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칼럼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8086 vote 0 2018.07.17 (14:21:07)

      
    계통이 진보다


    구조론은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를 한다. 1+1=2라는 거다. 단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과 연결시켜서 이야기하는 점이 다르다. 그냥 금이 좋다고 말하는 것과 금을 시장에서의 화폐기능과 연결시켜서 이야기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그냥 금을 말하면 은과 비교하게 된다.


    그런 파편화된 부스러기 지식은 정작 금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이 나왔을 때 쓸모가 없다. 때로는 부동산이 금이 되고 때로는 웹사이트 조회수가 금이 되는 이치를 모른다. 야후 검색은 낱낱이 고립되어 있고 구글 검색은 링크로 널리 연결되어 있다. 야후가 은이라면 구글은 금과 같다.


    구조론은 물리학과 수학으로 출발한다. 진보도 마찬가지다. 관념적 진보를 벗어나 진짜 진보를 논해야 한다. 막연한 생각은 역설의 함정에 빠진다. 우리가 단순하게 생각하면 숙종 때 상평통보가 널리 유통되어 경제가 발전했다고 피상적으로 알게 되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또 다르다.


    돈이 주어지면 지주들이 논밭을 팔아먹고 유민이 된다. 자본주의 초창기 영국 노동자의 비참한 생활과 같다. 인구가 늘어나므로 전체 GDP는 증가하지만 1인당 GDP는 그만큼 감소했다. 1인당 GDP로 보면 당시 일본과 조선의 차이가 의외로 작다. 조선농부들이 고기를 먹고 잘 살았다.


    왜? 조선은 닫혀있기 때문이다. 닫힌계 안에서 금이 나오든 은이 나오든 의미가 없다. 아프리카의 어떤 고립된 나라에 석유가 나오든 말든 의미가 없다. 숙종이 상평통보를 발행해서 정조 이후 유민이 대거 발생하고 조선이 완전히 망한 것이다. 그런 내막을 짚어주는 역사학자는 없다.


    화폐제도와 과거제도는 본질에서 충돌하는 것이며 자유주의는 부르주아 계급의 등장과 함께 하는 것이며 조선왕조는 그러한 내부모순으로 망한 것이다. 임금이 영정조시절 정치를 잘해서 경제가 발전했다는 식의 근왕주의는 박정희가 꾸며낸 얼빠진 소리고 사실은 대거 말아먹었다.


    사대부의 과거제도와 부르주아 상업경제는 공존할 수 없는 시스템이므로 조선왕조의 몰락은 필연이며 상평통보는 몰락을 가속시켰다. 구조적인 이유로 일어난는 근본모순에 부닥치면 임금이 정치를 잘해도 망하고 못해도 망하고 반드시 망한다. 초딩수준의 순진한 생각은 버려야 한다.


    막연한 생각과 실제의 사정은 일전에 말한 ‘모두 거짓말을 한다’ 만큼 큰 차이가 있다. 피상적인 접근은 곤란하다. 전부 연결시켜서 한 덩어리로 보는 시야를 열어야 한다. 진짜 진보는 계통의 발달이다. 질에서 입자가 나오고 입자에서 힘이 나온다. 사건을 기승전결로 전개시켜야 진보다.


    진보는 닫힌계 외부에서 에너지가 지속적으로 공급될 때 사건이 기승전결로 전개되며 잠재한 가능성들을 실현시켜 가는 과정이며 일정한 조건이 충족될 때 필연적으로 그 길을 가게 되지만 반드시 그 조건이 충족된다는 보장이 없으므로 여러 가지 이유로 그 반대현상이 다수 일어난다.


    진보하려다가 보수되고 보수하려다가 진보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대개 자력으로 못 가고 상대방 힘으로 간다. 박정희 시절 경제발전 덕에 김대중 시절의 진보가 일어났고 반대로 김대중 노무현시절에 진보한 덕에 이명박근혜의 집권이 가능했다. 이런 역설과 시행착오는 필연적이다.


    에너지의 부족 때문이다. 에너지가 충분하고 계의 배후지가 넉넉하다면 진보는 지속적으로 일어나지만 그렇지 않다면 보수반동은 필연적이다. 그러므로 진보의 이상향을 그리는 것은 허무한 짓이며 보수를 달고가야 진보가 된다. 유토피아는 망상이고 진보는 에너지의 결대로 간다.


    질에서 입자 힘 운동을 거쳐 량으로 간다. 거기서 진보는 일 사이클을 종결한다. 영원히 가는 게 아니라 그걸로 끝나는 것이다. 다만 다른 사건이 일어나므로 또 다른 질 입자 힘 운동 량이 반복된다. 즉 진보란 일대, 이대, 삼대의 계통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계통이 없으면 진보가 아니다.


    1대는 토박이들과 마찰하므로 외교를 하게 되니 주변에 인심을 쓰다가 망한다. 그게 타파되어야 할 부족주의다. 아랍과 아프리카와 동남아와 인도가 가난한 이유는 모두 1대에 머물러 있을 뿐 2대로 나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왜 흥했나? 촌주가 있었기 때문에 입자가 있었다.


    유럽은? 시의회가 입자를 이루었다. 중국과 조선은 과거에 합격한 관리가 외부인이므로 입자기능을 못한다. 아랍은? 성직자가 없다. 이맘은 동네 아저씨일 뿐 성직지가 아니다. 아프리카에는 족장이 없고 인디언에게는 추장이 없다. 추장과 족장은 백인들이 지어낸 말이고 실권이 없다.


    그럼 지금 한국은 촌주가 없는데 왜 흥하나? 일본의 촌주를 모방한게 동네 이장이다. 그보다는 교육을 통해 엘리트를 대량 보급해서 입자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1대에서 2대와 3대로 계통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진보다. 그런 개념이 없이 그냥 좋은게 좋다는 식의 진보주의 곤란하다.


    보통은 보수를 비판하여 그것으로 진보의 근거를 삼는다. 보수가 전쟁을 하는데 그 전쟁을 반대하는게 진보라는 식이다. 맹랑한 소리다. 전쟁은 모순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며 모순이 있는 곳에 에너지가 있고 인류가 그 에너지를 통제할 만큼의 의사결정능력을 획득했을 때 진보한다.


    모순이 없으면 진보가 없고 그 모순을 해결하지 못해도 진보가 없다. 진보가 무엇인가? 인류문명을 하나의 사건으로 보고 그 사건을 진행시켜 가는 것이 진보다.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에너지다. 처음 언어와 문자가 에너지를 만들었고 농업과 상업이 고대문명의 에너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공업과 정보통신이 에너지를 만들었다. 새로운 에너지의 공급원이 생겨날 때마다 문명은 그 에너지의 결을 따르는 질 입자 힘 운동 량을 조직해 왔다. 현대문명이 가는 바는 생산성이 결정하는 것이며 정치적 권력의 생산성과 경제적 산업의 생산성이 경쟁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만 진보이고 경제는 보수라는 식의 태도는 곤란하다. 합당한 의사결정구조를 만들어내는 집단이 이긴다. 이기는 게 진보다. 우리는 가난하지만 나름 평등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으니 진보라는 식은 정신승리에 불과하다. 실전에서 이겨야 한다. 무력으로 경제로 문화로 이겨야 한다.


    사건을 전개시켜 가는 것이 진보다. 인류의 출현 그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다. 거기에는 에너지가 있고 그 에너지는 통제되지 않으며 확산방향이므로 모순이고 그 모순을 해소할 내부의 역량을 갖추었을 때 진보는 일어나는 것이며 진보는 마음대로 가는게 아니라 반드시 결대로 간다.


    진보가 최종적으로 인류를 행복하게 한다는 보장은 없다. 단 인간은 결과가 아닌 원인에 설 때 전율하는 존재이며 진보하는 과정에서 촛불혁명과 같은 전율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진보는 힘을 얻게 하며 힘을 가질 때 두 주먹이 쥐어진다. 그대가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서는 것이 진보다.




   POD 출판 신의 입장 .. 책 주문하기 



[레벨:5]김미욱

2018.07.17 (23:39:47)

땅을 화폐로 바꾼 지주나 화폐에 취약한 노동자나 다 같은 유민 신세란 건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외부에너지 유입에 따른 생산성 향상을 추구하지 않으면 정반대의 두 처지가 다 진보를 향한 모순 형성의 기회가 박탈된다는 분석이 놀랍습니다.

숙종이 수많은 주변인물을 죽이고 내친 것은 화폐의 순기능을 능가할 만큼의 정치적 역기능을 미처인지 못한 채 자신을 방어하기에만 급급해 한 나머지 왕권 명맥 잇기에 실패했다는 사실에 실소를 금할 길 없습니다.
[레벨:30]스마일

2018.07.18 (00:00:16)

숙종은 열넷인가에 왕이 되어 바로 친정을 합니다.
조선시대 2명의 왕만이 장자전통을 잇는데 단종과 숙종 밖에 없습니다.
아마 상평통보는 숙종이 소년왕일 때 전국 시행됩니다.
어리고 왕위계승의 정통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봅니다.
또 서인과 남인으로 나뉘어 신하의 나라 조선에서
신하들의 충성경쟁으로 왕이 집권세력을 선택할 수 있어
3번의 환국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드라마 장희빈은 야사중심의 드라마이고
실록에서 숙종은 절대군주에 가깠습니다.

[레벨:5]김미욱

2018.07.18 (00:51:59)

직접 읽진 못했지만 야사에는 숙종의 두 아들 경종과 영조가 숙종의 씨가 아니라는 썰까지 돌아다녔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숙종의 정치를 추적해보면 환국을 해야할 만큼 절박한 그 무엇을 감추었단 역설적 심증이 듭니다. 드라마는 안방 주인들을 위한 여성용이고 오히려 시대적 모순에 몸부림치는 치열한 권력투쟁을 중심으로 만들면 흥미진진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1012 노회찬은 왜 죽었을까? 4 김동렬 2018-07-27 10364
1011 공포와 위엄으로 통치하라 김동렬 2018-07-24 8798
1010 인간말종 안철수와 추악한 한겨레 1 김동렬 2018-07-21 8185
» 관념진보를 극복하자 3 김동렬 2018-07-17 8086
1008 퀴어축제의 의미 김동렬 2018-07-10 7918
1007 이것이 진실이다 김동렬 2018-07-05 9897
1006 쓰레기 유시민 5 김동렬 2018-07-04 12373
1005 정의당이 약진할 것인가? 1 김동렬 2018-07-01 7144
1004 스쿼드가 강해야 이긴다 1 김동렬 2018-06-29 8170
1003 월드컵으로 본 이기는 법 9 김동렬 2018-06-28 10060
1002 통일 오고 종필 가다 2 김동렬 2018-06-24 7798
1001 여성정치 망치는 경향신문 2 김동렬 2018-06-23 7344
1000 소선거구제 버릴 이유 없다. 1 김동렬 2018-06-19 10891
999 최악의 쓰레기 김진명 6 김동렬 2018-06-17 10346
998 누가 문재인을 곤란하게 했는가? 4 김동렬 2018-06-14 10346
997 왜 징기스칸은 늘 지는가? 3 김동렬 2018-06-13 8882
996 누가 노무현을 죽이는가? 6 김동렬 2018-06-10 9665
995 트황상 건드린 홍준표 김동렬 2018-06-07 8587
994 홍준표의 위기와 김무성의 살 길 2 김동렬 2018-06-04 8514
993 미국의 거짓말 CVID 4 김동렬 2018-05-31 120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