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들의 죽음 – 오바마 효과. 김일성 죽고 김정일에 대한 기대감이 있는 상태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김정일 사망은 박근혜에게 나쁜 소식이다. 당장은 꼴통들이 마이크 잡고 별소리 다 하겠지만 거기까지다. 푸닥거리를 거치며 북한에 대한 우려는 줄어든다. 김동길은 또 뭔가가 우려된다고 씨부리겠지만 재방송이다. 보수는 재방송만 할 수 있고 라이브는 진보만 할 수 있다. 국민은 라이브를 원한다. 미국의 역할이 필요하다. 그동안 세계의 모든 독재정권은 사실상 미국이 혼자 먹여살린 거다. 오바마가 집권하자마자 세계의 독재자들이 빗질하듯 싹쓸이로 소탕되는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왜 중동이나 남미가 아닌 아프리카가 먼저 일어났겠는가? 오바마가 아프리카계이기 때문이다. 오바마의 집권이 아프리카인에게 자부심을 주었기 때문에 독재가 도미노로 붕괴된 것이다. 인간은 언제라도 존엄을 원한다. 자부심을 원한다. 왜? 그것이 이야기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전파하는 것이 삶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의 목적은 시시한 행복 따위가 아니다. 인간은 자기 내면으로부터의 소식을 전하기 원하며 그것은 자존감에 의하여 촉발된다. 그것이 내부의 욕망에 불을 지펴 민주화로 나타난다. 공동체 안에서 자신에게 능동적인 역할을 주는 거다. 반면 존엄을 얻지 못했을 때 타인에게 위임장을 쓴다. 자신의 존엄을 타인에게 위임해 버리는 것이 독재다. 인간이 자기 존엄을 아주 버릴 수는 없기 때문에 독재자에게 대표하게 하여 맡겨놓는다. 왜 왕이 존재하겠는가? 국민이 왕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없으면 허전한 거다. 어차피 자기가 가진 것이라곤 땡전 한 푼 없는 판에 남의 왕실과 궁전이라도 명목이나마 소유하겠다는 거다. 자신이 직접 재물을 모을 자신이 없으므로 남의 재물을 구경이라도 하겠다는 거다. 내것을 소유할 때는 당연히 실속있는 것을 원한다. 남의 것을 구경할 때는 실속 필요없다. 번쩍거리면 된다. ‘우와!’ 하고 감탄사만 내지르면 된다. 타인에게 입에 침을 튀기며 수다를 떨 소스만 찔러주면 된다. 이런건 영화나 음악이나 예술에도 반영된다. 관객을 감탄시킬 목적의 영화나 음악이 있다. 그림이나 조각도 마찬가지다. 그럴 때 관객은 타자화 되고 소외된다. 사회적 소통의 메커니즘에서 자신을 배제하는 것이다. 가짜다. 헐리우드 영화가 예술로 인정받지 못하는게 그 때문이다. 아카데미 영화제는 근본적으로 그쪽 라인이다. 다른 사람에게 “야! 내 그 영화 봤는데 말야. 죽이더라구.” 하고 말을 걸 수 있는 소스만 찔러주는 거다. 진짜라면 내 안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 내면에 축적된 자산을 과시해야 한다. 김기덕 감독 영화는 남의 잔치 구경하며 감탄사나 내지르는 것이 아니다. 내 안의 상처를 찔러서 자극하는 것이다. 자신이 이야기의 중심에 서는 것이다. 문제는 전략이다. 내것을 자랑하는 전략과 남의 것을 찬양하는 전략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거다. 내면이 부실하면 자랑할 것이 없으니 남을 찬양하게 된다. 이왕 찬앙햐려면 몰아주는게 맞다. ◎ 인간은 사회적 소통을 원하며 그 소스는 존엄에서 주어진다. 그 존엄의 소스를 타자에게서 구하는 데서 슬픔은 시작된다. 왜 북한의 독재가 장기화 되었는가? 미국이 북한을 위협했기 때문이다. 미국과 북한이 수교하면 3년 안에 다 정리될 수 있다. 클린턴이 거의 다 이루어놓았는데 부시가 꼴통을 부려서 조져놓았다. 역할게임에 놀아나지 말아야 한다. 미국이 밉다고 본능적으로 소련편에 붙겠다는 식은 곤란하다. 재벌이 밉다고 ‘뭐가 우려된다’는 둥 하는 김동길 논법을 쓰며 반경제적 태도를 취한다면 곤란하다. 합리적이어야 한다. 우리가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 상대의 행동을 보고 거기에 연동시켜 자기 행동을 결정하는 바보짓을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 그 경우는 이미 주도권을 잃은 거다. 종속된다. 상대가 선공하면 받아치는 되치기 수법이 당장 효과가 있지만 그러다가 평생 되치기만 하게 된다. 그것은 시소의 한쪽에 올라탄 것이다. 탑 포지션이 아니다. 밑에 깔린 거다. 손해보게 된다. 양쪽을 동시에 제어할 수 있으면서도 현상에 교착되지 않고 앞으로 진도 나가주는 혁신의 길을 잡아나가야 한다. 그러려면 내 안에 자산이 축적되어 있어야 한다. 자부심이 그 자산이 된다. 자원의 질이 좋아야 한다. 팀 케미스트리를 높여야 한다. 반응성이 좋아야 한다. 힘으로 눌러 제압하기보다 미끼를 줘서 살살 따라오게 만들어야 한다. 문제는 그러다가 적전분열 일어나는 거다. 그래서 팀 케미스트리가 필요한 거다. 우리편끼리 반응성이 좋으면, 호흡이 잘 맞으면 살을 내주고 뼈를 벨 수도 있고 온갖 작전을 다 쓸 수 있다. 그러나 반응성이 나쁘면 공격일변도 뿐이다. 케미스트리가 나쁜 팀은 오직 공격할 때만 팀웍을 유지할 수 있다. 수비모드로 가면 서로 의심해서 손발이 맞지 않아 파탄나고 만다. 존엄을 얻어야 반응성이 좋아진다. 존엄이 내면의 탑 포지션이다. 김정은의 3대 세습은 어렵다. 세습을 위장하겠지만 실제로는 수렴청정으로 갈 것이다. 김일성은 수령님으로 불렸고 김정일은 장군님으로 불렸다. 김정은은 대장동지라는데 동지라면 별거 아니다. 김일성은 양복을 입었고 김정일은 인민복을 입었다. 양복을 입고 싶어도 입을 수 없었을만큼 권력기반이 약했던 것이다. 박정희도 세우고 박태준도 세운다는 동상 하나 세우지 못한 자가 김정일이다. 김정일의 권력은 공고하지만 슬쩍 찔러주면 풍선처럼 터지는 위태로운 것이었다. 부시가 만들어준 권력이다. 풀어주면 녹아서 무너진다. 봄이 오면 눈처럼 녹아내린다. 무엇이 두렵다는 말인가? 북한군은 평양방어 위주로 배치되어 있다. 쿠데타군이 평양에 입성하는 것을 막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군을 휴전선으로 전진배치 했다는 이야기는 50년전부터 나왔지만 전진할 수 없다. 길이 없기 때문이다. 북한에 돌발상황이 일어나도 내전형식이다. 따발총 들고 넘어오는 시대는 지났고 현대전은 장비싸움이다. 북한은 장비도 없고, 장비를 이동시킬 길도 없다. 도발할 수 없다. 김정일이 오바마 때문에 죽은건 아니지만, 독재정권의 붕괴는 시대의 흐름이다. 결론은 케미스트리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인류의 반응성이 총체적으로 높아졌기 때문에 독재정권이 끝장나고 있는 거다. 누구도 스마트폰 시대에 저항할 수 없다. 차베스도 푸틴도 마찬가지다. 중국도 변해야 한다. 미국 밉다고 중국 두둔하면 바보짓이다. 우리가 더 앞질러가서 진도 못 따라오는 후진 미국을 비판해야 한다. 세계 최고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무엇으로 최고가 되느냐고? 자부심에서, 존엄에서, 반응성에서, 케미스트리에서 우리는 최고가 될 수 있다. 앞서가며 길을 여는 자가 될 수 있다. 중러미일 사이에 끼어 세계에서 가장 긴장도가 높고 스트레스가 심한 나라가 한국이다. 날씨의 변덕도 세계 최고다. (오늘 모스크바 날씨 최저 영하 2도. 서울이 더 추움) 아이큐도 세계 최고다. 지구에서 가장 반응성 좋은, 자원의 질이 우수한, 의사결정 속도가 빠른 나라가 한국인데 한국이 뭘 보여주지 못하면 어쩌자는 말인가? 이는 지구에 대한 무책임이다. 정상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쫄지 말라는 말이다. 스마트폰 시대다. 인류의 질이 변했다. 환경이 변했다. 그때마다 인류는 뭔가 보여주었다. 이제는 우리가 보여줄 차례. 일단 명박부터 해결하고 북한도 해결하고 중국도 미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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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semo
sunbee7
김일성은 수령님으로 불렸고, 김정일은 장군님으로, 김정은은 "대장동지"에 불과 하군요.
글을 읽고 나니 불안하던 심기가 많이 해소됩니다.
곱슬이
2011년이 저물면서, 함께
이제 저 새대들의 시대가 매듭짓는 상징처럼 느껴지오.
김동길도 뭐라고 주절거릴 꺼리 찾기가 힘들고,
조갑제도 다리에 힘이 빠질 것이오.
박근혜는 할배들 사이에서도 가치상실.
가스통할배들은 불살라야할 사진을 잃었소.
새파란 애기사진을 불사를 순 없지않소? 게다가 나름 꽃미남인데.
김일성이 죽고 가장 큰 데미지를 받은 쪽은 수꼴들이었소.
김일성이 죽어도 아무일도 안일어난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당하기 힘들었을꺼요.
사실은 아주 많은 일들이 일어났는데도 그들은 몰랐소.
이젠 그들도 잘 알고있소 김정일이 죽어도 아무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그러나 그건 착각일것이오.
또 아주 많은 일이 일어날 것같소.
귀족
쫄지 않겠습니다 ^^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 청춘 말고 또 있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