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그런 괴물이 탄생했을까? 거기서 부터
먼저, 결론은 내자.
둘, 2이다.
둘이 중요하다. 하나가 아니라
남녀가 오래오래 사랑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상대를 철저하게 남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내가 널 사랑하지만 넌 남이다. 둘을 하나로 만들면 안된다. 영원히 둘을 유지해야 한다. 둘로 유지할 때 생기는 그 긴장, 그 불안, 그것을 유지해야 한다.
둘이 둘로 유지될 때 그 긴장을 동렬님은 "밀도가 걸린다"라고 표현한다.
60-70년대 영화의 대명사, 고시생과 술집아가씨,
이 술집아가씨가 한 행동이 전형적인 "희생"마인드다. 그런데 이 희생이란거, 뒤집어보면 한번의 희생으로 평생 공짜 삶을 살겠다는 심보다. 자신의 행위를 일종의 "저축"화 하는 거다. 한번 크게 저축(희생)하고 평생 조금씩 빼서 쓰겠다는 거다. 그런데, 이건 엄청난 착각이다. 이미 그 희생자체도 포함되서 균형을 이룬거다. 즉, 한번 희생이 아니라 평생 희생해야 균형이 가능한거다.
거품 낀 균형이 아니라, 결혼할 때 한번뿐인 균형이 아니라. 늘 둘의 상태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내가 홀로 서고, 상대도 홀로 서고, 기대지 말고, 합치려 하지 말고
김어준은 모든 관계에서 1:1 관계를 유지한다.
간단하다, 내 얘기 요점은 끝났다 (웃음)
모든 관계는 기본적으로 권력관계다. 위계가 있다는 거다. 기본적으로 가면을 쓴다.
그래서, 김어준이 괴물이 된거다.
모두가 권력관계인데, 거기서 대등관계로 모든 사람을 만난다는 것 자체가. 괴물인 거다.
당신 상사와 대등관계로 단 한번이라도 만난적이 있는가? 이것은 "예의" 문제와 다른거다.
아버지와 1:1로 만난 적이 있는가? 아버지가 아닌 중년의 한 남자, 바랜 빛의 한 남자와 1:1로 만난 적이 있는가?
"존경한다". 이 단어, 불균형관계다. 이미 균형관계의 긴장을 포기한거다.
"가르친다" 마찬가지다. 단방향 전달만 있을 뿐이다.
말로 하면,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내가 고용한 종업원이 나를 배신하고 나와 똑같은 사업을 하게 되는 상황인 것이다. 이 상황을 쿨하게 받아 들일 수 있는가? 이 종업원이 나에게 주는 긴장을 쿨하게 즐길수 있는가?
내 마누라가 발리댄스학원을 한다. 다른 뭇 남성들과 빤스같은거 하나만 입고 춤을 춘다. 이 상황을 쿨하게 유지할 수 있는가?
우리는 이 긴장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권력관계를 사용하는 데 굉장히 익숙하다.
나와 같은업종의 사업에 뛰어드는 사람은 늘 있다. 그가 우연히 내 종업원 이였을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뭔가 굉장히 손해를 본 느낌이다. 권력관계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내 종업원이 휼륭했으면 좋겠다. 그러면 그 종업원도, 사장 마인드로 일을 해야 한다. 그래야 흔히 말하는 창의성과 주인의식이 나온다. 그런데, 그 관계는 늘 위와같은 부담이 있고, 어렵고, 긴장되고, 밀도가 높은 관계이다.
말처럼 쉽지 않다.
그런데, 권력관계에서는 기본적으로 상호작용의 경험치가 상승되지 않는다.
처세술에서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이 있다.
"듣는 것을 잘해야 한다."
조까는 소리다. 그것은 당신이 그를 알로 보거나, 당신이 알로 보이거나다.
날 것 그대로 서로 만나야 한다. 대등하게,
처세가 아니라 입장을 가지고,
너무나도 지당한 말씀이지만, 아주 좋소.
오랫동안 알고지낸 사람같이 느껴지오.