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민주 정의 성장 복지
어느 사회든 인간이 추구하는 바는 같다. 보편성이 있는 거다. 자유, 민주, 정의, 성장, 복지 순이다. 단어는 바꿀 수 있다. 예컨대 정의는 평등으로, 성장은 진보로, 복지는 분배로 바꾸어도 맥락은 같다. ◎ 자유, 민주, 정의, 성장, 복지 ◎ 자유, 민주, 평등, 진보, 분배 구조론은 포지션을 본다. 포지션이 같으면 같다. 네 번째 성장은 경제적 성장이고, 진보는 공동체의 정치적 발달인데, 경제가 성장하든 공동체가 발달하든 움직이는 것은 무조건 네 번째다. 구조론의 운동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 질, 입자, 힘, 운동, 량 ◎ 자유, 민주, 정의, 성장, 복지 중요한건 서열이다. 자유가 1번, 민주가 2번, 정의가 3번. 하부구조는 일단 논외로 하고 상부구조인 1, 2, 3번에 주목하기로 하면. ◎ 질 - 자유는 세계관의 문제.. 풀어놓고 ◎ 입자 - 민주는 정체성의 문제.. 의견을 묻고 ◎ 힘 - 정의는 가치관의 문제.. 결정을 내린다. 그 다음은 실행하고(행동).. 성장? 진보? 발달? 그 다음은 누린다.(보상).. 복지? 분배? 행복? 철학은 상부구조의 문제이므로 세계관, 정체성, 가치관 위주로 논하는 거다. 세계관이 정체성을 결정하고 정체성이 가치관을 결정한다. 1번과 2번이 압축을 해서 세 번째 가치관에서 YES냐 NO냐 판단하고 그 다음은 행동과 보상이다. 순서대로 가야 한다. 그런데 헷갈린다. 마이너스 원리 때문이다. 진보한다는 것은 원래 파괴하고 해체하고 퇴행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보할수록 더 좋아진다는 것은 막연한 통념일 뿐이다. 나빠진다. 진보는 좋은 것이라는 막연한 통념 때문에 오판하게 된다. 그냥 손빨래 하다가 세탁기로 대체하는건 좋은데, 대신 세탁기 공장 노동자가 되어 하루 종일 기계 만지고 기름냄새 맡는 것이 과연 좋은 소식이냐다. 진보한다는 것은 시스템화 한다는 것이다. 자유로운 개인으로 있다가 시스템의 하부구조로 편입되어 종속된다. 이게 과연 좋은 소식일까? 과연 행복할까? 아닐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길을 가야 한다. 힘들어도 외로워도 그 길을 가야 한다. 왜냐하면 이미 발동이 걸렸기 때문이다. 이미 문제는 전 지구적인 레벨에서 일어나고 있다. 전 지구인의 역량이 시스템화 되어야 해결될 수 있다. 그게 진보다. 옛날에는 누가 사고를 쳐도 마을 안에서 해결되었다. 이제는 무슨 사건이 나도 전 국민이 다 알게 된다. 이하늘이 17년 전에 박정환 뒤통수 친 일이 한국인 모두의 문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문제가 시스템화 되어 그 규모가 커졌기 때문에 이에 대한 인간들의 대응도 시스템화 된다. 그것이 진보다. 이제는 문제가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 일어나므로 전 지구인이 시스템의 하부구조로 편입되고 종속된다. 어떻게 보면 끔찍한 것이다. 예로부터 미래학자들이 디스토피아를 상상한 것이 다 이유가 있다. 유토피아=디스토피아다. 둘은 동전의 양면이다. 그러나 이미 발동이 걸렸으므로 인간은 그 길을 가야 한다. ◎ 진보=전 지구적으로 자원을 동원하여 대응하는 것.=전 지구적인 재앙이 일어날 수도 있는 것. 왜?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 존재의 본질은 상호작용이다. 이쪽에서 움직이면 저쪽에서도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 핵재앙에서 보듯이 사고가 지구단위로 일어나는 판에 대응해야 한다. 진보밖에 없다. ‘자유, 민주, 정의, 성장, 복지’로 가는 것은 진보의 기승전결 전개과정이며 시스템의 집적도가 높아지는 과정이며, 인간의 삶이 지구 단위로 얽혀들어가는 과정이다. 이제는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난 싫어.’ 하고 후쿠시마로 도망갈 수 없다. 거기 오염되었다. 잘 살펴야 한다. 시끄러운 광장으로 걸어나와야 한다. 인류 전체의 역량을 하나의 단일 시스템으로 조직하는 위대한=위험한 임무에 참여해야 한다. 싫다면? 그래도 참여해야 한다. 그 시스템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참여하면 된다. 좋다면? 역시 참여해야 한다. 그 시스템을 먼저 장악하고 조정할 수 있다. 그 자가 다 먹는다. 어차피 해야한다면 먼저 하는게 낫다. 자유, 민주, 정의, 성장, 복지 순서대로 간다.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자유는 60년대, 민주는 70년대 하는 식으로 연대를 긋는게 아니다. 하나의 사건 안에서 이 순서대로 간다는 거다. 작은 사건이면 이 다섯이 1초만에 전개될 수도 있고, 큰 사건이면 시계태엽처럼 천천히 풀릴 수도 있다. 자유가 먼저 오고 한참 뒤에 민주가 올 수도 있다. 그러나 본질에서는 동시에 오는 것이다. 왜? 상부구조는 하부구조를 포함한다. 자유 속에 민주가 들어 있고 민주 속에 정의가, 정의 속에 성장이, 성장 속에 복지가 들어 있다. 순서대로 풀리지만 동시에 풀리는 것이다. 이거 잘 알아야 한다. 그러면서도 순서대로 결정한다. 자유를 먼저 결정하고 다음에 민주를 결정한다. 자유 속에 이미 민주가 들어있는데 왜 민주가 나중에 결정되는가? 나중에 구체화 된다는 거 뿐이다. 잠재해 있다가 나타난다. 알 속에 병아리가 이미 들어있지만 알이 먼저 확보되고 병아리는 나중 확인된다. 동시에 오지만 순서대로 인정된다. 동시에 오지만 외부의 관측자에게는 선물 포장지를 다 풀어야 확인되는 거다. 그래서? 사기치는 자들이 나타났다. 이넘들은 교묘한 꼼수를 쓰는데 선물상자를 가져오고 그 안에 케이크가 들어있다고 말한다. 손님이 선물 포장지 풀고 있을 때 한쪽에서 열나게 케이크 굽고 있다. 그 상자 안에 케이크가 있다는 말은 거짓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이중 꼼수를 쓴다. 상자 안에 또 상자가 들어 있다. 러시아인형 마트료시카처럼 계속 나온다. 상자 풀다가 손님 지친다. 여태 케이크 못 먹고 있다. 실정은 어떠한가? ◎ 자유당 <- 이넘들은 겉으로 자유를 표방하지만 본심은 따로 있다. 자유만 하고 거기서 더 이상 진도를 안나가겠다는 거다. 꼼수다. 자유! 자유! 하고 입만 열었다 하면 자유 팔아먹는 수구꼴통들 보라. 이넘들은 포장지 박스에 자유라고 크게 써붙여 놓았는데 이중, 삼중포장으로 손님은 아직 그 박스 못 풀고 있다. 정작 자유는 없다. 박스 안에 케이크 없다. 그들은 자유라는 정거장을 지나, 다음 정거장으로 진도를 나가는게 아니라 여전히 자유라 불리는 고지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다. 자유를 위하여 자유가 없는 공산당과 싸운다는 주의다. 언제까지? 평생! 자유를 위해 공산당과 평생 싸워야 하니까 실상은 자유도 없는 것이다. ‘자유는 어디에 있소?’ ‘전쟁 끝나면 주겠소.’ ‘전쟁은 언제 끝나죠?’ ‘영원히 끝 안나오.’ 자유당에 자유는 없는 거다. 뭐를 ‘위하여’라고 말하는 넘은 일단 사기로 보아야 한다. ‘의하여’가 진짜다. ‘자유를 위하여’가 아니라 ‘자유에 의하여’가 진짜다. 진도 나가야 하는 거다. 자유에 의하여 민주로 나아가야 한다. 그게 진짜다. 자유에 의하면 민주로 건너간다. 다음 정거장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의하면’ 머물러 있지 않고 계속 진도 나간다. 반면 ‘위하는’ 자는 절대 진도 안 나간다. 계속 그 주변에서 얼쩡거린다. 자유의 목적은 민주로 가는 것인데, 자유에 매여서 민주로 나아가지 않는다. 무엇인가? 위하여는 for다. for는 앞이라는 뜻이다. 그것을 앞세우고 자신은 뒤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계속 자유 뒤에 있다. ◎ 자유민주당 <- 자민당이든 민자당이든 같다. 자유에 머물러 있기가 낯간지러우니까 민주도 끼워주자는 건데 자유와 민주 사이에서 방황할 뿐 자유도 민주도 제대로 졸업 못하는 자들이다. 역시 진도를 안나갈 꿍꿍이로 이러는 것이다.
◎ 민주당 <- 민주 안에는 자유는 이미 들어가 있다. 왜? 자유 없이는 민주가 원초적으로 불가능하니까. 자유라는 고지를 정복하고 와서 민주라는 정거장까지 진도를 나간 것이다. 계속 가야 한다.
민주라는 말이 민주에 머물러 있자는 목적이면 곤란하다. 자유를 했으면 민주를 하고 민주를 했으면 정의(평등)로 나가야 한다. 순서가 있다. 자유가 먼저고 민주가 나중이다. 자유 없는 민주는 사기다. 그러므로 ‘자유민주’라는 말은 필요없다. ‘자유민주주의’ 어쩌고 하는 넘들은 사실 자유도 민주도 할 생각이 없는 자들이다. 자유는 기본이고 민주, 정의(평등) 성장(공동체의 진보), 복지(분배, 박애)로 계속 진도를 나가줘야 한다. 프랑스 혁명의 구호는 ‘자유, 평등, 박애’였다. of->by->for다. 자유(of), 평등(by), 박애(for)다. 정리하면 자유에 의한, 평등을 통한, 박애를 위한이다. 박애가 최종 목표이고, 자유가 최초 출발점이다. ◎ 자유에 의한, 평등을 통한, 박애를 위한 - 한 줄에 꿰어 설명해야 진짜다. 구조론으로 보면 상부구조에 하부구조는 이미 포섭되어 있다. 자유에는 이미 민주, 정의, 성장, 복지가 포함되어 있지만 구체화 되지 않고 잠재되어 있다가 하나씩 구체화되고 실현되는 것이다. 자유라는 밀가루에는 박애라는 짜장면이라는 예비되어 있다. 짜장면으로 구체화 되지는 않았지만 밀가루가 도착해 있다면 이미 그 장소에 와 있는 거다. 그렇다. 이미 도착해 있다. 바로 그곳에 있다. 딴 데서 찾지 마라. ◎ 자유, 민주, 정의, 성장, 복지 ◎ 자유 ---- 평등 ---- 박애 ◎ of ------ by ------ for ◎ 의하여 – 통하여 - 위하여 ◎ 출발점 - 통과점 - 도달점 자유, 민주, 정의, 성장, 복지로 갈수록 제한된 목표, 좁은 범위에 적용해야 한다. 탑이 위로 갈수록 뾰족해지는 것과 같다. 대신 구체화 되어야 한다. 자유는 포괄적인 가치고 복지는 구체적인 현물이다. 이 순서가 뒤바뀌어 뒤에 오는 성장이 앞의 정의보다 커지면? 지금 성장이 급하니까 정의는 따지지 말자든가, 급하게 성장을 해야하니까 민주를 유보하자거나 한다면? 이건 사기다. 반드시 순서를 지켜야 한다. 하극상이다. 뒤가 앞을 칠 수 없다. 아래가 위를 칠 수 없다. 출력이 입력을 칠 수 없다. 결과가 원인을 칠 수 없다. 순서는 절대적으로 지켜져야 한다. 성장은 정의를 칠 수 없고, 정의는 민주를 칠 수 없고, 민주는 자유를 칠 수 없다. 정의가 민주를 칠 수 없다는 말에 주목해야 한다. 민주는 말하자면 친일파 박멸인데 이게 정의를 넘어선다. 정의는 사법적 판단인데, 헌법으로 정해서 친일파 재산을 몰수하고 공민권을 박탈할 수도 있다. 정의는 민주를 칠 수 없으므로 우리가 헌법을 바꿔서 조중동을 일본으로 추방할 수도 있다. (이것도 이치가 그렇다는 거.) 오사카넘은 한국인이 아니므로 이미 취임한 공직도 무효화 시킬 수 있다. 말하자면 원리가 그렇다. 그러나 그 민주도 자유를 칠 수는 없다. 자유는 기본 인권에 해당하는 사항이다. 건드릴 수 없다. 지위나 라이선스나 기득권을 빼앗을 수 있지만 인간은 건드릴 수 없다. 자유계약이라며 어린이 노동을 강제하거나, 노예로 삼거나 하는 일은 성립될 수 없다. 기본인권에 관한 사항은 민주적으로 결정해도 무효다. 다수결로 기본 인권을 제한할 수 있는가? 그럴 수는 없다.
복지로 성장을 칠 수도 없다. 복지를 위해 성장을 멈추자고 하면 하극상의 사기가 된다. 그러나 복지가 성장을 망친다고 말하면 무식한 소리다. 복지하면 성장이 안 된다는 말은 민주주의 하면 자유가 안 된다는 말처럼 완전 개소리다. 복지는 성장을 칠 수 없으므로 그런 일은 절대로 없다. 물론 지나칠 경우 복지만 찾다가 성장이 망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경우도 복지 때문이 아니고 정치를 잘못해서다. 적어도 한국은 앞으로 한 20년간은 복지가 성장의 발목을 잡을 일은 없다. 아주 미친 짓을 하지 않는 한은. 물론 30년 후에는 한국도 노인국가가 되어 복지가 위험할 수 있다. 그땐 외국인 노동자 대거 끌어와서 한 30년 더 버티면 된다. 그 경우도 복지가 원인은 아니다. 정치를 잘못한 거다. 그리고 그 다음은 어떻게 되든지 나는 상관 안 한다. 요지는 '전부 한 줄에 꿰어서 하나의 논리로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설명해야' 한다는 거다. 자유 따로, 민주 따로, 평등 따로, 정의 따로, 복지 따로, 인권 따로, 성장 따로 하나하나 떼어서 설명하니까 꼬여서 문제를 풀지 못하는 거다.
이들을 수평에서 교착시킬 것이 아니라 수직으로 해소해야 한다. 입체적 모형으로 이해해야 한다. 구조를 알면 답은 나온다. 진도를 계속 나가는게 답이다. 자유가 가장 높은 가치다. 거기서부터 줄기차게 마이너스를 행해야 한다. 자유가 정상이다. 정상에 머물러 있지 말고 아래로 눈을 굴려야 한다. 그 눈은 아래로 구르면서 점점 커진다. 거대한 세력이 만들어진다. 지구 전체가 시스템화 되어 대응하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 진보다. 그 과정은 마이너스다. 밀가루 손실이 일어난다. 그게 진보다. 그 과정에서 전부 한 줄에 엮인다. 시스템화 된다. 더 높은 레벨에서 대응할 수 있게 된다. 상황에 맞게 대응하는 거다. 상호작용 하는 거다. 그게 사는 거다.
왜 사는가? 이미 발동은 걸렸고 지구촌 인류문명이 이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맞게 지속적으로 대응해 가는 거다. 결과는 진보로 나타난다. 생각해야 한다. 과연 줄기차게 대응하고 있는가? 아니면 어떤 교조적인 논리에 사로잡혀서 묵은 구호만 계속 외치고 있는가? 포장된 박스 안에 과연 케이크는 들어 있는가? 아니면 빈 박스를 복잡하게 포장해서 누구도 풀지 못하게 해놓고 그 안에 다 들어있다고 우기며 공허한 목청만 높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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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번을 읽었소.
너무 쉽게 감각적으로 매끄럽게 걸림없이 다가오기에 오히려 여러번을 읽었소.
할일도 많은데 이걸 안 생각하고 안 읽을수가 없소.
이건 내 삶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자유. 인간의 가치와 존엄.
이 말을 생각하면 목이 메이고 가슴이 아팠소.
프랑스대혁명... 자유,평등,박애...
21세기의 나는 여전히 그 이름을 들을때면 벅차고 아프고 눈물이 고이오.
그냥 쉽게 듣고 끄덕거리기만 할 수가 없었소.
그렇게 가벼운 얘기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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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렇게 심플하게 말해도 되는건가?
상하관계를 그렇게 규정지어도 될만큼 세상이 단순한가?
여러번을 생각하고 딴지를 걸어봤소.
결론은 그렇다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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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들은 말할 것이오.
"그게 그렇게 단순한게 아니야."
"그럼 설명해봐?"
온갖 고뇌와 고민과 혼돈과 사기를 불러오오.
"골아프게 공부한 복잡계를 이렇게 쉽게 간단히 말해버리면 불공평하잖아?
니들이 뭘알아? 사상은 훨씬 더 심오한 거야.
그건 그렇게만 말할수 없어."
아...................혼동스러워야 그들의 할일이 생기고 권력이 생긴다........
가르칠게 생긴다. 그런데 해결하는 건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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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라는 것이 자유와 존엄의 결과라는 것.
그것은 인간의 존엄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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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자유를 열망하는 것....
그런 나를 억압하는 프레임에 저항한다는 것...
그 억압에 엄청난 분노가 켜켜이 쌓여 있다는 것....
이 프레임을 거부하고 싶다....... 인정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눈을 감고, 산으로 들어간다고 하고...
그런데.... 어디에서도 프레임으로 자유로운 곳이 없다....
이것을 벗어날 방법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슬픔을 불러오고.... 좌절을 불러오고...
그렇지만 어디에도 숨을 곳은 없다....
그렇게 해서 프레임 안의 소실점을 발견할 수가 없다.
프레임 안에서 전체를 보아낼 수가 없다. 고로 자유가 없다.
전지구가 시스템화 하여 대응하는 구조가..
지구촌 인류문명의 방향이 급격하게 진행되는 시대를 살면서...
나의 개인의 존엄과 자유는 어디에 있는가?
너의 개인의 존엄과 자유는 어디에 있는가?
어디에 잘 보관해 둔 토끼의 간처럼 있지는 않겠지...
가치는 수평으로 널려있는게 아니고..
입체적 상호작용으로 존재한다.
지구는 넓다란 사각판떼기가 아니라
지구는 둥글다..... 그리고 우주에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아.. 감각적으로 느끼는 걸 언어로 표현하기가 어렵네...)
아... 동렬의 천기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