 이길 수 없소.
쌍령전투는 전쟁 초반에 전투경험 없는 군대가 흔히 일으키는 현상일 뿐이오.
초반에는 소수의 선발대를 보내서 여러합을 겨뤄보고
본진이 출동하는 것이 상식인데 이런 엉터리 전투는 상식이하의 전투이고
고금에 이런 바보전투는 매우 많았소.
한번 지는게 문제가 아니라 그 다음의 대책이 없었는 것이 진짜 문제이오.
기병이 강하다?
천만에.
바보들은 무슨 짓을 해도 집니다.
조총이 기병에 진다면 효종은 뭘 믿고 북벌을 계획했겠소?
일본도 조총을 도입하고 수십년이 지나서 오다 노부나가에 의해 본격적으로 활용되었소?
일본은 바보라서 조총을 활용하지 않고 나뒀겠소?
다케다 신겐이 기병으로 조총부대를 쉽게 이겼는건 알려진 이야기.
그러나 한번 조총이 기병을 이기고 난 다음부터는 어떤 기병도 조총을 이길 수 없었다는 것도 알려진 이야기.
그 차이를 모르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